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86)
도화선의 불은 그레이트노던철도가 붙였다.
힐 철도이사가 운영하는 그레이트노던철도는 필리핀회사의 대주주이자 미국내 극동아시아 무역의 절대강자이기도 했었다.
그레이트노던철도의 힐 이사의 결정은 단순했다.
“우선 일본제국의 상사, 해운사들과 페소화로 체결된 계약은 전부 파기하도록 하게.”
힐 이사는 차분히 심호흡했다.
디트로이트 이사가 말한 타이밍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 자신은 그에 맞춰 계약을 파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메이지의 공황이 끝나면 극동물류는 필리핀회사와 그레이트노던철도에게 나눠드리겠습니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중독될지도 모르겠군.”
“상대국과의 신뢰관계에 스크레치를 낼 계약파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비서, 너무 그렇게 나를 압박하지 말게. 내 심장이 디트로이트 이사만큼 단단하지 않은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회장님, 농담이시죠?”
비서는 회장실 밖을 바라보았다.
이번일을 진두지휘하겠다면서 극동아시아에 깔아놓은 해저케이블의 통신장비를 다 뜯어와 회장실 앞에 설치하게 만든 장본인이 약한 말을 하니 괴랄해보이기 까지 했다.
– 미쓰비시에서 일방적인 계약파기에 대해 소송하겠다고 합니다.
– 진짜 소송하면 페소화로 된 계약 말고 다른 계약들도 전부 다 파토내겠다고 해!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 미츠이에서 항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제국 대장성에서도 전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 무시해! 지금은 계약파기가 먼저다!
회장실 밖은 그레이트노던철도의 극동물류부서와 법무부서의 직원들의 고함으로 터져나가고 있었다.
힐 철도이사는 피식 웃었다.
“상대방과의 신뢰관계를 생각한다면 자네 말대로 이렇게 접근하면 안되지.”
힐 이사는 일본지도를 펼쳐들었다.
평소 단단하지만 유하던 힐 이사의 눈빛에 서늘한 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냥개를 철저히 짓뭉개 삶아먹을 생각이라면 얘기가 다르네.”
뽁-
힐 이사는 만년필을 뽑아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나가사키, 등 항구도시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레이트노던철도의 극동물류노선에선 미쓰비시와 계약했던 건이 많았었지?”
“예, 물동량의 거의 10%를 독점계약하고 있는 자이바츠 계열사입니다.”
“첫 타겟은 그놈으로 잡지. 그놈이 필리핀회사의 동남아시아 물류노선에서도 상당한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네.”
치익-
힐 이사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계약파기 후 통화스와프를 강행하게. 페소화는 디트로이트 이사가 현금수송선에 실어서 일본제국으로 향하고 있으니.”
미쓰비시기선 도쿄본사.
쾅-!
“이게 도대체 무슨 횡포란 말인가!”
미쓰비시 당주는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에 임원들을 긴급소집해 중역회의를 열었다. 그레이트노던철도가 오늘 아침부터 일방적인 계약파기를 선언해왔다는 소식엔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물동량의 20%는 그레이트노던철도의 면화수입이고 40% 이상은 동남아시아 필리핀회사의 원자재수입이다.’
필리핀회사가 그레이트노던철도의 소유라는 것은 일본의 상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 그랗다면 미쓰비시 물동량의 50% 이상이 방금 캔슬났다는 소리였다.
“우선 계약파기의 사유가 뭐라고 하던가? 우리 미쓰비시 측에서 실수한 건이라도 있었나?”
“아닙니다. 당주. 그레이트노던철도측에 항의한 결과 페소화의 폭락 탓에 손해보전을 하려고 계약을 파기했다는 것 같습니다. 대신 엔화나 달러로 결제한다면 계약을 이어나갈 의지는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 페소화가 폭락…..? 잠깐만.”
미쓰비시 당주는 순간 혼란했다.
화폐가치가 폭락했다고 국제무역에서의 신뢰관계를 박살내고 일방적인 계약파기를 통보했다고 하기엔 저쪽이 잃을 것이 훨씬 많았다.
‘애초에 극동물류는 일본제국을 통하지 않으면 대륙진출은 훨씬 힘들어질텐데 뭐하러….?’
하지만 그의 상식을 비웃듯이 미쓰비시기선(해운)과 미쓰비시상사의 상황은 최악에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중역회의의 임원들은 보고하러 들어온 자신들의 비서들로 인해 혼잡스러웠고, 회의실은 소음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한 중역이사가 급하게 달려왔다.
“당주, 영국법인들과 네덜란드의 법인들도 줄줄이 계약파기를 통보해오고 있습니다. 전부 페소화로 결제되는 건입니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면 미쓰비시기선과 미쓰비시상사의 해외물류가 올스톱하게 됩니다.”
“뭐….?”
미쓰비시 당주는 현기증을 느꼈다.
진짜 스페인이 망하기라도 했나? 에이 설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회의실의 문을 벌컥 열고 비서가 급하게 들어왔다. 비서가 미쓰비시 당주에게 속삭이자, 당주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장성의 마쓰가타 대장대신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꽤 급해보이는 목소리였습니다만, 지금 연결해드릴까요?”
“…..회의실 전화기로 연결하게.”
“예.”
비서는 직원들과 함께 빠르게 회의실에 전화기를 설치했다.
비서는 통신신호가 양호한지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 전화기를 통해 대장성의 대장대신과 직통전화가 연결되자 미쓰비시 당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방적인 계약파기를 받은 이 시점에 대장대신의 직통전화……’
영…..
감이 좋지 않다.
달칵.
미쓰비시 당주는 살짝 떨리는 손길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수화기를 집어든 순간, 마쓰가타 대장대신의 말이 속사포처럼 귀로 쏟아졌다.
– 미쓰비시 당주이십니까? 마쓰가타 대장대신입니다. 놀라지 말고 차분히 들어주십시요. 방금 외무대신으로부터 들어온 전보가 있는데 꽤 위급한 상황입니다.
“…..예.”
– 스페인이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
– 예, 심호흡하고 들어주십시요. 현재 페소화 화폐가치는 바닥을 뚫고 추락하고 있으며 이 소식을 며칠 빠르게 들은 남미국가에선 이미 페소화의 패닉셀이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는건.”
– 예.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 페소화가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되었습니다. 곧 그레이트노던철도와 필리핀회사, 그리고 일본결제은행 등지에서 통화스와프 요청이 쇄도할 겁니다. 아마 상당히 위험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후우.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마쓰가타 대장대신이 한마디를 남기고 전화가 끊겼다.
–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요. 그럼 건투를 빕니다.
달칵.
***
일본제국 대장성.
임시 상황통제실.
“지금 당장 국립은행들에게 연락돌려!!! 일단 기업간 통화스와프부터 해결하라고!!! 시간부터 끌어야한다고 계속해서 설득하게!!!”
“도쿄의 제15국립은행 파산신청했습니다!!! 일반국립은행들은 기업간 통화스와프도 견디지 못합니다!!!”
“파산신청은 기각이다!!! 그래도 일단 붙들고 늘어지라고 해!!! 이번에 한해서 특별히 엔화의 조폐를 허가할테니 엔화를 계속해서 수급해주라고!!!”
“도쿄의 제20국립은행도 위험합니다!!! 무역항 근방의 국립은행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상황통제실은 혼돈이었다.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손수건으로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지금 돌아가는 판을 둘러보았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동공엔 현재 국립은행들의 상황이 눈에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역항을 낀 국립은행들은 기업간 통화스와프에서 지급보증을 서고 있었다. 그러니 중소해운업이 넘어가면 국립은행이 함께 넘어간다.
정치력은 떨어지지만 재무에 관련된 능력은 뛰어난 인사.
그게 마쓰가타의 대외적인 평판이었다.
“이봐, 사립은행들은 어떤가. 5대은행들은?”
“현재 상황이 심각합니다. 미쓰이은행이나 제1국립은행, 스미토모은행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현금박치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미쓰비시가 위험합니다.”
“젠장…..역시 미쓰비시부터 밀리기 시작했나. 미쓰비시면 은행서열 중에서도 4위의 거물급 아닌가. 일단 조폐국에서 엔화를 찍어내면 미쓰비시은행부터 살리라고 지시하게.”
“그, 그럼 다른 국립은행들은…..!!!”
“파산하게 냅둬!!! 군소 국립은행들이야 파산해봤자 일개 중소해운사 몇개만 넘어가지만, 상위권의 대형은행들이 넘어가면 자이바츠가 무너진단 말이다!!!”
“하, 하이!!!”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상황통제실 내부를 돌아다니며 중요한 정보들부터 수집했다. 대장성이 봐야할 상황은 국립은행 뿐 아니라, 국내철도시장이나 산업계, 대외적인 식민정책까지 살펴봐야했기 때문이다.
우선 국립은행들이 무너지면 산업계나 식민정책이나 다 휴짓조각행이다. 특히 5대은행같은 거대한 은행들은 더더욱.
무조건 현금을 수급해서 살려야한다.
“대장대신, 조폐국에서 엔화의 추가발행을 승인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찍어낸 엔화들은 우선 미쓰비시측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잘부탁하네.”
“대장대신!!! 도쿄증권거래소로부터 긴급연락입니다!!!”
쾅.
한 대장성의 관료가 새하얘진 얼굴로 울부짖자, 국립은행들과 씨름하던 다른 관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에게로 쏠렸다.
마쓰가타 대장대신도 심각해진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도쿄증권거래소?”
“예, 현재 미처 도쿄증권거래소의 개장을 막지 못한 탓에 증시가 실시간으로 파탄나고 있다고 합니다.”
“잠깐….도쿄 증시면.”
마쓰가타는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일본의 도쿄증권거래소는 아직 해외의 증권거래소만큼의 규모를 확보하지 못했다. 민간의 재벌들이 증권거래소에 대기업들을 상장하지 않았던 탓이다.
‘큰일났다.’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사기업들의 주식이 상장되지 않은 증시다. 그럼 어떤 주식들이 상장되어 있겠나?
국영기업이나 국립은행들이다.
지금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는 국립은행들의 주식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단 의미다.
“오사카 증권거래소도 확인해보게.”
“예!”
안돼…..
안된다. 이거 국립은행들 못버틴다.
순간 정신이 가출한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거의 괴성을 질렀다.
“당장 도쿄증권거래소부터 폐장시켜!!! 제일 시급한 건이다!!!”
흥분한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마리칼을 쥐어뜯었다. 아직 기업간 통화스와프도 억지로 꾸역꾸역 소화시키고 있는 판국이다.
아직 은행간 통화스와프인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시작도 안했다.
본진이 오기도 전에 국립은행들 다 망하게 생겼다.
‘뭔가 방법이……’
덥썩-
그때 두툼한 손길이 대장대신의 어깨에 툭하고 올려졌다.
“이봐, 마쓰가타. 안색이 안좋은데 무슨 일 있나?”
뒤따라온 야마모토 해군대신이 뒷목을 슥슥 긁으며 상황통제실에 나타났다.
그가 봐도 상황이 심각해보였는지, 해군대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해군…..”
순간 마쓰가타의 머리가 빠르기 회전했다.
기업간 유제한 통화스와프가 먼저 닥쳐왔다. 은행간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아직 시작도 안했지.
그럼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봐, 비서관. 자네.”
“예, 대장대신 말씀하십시요.”
“페소화를 실고 요코하마항에 들어오는 배가 어떤 배인지 혹시 들은내용 없나? 일단 내게로 보고가 올라오기 전에 자네가 다 확인하지 않나.”
“페소화 현금수송이라면 며칠뒤에 ‘우선’ 무장상선으로 들어올거라고 그레이트노던철도측에서 통보해온 모양입니다. 요코하마항 뿐 아니라 나가사키항, 오사카항, 등 여러곳으로 들어올 예정이랍니다.”
“무장상선…..그래…..무장상선이란 말이지.”
무장상선이라.
무장상선이 강한가 장갑순양함이 더 강한가. 따져보면 장갑순양함이 더 강한게 진리다.
그는 이채가 어린 눈으로 야마모토 해군대신을 바라보았다.
“야마모토 해군대신님.”
“어, 어. 마쓰가타. 왜 그렇게 비장하게 쳐다보는가?”
“혹시 지금 연합함대의 순양함대 중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함대가 있습니까?”
“음…..도고 제독과 얘기를 나눠봐야 자세한건 알겠지만, 지금 비전투상황 아닌가. 놀고있는 함대야 널려있겠지.”
“그럼 혹시 요코하마항과 나가사키항, 오사카항에 들어올 미국 상선들을 다 억류시켜주실 수 있습니까?”
“……뭐?”
야마모토 해군대신은 뭔 헛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더욱 비장해진 얼굴로 해군대신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 잘만 마무리되면…..신형전함을 위한 예산을 책정해드리겠습니다.”
“….!!!!”
순간 해군대신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쓰가타는 내심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대장성이 파산하면 일본제국이란 국가의 경제는 끝장날 것이며 그러면 해군성은 자동적으로 군축에 들어가겠죠? 해군대신은 그런 상황을 원하십니까?”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가.”
“예, 지금 국립은행들 숨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오는 무장상선이 현금수송을 온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우선 그 현금수송선만 억류해 주십시요.”
페소화의 현금수송선만 막을 수 있다면 어쩌면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금수송선이 일본제국에 다다르지 못했으니 우리는 페소화를 받지 못했고 그러니까 통화스와프는 당신들이 계약을 불이행한 탓을 하며 파기할 껀덕지가 생길테니 말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도쿄증권거래소도 한낮에 갑자기 폐쇄해버렸다. 해군을 통한 상선 억류는 허용범위에 들어간지 오래였다.
해군대신은 잠시 고민하더니 무거운 입을 열었다.
“…..신형전함. 약속이네. 꼭 들어줘야 하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일본은행의 조폐국에서 우리 통화스와프에 집할 엔화를 계속해서 발행하고 있다고 하네. 요 며칠간 계속해서 통화스와프로 공격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일본정부가 잘 버텨.”
쏴아아-
요코하마항의 선착장.
내가 탄 그레이트노던철도의 무장상선은 페소화의 현금을 수송한 채 선적하기 위해 들어왔지만. 곧바로 일본제국의 연합함대에게 억류되었다.
“그야 그렇겠죠. 제가 타고온 현금수송선이 억류되었으니까요. 아직 페소화를 받지 못해서 배짱부리고 있는 겁니다.”
펄럭-
욱일승천기(旭日旗)
일본제국해군의 깃발이 펄럭이며 장갑순양함들이 내가 타고온 무장상선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싣고온 페소화는 선적하지도 못한채 요코하마의 바다 위에 둥둥 떠있었다.
“그래도 사람은 나오게 해주는군요.”
“그야 미국인을 억류하면 빼도박도 못하니까 그렇겠지. 이것도 자네의 예상대로가 아닌가?”
“뭐…..그렇죠.”
사무엘 삭스는 선착장에 미리 도착해 나를 마중해주었다.
검은색 기모노를 입은 사무엘 삭스를 보자니 기분이 묘해졌지만, 그의 말대로 이것 또한 내가 노린 것이 맞다.
“아마 요코하마항 뿐이 아닐겁니다.”
“요코하마항 뿐이 아니다?”
“도쿄만, 오사카항, 나가사키항, 그 왜 쿠로후네 사건으로 개항시킨 항구란 항구엔 다 페소화를 실은 무장상선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
“예, 일본제국의 연합함대는 그들을 억류하느라 없는 배까지 열심히 굴리며 억류하겠죠. 원래 그놈들 일처리가 좀 거칩니다.”
일본정부의 생각은 단순하다.
일본본토로 페소화가 상륙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
즉, 우린 아직 페소화를 못받았으니 통화스와프는 취소라고 잡아떼려고 하는건데…..
어림도 없지.
– 페소화가 일본땅에만 닿지 않으면 된다.
설마 이 단순한 생각을 내가 못했을까. 나는 이 상황을 역이용하려고 일부로 약해보이는 무장상선으로 ‘1차’ 현금수송을 보낸 것이다.
일본제국은 그레이트노던철도를 통해 슬쩍 흘린 미끼를 월척으로 물어버렸고.
흐름이 좋다.
“후속으로 현금수송선이 도착할 겁니다.”
“후속으로?”
“예.”
이건 베들레헴 철강에게 좀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75억의 해상보안예산이 통과되고 베들레헴 철강은 덤핑으로 장갑순양함들의 건조를 무더기로 수주받았으니 말이다.
장갑순양함 한 척에 들어간 건조비용은 무려 30%를 할인한 70만 달러.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 한 척에 들어간 건조비용은 100만 달러.
1억 달러만 배정해도 대략 200대나 찍어낼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 미국해군은 눈깔이 돌아가서 그들에게 군함수주 물량을 밀어줘버렸다.
‘덤핑수주의 생산단가를 낮출 방법은 오직 물량을 많이 뽑아내는 것뿐이다.’
미해군의 입장은 명확했다.
전후 군축으로 장갑순양함의 유지비를 걱정할바엔 차라리 싼 값에 왕창 뽑아내고 전후에 스크랩해버리자고.
그 덕분에 현재 태평양은 남아도는게 장갑순양함이었고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 특허괴물이 ‘살짝’ 실수해서 베들레헴 철강이 크루프장갑을 쓰게되고 우리 특허의 주포를 쓰게되었지만.
이건 나중의 재미다.
“곧 쏟아져 들어올겁니다.”
“쏟아져들어온다니? 후속으로 뭔가 오는건가?”
“예. 그런게 있습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역시 추심엔 군함이지.
페소화를 상륙하지 못하게 하려고 죽자고 막고 있으면 다 죽일 각오로 뚫어버리면 된다.
우린 페소화를 못받았다고 통화스와프는 취소라고 잡아떼면 해결이 될 줄 알았나 본데.
미국의 자본주의 맛이 얼마나 지독한지 보여줄 때가 왔다.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막았을거란 그들의 안일한 착각을 더욱 지독해진 수단으로 부숴줄 필요가 있었다.
‘네놈들이 먼저 힘으로 나온거다.’
아마 일본제국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정보를 주던 영국 왕립해군은 우리를 위해 침묵해줄 것이며, 무엇보다 이번에 계약파기한 외국법인들 속엔 영국법인들도 꽤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정보에 빠른 네덜란드도 마찬가지.
일본제국의 귀는 미리 다 막아놓았다.
“‘조금’ 위험한 현금수송함들이 후속으로 도착할 겁니다.”
참고로.
현재 1899년 일본제국의 연합함대엔.
아직 전함이 단 두 척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장갑순양함과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아직 19세기말이었고, 아직 함포외교가 먹히는 시절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