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96)
워싱턴 D.C.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
일본제국이 미1함대에 기습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백악관을 강타하자 시급히 장관들을 불러모아 장관회의를 개최했다.
메킨리 대통령은 이마를 찡그렸다.
“……고민이 되는군요.”
그리고 이 자리에 합석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
괘씸하지.
당장 찢어죽이고 싶지.
감히 미1함대를 선전포고도 없는 기습으로 침몰시키고, 미국의 아들들을 도쿄만에 수장시켜버린 저 간악한 잽스들을 다 잡아쳐죽이고 싶은건 이자리의 모두가 공감했다.
하지만 정치인이란 족속은 언제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법.
미국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아직 민주당에게는 이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죠?”
“예, 아직 미국연방정부의 일부 수뇌부만이 알고 있습니다.”
“조심해주세요. 대책이 세워지기 전에 그들의 귓가에 들어가면 분명 전면전을 외칠 겁니다.”
주전파로 재미 좀 본 민주당이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 이번에야말로 전쟁비용 1000억달러라면서 무리수를 던질게 분명했다.
하지만 재선.
공화당의 재선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지금. 그들은 미래를 대비해 현실의 차가움 속에서 이성을 깨워야했다.
“이대로면 삼면전선입니다.”
분노를 억지로 집어삼키며 루스벨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에라도 기관총을 들고 잽스들을 도륙해버리고 싶었지만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스페인제국은 공중분해되었지만, 아직 쿠바와 필리핀 반군들이 남아있습니다. 쿠바 군정청과 필리핀 군정청을 유지하면서 일본전선까지 연다면 미국이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정도입니까?”
라이만 게이지 재무장관이 메킨리대통령의 말에 대답했다.
“예, 부분동원령이 아닌 총동원령으로 미국물자와 군대를 뽑아내기 시작한다면 전시경제는 반짝 좋아질 수는 있어집니다만, 그 이후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한창 성장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꺾을 이유도 없고요.”
필리핀과 쿠바까지는 아직 감당이 된다.
하지만 일본까지 전선을 열어버린다면 미국경제는 10년, 20년 전으로 후퇴해버릴수도 있다.
전시경제는 최후의 만찬이나 다름없다.
총동원령.
전시체제가 끝나고 평시로 돌아오면 전쟁물자를 찍어내던 경제가 하루만에 정상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인력소모를 다 현 공화당 정부가 감당할 수가 있는가? 국력소모는?
절대 불가능이다.
어쩌면 바로 직후 경제가 공황을 얻어맞아 붕괴해버릴 수도 있었다.
“제한전의 기조를 유지해야합니다.”
“하지만 저 간악한 잽스들은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을 해왔습니다!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다면 시민들이 미국연방정부를 뭐라고 보겠습니까?”
쾅-
메킨리 대통령은 답답함에 책상을 내리쳤다.
“뭔가 대책이 없습니까? 일본제국, 아니 적어도 그 군부만이라도 조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침묵했다.
당장이라도 전면전으로 일본제국을 갈아먹고 싶다는 심정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면전선은 그것도 드넓은 태평양을 끼고 유지하기엔 국력소모가 너무 심하다.
제한전으로 어떻게든 병력투입을 최소한으로 조져야했다.
혜안이 필요하다.
“대통령님.”
그때.
존 헤이 국무장관이 손을 들었다.
장관회의실의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뭡니까?”
“디바이드앤룰을 참고해 부분적용해보심은 어떻습니까?”
“디바이드앤룰?”
분할하여 통치하라.
대영제국 식민당국의 정책기조로 수많은 식민지들을 통치할 때 사용하는 정치기법이었다.
민족주의와 종교등을 이용해 분열하고 분열하게 만들어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식민정책.
헤이 국무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일본제국의 천황은 대정봉환으로 일종의 전제왕정이나 다름없는 권위를 휘두를 수 있습니다만, 그건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벌어진 사태입니다.”
막부.
메이지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일본제국은 천황이 아닌 쇼군이 권력의 중심에서 정치를 전담했었다.
“이 쇼군이란 국가수반이 오랫동안 막부를 통해 일본제국을 통치해왔으며 일본제국의 천황은 일본제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일본제국민들에게 천황이란.
“그 어떤 의도도 없이 그저 비유일 뿐이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해보세요.”
“그들에게 있어. 천황은 가톨릭 신자들이 생각하는 예수의 존재와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세에 내려온 신격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취급이 거의 유사합니다.”
“허.”
장관화의실의 모두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참고로 일본의 천황은 그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면 고대까지 이어지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일본판 가톨릭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냥 비유로 말씀드린거니 1대1 대칭은 안됩니다만 위상은 그정도입니다.”
“하지만 제국의회와 화족, 그리고 군부는 다르죠.”
일본제국에 있어 천황은 절대적인 존재다.
권력의 절대성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 산하의 내각대신들은 다르지.
그들은 현인신이 아니다.
힘 좀 가진 일개 제국민 중 한명일 뿐.
“디바이드앤룰. 천황을 토템으로 흔들며 일본제국민들과 군부를 분리할 수 있을 겁니다.”
“분리한 뒤엔. 그 뒤엔 어떻게 합니까?”
“디트로이트 이사가 저희에게 답안지를 주었습니다.”
메킨리대통령의 물음에 존 헤이 국무장관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일본에서 천황을 완전히 뿌리채 뽑을 수 없다.
그렇다면 분열시켜 천황의 수족을 잘라버리고 토템으로 만들면 될 뿐.
분열할 판도는 이렇다.
메이지천황과 일본제국민을 묶고. 착한 편.
자이바츠와 군부를 묶어서. 나쁜 편.
선과 악으로 분리한다.
그 뒤엔?
“디바이드앤룰로 지연전을 펼치며 행정명령 1000호 경제제재조치를 강화하시죠. 이로서 미국이 전략과 명분을 모두 챙기는 겁니다.”
죽기 직전까지 목을 조인다.
슥.
헤이 국무장관은 보고서 몇 부를 서류가방에서 꺼내들었다.
[동아시아의 정세와 철강수요 및 신용평가에 대한 보고서.] [일본의 정치구조와 역사.] [대일본 경제제재조치 가이드라인.] [일본결제은행의 성과보고서, 재무제표 및 자산목록. 국세청 제출용.]-디트로이트 도 모건.
“굳이 전면전을 할 필요까지도 없어질 겁니다.”
알아서 말라죽을테니까.
디트로이트 이사의 책략은 계속해서 일본을 쥐어짜고 있었다.
다음날.
[미국 재무부의 발표. “일본정부와 은행은 근친상간적인 관계. 자이바츠들의 관치금융과 비정상적인 부채가 메이지공황을 초래한 것. 미국의 선진금융을 받아들여야.”]-월스트리트저널(WSJ)
[미국 국무부의 발표. “일본군부의 무능과 폭주는 일본제국의회가 부패의 결과. 자이바츠와 유신지사들의 더러운 이면에 피해받는 일본제국민들. 경제제재조치를 상향하겠다. 해상봉쇄기간을 3달에서 1년까지 늘릴 의향도 있어.”]-뉴욕타임즈(NYT)
[미국 전쟁부의 발표. “군부의 부패인사들이 매이지천황을 둘러싼 현 상황에 심히 유감을 표함. 우리는 메이지천황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바. 우리의 주적은 일본의 군부다.”]-뉴욕월드(NYW)
[백악관. “군부에 의해 탄압받는 시민들에게 자유를 쥐어주는 것이 자유주의 미국의 사명.”]– 시카고트리뷴(CT)
[미국은 자유의 횃불을 들었다.]-워싱턴포스트(WP)
하시마섬.
미쓰비시 탄광의 사장실.
“일본정세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저희는 일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국무부와 미국정부는 디트로이트 이사님의 혜안이 필요합니다.”
검은색 정장차림의 엘리트들이 내게 SOS를 쳤다.
나는 조용히 콜라를 따고 접대용 유리잔에 따랐다.
치이익-
“국무부에서 제 자문을 요청하신다는 겁니까?”
“예, 아직 미1함대가 고전중이고 미5,6,7함대가 일본을 향해 오는 중이잖습니까. 그 이전에 대일본 전략을 확립하고 싶은게 저희 국무부의 의향입니다.”
일본결제은행의 이사진.
개중에 섞여있던 국무부의 고위급들이 내게 접촉해왔다. 이 시기 국무부는 일종의 정보기관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기에 일본현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주일미국공사도 있었으니.
“본국은 메이지천황을 인정하고 군부. 대본영만 박살내겠다는 거군요.”
“디트로이트 이사님의 첨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쵸.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바이드앤룰을 짠다면 손해가 적어질테니까요.”
그리고 전면전은 나도 바라지 않는다.
꿀 빨아먹어야하는데 초토화시키면 뭐가 남는데.
하지만 이 디바이드앤룰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일본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순종성이었다.
다이묘와 사무라이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너무 말을 잘 듣는다.
그래서 이 조치는 농민들을 향하되 농민들을 향하지 않는다. 일본제국의 지배층들이 농민들의 봉기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지배층을 동요시킨다.
농민들을 미국의 품에 안는다.
미국은 천황이라는 인형을 흔들어 그 순종성을 정제해 천황에 집중하고 군부의 목을 쳐버린다.
“확실히 그렇게 되면 성가신 부패세력들만 잘라낼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현 내각?
해산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군부는 아니지.
“부패한 간신배들의 나쁜 군부. 자유의 횃불을 든 구원의 미국. 그게 우리의 지향점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앞에 앉은 이가 감탄했다.
그러나 안먹힐 수 있다.
디바이드앤룰이 그리 쉬운 작전이 아니지. 나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정도는 끌 수 있었다.
농민들이 미국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군인들이 굶어죽기 시작하며 탈영하기 시작하게 만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딱, 3개월만 끌 수 있으면 미국의 완전한 승리다.
“경제제재조치를 강화하는 겁니다.”
“경제제재조치를요?”
현대미국이 어떻게 경제제재조치만으로 나라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나.
그건 전면전따위보다 경제제재조치로 말려죽이는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국무부 직원의 의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가시죠.”
***
일본 대본영.
제국의회가 폐회하고 해군부와 육군부의 기습공격이 감행된 뒤, 곧바로 2차 대본영을 설치한 일본제국군부에게 패닉이 터졌다.
좋은 소식 한가지가 있다면.
주미일본공사관의 회선이 다시 열렸다는 점. 그래서 미국편제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지만.
대본영은 곧 이게 좋은 소식이 아닌 절망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쾅-!
“…..다시 말해보게.”
야마모토 해군대신은 눈앞에 벌벌 떨고 있는 부관을 노려보았다.
부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미5함대가 진로를 변경. 대만의 연합함대를 무력화시키고 해상봉쇄에 들어갔습니다.”
“미5함대는 일본본토로 오기로 한게 아니었나? 도쿄만의 1함대를 구원하러 오려면 대만이 아니라 요코즈카 진수부로 와야하지 않나.”
“전략목표를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쿄만에 왔어야할 5함대는 대만총독부로 회군해 전면 해상봉쇄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는 대본영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야마모토 해군대신이 포효했다.
“이런 젠장! 대만엔 셀룰로오스와 장뇌가 있단 말이다! 이게 없으면 화약을 뽑아낼 수가 없잖는가! 대체 그자식들은 왜 대만조차 못지키는 거야!”
쨍그랑-!
깨진 유리컵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당장 화약의 보급로가 끊겼다.
대만총독부의 고립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하지만 보고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미1함대의 구원요청을 받은 미6함대가 도착했습니다! 도쿄만의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후지급 침몰! 연합함대에 더 이상 전함이 없습니다! 비방호 순양함이 계속해서 미국의 함대에게 사냥당하고 있습니다!”
“남은 병력들 철수시켜! 마이즈루 진수부의 해군들은 아직 남아있을 것 아닌가! 그놈들 복귀시키고 도쿄만에서 철수해! 당장!”
“미7함대가 도착! 육군의 병력수송선의 존재를 견시가 포착했습니다! 오사카항으로 진입합니다!”
미국의 함대가 계속해서 증원되었고.
사세보, 구레, 요코즈카의 연합함대가 소멸했다. 대만총독부의 완전한 고립과 부분적 해상봉쇄가 시작되었다.
“안돼! 안돼! 안돼!”
쾅! 쾅! 쾅!
야마모토 해군대신은 연합함대의 전멸소식에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책상 위 집기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박살났다. 집기에 맞은 장교들은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오들오들 떨며 제자리를 사수했다.
야마모토의 눈이 돌아갔다.
마이즈루. 마이즈루만이라도 지켜야한다.
“마이즈루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켜! 교토만큼은 절대 사수해야한다!”
쾅-!
대본영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해군이 완전히 뻗어버리자, 이 도화선의 불은 육군에게로 옮겨 붙었다.
“일본 내 석탄물량이 없다고? 대만총독부가 고립되어서 화약의 보급이 불가능해? 아니 이런 빌어쳐먹을 물개새끼들은 대체 뭘하고 있는거야!”
해군과 육군의 불화.
“오사카로부터 입전! 상륙한 미육군에 의해 도지마쌀거래소가 점령당했다고 합니다! 쌀의 대형창고등이 몰려있습니다!”
“요코하마로부터 입전! 미츠이 포목(의류)공장과 아사노 자이바츠의 화약공장까지 점령당했습니다! 공업단지가 미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미쓰비시의 하시마탄광에 전일본열도의 석탄들이 쌓여있다고 합니다!”
고작 며칠 지났다고.
그 며칠사이에 도대체 뭐가 일어난 거지?
석탄, 화약, 쌀, 석유, 포목, 공업, 총.
육군은 앉은자리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있었다.
“뭐냐…..”
덜덜덜.
가쓰라 육군대신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일본결제은행의 지시와 정보공유로 이 모든 작전들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주요 기간산업들은 진작에 출자전환으로 일본결제은행에게 인수당한 이후였다.
“도대체 왜 미국놈들이 일본 대본영보다도 더 보급요충지들을 잘 꿰고 있는게야!”
도대체 뭐냐.
일본결제은행 이 괴물은.
대체 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냐.
“우리는 지금 일본 본토에서 싸우고 있는 것 아니었냔 말이다!”
속박.
대본영은 디트로이트의 손아귀에 잡힌 채 발악하고 있었다.
***
일본 대장성.
“대장대신. 대본영에서 날아온 전보입니다.”
“…..그래.”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수척해진 얼굴로 대장성 관료의 전보를 건네받았다. 눈 깜짝할 새에 대본영이 세워지고 미국에게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을 했단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복귀했지만.
이미 늦었다.
전보를 읽어내린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더욱 창백해졌다.
진지하게 할복을 하고 싶어지고 있었다.
“대본영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던가.”
“일본 총옥쇄를 해서라도 귀축영미들을 신토에서 구축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답니다.”
“…..미친 새끼들.”
저놈들은 지금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거다. 그저 보급이 끊겼으니 쿠소 쿠소를 남발하면서도 전쟁을 속행하고 있었으니.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골머리를 싸맸다.
“대만총독부가 고립되었다고?”
“대만총독부도 일본제국의 일부로 인식하고 해상봉쇄망에 포함시킨 것 같습니다.”
“일본내 장뇌와 셀룰로오스의 최대산지 중 하나를 봉쇄당했다……”
화약의 합성원료가 끊겼다.
이는 단순히 ‘끊겼다’라고만 표현할 수 없었다. 화약원료를 이용해 가동할 일본내 전체 화약공장들이 멈췄다는 소리며 아사노 자이바츠의 화약공장도 올스톱했다는 소리.
공업의 한 축이 완전히 멈췄다.
초인플레이션에 설상가상으로 매출까지 없어졌으니 적자폭만 늘어나고 빚만 늘어나게 생겼으니.
일본 화약공업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에 따른 대량실업자들이나 파산할 기업들에 대한 처우는?
대본영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셀룰로스는 화약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질산은 비료의 가장 중요한 재료이기도 하다.
대만총독부가 봉쇄당해 비료의 공급이 끊긴다?
이제 곧 파종시기인데?
“비료값은 어떻게 되고 있나.”
“벌써부터 사재기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10배를 넘어 15배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구아노…..는 기대도 못하겠군.”
비료가 없다.
대일본 봉쇄작전 탓에 전세계와의 수출입이 단절되었다. 게다가 구아노의 큰손 중 하나가 미국이란 점을 떠올리면 기대도 할 수 없었다.
“농무성은 어떻게 하고 있나.”
“전쟁터입니다, 대신. 농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답니다. 농무성은 가격고정제를 실시하고 싶어하지만 그랬다간 일본 농산물업계가 무너집니다.”
파종시기에 비료값이 치솟으면 농민들이 취할 수 있는 대책은 몇가지 없다.
농사를 포기하거나.
자급자족을 하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애초에 기본적인 농업생산량 자체가 급속도로 나락을 갈 것임은 확실했다.
올해는 반확정으로 흉년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뭐? 도지마 쌀 거래소까지 점령당했다고? 대본영놈들 대체 왜 본토에서조차 졸전을 거듭하는거야? 대체 왜 그걸 빼앗기고 있어?”
쾅-!
마쓰가타는 분노했다.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이게 엔화의 유일한 희망이었단 말이다!”
대본영의 돌대가리들은 그냥 밥줄이 끊겼다며 성질을 부리고 있다지만, 대장성에게 있어 도지마 쌀 거래소는 일종의 성지였다.
에도막부시기.
일본은 일종의 쌀본위제라 할만큼 쌀을 기초로 지폐를 발행했고, 다이묘들은 사무라이들에게 쌀과 지폐를 교환해 봉급으로 지급했다.
도지마 쌀 거래소는 일본최대의 쌀 선물시장이자 현물시장이다.
엔화가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은본위제도 포기한 지금. 실물경제와 엮으려면 에도시대로 회귀해 쌀과 연동시키려고 했는데.
다 물거품이 되었다.
“비료값은 오르고! 쌀저장고는 빼앗기고! 비료원료도 차단당하면 대체 농민들은 뭔 농사를 짓는단 말인가!”
도시의 실업자들이 시골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농사를 모른다고 내쳐지는 것도 서러운데 소작농으로도 취직이 안된단다. 대지주들의 대출에 이자율이 너무 높아 피를 토하며 다 게워낸 탓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인력이 필요한데 돈이 부족하다.
결론?
농사를 못짓는다.
웬만큼 견실한 지주들이 아니면 지어도 살과 뼈를 깎아야한다.
“미쓰비시 하시마탄광에 석탄들을 다 빼앗기고, 석유수입도 안되고, 미츠이 포목공장이 빼앗겨서 군인들 제복도 못만들고.”
지금 내가 일본에 있는게 맞나?
아니 어떻게 일본인이 일본에서 보급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일본은.
순식간에 보급능력을 잃어버렸고.
실시간으로 굶어죽고 있었다.
촥.
신문을 펼쳤다.
[일본제국의 짙은 패색. 이 모든 원인은 자이바츠와 메이지정부와의 근친상간적인 관계와 비정상적인 부채비율에서 야기된 것. 일본제국은 미국의 선진경제를 이식할 필요가 있다.] [천황폐하의 두 눈을 가리는 간신배들. 대본영은 과연 일본제국의 충신들인가.] [자유의 횃불을 든 미국. “자유진영의 미국은 일본제국민을 구제하기 위해 팔 걷어붙이고 나설 의향이 있다.”]– 아사히신문.
국가재정은 바닥을 긁고 있었고.
기초자산들은 일본결제은행을 통해 다 국외로 유출되었고.
국유화할 돈도, 국유화해서 노동자들을 먹여살릴 돈도 없었다.
…..일본결제은행이 없으면 일본경제가 망한다. 구제금융위원회가 없으면 일본경제는 회생할 수 없다.
신문기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정부의 강력한 경고. “일본정부를 돕는 자이바츠 기업집단들은 추후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될 것. 미국정부는 자이바츠의 일본원조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일본을 도우면 너네를 끝장내겠다는 미국의 경제적 선전포고.
경제보복조치란 미명하에 일본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미 언론도 다 일본결제은행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건가.”
“국가기간사업과 자이바츠, 언론 등 우량기업들과 주요산업들을 공략했습니다.”
“…..젠장.”
일본은 실시간으로 분열되고 있었다.
이어지는 대본영의 실책들과 굶어죽을 미래밖에 안보이는 농촌의 농민들. 일본제국의 신민들은 감히 천황폐하를 의심할 수 없었지만 대본영이라면 다르다.
게다가 이미 그들의 눈과 귀. 그리고 경제는 일본결제은행과 미국이 틀어쥐었다.
[미국 농무부. “미국연방정부는 일본제국민들에게 식량원조를 할 의향도 있어. 대량의 옥수수와 밀을 제공할 충분한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전쟁부. “스팸 등 군수물자들이 남아도는 상황. 우리들도 원조에 협력할 의향이 있어.”]회유. 유혹.
[일본결제은행. “쌀과 비료를 매점매석하는 스즈키상점 등 도매상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 현 일본의 산업과 경제체제에 일본결제은행의 필요성.”]당위성. 필연성.
[구제하러온 일본결제은행을 암살시도한 야마가타 내각은 과연 옳은가?] [현 일본정치체제와 금융의 경악할 후진성, 일본은 미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의혹과 문제점.
이건.
나같아도 흔들린다.
미국은 일본제국민들을 향해 탐스러운 미끼를 걸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쾅-!
그때 급하게 문을 열고 대장성 관료 하나가 뛰쳐들어왔다.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불길함이 엄습했다.
“…..대장대신.”
“뭔가. 뭔데 그렇게 창백해졌나.”
좀 희소식은 없나?
아직도 바닥이 더 있었나?
대장성 관료는 푹 고개를 숙였다.
“보고드립니다. 발틱해운거래소, 런던선물거래소, 시카고선물거래소, 시카고상업거래소, 뉴욕선물거래소, 뉴욕상업거래소 등 거래소들에서….”
…..설마.
“일본제국의 국명이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바닥은 더 있었다.
***
끼릭. 끼릭.
그 시각.
일본 교토(京都).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이즈루 해군진수부.
꼬르륵.
잠망경이 수면 위로 불쑥 올라왔다.
– 목표물 포착. 어뢰 장전.
“발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