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
무당기협
1화
올해 나이 팔십 세.
참 철없이 겁 없이 오래도 살았다.
원래 소년은 나이는 먹어도 철들지 않는 법!
전에는 불로장생을 꿈꾸며 몸에 좋다는 것은 모조리 처먹으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도가 놈들은 등선을 해서 신선이 되기도 한다는데 나에게 그런 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십오 년 전인가?
나를 간악하다 욕하던 무당의 말코 도사 놈들이 있었다.
내가 왜?
인신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강도질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쁜 짓 하는 놈을 구해 준 적도 당연히 없다.
도둑질한 놈, 산적 놈, 수적 놈.
안 잡히면 몰라도 제가 멍청해서 잡힌 머저리를 구할 리가 없잖은가? 파옥(破獄)? 언어도단이다.
그런데.
그들의 사파의 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욕을 했다.
참을 수 없어서 화 좀 냈더니 정사대전이니 뭐니 하며 전쟁이 일어났다.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대규모 접전이 일어났으나 정작 나는 그곳에 없었다.
왜? 애초에 목표는 무당이었으니까.
다른 놈들이 싸우건 말건 무당으로 갔고, 세 개 궁을 불태우고 장문인과 장로들의 모가지를 모조리 뽑아 버렸다.
기껏 선심 써서 욕한 놈만 내놓으라 했는데 검부터 들이밀기에 그랬다.
그랬더니 비열하다, 간악하다, 치졸하다며 또 욕을 했다. 웃긴 놈들 아닌가?
어쨌거나 휴전은 했지만, 그로 인해 천년 도가의 성지였던 무당은 세(勢)가 약해져 구파의 말석까지 밀려났다고 했다.
뭐 나완 상관없는 일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물론 원래 성향도 도사 놈들과는 맞지 않는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말을 내뱉는 위선적인 족속들…….
상종은커녕 생각만 해도 두드러기가 돋아 오르는 것 같다.
후우,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말짱해지는 정신 덕에 지나간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게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건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일생을 함께해 온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제자 녀석, 장로들…… 나와 함께 지금의 사패천(邪覇天)을 이룬 믿음직한 녀석들.
그런데 천우명이 안 보인다.
좀 많이 모자라기는 해도 가장 충성스러운 녀석.
그러고 보니 나를 위해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겠다고 떠나서 아직 안 돌아온 건가?
있지도 않은 걸…….
그냥 돌아오지.
그 녀석의 성격상 지금쯤 어느 산자락을 뒤지며 잡초나 캐고 있을 게 뻔하다. 약초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면 좋을 텐데.
여하튼 자꾸만 숨이 가빠지는 것이 이제 귀천(歸天)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당시에 나와 함께 시작한 놈 중에 나만큼 잘된 놈은 없었다.
일월마교, 정무맹과 함께 당금 무림을 삼분한 사패천의 주인.
사패천주 혁련무강.
그게 나의 이름이었다.
잘난 놈 배신하고, 못난 놈 짓밟고, 도와준 놈 등에 칼 꽂고…….
배신과 배반을 일삼으며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사파의 지존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비열하다 손가락질했지만, 우매한 것들이 뭘 알겠는가. 그 덕에 나는 치열한 세상 풍파를 이겨 내고 근 사십 년간 왕으로서 사파에 군림할 수 있었다.
원하는 여인은 언제든 안을 수 있었고, 비고에는 금은보화가 넘쳐 났다.
엔간한 문파 하나쯤은 손짓 하나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최강의 권력자가 이 몸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어찌 사람이 되어서 하늘의 뜻을 거스르겠는가?
갈 때 되면 가야지.
이젠 크게 미련도…… 사실 좀 아쉽기는 하다.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비고에 쌓아 둔 돈이라도 몽땅 써 버리는 건데.
감히 내 몸에 칼침을 놓은 정파의 몇 놈은 손봐 주고 갔어야 했는데.
새로 들인 첩실 화양(華陽)이와의 뜨거운 밤도 아직인데!
하아…….
한숨이 가쁜 숨으로 변해 입 밖으로 새는 것이 느껴진다.
믿음직한 수하들이 나를 향해 슬픈 얼굴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충성스러운…….
“씨발, 왜 안 죽는 거지?”
충성…….
“몸에 좋다는 걸 있는 대로 처먹어서 명줄이 잘 끊어지지도 않는 모양이군.”
“개새끼. 지독한 새끼.”
이 새끼들이?
“저 정신 연령 낮은 사악한 놈 때문에 죽도록 구른 걸 생각하면 눈물이.”
욕설도 모자라 이제라도 뒈져서 다행이라며 눈물까지 질질 짜는 놈도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해 보겠습니다.”
올해 예순을 바라보는 유일한 제자 놈이다.
저걸 제자라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해 주면서 키웠다니.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정말 소천주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암요.”
“그래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그 멍청한 천우명 단주가 혹시라도 불로초를 진짜로 구해 올까 봐 매일 정화수까지 놓고 빌었다니까요?”
“그러니까요. 세상에 저런 패악 무도한 놈이 늙지도 않고 더 사는 꼴을 봐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어휴.”
딴에는 소곤거리는 모양이지만 다 들린다.
“이제 우리끼리 잘해 봅시다.”
모두가 제자 놈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분위기다.
차라리 빨리 뒈지라고 목을 조르지 그러냐!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하던 놈들의 기분이 이런 거였나. 이 비열하고 간악한 놈들.
뭐, 처음부터 이런 놈들이기는 했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저 멀리 검은 옷을 입은 놈이 환영처럼 일렁거린다.
나를 마중 나온 저승차사가 틀림없다. 분가루라도 칠한 것인지 안색이 무척 창백한 놈이다.
하아, 그래. 가자.
더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현실의 사물들이 흐릿해지고, 저승차사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해진다.
혁련무강…….
중저음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첫 번째 부름.
그 부름이 세 번째가 되면 이승과의 연이 완전히 끊어진다 했던가?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없다. 더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눈이나 감…….
“주~ 구~ 운!”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미염공(美髥公)처럼 멋들어진 수염을 휘날리며 침소 안으로 뛰어드는 반가운 인영.
철검단주 천우명.
불로초를 구하러 간 주제에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온 것까지도 녀석답다.
그래,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나에 대한 충성심이 그나마 존재라도 했던 녀석의 얼굴은 보고 가게 되어서…….
“불로초입니다! 제가 드디어 불로초를 구해 왔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주군!”
그의 한마디에 모인 이들의 얼굴이 와장창 일그러졌다.
잠깐만…… 뭐?
이 판국에 그게 뭔 개소리야!
불로초라고? 그딴 게 진짜 있는 거였어? 뭐야, 나 사는 거냐?
갑자기 생의 의지가 마구 솟구친다!
“어서요, 어서 드십시오!”
천우명이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흙도 채 떨어지지 않은 약초를 마구잡이로 입에 쑤셔 넣는다.
그래! 잘한다!
어서 서둘러라, 이 무식한 놈아…… 씨발, 그래도 흙은 좀 털고.
“주군, 어째서 씹질 않으십니까! 씹으십시오. 씹으셔야 합니다!”
혁련무강…….
이런 미친, 누가 저 저승에서 온 새끼 입부터 좀 막아 줘!
하지만 목소리는커녕 몸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에잇!”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지르며 천우명이 내 입에 강제로 처넣었던 불로초를 다시 꺼내 움켜쥐었다.
자, 잠깐 너 설마…….
우려는 언제나 현실로 돌아온다.
꾸우욱.
짜냐?
씻지도 않은 손으로?
“제가 먹여 드리겠습니다, 주군!”
“빌어먹을! 막아! 천 단주를 막아라! 어서!”
제자들과 장로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 천우명을 잡아당겼다.
야 이 새끼들아! 놔둬! 놔두란 말이야! 내가 좀 더 사는 게 그렇게도 꼬우냐!
혁련…….
이 난장판을 비웃는 것처럼 세 번째 부름이 시작되었다.
아, 잠깐만!
나 아직 덜 먹었어! 덜 먹었다고!
무…….
씨발,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사력을 다해 입에 힘을 모았다.
다행히 아직 혀는 움직인다.
자존심도 잊고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끌어 올려 최선을 다해 천우명의 손을 빨았다.
꿀꺽.
미친 듯이 핥아 대는 혀 놀림에 엉망진창으로 으깨진 불로초가 목 어림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저승차사가 내 이름 세 번을 완전히 부르기까지는 고작 한 글자가 남았을 뿐이다. 육신과 연결된 영혼의 고리가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끊어지려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 젠장, 저 도움 안 되는 새끼. 조금만 더 빨리 오지. 살 수 있었는데. 불로장생,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낼 수 있었는데.
강…….
이제 완전히 끝이다. 돌이킬 수 없다.
내 돈…… 내 화양이…… 내 뜨거운 밤…….
그런데.
불로초의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악착같이 짜낸 의지와 불로초의 약효가 뒤섞여 끊어지려는 영혼의 끈에 꾸역꾸역 달라붙었다.
세 번을 불렀음에도 끈이 잘리지 않자 저승차사의 표정이 당혹스럽게 변했다.
표정만 변했는가? 아예 강제로 뜯어내려는 것처럼 이미 육체에서 반쯤 빠져나와 있는 나의 혼을 움켜쥐고 힘껏 끌어당겼다.
야, 아! 머리카락! 악! 아파, 아프다고, 이 새끼야!
툭!
놓쳤다.
머리카락이 왕창 빠진 것인지 머리 가죽이 지랄 맞게 아파 왔지만.
흐흐흐, 결국 놓쳤다.
저승차사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는 나를 바라보았다.
살았다. 내가 이겼다.
불로초라는 게 진짜였나 보다.
천우명, 이 기특한 새끼…….
네가 나를 살리는구나.
살아나면 크게 한턱 쏴야겠다.
그런데 저승에서 온 놈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참을 날 노려보던 녀석이 다가와 내 몸에 손을 얹고 주문 같은 것을 외웠다. 분명 어떻게든 내 혼을 빼 가려는 생각이겠지.
후후, 백날 노력해 봐라 이 새끼야! 불로초다! 불로초!
진시황도 못 처먹고 죽은 걸 내가 처먹었다고!
나는 저승차사에게 주먹 쥔 오른손의 손목을 잡아 다소곳이 내밀어 주었다.
한데 이 새끼가 의미심장하게 쪼갠다.
하아? 쪼개?
병신 새끼,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이럴 때 답은 하나다.
버틴다.
후후, 인내심 하면 무림에 나만 한 인간이 없다.
놈이 꺼질 때까지 눈 딱 감고!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사패천주 혁련무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