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일 대 삼의 싸움.
운암의 손을 떠난 운룡이 날카로운 이빨을 세워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고, 전요와 전현의 검은 이강백의 몸을 날카롭게 찢었다.
백여 초에 가까운 공방이 이어지고.
땅!
참마도에 검이 쪼개지고.
퍼억!
휘두른 참마도의 면에 운암이 복부를 맞고 튕겨 나갔다.
“크윽!”
“사숙!”
바위에 처박힌 운암이 피를 게워 내었다.
“하아, 하아…… 제법이었다.”
참마도를 어깨에 걸치고 선 이강백 역시 지친 숨을 내뱉는다.
그 역시 상처를 입고, 옷의 여기저기가 넝마처럼 잘려 나갔지만 운암 일행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현과 전요는 부러진 검에 지탱하고 있음에도 몸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고, 운암은 지독한 내상에 눈빛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
운암이 약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이강백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이었다.
운암이 만들어 낸 운룡은 힘 있고 강하며 정교하고 날카로웠으나, 결국 이강백의 참마도를 넘지 못해 허리가 잘리고 이빨마저 뽑혀 버렸다.
강의 무인이 가진 현격한 힘의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백여 초를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진무 덕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와의 비무를 통해 운룡대팔식의 초식이 훨씬 더 정교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력을 다해 온 이강백의 참마도를 십 초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법이구나. 아직 강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자가 이 정도의 힘을 보이다니.”
이강백은 운암을 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리고 더없이 강한 살기를 뿜어내었다.
“구야자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죽여서 싹을 없애야겠구나.”
그가 다가선다.
끝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운암은 목구멍 너머로 솟구치는 핏물을 삼키고 젖 빨던 힘까지 끌어 올려 몸을 세웠다.
“호오?”
운암이 비틀거리며 방유척의 앞을 막고 자세를 취한다.
그 모습에 이강백이 걸음을 멈추고 묘한 눈으로 운암을 쳐다보았다.
“곤륜…… 죽을지언정…… 쓰러지진…… 않아.”
“…….”
힘겹게 내뱉는 운암의 말에 이강백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깨에 걸쳤던 참마도를 양손으로 잡았다.
“적이지만 기특한 놈. 좋다. 예우해 주마. 내가 가진 최강의 초식으로…….”
이강백이 자세를 낮추고 참마도를 길게 늘어뜨린다.
우우웅!
대기를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퍼져 나가는 검은 마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가, 이내 참마도에 뭉치듯 어렸다.
마기로 이루어진 흑빛 강기.
이강백은 운암을 인정해 단 일격에 그를 잘라 버릴 생각이었다.
참격 혼쇄참월(魂鎖斬月).
“죽어……?”
참마도에 어린 강기로 세상을 반으로 갈라 버리려 했던 이강백이 불현듯 뒷골을 파고드는 섬뜩한 느낌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쐐애애액!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
“……!”
그리고 막대한 기운이 느껴지고, 이내 그 정체를 드러내었다.
“크엑!”
포위망을 이룬 마인들을 꿰뚫고 날아오는 그것은.
탄강?
이강백이 쏘아진 화살처럼 형체를 드러낸 무언가에 기겁하며 참마도를 끌어당겨 몸을 보호했다.
따아앙!
거친 쇳소리와 함께 날아온 무언가가 넓은 도신을 때렸다.
‘크윽!’
막대한 충격에 뒤로 밀렸다가 억지로 몸을 세운 이강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탄강이 확실하다.
막았음에도 이 정도의 충격을 준다면?
설마 진룡?
그가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이강백이 굳은 얼굴로 탄강을 시전한 인물을 찾기 위해 안력을 돋웠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시푸른 강기를 검처럼 들고.
“말도 안 되는!”
이강백은 그의 손에 들린 강기에 기함을 토했다.
탄강에 이어 이번엔 기검이다.
이강백의 놀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걷는 그 걸음마다 푸른 빛이 사선을 그리고, 그를 막아서던 마인들이 모조리 썰려 나갔다.
싸움이 아닌 학살.
뿜어진 피가 바닥을 적셔 만들어진 길 위로 한 명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왔다.
‘풍환이 아니라고?’
이강백의 한쪽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당연히 진룡일 것이라 예상했던 인물은 약관밖에 되지 않은 도사였다.
“이런 씨발 놈들, 안 비켜?”
외양은 분명 도사인데 저속하기 짝이 없는 말투.
하지만 더 두고 보다가는 칠동천의 정예들이 모조리 육편에 핏물로 화할 판이었다.
기검을 사용하는 자 앞에서 탄기며 의기며, 그따위 경지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모, 모두 물러나라!”
이강백의 외침에 진무를 향해 칼을 들이밀던 마교인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가로막던 장애물이 사라지자 진무가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교도 다 됐네. 천주씩이나 되는 고수가 약한 애들이나 괴롭히고.”
“…….”
마치 산보라도 나온 것일까?
기검을 소멸시킨 진무가 뒷짐을 지고 이강백의 앞으로 다가왔다.
“비켜.”
뭐라고?
이강백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새파랗게 어린 도사 놈이.
이강백이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쥐는데 진무가 더 빨랐다.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공중에 뜬 진무의 등이 보이더니, 회오리처럼 차 낸 발이 날아오고 있었다.
뻐걱!
가까스로 팔을 당겨 막았던 이강백의 몸이 서 있던 곳에서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크윽!”
막았음에도 팔뼈가 부러질 듯한 충격에 찡그려진 얼굴.
아무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지만 기운이 둘러진 팔을?
‘어떻게? 분명 아무런 준비 자세도 없었는데?’
이강백으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방금 진무의 공격은 분명 흔하디흔한 뒤돌려 차기다. 일반 발차기보다 한 동작이 더 들어간 만큼 속도가 느려야 했다.
그리고 마땅히 뛰어오르기 위한 준비가 있어야 했고, 몸이 회전하기위한 전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휘도는 순간 날아온 발뿐이었다.
‘대체 이놈은?’
이강백이 진무의 등 어림을 바라보는 사이.
“괜찮냐?”
진무는 운암에게 다가가 있었다.
“진무 도장…….”
“멍청한 새끼들…….”
“……?”
진무의 욕설에 운암을 비롯한 곤륜 도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진무…… 도장?”
“그래, 고작 이거였냐?”
“……?”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고작 방유척 따위를 확보하려고 목숨을 건 거야?”
“그게 무슨?”
“됐다. 말을 말아야지.”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사이 진무에 의해 강제적으로 비켜났던 이강백이 매서운 기세를 뿜으며 다시 다가선다.
“네놈은 뭐냐?”
이강백의 입가에 담긴 비웃음.
진무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탄강을 넘어 기검을 쓰는 자라면 자신보다 훨씬 경지가 높다.
하지만 후속한 증원이 보이지 않았다.
이강백을 비롯해 그의 뒤에 있는 것은 칠동천의 정예.
그 수가 일백에 달한다.
아무리 강하다지만 정무칠성 정도의 무위를 가지지 않은 이상 살아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작해야 약관의 도사가 아닌가?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가 그 정도의 경지에 달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간도 큰 놈이구나. 혼자서 곤륜의 도사를 구하러 오다니.”
“구해? 누가? 내가?”
“뭐?”
“힘없이 죽어 가는 민초들은 외면하고 방유척 따위에 목숨을 거는 새끼들을 왜 구하냐?”
진무의 날 선 비웃음에 운암과 곤륜 도사들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중원의 수호자? 도문? 개소리 하고 있네. 결국 본질은 제 이득에 충실한 무림인들의 집단일 뿐이지. 그러면서 정사마의 구분은 잘도 해, 안 그러냐?”
곤륜을 넘어 정파 무림 전체를 매도하는 말. 그럼에도 누구 하나 당당하게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참 우습지. 혹시나 방유척이 다른 세력에 들어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꼴들이라니. 그깟 보검 따위가 뭐라고.”
그의 말에 담긴 통렬한 비판에 운암의 얼굴은 더욱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비웃음 가득한 진무의 시선이 곤륜의 무인들이 감싸 지키고 있는 방유척을 향한다.
그러곤 그를 향해 다가갔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마교 무인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방유척?”
진무의 다가서자 방유척과 그 일행이 고개를 숙였다.
“소협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하마터면…….”
“개 같은 오해 좀 하지 마라. 너 따위 구할 생각 없으니까.”
“……?”
“그나저나 확실히 방유척이 맞네. 완전 방유척이야.”
“……예?”
진무가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방유척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유척은 맞는데…… 넌 누구냐?”
“…….”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맞는데 누구냐니?
전혀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아닌가?
“그게 무슨?”
“말했잖아. 방유척이 맞긴 한데 너는 누구냐고?”
“……?”
진무의 물음은 방유척의 일행뿐 아니라 운암과 곤륜의 제자, 그리고 이강백에게까지 의구심을 품게 했다.
“방유척 얼굴이 맞거든?”
“…….”
“근데 방유척이 아니란 말이지.”
신기하다는 듯이 방유척의 좌우를 살피는 진무의 모습에 보다 못한 곤륜의 제자 정순이 나섰다.
“지, 진무 도장, 구야자 어른께 어찌 이리 무례하신…….”
“모르면 닥치고 있어. 멍청한 도사 새끼야.”
“……예?”
너무도 직설적인 말에 정순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화가 잔뜩 나 있던 진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방유척에게 집중했다.
“말해 봐. 넌 뭔데 방유척 행세를 하는 거지? 이렇게 거창한 무대까지 만들어서 말이야.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오?”
“잘 들어. 처음에는 청해에 와서 사고를 친 마교 놈들만 죄다 썰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자꾸만 거슬리더라고.”
“…….”
“내가 아는 방유척은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 어째서 니들이 그의 가죽을 덮어쓰고 행세를 하는 걸까?”
방유척이 죽었다는 말에 곤륜과 마교인들은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이 되었으나, 당사자의 옆에 있던 일행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 아, 마교 놈들도 죽여야 하지만 원인은 방유척 행세를 하는 놈들이구나. 그 새끼들이 아니었으면 마교가 이딴 짓거리를 하지 않았을 텐데. 어떤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새끼들도 반드시 잡아서 족쳐야겠다, 뭐 그런 생각.”
“그게 무, 무슨…….”
방유척 일행은 순간 어찌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진무의 말대로 그들은 꾸며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방유척의 행방이 묘연하다고만 알고 있었지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약관의 도사는 어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혹시 그저 허수로 찔러 보는 것은 아닐까?
“대가리 굴리고 있네.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지?”
“…….”
“변장술에도 상하가 있어. 니들이 가진 힘을 추측하건대 내공으로 얼굴을 바꾸는 재주는 없는 것 같고, 결국 가죽을 뒤집어썼다는 건데.”
방유척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으나, 그 옆의 일행들의 얼굴은 점점 더 사색이 되었다.
“봐 봐.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 진짜 방유척이었다고 해도 황당한 표정 정도는 지어야 하는 게 정상이거든. 니 옆에 있는 놈들처럼.”
방유척의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근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 정교하긴 한데 가죽이 너무 두꺼워. 감정 표현이 안 된단 말이야. 즉, 그렇게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뜻. 그치?”
“……!”
“그런데 니들이 마교 놈들을 충동질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아?”
진무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는다.
“망할! 발각되었다.”
그걸 이제 알았니?
그리고 이제 와서 그런 걸 빼 들면 어쩌자는 걸까?
다 보이는데.
방유척과 그 일행이 품에서 꺼낸 작은 원통.
하지만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