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천중산 남쪽, 해가 잘 드는 드넓은 평원에 세워진 거대한 성.
주위를 두른 성벽이 천중산을 에울 듯 길게 펼쳐져 있었고, 높기는 또 얼마나 높은지 가까이 다가가면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만 할 지경이었다.
그곳이 바로 중원 삼 패의 한 축인 사패천(邪覇天)이다.
누대로 모두가 정파의 영역일 것이라 자신했던 하남의 천중산에 사패천의 본성이 자리 잡았을 때 모두가 미쳤다며 손가락질했다.
그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또한 무척이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북으로 소림을 두고 남으로는 정무맹과 인접했으며, 서쪽에는 무당과 제갈, 동쪽으로 안휘의 남궁이 있는 곳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정파의 심장부와 같은 곳에 사파의 근간을 세우리라 생각이나 했단 말인가?
혹자는 그를 두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손오공이라 비웃었고, 또 혹자는 부질없는 알 박기라며 손가락질했다.
일 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전투를 이어 오며 사십 년을 당당하게 버텼고, 뿌리를 내리는 것에 성공했다.
그 모든 것을 이룬 이가 바로 사파의 하늘로서 사십 년간 무림에 군림해 온 사황(邪皇) 혁련무강이었다.
후에 그들이 천중산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 때, 치열한 격전에서 해방된 제자와 장로들이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천주님, 다른 곳도 많은데 어째서 천중산이었습니까? 이곳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겁니까?”
“비밀은 무슨. 천중(天中)이니까.”
“예?”
“하늘의 중심. 멋지지 않니? 나 혁련무강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 아니냔 말이다.”
라며 뻔뻔하게 웃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제자들과 장로들은 그가 천주임도 잊고 그의 입을 찢어 놓고 싶었다.
고작 그따위 이름 때문에 사패천의 무인들이 그 개고생을 해 가며 지켰단 말인가?
모두가 목숨을 걸고 지켜 내었기 망정이지, 정파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리는 바람에 십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무칠성을 차례로 무릎 꿇리고, 일월마교주 북리도천과 함께 중원 최강이라 불리는 혁련무강이라면 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천주님,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이유? 있지.”
역시.
“산세가 좋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여기에 집을 짓겠다고 다짐했거든.”
“…….”
다짐, 참 좋은 말이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람이 수많은 역경과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뒷짐을 지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혁련무강의 모습에 제자와 장로들은 모두가 ‘야이, 개새끼야!’라고 눈빛으로 욕했다.
차마 무서워서 입으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패천은 하남성 천중산에 버티고 선 채 사십 년의 세월을 지키며 사파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성의 중심에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구 층의 전각.
사패천의 중심이며 사황의 거처였던 천중전(天中殿).
“크하하핫!”
거칠게 터져 나온 앙천광소.
그 발원지는 예순을 넘은 노인이었다.
그는 다름 아닌 혁련무강의 유일한 제자이자, 현 무림을 삼분해 가진 두 번째 사패천주 유월청이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거상 송 대인을 직접 뵙게 되다니 내 기쁘기 한량없소.”
유월청이 눈앞에 쌓인 금은보화에 탐욕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웃었다.
“송구합니다. 천주님과 연을 맺고도 늙어 뼈마디가 쑤신다는 핑계로 그간 아랫것들을 보냈습니다.”
유월청을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노인.
새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해 상투관으로 고정하고 비단 장삼을 갖추어 입은 그는 산서성 상계를 손에 쥐고 아우르는 산서상회의 회주 송여방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든 그는 올해 칠십을 넘겼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정정한 얼굴이었다.
품하자면 마치 오랜 세월 학문을 닦아 온 노학사 같다고 할까?
“허허, 내 송 대인의 연배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탓하려 한 말도 아니니 과례를 거두시오.”
“예. 천주님.”
유월청이 손사래를 치고 자리를 권하자 송여방이 꼿꼿한 걸음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나저나 이거, 이리 많이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소이다?”
가득히 쌓인 재물 상자에 유월청이 탐욕 어린 눈을 힐끗거리자 송여방이 빙긋이 웃었다.
“모두가 천주님을 향한 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덕분에 지난 일 년 새 저희 상회가 산서를 넘어 하남에 쉬이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말을 받은 노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자 유월청이 더없이 환한 얼굴을 했다.
“허허, 내 매번 고맙소. 전대 천주가 죽은 이후 비고를 열지 못하여 재정이 풍부하지 못했는데 송 대인과 연을 맺은 것은 정말로 복된 일이오. 덕분에 본천을 장악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소.”
“천주님께서 제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군요.”
“금칠이라니 당치도 않소이다. 다들 아니 그렇소?”
유월청이 동의를 구하듯이 묻자 함께 자리한 사패천의 장로들이 너도나도 웃으며 화답했다.
“암요. 송 대인이야말로 우리 사패천에 하늘이 내려 준 귀인입니다.”
“맞습니다.”
저마다 칭찬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허허, 다들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낯을 들 수가 없군요. 어차피 혈육이 없어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재물입니다. 더불어 상회의 발전을 위해 사패천에 바치는 것이니 과례를 거두십시오.”
말하자면 후원금인 셈이다.
하니 송여방을 바라보는 사패천 수뇌들의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그나저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듣자 하니 사패천에서 이탈한 문파가 많이 생겼다 하던데?”
송여방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자 유월청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랬지요. 모두가 그 망할 전대 천주 때문이지. 죽을 때도 그리 끈질기더니만 비고를 열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을 줄이야. 어쨌든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오. 앞서 말했듯 재정이 부족해 비롯된 일이었으나 송 대인의 도움을 받아 차츰 해결되고 있소.”
이를 가는 유월청의 모습에 송여방이 빙긋이 웃었다.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천 단주께서는 보이지 않으시는군요?”
“천 단주?”
송여방의 물음에 유월청은 물론 장로들의 얼굴에 극도로 싫은 기색이 떠오른다.
“예. 천우명 단주 말입니다. 일전에 한 번 만나 뵌 일이 있었지요.”
“아, 그랬지. 그때는 폐가 많았소. 대신 사과드리리다.”
“폐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서로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인 것을요.”
송여방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산서상회가 하남으로 진출하기 위해 사패천과 연을 맺을 시기였다.
사업을 확장하던 산서상회의 상단 호위 일백이 철검단과 부딪쳤다가 싸그리 몰살을 당했다.
천우명은 정무칠성보다 강하다 알려진 현 사패천 최강의 고수였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단순했을 뿐.
어쨌든 그 일로 산서상회를 찾은 천우명을 향해 송여방이 고개를 조아린 뒤에야 오해가 풀어진 일이 있었다.
“내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송 대인의 낯을 보기가 부끄럽소. 하나 걱정 마시오. 이번에 아예 멀리 유배를 보내 버렸다오.”
“유배요?”
“그렇소. 아니 그랬으면 이번에 산서상회에서 부탁한 일도 제 일정을 맞추지 못할 뻔했지요.”
“예? 어찌?”
“천 단주가 사사건건 반대를 하지 않소. 나이도 어린 놈의 새끼가.”
“……?”
송여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얼마 전 유월청에게 한 부탁.
열다섯 전후의 아이 백여 명을 구해 달라 했다.
당연히 납치다.
사패천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은밀한 부탁이었다. 그 때문에 송여방이 감사도 할 겸 후원금을 바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천 단주가 반대를 했단 말입니까?”
“그게 다 전대 천주 때문이오.”
“어떤?”
“사파인으로서 치부와도 같은 일이라 말하기 뭣합니다만, 내 송 대인을 남처럼 여기지 않으니 말을 아끼진 않으리다. 송 대인도 알다시피 전대 천주는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었소이다.”
“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제 고집대로 처리하려 드는, 힘만 셌지 어린애만도 못한 늙은이였지.”
유월청은 제 스승임에도 험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송여방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유월청은 장로들 이외에도 자신의 말을 들어 주는 이가 생겨 기분이 좋은지 떠버리처럼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소.”
“제약이요?”
“전대 천주는 민초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엄격히 금했지요.”
“아!”
“미친 소리 아니오? 생각해 보시오. 사파가 왜 사파요? 민초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니. 하면 어디 정파 소속의 문파라도 털란 말인가?”
유월청의 하소연 같은 말에 송여방이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어쨌든 그가 죽은 뒤에 겨우 제대로 살아 볼까 했더니만, 이번에는 천 단주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방해를 하지 않겠소.”
“전대 천주에 대한 충성심이 깊은 인물이라지요?”
송여방의 말에 유월청이 싫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했다.
“그렇소. 말끝마다 천주님께선 어땠고 저땠고……. 꼴에 제가 무슨 충무(忠武) 악왕이라도 된 양 행동하다니.”
충무 악왕은 북송 말기의 명망 높은 충신이었다.
“그래도 대단한 충심이군요. 이미 죽은 지 이 년도 넘은 주인을 아직도 그리 따른다니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그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사패천이 이전과 달라질 바가 없을 것이라 여겨 근래 본천에 반기를 든 감숙성의 문파들을 토벌하라 보내 버렸소.”
“아, 한동안 뵙지 못하겠군요.”
“한동안은 무슨. 감숙을 비롯해서 차례로 외유나 시킬 작정이오. 그 멍청한 작자가 괜히 본천으로 돌아와서 민폐를 끼치느니 그편이 훨씬 낫지.”
유월청의 말에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여방이 의아해하면서 묻는다.
“멍청하다구요? 하지만 그는 사패천 최강의 조직인 철검단을 맡고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최강은 무슨? 그놈이 그놈이오. 죄다 주인 놈을 닮아 힘만 센 멍청이들이지.”
신랄한 평가에 송여방이 쓴웃음을 지으며 두둔했다.
“그래도 천주님의 명은 잘 따르는 모양입니다.”
“잘 따라요? 그 또한 모르는 소리입니다.”
“예?”
“그저 사패천을 지키는 것이 전대 천주에 대해 충성하는 것이라 믿어 그런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여담입니다만 선대 천주가 말년에 병에 걸렸었지요. 그때 천 단주가 선대를 불로장생시키겠다고 돌아다니더니 떡하니 불로초를 구해 오지 않았겠소.”
“예? 그런 게 실존한단 말입니까?”
“뭐요? 하하핫! 그럴 리가 없지 않소. 그게 불로초였으면 내가 이리 천주의 자리에 앉았겠소이까?”
“아! 그도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 만들어 낸 작은 소란이었다오.”
유월청이 그때를 회상하며 비웃음을 띠었다.
“참, 그대가 하는 일은 어떠시오?”
“천주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하, 다행이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오.”
“예, 천주님. 하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벌써 말이오?”
“예.”
“저런, 내 송 대인을 위해 연회를 준비하라 명했는데.”
유월청이 아쉬운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내자 송여방이 미안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천주님과 사패천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인데 어찌 한시라도 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천주님께서 사패천을 전대보다 훨씬 더 거대한 세력으로 키워 내는 것에 일조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송여방의 모습에 유월청이 든든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내 인복이 있는 게지. 말년에 그대와 같은 인물을 만나다니 말이야.”
크게 웃은 유월청이 돌아간다는 송여방의 뜻을 허락했다.
“하면 다음에 올 때는 꼭 연회에 참석할 준비를 하고 오시오. 내 더없이 화려하게 준비하리다.”
“예. 천주님.”
유월청과 장로들이 죄 일어나 송여방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천중전을 나온 송여방은 성문까지 환송을 받으며 수하들과 함께 사패천을 떠났다.
그들의 행렬이 천중산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사패천의 본성을 한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잠시 쉬어 가려 멈춘 곳.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일행에 합류한 사내가 송여방의 곁에 원을 둘러 지키는 열 명의 무인들을 지나, 송여방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궁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