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잠시 후.
객점을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잠자리에 들기 위해 자리를 뜨고 있는데, 문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이냐?”
“예. 단주님!”
아까의 그 털보 장한의 목소리인 걸로 보아 마염단이라는 이들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술을 마시던 적생과 그 일행의 낯빛이 굳고, 객점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니 확실했다.
“제가 계도할까요?”
운암 역시 그들이 다가섬을 눈치챘는지 주먹을 움켜쥐었다.
계도는 무슨.
그런 건 통할 놈들에게나 하는 거다.
진무가 운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며 일어났다.
“이보시오. 주인장.”
“……예?”
겁에 잔뜩 질린 객점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서 관군을 좀 불러오시오.”
“……?”
“마염단을 잡아 놨으니 현상금도 챙겨 오라고 하고.”
“……!”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는 객점주와 적생들을 뒤로한 진무가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 몇 마디의 대화가 들릴 듯 말 듯 오고 가더니.
“이런 개자식이! 죽여!”
악에 받친 고성이 들린다.
쾅! 뻐걱! 쩌어억!
밖에서 갖가지 소리가 들려오자 되레 적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운암에게 다가왔다.
“이, 이보시오. 나가 보시는 게?”
“예? 왜요?”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술을 홀짝이는 운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어찌 홀로? 저들은 일곱이나 되오. 당연히 도와야.”
“일곱이 아니고 여덟…… 아, 지금 막 하나 남았네요.”
“……?”
운암이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빙긋이 웃는데.
끼이익.
“새끼들, 치사하게 암기에다가 독도 쓰냐?”
진무가 너무도 태연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 뭐야? 이보시오, 주인장. 가서 관군을 불러오라 했더니 여태 거기 있으면 어찌하오?”
얼굴을 찌푸린 진무를, 객점 안의 사람들이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설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적생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얼어붙듯 그 자리에 멈췄다.
“이, 이럴 수가…….”
객점 밖.
멀쩡하게 투레질하는 일곱 마리의 말.
그리고 두 다리가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꺾인 채 입에 거품을 물고 혼절한 여덟 명의 무인들.
마염단이다.
당세령에게 당한 둘을 제외한 나머지. 정말로 혼자서 마염단 여덟을 때려눕혀 놓았다.
그저 조금 실력이 있는 엽인이라고 생각했던 적생은 고개를 돌려 크게 뜬 눈으로 진무와 운암을 쳐다보았다.
“뭐야? 목욕하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젖은 머리를 천으로 감고 나온 볼 빨간 당세령.
먼지투성이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미모가 드러나자 순간적으로 객점 안이 환해지는 듯했지만, 이미 이전의 잔인한 모습을 보고 난 뒤라 그녀를 아름답다 여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잠시 무도한 무리를 갱생시킨 참입니다.”
운암이 미소를 지으며 당세령을 향해 대답했다.
“아, 그래?”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다가와 원래의 탁자에 앉은 당세령.
이런 엽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던 적생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도, 도대체 귀하들께선 뉘신지?”
말이 좀 더 높은 존대로 바뀌었다.
무림이라는 곳이 으레 그렇다. 실력이 곧 나이고 신분인 법.
낭인들이 몸담은 사파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진무는 그런 그의 모습에 빙긋이 웃었다.
“한잔하겠소?”
“…….”
“이리 오시오. 아직 한참 초저녁인데 같이 술이나 합시다.”
뜻하지 않게 돈을 벌어서 기분이 좋았다.
만약 적생이 마염단이라는 자들에게 현상금이 걸려 있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형체도 없이 짓이겨 놓았을 것이다.
“이리 오시라니까?”
어디까지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웃는 진무였지만, 적생의 눈에는 사람을 죽이고 다음 표적을 물색하는 야차의 미소처럼 보였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거기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온 지옥 나찰녀.
“아, 소소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걱정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시라.”
더하여 인근에서 흉명이 자자한 마염단을 소탕한 것을 두고 소소한 일이라 말하는 순진무구한 미소 악귀.
저런 잔인한 자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실수했다가는…….
적생은 거듭 자신을 부르는 진무의 손짓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신세가 된 양 사색이 되었다.
* * *
순배가 반복되어 모두가 거나하게 취해 가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원래 술에 취하면 ‘내가 과거에 한가락 했어.’라고 모두가 입버릇처럼 주워섬기지 않던가.
“십 년이나 되었단 말입니까?”
적생의 말에 진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어쩌다 보니 세월이 그리되었습니다.”
생각도 못 했다.
이름을 십 년이나 유지할 만큼 낭인들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 있는 인원 그대로?”
“예. 운이 좋아서.”
“한 명도 안 죽었단 말이요?”
“예, 어쩌다 보니.”
적생이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들이 거쳐온 십 년간 정말 별 볼 일 없는 전투에만 참여했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뭉쳐 다닐 일도 없다.
벌써 굶어 죽었을 테니까.
낭인이라는 직업이 부업도 아닐 것인데.
“어? 제령문? 그 전투는 꽤 컸는데? 사상자도 많이 나오고? 그 전투에 끼고도 잘도 사셨네요.”
한껏 흥이 오른 낭인대의 영웅담이 이어지는 사이.
사천에서 일어난 제령문과 철진방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세령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그 정도였어?”
“암, 사천에서 일어난 일이라…….”
진무의 물음에 당세령이 뒷말을 흐렸다.
진무가 전음으로 그들이 자신들을 엽인으로 알고 있으니 신분을 밝히지 말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때 그 사건으로 제령문과 철진방이 쑥대밭이 됐어. 전투에 참여했던 이들이 거의 다 죽었거든. 생존자가 몇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다들 실력이 좋으신 모양이네요.”
당세령이 다시 한번 그들을 눈여겨보자.
“……그건 아니고…….”
적생이 어색해하자 그의 일행 중 포산이라는 덩치 큰 사내가 말을 덧붙였다.
“대주께서 저희 것들하고는 다르게 전황을 읽는 눈이 뛰어나시거든요. 말하자면 전투형 군사라고 할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실은 저희 대주는 원래 낭인이 아니십니다.”
“하면?”
포산의 말에 진무가 적생을 쳐다보았다.
“낙방 학사였지요.”
“낙방?”
전투형 군사라더니?
“예. 한때는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기 위해 과거 공부를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흘러가고 없는 과거지사를 이야기하듯 씁쓸하게 말했지만, 한림원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한림원은 왕의 어명을 만드는 곳이다. 왕조의 역사를 만들고 사서를 편찬한다.
그렇기에 전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에게만 도전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한림원 학사에 도전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웬만한 성에서는 대학사로 칭송받을 일이다.
실제로 중원 무가 중 지혜로 이름난 제갈세가에서도 자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 한림원 학사였다.
“세 번인가 떨어지고 나서는 알게 되었지요. 저의 재능은 학사가 아니라 군문에 가깝다는 것을.”
“군문이요?”
“예. 전략과 전술. 진법 등이 사학(史學) 같은 것보다 훨씬 더 적성에 맞더군요. 어쨌든 그 뒤론 한 십 년간 전쟁만 쫓아다니다가 윗분들의 뜻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쫓겨나 낭인이 되었습니다.”
“…….”
운암은 그냥 그렇구나 하며 듣고 있었지만, 진무와 당세령이 적생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림원 학사에 세 번 도전한 것으로 이미 십 년, 군문에 십 년, 낭인으로 십 년.
도합 삼십 년이나 되는 세월인데?
“아니 도대체 나이가?”
“올해 쉰입니다.”
“쉬, 쉰……?!”
진무와 당세령, 이번엔 운암까지도 놀란 표정이다.
쉰이라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액면가인가?
고작 삼십 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 동안이지 않은가?
“비결이 뭡니까?”
저도 여인이랍시고 놀라워하면서도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묻는 당세령을 가볍게 무시하며, 진무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랬군요. 하면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전투 중에 만나신 분들입니까?”
“예. 다들 무리를 지어 다니며 하나둘씩 살아남다 보니 친해져서…….”
낭인들의 조잡한 무위를 봤을 때, 그들이 십 년간이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살아남은 것은 아마도 적생의 능력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 그런 능력이면 차라리 일정 문파에 적을 두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더 안정적이고.”
“그렇기야 하지요. 하지만 전쟁을 치르는 것 이외는 이상하게 잘되지 않더군요. 평소에는 쓸모가 없지요.”
“아니, 그래도 전략 전술을 가르치는 선생질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진무의 말에 적생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는다.
“현장 체질이라서요.”
응, 뭐?
“이상하게도 전투 현장이 아니면, 머릿속에 있는 게 잘 안 나오더라고요.”
거참 희한한 놈이다.
전쟁에 참전하고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군사라니. 참으로 특이한 사람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떻게 보면 타고난 군사(軍師)인 건지도.
“그래, 하면 이젠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대원들을 전부 이끌고 가는 걸 보면 어디 전투라도 있는 모양인데?”
진무의 물음에 적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감숙에서 대규모 전쟁이 있을 것이라 합니다. 이미 인근 성도에 낭인들을 모집한다는 방이 붙었지요.”
“감숙이라면…… 설마?”
적생의 말에 진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
“예. 천웅방입니다.”
천웅방이라고?
크게 뜨인 진무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지만, 아무도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천웅방이 전쟁을 위해 낭인을 모집한다니. 혹 공동파와의 마찰입니까?”
천웅방에 대해서 알고 있던 당세령이 묻자 적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들은 소문에 의하면 사패천 내에서의 분란이라 하더군요.”
하, 내부 분란이라고?
진무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천웅방(天雄房).
진무에게는 무척이나 그리운 이름이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정무맹의 주축이라면 천웅방은 사패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대 문파였다.
사패천이 생기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감숙을 지배해 온 역사와 전통의 문파였다.
더욱이 그가 기억하는 자가 여전히 천웅방주라면 정무칠성에 비해서도 모자람이 없는 관월(貫月) 원공후일 것이다.
“자세히 한번 말해 보시겠소?”
“……예? 저희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방(榜)에는 그저 싸움에 참가할 낭인을 모집한다고만 적혀 있었고, 소문에 의하면 사패천에서 천웅방을 공격하기 위해 무인대를 보냈다고만.”
“무인대를 보냈다고?”
“…….”
진무가 갑자기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나자 모두가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왜 그래?”
당세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진무는 그 질문에 대답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런 정신 나간 놈들이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자신이 죽은 지 십 년이 지난 것도 아니고, 고작 이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천웅방 내부의 문제도 아니고 사패천의 본성에서 공격을 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사패천에서 무인대를 보내 천웅방을 공격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정무맹이 구파일방 중 한 곳을 친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였다.
지금의 정무맹은 용봉관을 만들어서 후기지수를 통해 힘을 기르려 하고 있었다.
일월마교의 북리도천은 여전히 쌩쌩한 것 같았고, 궁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놈들은 설쳐 대기 시작하는데.
이런 망할 놈의 자식이 잘 차려서 고스란히 떠먹여 줬으면 열심히 꾸려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뭐? 천웅방을 공격해?
다른 곳도 아니고 천웅방이다.
최강의 전력인 철검단이 직접 움직일 리는 없고, 천웅방과 싸우자면 사패천의 본성 상위에 있는 무인대 둘은 보내야 한다.
천웅방도 천웅방이지만 무인이 남아도는 것도 아닐 텐데, 이래서야 모조리 뒈지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화가 치밀다 못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냐니까?”
당세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인 것이 당연하다. 고작해야 사패천의 일이고, 오히려 그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면 정무맹의 일원으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워야 할 일이니까.
그렇다고 그런 그녀를 향해.
내가 사패천주였으니까다!
라고는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뿌드득.
진무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삭여 내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적생을 똑바로 바라봤다.
“천웅방으로 가신다고?”
“……예. 그런데 어찌?”
“함께…… 가 봅시다.”
이 망할 것들이 뭔 지랄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 좀 해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