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적생대를 찾아온 것은 조금 전 자신들의 평가관이었던 천고락과 몇 명의 무인이었다.
천고락이 굽신대는 것을 보니 그의 상관인 듯했다.
“제가 적생대를 이끄는 적생인데 어찌 그러시는지?”
적생이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서자 천고락이 낭인대를 휙휙 둘러보다 진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저자입니다. 당주님.”
“뭐? 고작 저런 애송이라고?”
“예. 나이는 어린데 실력이 대단합니다. 외당 무인 다섯을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뜨렸습니다.”
천고락의 말에 중년 무인이 진무를 응시하다 얼굴을 찌푸렸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될 터였다.
낭인은 전투의 경험을 통해 발전하는 자들이었다. 실전을 통해 쌓은 경험이 곧 그들의 실력인 것이다.
그런데 진무는 너무 어리지 않은가?
열 살 때 칼을 잡았다고 해도 고작 십 년 정도일 텐데, 그런 자가 천웅방의 외당 무인 다섯을 눈 깜짝할 새에 쓰러뜨렸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을 만도 했다.
물론 낭인들 중에도 특출난 자들이 있다. 명문의 자제들처럼 스승을 두는 경우였다.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고, 그런 자들은 대부분 낭인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애초에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쯧쯧, 이름 없는 애송이 낭인이라고 방심한 모양이군.”
중년 무인이 혀를 차자.
“그게 아니라 제 눈으로 직접…….”
“입 다물어.”
“…….”
그의 질책에 천고락이 급히 목을 움츠렸다.
“만약 내 시험해 보고 거짓이면 나의 시간을 빼앗은 죄까지 묻겠다. 당장에 내일이면 철검단이 도착한다 하여 선단부에 배치할 낭인들을 분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거늘.”
중년 무인은 천고락에게 엄포를 놓은 후 적생을 향해 다가갔다.
“나는 천웅방 외당주 담상목이다. 지난 평가 때문에 내 확인할 것이 있는데. 응하겠나? 만약 시험에 통과한다면 내당으로 보내 주지.”
“……예?!”
적생이 내당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외당과 내당의 구분은 크다.
외당은 칼받이지만 내당은 정예 무인들과 함께 주요 임무에 투입된다.
해서 낭인들 중에서도 이름이 유명한 이들만 선발한다.
무엇보다 지급되는 돈의 차이가.
“어이, 그게 무슨 소리야?”
적생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진무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반말이었기에 담상목이 매서운 눈으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어린놈이 감히.”
“뭐야? 반말한 게 기분 나빠? 존대라도 해 줄까?”
“뭐라?”
“칼 밥 먹고 사는 놈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존대는 무슨.”
진무가 피식 웃자 담상목이 코끝을 찡그리며 애써 화를 삭였다.
지금은 무인이 부족했다.
해서 낭인을 대거 모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질이 좋지 않았다.
실력 좋은 낭인들은 천웅방이 상대하는 것이 사패천 본성임을 알고 애초에 지원하지 않았거나 안 이후에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 버렸다.
낭인들 역시 사패천 아래에 적을 두고 있다.
아무리 천웅방이라고 해도 사패천 본성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혹시 몰라 천고락에게 실력 있는 낭인이 보이면 반드시 알리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천고락의 말을 듣고 직접 찾아온 걸음에는 실망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낭인대를 이끈다는 적생이라는 자를 보는 순간 화부터 났다.
무공을 익혔다고 하기에는 너무 호리호리한 체형에, 느껴지는 기세는 아무리 높게 봐 줘도 겨우 삼류를 벗어난 수준에 이른 자다.
더욱이 그의 주위에 있는 낭인대의 구성원 대부분이 적생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했다.
어린놈들은 굳이 눈여겨볼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앞으로 끼어든 싸가지 없는 어린놈에게 혹시나 싶어 기감을 퍼트려 봤지만, 기세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한 번은 봐주마. 하지만 혀가 짧으면 명도 단축되는 법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나는 내가 알아서 잘 살 테니 아까 그 이야기나 해 봐. 내당 어쩌고 하던데?”
진무의 도발적인 언사에 담상목의 목이 아래부터 붉게 달아오르고, 눈빛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 이보시오.”
담상목을 너무 쉽게 대하는 모습에 적생이 사색이 되어 진무를 말렸다.
어쩌면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상대는 천웅방의 외당주다.
내당의 주인들에 비하면 실력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장로 바로 아래의 직책인 것이다.
지난밤의 마염단 같은 자들이나 앞서 상대했던 천고락 같은 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탄기의 고수다.
감숙성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는데 잘못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적생대 전원의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한데 어째서 자꾸 저리 속을 긁어 놓는단 말인가.
더욱이 지금의 담상목을 봤을 때 말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진무는 적생의 만류를 뿌리치고 되레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 시험이라는 걸 치르면 내당으로 가는 건가?”
결국,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진무의 혀 짧은 반말에 담상목의 분노가 터져 버렸다.
“이런 싸가지 없는 낭인 놈이!”
순식간에 탄기에 이른 그의 흉흉한 기세가 퍼져 나가고, 세찬 살기가 유형화되어 그 주위의 경물을 헤쳐 놓았다.
“쯧, 냉정하지 못하기는.”
진무가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인에게 냉정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시되는, 그야말로 필수적인 요소다.
냉정을 잃고 흥분하면 상대를 가늠할 수 없는 법이고 본인의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가 없다.
쯧쯧, 이런 놈이 외당주라니, 천웅방도 많이 약해졌구만.
어쨌든 잘되었다.
뭘 시험하는지 모르겠지만, 내당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강기의 무인이라 해도 은신술을 익히지 않은 이상 외당과 내당 사이에 깔려 있는 진법과 번을 서는 이들의 경계를 손쉽게 넘을 수는 없었다.
기척을 감추고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재수가 없으면 걸린다.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내당으로 가면 대우가 달라진다.
낭인들에게도 기거할 수 있는 거처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오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터이니 천웅방의 속사정을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와 봐, 참지 말고.”
살기를 줄기줄기 피워 내는 담상목을 마주한 진무가 검지를 까딱거렸다.
그 모습에 적생의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고, 기어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담상목이 범처럼 뛰어들었다.
“이런 개자식이!”
단번에 거리를 좁힌 담상목의 일격이 진무의 머리통을 향해 쾌속하게 날아왔다.
단숨에 머리를 터트려 버릴 생각인 듯했다.
“저런!”
적생과 낭인대원들이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뭘 그리 놀래? 고수들의 싸움을 가까이서 보는 게 흔한 줄 알아? 보고 나면 뭐든 도움이 될 테니까. 눈 감지 말고 끝까지 봐. 잘 보이진 않겠지만.”
당세령이 세상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고.
“저자, 제법이군요. 뛰어난 고수입니다.”
운암이 턱을 어루만지며 품평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자신의 동료가 걱정도 안 된단 말인가?
실눈을 뜬 적생은 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엽인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 사이 주먹이 얼굴까지 날아오는 것을 응시하던 진무가 슬쩍 뒤로 몸을 물렸다.
슈우우-
거친 기세를 품고 있는 주먹이 진무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뒤쫓아 왔다.
진무는 실소를 머금고 한 뼘 정도의 간격을 유지했다.
슈우욱!
주먹이 그 한계에 도착해 멈춘다.
딱 진무의 얼굴 한 뼘 거리였다.
그리곤 곧바로 반대편 주먹이 이어 날아왔다.
턱!
또다시 주먹이 진무의 한 뼘 거리에서 멈춘다.
아니, 이번엔 멈춰졌다.
이전과 달리 진무가 다리를 들어 그가 내민 무릎 부분을 밟아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찌 보일지 모르지만, 진무는 담상목의 실력에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고작해야 탄기.
제법 매섭게 가다듬은 주먹이지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맞는다 해도 지금의 진무에게는 그다지 큰 타격이 되질 못했다.
“이노옴!”
담상목이 눈이 시뻘게져서 더욱 흉포한 기세를 뿌리며 진무를 공격해 왔다.
좌우의 연타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왔다.
역시나 한심해 보인다. 이깟 놈을 상대하고 있어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진무는 현재 낭인이다.
그가 필요한 것은 천웅방의 핵심인 내당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것이다.
너무 큰 주목을 받아서는 곤란했다.
내당은 천응방의 핵심 고수들이 운집해 있는 곳이다.
진무는 몰라도 당세령과 운암은 아직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하지 못하기에 고수의 눈에 띄면 발각될 수 있었다.
당세령은 둘째 치고서라도 운암의 몸에 스며 있는 선기의 흔적을 눈치채는 놈을 만나게 되면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해야 한단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얼추 비슷하거나 약간 아래의 수준으로.
열 받은 담상목이 실수로 진 것처럼.
일단 한 대 맞아 주고.
퍼억!
진무는 턱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주먹이 살갗에 닿는 순간 재빨리 비틀어 충격을 줄인다.
“크윽!”
짧게 신음 한 번 내 주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담상목의 복부를 향해 마치 우연인 듯 발을 곧게 세워 꽂아 넣는다.
“커억!”
담상목이 허리를 접지만 공격하면 안 된다.
봐주고 있으니까.
일단 충격을 받은 것처럼 뒷걸음질 좀 쳐 주고.
“이, 이놈이!”
담상목이 고통을 참아 내며 진무를 향해 다시 주먹을 뻗었다.
맷집은 꽤 좋은 녀석이다. 아팠을 텐데.
청우처럼 살집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당세령처럼 매일 약초를 뜯어 먹지는 않았을 것인데.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허리를 숙여 피하는 순간, 이어진 주먹이 지면을 스치며 흙을 퍼 올리듯 진무의 턱을 향해 솟구쳤다.
역시나 한 번 더 맞아 준다.
주먹이 턱에 닿는 순간 재빨리 비슷한 속도로 고개를 젖혀 충격을 줄이고 무릎을 당겨 올렸다.
퍼억!
“큭!”
무릎에 턱을 직격으로 맞은 담상목과, 맞은 것처럼 위장한 진무가 비틀거리며 동시에 물러났다.
전보다 조금 힘을 더 가했으니 충격이 상당할 터다.
힘 조절을 적당히 해 두었으니 턱뼈는 작살나지 않겠지만, 적어도 뇌가 통으로 흔들릴 정도는 될 터였다.
진무는 일부러 힘겹게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세웠지만, 비틀거리다 몸을 멈추었던 담상목은 끝내 한쪽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당주님!”
“이놈이 감히!”
담상목을 따라왔던 외당 무인들에게서 걱정과 분노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멈춰라.”
제 놈도 자존심이 있으니 수하들을 멈춘 모양이다.
겨우 몸을 일으킨 담상목이 진무를 노려보았고, 진무 역시 고통스러운 척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마주했다.
“젊은 낭인이 대단하구나. 너 같은 자가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내공을 따로 수련한 것 같지 않던데 나의 주먹을 어떻게 버텼지?”
“별게 다 놀랄 일이군. 철포삼만 죽어라 익히면 그렇게 돼.”
“철포삼…… 그렇군.”
낭인들이니 어쩌면 외공을 익힌 것은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철포삼은 소림에서 전래된 외공 수련법으로 피부를 단단히 하고 종래에는 뼈까지 단련되어 금강불괴지신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었다.
물론 그들이 전설의 금강불괴지신이겠냐마는.
“어쩐지 기감에 내력이 느껴지지 않더라니, 외공을 익힌 고수였군. 그래도 놀랍구나. 고작 그 나이에 외공만으로 내력을 실은 주먹을 버틴 것도 그렇고, 나에게 반격을 해 올 정도로 뛰어난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다니. 철포삼이 금강불괴로 가는 수련법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허언이 아니었군.”
외공으로 버틸 수가 있겠냐, 이 멍청한 놈아?
그리고 금강불괴지신?
그거 다 땡중들이 제 놈들 무공을 돋보이려고 만들어 낸 거짓말이다.
그런 경지를 이루었다는 중놈을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소림에서도 오죽하면 전설상의 경지라고 말하겠는가?
하지만 이미 진무는 잔뜩 허세를 부리기로 한 참이었다.
“멍청하긴. 만류귀종(萬流歸宗)이란 말도 모르냐? 외공이나 내공이나 극의에 이르면 똑같은 거지.”
“재미있는 녀석이군. 이름이 뭐냐?”
“무진, 호북성의 무진이다.”
무당파의 도사 진무.
호북성의 낭인 무진.
대충 거꾸로 뒤집은 것이긴 하지만 적당한 가명이다.
“호북의 무진…… 정무맹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낭인이었나? 어쩐지 네 나이에 이만한 실력을 가진 낭인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했더니. 기억해 두겠다.”
“그러시든지.”
“…….”
끝까지 기세를 잃지 않는 진무의 모습에 담상목이 수하들을 향해 말했다.
“저놈을 내당으로 보내라.”
“알겠습니다.”
짧은 지시와 대답이 끝나고 담상목이 수하들과 함께 몸을 돌리는데.
“잠깐, 그건 아니지.”
진무가 다시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