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보면 몰라? 적생대에서 내가 제일 어려.”
“뭐라고?”
“제일 약하다고.”
히죽 웃으며 말하는 진무의 모습에 담상목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짓임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적생대의 누구도 담상목의 눈에 차지 않았으니까.
“흥, 어디서 감히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못 믿겠으면 한 번 더 시험해 보시든가?”
“…….”
“어때?”
진무의 말에 담상목이 얼굴을 찌푸렸다.
화는 나겠지만 더 이상 나서지 못할 것이다. 보는 눈이 많아 체면 때문에 참고 있는 그의 모습이 진무의 눈에 보인다.
더구나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 무릎에 살짝 내력을 가미했으니 충격이 상당할 것이다.
이미 새파랗게 어린 진무에게 당해 사람들 앞에서 개쪽을 당한 셈인데 만약 진무의 말이 사실이라면 땅바닥에 드러눕는 수모를 당할지도 몰랐다.
뭐, 본인이 나선다고 해도 운암을 내보낼 작정이기는 했지만.
“좋다. 만약 이기면 적생대 모두를 내당으로 보내 주마. 대광!”
“예. 당주님.”
“시험하라!”
“예!”
명령을 받고 앞으로 나선 자.
현기는 넘어 보인다.
담상목은 그 정도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다. 확신만 심어 주면 되니까.
[세령.] [왜?] [한 이삼일 못 일어날 정도로 조져 버려.]진무의 전음에 당세령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떠올랐다.
[맡겨 두셔. 확실하게! 조져 놓을게.]* * *
당세령은 자신의 내뱉은 말에 최선을 다했다.
정말 확실하게 조져 놓았다.
쓰러질 때까지 두들겨 패고, 쓰러진 뒤에도 잘근잘근 짓밟아 놓는 모습이 가히 타고난 사파인이라 할 만했다.
오죽하면 그만 되었다며 담상목이 뜯어말리기까지 했다.
어쨌든 그 덕에 진무 등과 적생대 전원이 내당으로 위치를 옮기며 돈까지 두둑하게 받게 되었다.
원래 지급되어야 할 보수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외당에 소속되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미리 절반의 돈을 주는 것은 전투에 나선 자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전투가 끝나면 나머지 반을 지급받을 것이고, 공적에 따라서는 웃돈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담상목과 동수를 이루고 현기급 무인을 완전히 밟아 놓았기 때문인지 내당에서의 대접이 다른 이들보다 좋았다.
작긴 했지만 전투가 일어날 때까지 머물 방 두 칸짜리 전각 하나를 배정받게 되었고, 외당주 담상목이 별도의 시비까지 보내 주었다.
모집된 낭인들 중에는 최고 수준의 대우였다.
진무와 당세령 외에도 실력이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이들이 무려 열 명이나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라면 과한 실력을 보인 낭인에게 관심을 보여야 했지만, 전투를 목전에 앞둔 천웅방은 진무와 적생대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또한, 이미 담상목이 진무 일행의 수준을 소상히 내당에 전한 뒤였을 것이다.
몇몇 내당 하급 무인들이 힐끗거리기는 했으나 바쁜 와중에 내당의 주요 무인들이 진무 일행과 안면을 나눌 이유 따위는 없었다.
철포삼을 통해 외공을 수련한 무인. 한계가 명확하다는 소리다.
더구나 낭인이 아니던가?
정말이지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 * *
배정받은 전각에 도착한 진무를 향해 운암이 물었다.
“너무 봐주시더군요.”
“그냥 뭐, 일단 낭인인데 너무 실력이 좋으면 주목받잖아.”
“그건 그렇군요.”
참, 곧이곧대로 잘도 믿는 녀석이다. 그렇기에 부하 삼 호로 매우 적당하다.
자신의 말을 참으로 잘 믿는 운암을 보며 진무가 흐뭇해하는데.
“진무진…… 대협.”
호칭을 소협과 대협 사이에서 갈등하던 적생이 진무에게 다가왔다.
운암이 진무라고 부르려 했다가 무진으로 부른 것일 뿐인데, 그걸 듣고 진 씨인 줄 안 모양이었다.
“왜요?”
“어찌하여 저희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십니까?”
“호의?”
“예.”
진무가 적생을 가만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호의는 무슨. 저는 그냥 받은 만큼 돌려준 것뿐입니다.”
“예?”
“벌써 잊었나요? 합적에서 제게 조심하라고 경고했잖습니까. 그 뭐지? 그…….”
“마염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그래. 걔들.”
“아니, 그건.”
애초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때는 어느 정도 실력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강하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천웅방의 외당주와 현기급 무인을 이길 정도로 대단할 줄은 몰랐다.
감히 적생의 수준으로는 추측이 불가능한 고수였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작은 호의를 건넨 덕에 열 배 이상의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고.”
물론 그리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내당에 소속된다는 것은 외당의 선단부에 선다는 것과는 의미가 달랐다.
검기가 난무하고 사람들이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는 내당의 싸움은 수준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선단부에서는 싸우다 도망친다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죄다 죽으라고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전황을 잘 파악해서 적의 틈새만 노리면 살아날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내당의 싸움은 일단 수가 적다.
낭인대라 해도 한 지역을 맡게 되고, 만약 살기 위해 도망쳤다가는 싸움이 끝난 후 두고두고 쫓기게 된다.
접수대에서 호구 조사를 하며 호패를 확인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진무진 대협. 귀하의 호의는 감히 갚을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지만, 저희 실력으로 내당의 힘겨운 싸움을 버텨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저희는…….”
외당으로 돌아가겠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 전에 먼저 진무에게 허락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진무가 강한 고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생은 호의를 베푼 인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뭐, 별거 없을걸?”
진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적생이 의아함을 품는다.
하지만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낭인들도 매한가지 표정이다.
그들의 실력이 원체 낮았기 때문에 한 번도 내당의 싸움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대들이 생각하는 그런 치열한 전투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사패천에서 어떤 놈이 오는지 모르지만, 진무가 기억하는 천웅방주 원공후라면 분명 그러할 터였다.
“예?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습니다. 혹시 전투가 일어난다 해도 그대들이 죽을 일은 없습니다. 어쨌든 전투가 일어나려면 시간이 좀 남았을 테니까, 다른 낭인들처럼 잘 먹고 푹 쉬어 두세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해할 수 없는 적생의 어깨를 진무가 가볍게 두들겨 주며 천천히 일어났다.
“어디 가?”
당세령이 의아하게 물어 왔다.
“그냥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럼 같이 가.”
“쉬고 있어. 잠시 다녀올 테니까.”
당세령은 진무를 잠시 바라보다가 묻는다.
“술 마셔도 돼?”
하지 말래도 할 거면서.
“그래. 시비한테 부탁해서 술이나 마시고 있어. 잠시 천웅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할 참이니까.”
“그래.”
당세령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진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이 자식 뭐가 좀 바뀌었는데.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라지자 운암이 당세령을 향해 다가와 장하다는 듯이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
“너무 심한 집착은 좋지 않아요. 풀어도 놔야 합니다. 때로는 그저 말없이 기다릴 줄도 알아야.”
운암의 가르침.
그녀가 홀로 짝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그의 연모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조금씩 가르치고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제 놈도 곤륜에만 처박혀서 여인 한번 사귀어 보지 못한 주제에…….
* * *
천웅방은 진무에게는 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원공후…….”
진무는 천웅방주 원공후가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천우명과 동년배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언제나 진무를 잘 따랐다.
충성도가 좀 떨어져 자주 반항하기는 했지만, 사패천에서 천우명 다음으로 진무에게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긴 세월을 보내며 그의 혼례도 보았고, 그의 자식들도 보았다.
원공후가 그 아비의 대를 이어 천웅방주가 되는 축하연에도 함께했었다.
이후 진무가 뜻을 세워 사패천을 만들었을 때 가장 큰 지지를 보냈던 것도 바로 그였다.
“고집이 무진장 센 녀석이었지.”
흠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진무의 말에 무조건 충성하는 천우명과 달리 원공후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납득할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말을 듣게 하려고 얼마나 팼던가.
생각해 보면 죽을 때 그 녀석을 보지 못했다.
하긴 죽기 얼마 전 병마에 시달릴 때, 유월청에게 모두 물려주겠다는 제 말에 빈정이 상해 감숙의 천웅방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진무가 생각에 빠져 천웅방 안을 걷다 보니 제법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버렸다.
“누구냐!”
진무의 걸음을 제지하는 인물.
천웅방의 중심 지역을 막고 있는 내당의 호위 무사인 듯했다.
제법이다.
고작 번이나 서는 놈들의 수장인데 현기급은 되어 보이는 날카로운 놈이었다.
과연 천웅방의 내당이라 해야 하나? 몇 안 되지만 탄기급의 고수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수뇌부가 기거하는 곳과 가까운지 곳곳에 칼날 같은 기도를 가진 자들이 지키고 선 모습이 보였다.
“이번 전투에 참가하게 된 낭인, 무진입니다.”
“무진? 아, 그 외당주님을 쓰러뜨렸다던?”
쓰러뜨린 건 아니고 동수를 이루려고 노력을 했지.
어쨌든 벌써 소문이 난 모양이다.
하지만 진무를 보는 무인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어도 그뿐이었다.
“거처로 돌아가시오. 이곳은 대전각이 있는 곳. 본방의 수뇌들께서 회의 중인 지금, 괜한 일로 경을 치기 전에 배정받은 곳에서 대기하시오.”
“알겠습니다. 한데 천웅방이 사패천과 전쟁 중이라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
“어허! 한낱 낭인이 어찌 본방의 사정에 관심을 가진단 말이오? 낭인에게 전할 소식이 아니외다.”
무인이 짐짓 매섭게 눈을 뜨고 호통을 쳤다.
아직 사패천의 무인대라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내용도 발설치 말라는 엄명이 내려진 바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사패천 본성에서 오고 있는 자들이 누군지 알려졌다가는 모집된 낭인들이 모조리 도망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무인은 지시받은 대로 행동했고, 진무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누가 오길래 이렇게 입단속을 하는 것일까?
“돌아가래도!”
“아, 알겠습니다.”
무인의 호통에 진무가 찔끔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려 한 것뿐이다. 고작 호위 무사 따위의 말을 듣고 물러날 진무가 아니었다.
회의 중이라 했지? 그럼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겠네.
진무는 거처로 돌아가는 척 걸음을 옮기다 지켜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훌쩍 담을 넘었다.
밤이 만들어 낸 어둠에 숨은 진무는 주변을 경계하며 곧장 대전각으로 향했다.
진무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들어 엿들을 생각이었고, 지금의 천웅방에 진무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자는 많이 쳐줘 봐야 천웅방주 원공후 하나일 터였다.
대전각을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과거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청동화로로 어둠을 밝히고 곳곳에 자리 잡은 채 대전각을 지키고 있는 호위 놈들이다.
참 많기도 많다.
기척은 감추었다고 해도 모습까지 감추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평생 당당하게 살아온 진무는 한 번도 은신술 같은 허접한 무공 따위를 익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건 약한 놈들이 제 명줄 보존하려 익히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뭔 죄를 지었다고 숨어 다닌단 말인가?
하지만 번을 서고 있는 호위들을 눈을 피해 땅바닥까지 기어 다니는 지금, 은신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과거가 심히 후회되었다.
젠장, 개똥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은위단주 명세찬에게 쓸 만한 은신술 하나라도 배워 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