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어찌한다.
도대체 어찌한다.
술을 세 병이나 비웠음에도 도통 취하지를 않았다.
누워 참을 청하려 해도 머리끝까지 울화가 뻗쳐 잠도 오질 않았다.
대충 흘러가는 얘기가 유월청이 자신이 세우고 다져 놓은 사패천을 아주 알차게 말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소방주 원천호의 말에 따르면 사패천을 이어받은 제자 놈이 본성을 실력도 없이 아첨에만 능한 놈들로 채우고 있다 했다.
비열한 성격이나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건 상관없다.
대신 그만한 능력이 있는 자를 장로로 앉혀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굴러가는 것이다.
나이를 육십이나 처먹은 놈이 어찌 그리 사리 분별을 못 한단 말인가?
고작 이 년이다.
진무가 죽던 날, 분명히 들었다.
빨리 죽으라며 합심해서 염불하던 것이 괘씸했으나, 잘해 보겠다며 제 놈들끼리 합심해서 다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의 장로들은 비열하기는 해도 능력이 출중한 놈들이었다.
진무가 그런 놈들로만 구성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놈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무능력한 놈들로 채워 놓았단다.
더욱이 그런 사실에 반발하는 천웅방을 달래지는 못할망정, 토벌하려 천우명과 철검단을 보내?
“허어!”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파는 무인의 수가 마교나 정무맹보다는 월등히 많지만, 고수들의 질이 떨어졌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사황 혁련무강과 사패오왕이라 불리는 강의 고수들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강의 경지에 오른 놈이 고작 다섯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무맹에만 해도 정무칠성과 등여평까지 여덟이고, 일월마교에는 열 명을 넘는다.
진무가 이십 년에 걸쳐 철검단이라는 조직을 만든 것은 그 때문이다.
부족한 고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손수 선발하고 훈련시켜, 사패천 최강의 전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패천이 중원의 중심에서 버티고 중원 삼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혁련무강이라는 시대의 고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혁련무강이라는 절대의 이름이 사라진 지금, 사패천의 한 축이나 다름없는 천웅방을 토벌하고 오왕 중 한 사람인 원공후를 버린단다.
이런 미친놈들이 제정신이 맞는가 싶다. 아니 미친놈들이니 제정신일 리가 없지.
망하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따위 결정을 내린단 말인가?
이 사태를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천웅방과 천우명이 부딪치게 해서는 안 된다.
회의를 들어 본 결과 천웅방은 마지막 한 놈이 죽을 때까지, 그야말로 결사 항전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해도 천웅방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고, 철검단마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은 자명한 일.
결정을 내린 멍청한 놈들은 천웅방 하나가 무너진다 생각하겠지만, 이는 감숙이라는 하나의 성급 영역이 통으로 날아가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천웅방의 힘에 밀려 감숙의 남쪽에서 세력을 더 뻗지 못하고 있었지만, 공동파와 정파의 중소 방파들이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좋은 먹잇감이 시중에 나왔으니 아귀처럼 달려들 것이다.
감숙 사파의 구심점 같은 천웅방이 무너지면 사패천 소속의 중소 방파는 버틸 만한 여력이 되지 못했다.
일거에 쓸려 나갈 것은 자명한 일. 그리고 그리되면 사패천의 전력은 엄청나게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천웅방과 감숙의 사파 세력은 정무맹을 서쪽에서 위협하는 견제 세력이라야 한다. 이 일로 그 축이 무너지면 흩어진 시야가 집중될 것이고, 사패천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대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잠깐만 생각해도 눈에도 훤히 보이는데 그따위 결정을 내리다니.
당장에 본성으로 쳐들어가 유월청과 지금의 장로라는 놈들을 당장에 족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천우명과 철검단이 천웅방을 공격해 오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우명 혼자라면 진무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의 무공 자체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천우명은 뛰어난 강자임이 분명하나, 자신만큼 깨달음이 깊지 못했다.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눈 감고도 파훼할 자신이 있으니 큰 어려움 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철검단이다.
그들의 전력을 누구보다 소상하게 알고 있는 진무였다.
그만한 수라면 지금 진무의 무위로는 천우명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힘이 소진되고 말리라.
멍청하게 돌진할 줄만 아는 천우명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씨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머리를 쥐어짜던 진무가 급기야 괴성을 내질렀다.
“…….”
진무가 방으로 들어간 뒤 한참이나 나오질 않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을 열려고 했던 당세령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췄다.
진무의 살기가 문밖까지 전해져 올 정도였다.
“화,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래, 지금 들어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당세령은 스스로 성급했음을 인정하고, 발소리조차 죽인 채 방문 근처에서 물러났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의 고민과 괴성은 밤새 계속되었고, 서서히 날이 밝아 왔다.
천우명과 철검단이 도착한다는 다음 날이.
* * *
두두두두!
떼 지어 달리는 말들의 발굽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사패천 최강의 전력 철검단.
전장의 검은 바람으로 불리는 그들이 감숙의 경계를 넘었다.
뽀얀 먼지 바람을 꼬리처럼 달고 검은 장포를 바람에 휘날리며 달리는 인마의 위용은 가히 장관이라 할 만했다.
“단주님! 천웅방의 선단(先端)입니다!”
선두에 서 있던 철검단의 부단주 모원려가 크게 외치자 말 위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달리던 거한이 손을 들어 진격을 멈추게 했다.
말을 몰아 철검단의 선두로 나온 거한은 하늘로 솟구친 송충이 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호목, 그리고 구릿빛으로 빛나는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바로 사패오왕의 일인이자 사패천 최강의 전력이라 불리는 철검단을 통솔하는 수장, 철혈붕권(鐵血崩拳) 천우명이었다.
“원공후가 제법 준비를 했군.”
천우명이 굵직한 목소리로 눈을 찌푸렸다.
난주 외곽의 동쪽 평야.
천웅방이 거대한 진형을 구축하고 응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의 전투는 기습이나 습격이 아니었다.
토벌이다.
사패천에서 등을 돌리고 반기를 든 이들이 어찌 되는지 사패천 예하의 세력들이 똑똑히 보아야 했다.
그렇기에 이미 자신들이 가고 있음을 천웅방에 알린 것이다.
“일진은 고작 낭인들인가?”
천우명이 천웅방의 본대에 한참이나 앞서 나와 있는 진형을 바라보며.
“내 직접 뚫어 주마.”
천우명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전투적인 기세를 피워 올리자 모원려가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단주님.”
“응?”
“적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장이 나서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아, 그래?”
“예. 제가 통솔해도 괜찮겠습니까?”
모원려의 말에 천우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런 전쟁을 지휘하는 일은 원려 네가 더 뛰어나니까. 생각대로 해 봐.”
“예!”
모원려가 복명과 동시에 휘하의 대주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일 대와 함께 적의 선단을 뚫는다.”
“알겠습니다.”
“석산.”
“예.”
“삼 대는 돌파와 동시에 난입해 천웅방의 선단을 섬멸한다.”
“예.”
“지화.”
“예.”
“단주님과 함께 뒤를 따르라.”
“알겠습니다.”
모원려가 세운 계책은 오랫동안 철검단이 해 온 익숙한 전술이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뚫는 것. 그리고 뒤이어 압살하는 것.
천우명은 모원려와 석산이 진형을 구성하는 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웅방의 진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천웅방 진형의 중심. 그 주인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
그곳에 오늘 안에 죽여야 할 오랜 벗이 기다리고 있었다.
‘……원공후.’
마음이 착잡했다.
오랜 벗인 그와 싸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패천에 등을 돌려 버린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켜야만 했다.
사패천은 자신의 주인 혁련무강이 평생을 걸쳐 이룩한 곳이며,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유산이었다.
혁련무강은 자신에게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패천을 이어받은 새로운 주인이 모두의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혁련무강이 정한 사패천의 후계였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간언할 수는 있었지만, 명이 떨어진 이상에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
그것이 천우명의 역할이자 대의(大意)였다.
“단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모원려가 진격할 준비를 마치고 천우명에게로 다가와 보고했다.
앞으로 나선 천우명은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원공후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천웅방의 선단을 날려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모원려가 철검단 일 대와 함께 진격했고, 뒤를 석산이 이끄는 이 대가 쫓았다.
“지화.”
“예. 단주님.”
“우리도 움직인다.”
철검단의 모든 전력이 서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 * *
천웅방 본진.
적생대는 선단 바로 다음인 이 진에서 대기 중이었다.
진무는 밤새 고민했지만 결국 철검단을 막아 낼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천웅방과의 난전이 펼쳐진 다음, 철검단과 뒤섞였을 때 천우명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를 제압하고 설득해서 철검단을 물리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양측의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철검단이라니……. 정말 대단한 위용이다.”
포산이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철검단의 위용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형님, 긴장 좀 풀게 설명 좀 해 주시오.”
포신의 말에 적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눈을 찡그리며 검은 물결처럼 다가오는 철검단을 응시했다.
“천천히 다가서며 진형을 갖추고 있구나. 선두가 쐐기진이고 이 진은 학익, 삼 진은 사방을 이룬 압진이라. 돌파와 동시에 잔당을 섬멸할 모양이다. 지금의 모습으로 봤을 때 선단부에서 백 장의 거리에 당도하면 속도를 높일 것이다.”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지?
적생의 말에 고민에 빠져 있던 진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단부의 낭인대의 수는 대략 삼백. 얼마 버티지 못하겠다. 길어야 반 시진이다. 선단과 우리가 위치한 이 진의 거리 역시 백여 장. 모두 긴장해라. 우리가 살자면…….”
적생이 달라진 눈빛으로 빠르게 전황을 읽으며 말을 뱉었다.
“흠, 차라리 횡진으로 기다렸다가 적의 돌파에 맞춰 길을 열어 주고 본진의 정예들로 좌측과 우측을 공격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인데. 낭인대를 저리 모아 놓아서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안타깝구나. 사패천의 정예인 철검단을 상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전멸할 것이야. 차라리 다른 방법을 썼다면 좋았을 것을.”
이놈 설마?
지금 눈앞에서 적의 전황을 분석해서 대처 방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가?
그런데 다른 방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 저희의 오랜 버릇입니다. 적을 상대하기 전에 대원들에게 대충의 전황을 전파하고…….”
“아니! 잡설은 필요 없고! 요점만 말해 보시오. 적을 상대할 다른 방법이라니? 그게 뭔 말이오?”
“……천웅방이 적을 잘못 상대하고 있는 듯해서요.”
“뭐?”
“천웅방은 선단으로 하여금 적의 진격을 늦추고 나서야 본대를 움직여 좌우를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실효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
“매복이나 기습을 쓸 수 없는 야지의 전투입니다. 또한, 적은 대략 삼백여 명, 상대적으로 적의 전력이 우세해 보이는군요.”
적생이 칼끝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적은 지금 백여 명씩 삼 개 대로 나누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적의 움직임과 속도를 봤을 때. 첫 번째는 돌파, 두 번째는 섬멸, 세 번째는 진압일 것입니다.”
“……!”
진무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철검단의 돌파진은 자신이 만들고 가르쳤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전투 방법이다.
적생은 그것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판단해, 대응 방법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눈을 빛내면서.
그 짧은 순간에?
그러고 보니 분명 적생은 군사로서의 역할이 강한 낭인이라고 했다.
아! 현장 체질…….
전투형 군사라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