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다섯 권의 서책들.
유장이 전장에 숨겨 놓았다는 장부들을 모조리 찾아왔다.
“야, 사마귀.”
“…….”
“너 말야! 너!”
대충 시선이 향해 있으면 알아먹을 만도 한데, 요새 젊은것들은 어찌 이리도 눈치가 없단 말인가?
진무가 검지로 이마를 쿡쿡 찌르자 황각수가 기겁하며 대답했다.
“예!”
“어떤 장부야?”
“예?”
“돈 빠져나갔다는 거 말이야!”
“적색 띠가 둘린 장부입니다.”
“적색 띠…….”
황각수가 말하자마자 유장이 적색 띠가 둘린 장부를 찾아 내밀었다.
촤라락!
진무가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 한곳에서 멈춘다.
“하, 이 새끼들 봐라? 진짜네?”
진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장부에는 동림전장의 자금 흐름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황각수, 생각보다 치밀한 새끼다.
치부책을 이리도 상세하게 적어 두다니. 그냥 사기꾼인 줄 알았더니.
“원화정(原花庭)?”
어째 익숙한 이름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유장.”
“예.”
“원화정이 어디냐?”
“낙양입니다. 황실에서 관리하는 사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게 말하니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하네. 근데 동림전장의 돈이 그곳으로 간다는 게 말이 되냐?”
턱도 없는 소리다.
유장 역시도 못 믿는 눈치였다.
“야, 너 이거 진짜야?”
“예. 확실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너 혹시나 꼼수 부리는 거면 뒈진다, 진짜.”
“당치도 않으십니다. 제가 어찌 대협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나한테 복리 어쩌고 사기 친 건 거짓말 아니냐?”
“그, 그건…… 하지만 지금은 저,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몽야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그쪽으로 돈을 보내라 지시하셨습니다.”
“몽야?”
“예. 항상 찾아오는 여인입니다. 새로 동림전장의 주인이 되신 분의 수하이신.”
“흐흠, 그으래?”
진무가 눈살을 찌푸린다.
역시, 고작 위패를 모시고 제사나 지내는 사당이 뒷배일 리 없다. 필경 원화정은 눈속임일 터.
황각수가 말한 몽야라는 여인.
뭔지는 몰라도 뒤에서 일을 꾸민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원화정을 들먹인 것을 보면 황실의 인물일 수도 있지. 관리일 수도 있고.
무언가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이면에 필시 무언가 있을 법한.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감히 허락도 받지 않고 진무의 돈을 가로챘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진무의 눈이 가늘어지자 황각수는 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동결 구좌에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뇌물에 관련한…… 뇌물?
“그것도 장부가 있냐?”
“예.”
황각수의 대답에 진무가 눈짓하자 유장이 빠르게 장부를 뒤져 또 한 권을 건네 왔다.
“호오?”
책장을 넘기는 진무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사마귀 같은 놈이 기록하는 능력 하나는 무척이나 출중하구나.
모두가 제 살길 마련하느라 그랬겠지.
아주 마음에 드는 비열한 새끼.
장부에는 그동안 동림전장의 본점에서 뇌물로 지출된 금액과 받아 처먹은 관리들에 관한 기록들이 가득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
서안부 지부 태양명.
이 탐관오리 새끼, 역시나 받아 처먹었다.
“동천 땅, 만 평? 그래도 땅은 얼마 안 받았구만.”
“아닙니다요. 동천 땅은 예로부터 사금이 나는 곳이라…….”
사금? 사금이라고?
황각수의 말에 진무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이런 기똥찬 일이 생기다니.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소란을 피워 대며 놈의 체면까지 구겨 놓은 터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살짝 고민했는데.
이 장부만 있으면 관복은 물론 껍질까지 벗겨 놓을 수가 있으리라. 덤으로 사금 나는 땅까지 털어 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화정.
어떤 놈인지, 어떤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돈을 벗겨 먹었겠다.
금 한 관 이자로는 턱도 없다. 나중에 열 배, 스무 배로 갚아 주마.
진무가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친 장부를 따로 허리띠에 단단히 챙겨 넣고.
“유장.”
“예.”
“지금 본점에 남아 있다는 운영 자금 모조리 긁어 와라. 쌀 한 톨, 철전 하나까지 남김없이!”
“예!”
진무의 명령에 유장이 혼자서는 안 되겠는지 밖에 있는 수하들 몇을 불러들였다.
금과 패물, 은전에 도자기……는 빼라. 그건 들고 가기 힘드니까.
유장은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긁어모았다.
참, 꼼꼼하기도 하다.
적생을 사패천의 총사로 임명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저런 녀석을 선발하다니.
“얼마쯤 되냐?”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총사님이 말씀하신 금액에는…….”
그래, 턱도 없이 부족하겠지.
망할 놈들.
속이 쓰리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저, 대, 대협.”
진무의 살기가 넘실거리며 사방으로 퍼지자 더럭 겁을 집어먹은 황각수가 제 살길을 찾아 한마디를 보태 온다.
“도, 돈을 더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
“실은 원화정으로 가는 돈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마차에 대해 알고 있으니…… 살려만 주신다면.”
호오? 그래?
“얼마냐?”
“예?”
“마차에 실린 돈이 얼마냐고?”
“황금 사십 관 정도…….”
사, 사, 사십 관?
동림전장이 빼돌린 돈이?
“잘……도 그 많은 돈을 빼돌렸구나. 개방이 감시하고 있었을 터인데.”
“개방은 모릅니다. 전장의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갔기에.”
“…….”
모른단다.
어찌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가.
만일 사십 관을 모조리 채 가면?
순식간에 황금 열두 관이 사십 관으로 불게 되는 것이다.
그래, 이건 진무가 악심을 품고 전장을 털거나 한 것이 아니다. 전장 놈들이 빼돌린 돈을 진무가 도로 빼앗은 것이니 모든 잘못은 전장에게 있다.
아, 화산이 급하긴 한데 일단 그쪽부터 확보할까?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제가 비밀 통로를 알고 있습니다. 아마 얼마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황각수가 살고자 간이고 쓸개를 전부 빼서 바치고 있다.
주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흐음.
“호위는?”
“비밀스러운 일이라 탄기에 이른 무인 다섯 정도가…….”
이런 대범한 새끼들을 보았나. 그 큰돈이 실린 마차를 고작 탄기의 무인 다섯으로 호송을 하다니.
다 집어치우고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지만 화산이 먼저다.
양의심공…… 그래, 양의심공부터 얻어야 하니까.
“유장.”
“예.”
“이놈들 데려가라. 황금 사십 관을 실었다면 정말로 얼마 가지 못했을 것이다.”
진무는 유장에게 그 돈을 털라고 지시를 내렸다.
탄기의 무인 다섯이라면 유장과 함께 온 천웅방의 무인들로 충분히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자의 말대로 저희가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면 개방도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 또한 옳은 판단이다.
밖을 지키고 있던 천웅방 무인들의 기운이 사라지면 개방도들의 의심이 더욱 커지리라.
아마 곧바로 안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무는 이미 그에 대한 방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쪽은 내가 막아 줄 테니까 서둘러 비밀 통로를 통해 마차를 뒤쫓아라.”
“예, 어찌?”
“내가 막아 준다니까?”
“……예.”
눈을 부라리는 진무의 모습에 유장이 찔끔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진무가 말을 덧붙이며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을 따라 나온 작은 주머니.
아, 열기 싫다.
그 마음을 아는지 오른손 녀석이 솜털을 빳빳하게 세우며 맹렬하게 거부감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나도 싫다. 미치게 싫다. 하지만 어쩐단 말이냐? 돈이 모자란데…….
진무는 손을 달래고, 달래 주머니를 열었다.
영롱하게 밖으로 뻗어 나오는 빛줄기.
“그건?”
유장이 빛을 보며 놀란다.
누런빛이 아니라 약간 초록빛을 띤 아름다운 광채.
안다. 나도 안다.
어찌 놀랍지 않겠느냐.
진무가 학질 걸린 사람처럼 손을 덜덜 떨며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이 녀석들도 진무의 품을 떠나기 싫었던 것일까?
자꾸만 손에서 벗어나 도망친다.
내 마음이야 오죽하겠느냐?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나는 외로우니…….
진무는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을 애써 참으며 두 개를 꺼냈다.
“역시! 야명주로군요!”
그래. 왜 아니겠냐?
눈동자에 슬픔을 가득히 머금은 진무가 손에 쥔 야명주와 이별을 고하듯이 외면하며 유장을 향해 내밀었다.
“마, 만약에 말이야. 혹시나 황금을 지키는 놈들이 너무 강하면 무리하게 확보하지 말고 보, 보……태……서…… 써…….”
아, 이 말을 하기가 어찌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감사합니다. 이 정도 크기의 야명주 두 개라면 충분합니다.”
충분만 할까?
제값만 받을 수 있다면 남는 거로 몇 날 며칠을 흥청망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하느니라.
내게는 정말로 소중한 녀석들이다. 알겠느냐, 유장, 적생.
“……?”
“…….”
진무가 야명주 두 개를 움켜쥐고 놓지 않자 유장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응? 왜?
“그만 놓으셔야…….”
“…….”
이 새끼야. 니가 이별의 아픔을 알아?
내가 그간 이 녀석들과 얼마나 깊은 정분이 났는지 니가 아느냔 말이다.
손을 떠나 유장에게로 향한 야명주를 못내 아쉬운 듯이 바라본 진무는 이내 마음을 달래고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황금 확보하면…… 야명주는 팔지 말고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제야 수하들 앞에서 좀스러워 보이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유장의 눈치를 봤지만.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야명주에 시선을 빼앗겨서 진무의 걱정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휴, 다행이다.
“한데, 원화정이라는 곳은 어찌할까요?”
“원화정?”
“예. 명하시면 총사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진무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즉시 원화정이라는 곳을 정리하라 서신을 보낼까요?”
유장의 말에 고민을 끝낸 진무가 사악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놔둬.”
“예?”
“우리가 챙길 건 다 챙겼어. 그리고 원화정은 미끼일 가능성이 커. 더욱이 황실을 괜히 건드려 좋을 일이 없지. 싸움은 다른 놈들에게 맡긴다.”
“……다른 놈들이라면?”
“그런 게 있어.”
음흉한 표정을 짓는 진무의 모습에 유장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굳이 되물을 필요는 없다.
천주의 명령에 토를 달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가거라!”
“예! 부디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유장이 급히 인사를 하고 전장에서 끌어모은 돈이 담긴 궤짝을 챙겨 신호하자 밖을 지키던 무인들이 전장으로 모여 유장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한참 만에야 진정이 된 진무의 기감에 누군가 접근하는 기척이 걸렸다.
필시 개방도들일 것이다.
아마 본점에서 진무가 소란을 일으켰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당연히 진회루 앞까지 따라왔을 것이고, 황각수가 얻어맞는 것도 보았을 것이며, 유장과 함께 전장에 들어오는 것도 알았을 터.
궁금했겠지.
하지만 유장에게 일러 접근을 못 하게 막으라 했으니 감히 다가서지 못했을 것이고, 이제 그들의 기세가 사라졌고 소란도 진정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확인을 하고자 할 것이다.
진무에 대해 확인할 것이고 모든 이야기를 들으려 하겠지.
“귀하는 누구요?”
송충이 같은 눈썹이 하늘로 솟구친 중년 거지 하나가 전장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진무를 경계하며 묻는다.
허리춤에 다섯 결의 매듭이 있으니 아마도 서안의 분타주일 것이다.
“그대는 누군가 묻지 않소!”
진무는 대꾸 없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개방이 어떤 의문을 품는다고 해도 말끔히 지워질 물건을 꺼내기 위해.
휙, 땡그렁.
“…….”
진무가 가슴팍에 손을 넣자 잠시 긴장했던 서안분타주가 정확히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진 동전이 떨림을 멈추고 자리를 잡자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다.
그리곤 그 즉시 무릎을 꿇으며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서안분타주, 호현개(呼顯丐) 소동보가 협전의 주인이신 무당지검을 뵙습니다.”
이름하고는, 부르면 나타나는 거지라니.
어쨌든 진무가 꺼낸 것은 일전에 청우와 제갈산산이 한 번의 기회를 날려 버린 무풍개의 협전이었다.
“일어나시죠.”
“…….”
진무의 말에 호현개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저어, 한데 무당지검께선 어찌…….”
무언가를 묻고 싶겠지만.
“개방에서 어쩐 일이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진무가 먼저 굳은 표정으로 선수를 쳤다.
이미 협전을 꺼냈고, 정체를 밝혔다.
나이의 고저를 떠나 정무맹에 속한 이들이라면 상하 관계는 명확하다.
양소방의 협전을 꺼낸 시점부터는 진무의 물음이 우선이었다.
“아, 실은 무풍개께서 중원의 각 전장에 대한 감시를 지시하셔서.”
“전장을 감시하라고 했다고?”
“예. 현재 개방의 모든 전력이 투입되어 중원 전역의 오대전장 본점과 지점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어찌?”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궁’이라는 곳과 관련이 있다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궁이라고?
진무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진다.
또 궁이다.
하면 원화정이 궁의 세력과 관련이 있는 곳이란 말인가?
이 망할 놈들은 대체 뭔데 이리도 내 삶에 자꾸만 끼어든단 말인가?
청성에서도 그렇고.
곤륜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이번엔 내 돈을 털어먹기까지.
그딴 놈들 알지도 못하는데 자신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자꾸만 방해가 된단 말인가?
“해서 이번에 가장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은 동림전장에 갑무반의 무인들을 조사차 보냈으나 관이 개입하는 바람에.”
“갑무반이요?”
청상과 청우가 속한 곳의 이름이 나오자 진무가 관심을 보였다.
“예. 전장에서 소란을 일으킨 이유로 관아로 압송되었습니다.”
“뭐라구요? 그걸 보고만 있었단 말이오?”
진무가 언짢음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하자 호현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받은 임무는 무조건 감시만 하라는 것이었기에.”
“…….”
망할 놈들. 청우랑 청상이 잡혀갔는데 구경만 하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감시만 했으니 진무가 어떤 의도로 동림전장을 찾아왔고 어떤 이유에서 싸웠는지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한데 무당지검께서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까 보니 본점 총관을 패고 태 대인과 마찰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기세가 매서운 자들과 함께 오신 듯하던데…….”
호현개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뭐, 이 새끼야. 어쩌라고.
설명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힘을 가진 것은 진무니까.
이럴 때는 적반하장(賊反荷杖), 방귀 뀌고 성냄으로 모든 의혹과 질문을 원천봉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