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이게 뭐냐?”
“진회루에서 사들인 첩보요.”
“…….”
늦은 밤, 서안부의 뒷골목의 경계를 나눈 나무로 만들어진 벽.
옹이가 떨어져 나간 구멍으로 두툼하게 말린 종이 뭉치가 쑥 들어왔다.
하오문의 하급 종도, 양춘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서안 제일의 기루인 진회루라고 해도 하루에 이 정도 양의 정보가 들어온 적은 없었다.
“은 두 냥이나 들어갔소.”
“두, 두 냥이라고?”
가격은 더욱 당황스럽다.
기녀, 점소이, 접객원, 악공, 그 외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이 물어 오는 첩보라고 해 봐야 시답잖은 내용이 대부분이라 매꾼들은 하나에 철전 한두 개를 주고 이를 사들인다.
이것을 종합해서 필요한 부분만 빼내 정보로 가공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니까.
그런데 은자로 두 냥이라니.
그 정도면 최고급 정보의 가격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뭔 정보길래 그리 비싸단 말인가?
종이 뭉치를 받아 든 양춘은 집 나간 어이를 불러들일 새도 없이 까딱이며 재촉하는 매꾼의 손에 은 두 냥에 철전 꾸러미를 더해 건넸다.
매꾼과 종도.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가끔씩 이런 식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정도의 관계일 뿐이다.
그게 최선이다. 매꾼이 잡혀 자신들의 꼬리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종도들도 그 윗선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몸을 숨긴 채 활동하는 윗선을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부 조직에 철저하게 은폐된 상부 조직. 그것이 하오문이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존재해 온 비결이었다.
“거참,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매꾼의 기척이 사라지고 난 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양춘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종이 뭉치를 뒤적거렸다.
모든 내용은 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진회루를 찾아온 약관의 무인.
어떻게 생겼는지, 옷은 뭘 입었고 말투는 어떠하며, 뭘 처먹었는지, 뒷간에 언제 갔는지, 누가 시중을 들었는지, 숨은 몇 번이나 쉬는지…….
별 쓰잘머리 없는 내용까지 매꾼이 모조리 사들인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눈길을 끄는 문구.
“……금안표가 뒈질 만큼 처맞아?”
금안표라면 양춘도 잘 안다.
본신의 실력과 어울리지 않게 주루에 소속된 탄기의 무인. 동림전장에서 무당지검이 깽판을 친 뒤에 사라져 버린 황각수와 함께 서안부에서 제법 유명한 자였다.
그런데 그가 그 지경으로 처맞았다고?
양춘의 손이 재빠르게 종이를 뒤적거린다.
“이런 미친? 무인 열 명이 두 호흡 만에? 가능한 거야?”
아무리 주루의 호위 무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정무칠성이라도 나타난 건가 싶어 자세히 보니 약관 언저리란다.
그럼 남은 것은 근래에 명성이 자자한 무당지검뿐인데? 아니면 또 다른 젊은 신성이라도 있는 건가?
진회루의 호위와 마찰이 생긴 젊은 무인은 진회루주, 이향란이 사과를 하고 나서야 물러났다고 했다.
사과를 받아 주는 대가로 진회루에서 가장 비싸다는 산해진미를 혼자 처먹고, 그 귀하다는 금분미주를 두 병이나.
더럽게 사치스러운 놈이다.
설마 그걸 처먹으려고 일부러 소동을 피운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
그러다 그의 손에 잡힌 한 장의 종이.
도저히 넘길 수가 없다.
“거, 검은 기운이라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회오리처럼 몸 주위를 휘돌았다는 검은 기운.
주먹에 어리고 발에 어리고.
“이게 대체…….”
도무지 믿기 힘든 그자의 무위보다도 기운을 묘사한 부분이 묘하게 신경을 거슬러 온다.
“검은 기운, 검은 기운…….”
알 듯 말 듯한 무언가로 인해 자꾸만 입가에 검은 기운이란 말을 되뇌던 양춘의 머릿속에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올랐다.
“……!”
하지만 이내 양춘은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설마?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그럴 리가 없지.”
그리고 약관이라 하지 않는가?
제자를 의심하기에는 그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제자이자 당대의 사패천주인 유월청에게도 독문무공을 전하지 않았으니까.
“아닐 거야.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중얼거렸지만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아니지, 만약 정말로 혹시나 그 사람과 관계된 인물이라면?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양춘은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종도로서 그가 해야 하는 일은 다양한 첩보를 취합해 확실한 정보를 만들어 윗선에 전달하는 일이다.
늘 하는 일이 그렇듯 절대로 의심스러운 정황을 놓치지 않아야 했고, 확실치 않은 것이 있다면 몇 번이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검은 기운을 사용하는 사내.
그저 설마일 뿐이다.
하지만 그 설마가 엄청난 내용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양춘은 다급히 일어나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망할 놈들, 은 두 냥이나 처먹었으면 이름 정도는 나왔어야지.”
* * *
펄럭.
양춘은 집 앞에 쳐진 줄에 색색이 다른 빨래를 하나씩 널었다.
웬만하면 색깔별로 널어놓아야 정돈된 기분에 보는 사람도 좋을 터인데, 양춘은 아무래도 그런 점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거, 시펄. 뭔 오밤중에 빨래여?”
한껏 취한 사내가 양춘이 빨래를 너는 모습에 시비를 걸어 온다.
뒷골목 투전 거리를 전전하는 모충이다.
아마도 꼬라지를 보니 오늘도 도박장에 가서 탈탈 털리고 온 모양이다.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 가.”
“시펄, 널려면 좀 색깔별로 널든가. 빨강에 파랑에…… 눈깔이 다 아프네.”
“남이야 뭘 하든 네놈이 뭔 상관이여?”
양춘이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자 왜소한 체격을 가진 모충이 찔끔하는 표정으로 목을 움츠렸다.
“거 새끼, 성격하고는. 누가 보면 포목점이 아니라 개백정인 줄 알겄네.”
“안 꺼져?”
“가, 간다, 이눔아. 가!”
양춘의 위협에 모충이 비틀거리다가 엎어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퉤,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저 도박에 미친 놈 안 잡아가고. 그나저나 어째 오늘은 같이 다니는 정락이 놈이 안 보이네?”
양춘이 모충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빨래가 담겼던 광주리를 들고 제집으로 들어갔다.
막 그가 호롱에 불을 붙여 방 안의 어둠을 쫓아내려 하는데.
“켜지 마라.”
“……!”
익숙한 목소리의 복면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언제나 찾아오는 자신의 윗선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지?
평소에도 대중없이 나타나곤 했으나 통상 길게는 반나절, 짧게는 한 시진은 족히 걸렸다.
이제 막 그에게 신호를 보냈는데 어찌 알고 찾아왔단 말인가?
“어찌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가? 이청일백삼적(二靑一白三赤)이라니!”
“죄송합니다.”
복면인의 꾸중에 양춘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죄했다.
삼색신호(三色信號).
정식 하오문도들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상급자에게 자신을 뜻을 전할 때 사용하는 은밀한 방법이었다.
조금 전 양춘이 밖에 널었던 빨래가 바로 그것이다.
백색, 청색, 적색을 조합해 다양한 뜻의 신호를 보낸다. 도구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색만 정해져 있을 뿐 빨래일 수도, 깃발일 수도, 때로는 옷차림일 수도 있었다.
무엇을 이용해서든 표시만 해 두면 언제나 상급자가 찾아오곤 했었다.
“정무맹의 무인은 물론 관부와 위소의 군병까지 동원되었네. 무슨 일이길래 긴급 신호를 보낸 것인가?”
목소리는 매우 낮았으나 꾸짖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사안?”
“예. 진회루에 이상한 자가 나타났습니다.”
“말하라.”
“그가 회오리 형태의 검은 기운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검은 기운…….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혹시…… 그, 묵룡기가 아닐지?”
양춘이 매꾼에게 사들였던 종이 뭉치를 복면인에게 전했다.
잡다한 내용이 이어진 끝에 언급된 검은 기운.
복면인의 눈동자에 진한 파문이 일었다가 사라지고, 한참이나 말이 없던 복면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약관이라…… 그분과 관련된 인물이라 생각하나?”
“……예.”
“쯧, 이미 이 년 전에 운명을 달리하신 분이다. 그전에도 몇 년간 병환으로 두문불출했던 분이고.”
“압니다. 하지만 만약에 말입니다, 그분께서 후사를 남기셨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
“너는 그분과 문주님의 관계를 모르는 것이냐?”
“알고는 있습니다. 그분과 관련된 내용은 문주님께서 죄다 알고 계시겠죠. 천 단주님 말고는 가장 가까이 지내셨으니까요.”
“그래. 그러니 말이 안 되는 게야. 만약 유월청 말고 다른 제자가 있었다면 문주님께서 사패천에서 등을 돌릴 때 그분을 먼저 찾으라 했을 것이다.”
“…….”
복면인의 말에도 양춘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의심이 가는가?”
“……예.”
“…….”
종도, 그들은 수많은 소문을 토대로 하나의 정보를 만드는 것에 특출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하오문 내에서 가장 낮은 계급의 문도였으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
그 중요성을 알기에 각 지부를 담당하는 종도는 문주의 재가를 받아 임명하게 되어 있었다.
복면인은 양춘을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다. 직접 살펴봐 주겠다. 그러니 이번 일은 그만 잊어라.”
“예.”
그제야 양춘의 얼굴이 밝아지자 복면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모처럼 오신 김에 차라도 한잔.”
양춘이 옆의 탁자에서 찻주전자를 잡고 고개를 돌리는데.
“……허.”
웃음이 나왔다.
없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양춘은 혀를 내두르며 잡았던 찻주전자를 도로 내려놓았다.
“정말로 묵룡기였으면 좋겠군.”
그런 바람이 들었다.
과거와 달라져 버린 사패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버린 하오문.
양춘은 그리웠던 것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던 그 시절이.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해 전달하고, 그로 인해 사패천이 승승장구할 때마다 느꼈던 끝없는 자부심이.
“재미있었지. 성격이 좀…… 그렇기는 했어도 항상 즐거웠어. 그분은 언제나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쳤으니까.”
양춘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입가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 * *
진회루의 청류실의 분위기가 변했다.
한순간에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어 버린 것이다.
단 한 사람, 진무 때문이다.
하긴 이유도 없이 그렇게 깽판을 쳐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때문에 진회루주 이향란이 직접 수발을 들었고,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 버린 금안표와 진회루의 호위 무인들이 외곽을 철통같이 호위하고 있었다.
쪼르륵.
중년의 미부, 이향란은 소매에 가려졌던 섬섬옥수를 꺼내 술잔을 채웠다.
“금분미주라. 맛이 괜찮군.”
“감사합니다, 대인. 중원 어느 곳에서도 취급하지 않는 술입니다.”
“금칠하기는.”
이향란의 소소한 자랑에 진무가 피식 웃고는 단숨에 잔을 비워 내었다. 이향란은 그런 진무를 빤히 응시했다.
“눈 깔아. 얼굴 뚫리겠다.”
“죄송합니다.”
진무의 핀잔에 이향란은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을 뿐,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려 얼굴을 가린 사내.
턱 부분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안 최고의 주루를 운영하는 그녀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무당지검, 진무.
하지만 알고도 모른 척을 했다.
진무가 자신을 밝히지 않았으니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이 오랫동안 사람을 접대해 온 그녀의 철칙이자 습성이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 얼굴인데?”
“물으면 답해 주시겠습니까?”
“…….”
진무의 눈이 살짝 찡그려진다.
딱히 명확한 답을 요구한 질문은 아니었으나, 이런 식의 동문서답은 결코 즐기지 않는다.
사람 간 보는 것도 아니고.
“말해 봐. 해 줄 수 있는 대답이면 해 준다.”
진무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향란이 주변에서 수발을 들던 이들을 청류실 밖으로 모두 물리고도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어찌 그러셨나요?”
“…….”
허락하자마자 직설적으로 찌르고 들어온다.
진회루주 이향란. 외관으로 보아 대략 사십 대 중반.
시종일관 차분한 기색과 노회한 눈빛으로 미루어 제법 긴 세월 사람을 상대했을 터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눈치가 점쟁이 수준으로 발전한다.
노인들이 오랜 삶을 살며 관상에 조예가 깊어지듯,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슨 뜻이지?”
“제 말뜻을 이해 못 하실 정도는 아니라 보는데요? 분명 일부러 시비를 거신 것 같은데, 제가 틀리게 보았을까요?”
“…….”
조근조근 내뱉는 말도 그렇거니와 눈치도 제법이다. 흐음, 이 바닥에서 잔뼈 좀 굵었다 이거지. 아니면 여인 특유의 직감, 뭐 그런 건가?
“잘 봤네.”
피식 웃은 진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해 주었다.
어차피 이젠 알아도 상관없다.
“역시…… 어째서 그러셨죠?”
“시선을 좀 끌어야 하거든. 내가 보여 준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그게 무슨?”
“알잖아, 그대도.”
“…….”
“이미 진회루의 모두가 나의 정보를 팔아먹지 않았을까?”
웃음기 어린 대답에 이향란의 눈이 찡그려진다.
이자…… 설마?
“그리고 그 정도 드러내 줬으면 이제 곧 한 놈쯤 찾아올 테고 말이야.”
진무의 말에 이향란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진무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네. 기다리던 놈이.”
“……?!”
파아앙!
무슨 말인지 물을 새도 없었다.
이미 진무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