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아까의 말은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해소하려 청상이 말을 꺼내자.
“기분이 개X같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예?”
황신의 대답에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자, 잘못 들은 건가?
무표정하기만 한 황신의 얼굴을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청상이 당황하는 사이에 청우가 황신에게 슬쩍 다가갔다.
“열아홉 살이라고?”
“…….”
“귀엽게 생겼네.”
“…….”
청우가 어깨를 툭툭 치자 황신이 쳐다보고는 피식 웃는다.
친해지라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어찌 위대한 사패천의 일원으로서 무당의 도사 따위와 친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 와중에 이 돼지 새끼는 도대체 뭐기에 이리 친한 척을…….
“나도 열아홉 살이야. 근데 내가 우리 사숙이랑 제일 먼저 친해졌거든.”
“…….”
“청상 사형이야 나이도 많고, 무공도 세니까 사숙의 옆자리를 양보할 수 있지만, 나머지 한 자리는 절대로 안 돼. 알겠니?”
청우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이른바 텃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신이 기도 안 찬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웃어? 하, 이 친구가 은신술 좀 한다고 사람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네. 나, 무당의 칠성동자야.”
칠성동자(七星童子).
벌써 유운검룡이라는 명호를 얻은 청상, 소성검녀라는 명호를 얻은 제갈산산에 비해 아무도 무명을 지어 주지 않자 청우가 몇 날 며칠 동안 고민해서 겨우 만든 자신의 무명이었다.
“그러니까 나이는 같아도 앞으로 나를 잘 모시란 말이야. 알겠어?”
청우가 친근하게 웃으며 황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황신이 한숨을 깊게 내쉬고 짝다리를 짚으며 침을 퉤 뱉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방언처럼 터져 나오는 욕설.
“나 참, 이런 육시럴 돼지 새끼가. 확 눈깔을 뽑아다 구슬치기를 해야 하나. 어디서 잘 뵈지도 않는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봐? 뭐? 잘 모셔? 고사상 돼지머리 같은 새끼, 면상을 확 조사 불라. 얻다 어깨에 손을 대? 손모가지 꺾어 줘? 씨발, 한 번만 더 그러면 평생 뒤만 쳐다보게 대가리 방향을 바꿔 버릴라니까. 알아들었냐?”
“…….”
황신은 숨 한번 쉬지 않고 친근한 표정으로 욕을 토했다.
“빨리 손 안 떼, 이 빌어먹을 돼지 새끼야? 아주 씨발, 손가락이 마디별로 작살나 봐야 정신 차리겠냐? 비 오는 날 몸 방방곡곡 안 쑤시는 곳이 없게 해 줘?”
평생 들어 본 적도 없는 욕설에 청우는 넋이 나간 얼굴로 조심스럽게 황신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한 번만 더 내 어깨에 손대면 모가지에 바람구멍 나게 해 줄 테니까 알아서 해라, 어?”
“…….”
“아, 좀 살겠네.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으니까 이제부턴 말 편하게 할게.”
“…….”
“거기 멸치 대가리, 청상이랬냐? 나이 몇 살 더 처먹었다고 형 노릇 하다가는 처먹은 세월만큼 마빡에 나이테 새겨 놓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
“그리고 여자, 넌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사람을 왜 그따위로 보냐, 앙? 이름 따라가고 싶냐? 어디 경치 좋은 산에다 파묻어 줄까? 말만 해. 나 아는 데 많아.”
황신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정말 쉬지 않고 줄줄 떠들었다.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면서…….
그럴수록 청상과 청우, 제갈산산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갔다.
* * *
진무가 적생과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깊은 산속 옹달……. 어쨌든 모닥불 가에 토깽이 새끼처럼 모여 앉은 넷의 분위기가 묘했다.
황신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기를 처먹고 있었고, 나머지는 놀란 토끼 새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쳐다보고 있었다.
뭔 일이 있었나?
명세찬이 ‘새로운 경험’ 어쩌고 하며 주의를 주기에 걱정했는데 딱히 싸운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사숙이자 천주인 그의 말을 그들이 무시했을 리가 없지.
황신과 제갈산산은 몰라도 청우와 청상은 수준 높은 진무의 가르침(?)을 받아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오셨습니까?”
황신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어.”
진무가 대답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근데 니들은 왜 못 볼 거라도 본 듯한 표정이냐?”
“……그것이.”
청상이 우물쭈물한다.
“뭐야? 친하게 지내라니까 어째 다들 못마땅한 표정인데?”
“……그게 아니라.”
난감한 기색으로 말을 흐리는 게 좀 수상하지만 안 싸웠으면 됐지, 뭐.
“자, 앉아. 술이나 마시자.”
“……예.”
진무가 술병을 바닥에 놓으며 앉자 황신이 먼저 앉고, 두 사질과 제갈산산이 엉거주춤하게 섰다가 자리를 잡는다.
“…….”
이것들이 원래 이렇게 숫기가 없었나?
어째 황신 곁에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지려는 느낌인데.
뭐, 어쩔 수 없나. 하긴, 잠깐 만나서 친해지는 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그래, 자고로 사내놈들이라는 게 술도 한잔하고 그러면서 천천히 친해지는 거지. 제갈산산이야 친해지든가 말든가 신경 쓸 이유 없고.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순배가 돌고 취기가 오를 때쯤.
“제갈 소저, 사질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자리를 피해 주겠소?”
“……예.”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지 궁금했지만 제갈산산은 거절치 않고 일어나 걸음을 옮겼고, 그런 그녀의 뒤로 황신이 호위하듯이 뒤따랐다.
그들이 멀어졌을 때쯤, 주변에 기막을 쳐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은 진무가 입을 떼었다.
“청상, 청우.”
“예?”
“나는 이제부터 사파의 영역으로 간다.”
“……예?!”
진무의 나지막한 말에 청상과 청우가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 왜요? 정무맹에서 사숙께서 하실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사숙! 그건 안 됩니다. 사숙께선 저희의, 무당의 꿈과 희망입니다.”
그렇겠지. 돈을 그렇게나 벌어다 줬는데 꿈이며 희망인 게 당연하지.
“시끄럽고. 내 갈 길은 내가 알아서 정한다. 양의를 익힌 이상 다른 선택은 없어. 사부님께서도 그러라 하셨고.”
“사, 사조님께서 어찌.”
“사숙…… 다시 한번 생각을.”
청상과 청우가 어떻게든 진무의 결정을 바꾸어 보려 말을 건넸지만, 진무의 표정은 단호하기만 했다.
“아까 말했듯, 힘을 길러. 그리고 정무맹의 핵심으로 성장해.”
“…….”
“그리고 너희가 꿈꾸는 이상대로 바꿔 봐. 무당은 아마 너희들의 뜻을 존중할 거다. 제대로 잘 성장하고 있으니까.”
“……사숙.”
청상이 진무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청우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싫은 표정을 짓는다.
“연락은 자주 보내마. 저기 황신이라는 녀석을 통해서.”
“사숙.”
“청상, 청우, 잘 해내리라 믿는다.”
“……예.”
청우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
진무가 미소를 지으며 그런 청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실망감과 더불어 진무에 대한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믿음직한 청상과 물가에 내놓은 손주 같은 청우.
어차피 오래전에 결정했던 일이고 아예 안 볼 것도 아닌데 헤어짐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니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명진이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젠장, 이런 식의 감정은 생소해서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래, 헤어짐이라는 것은 짧을수록 좋은 법이지.
진무는 술을 따라 자신과 두 사질의 잔이 넘쳐 흐르도록 가득히 채웠다.
“이 잔은 너희와 같다. 지금까지는 무당이, 너의 주변 사람들이 채워 주었으나 이제부터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스스로 채워라. 넘치면 손에 묻고, 모자라면 볼품이 없으니 다만 알맞게 찰랑대도록 채우거라.”
진무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멀어지는 진무를 따라 황신이 재빨리 달려와 뒤따른다.
청상과 청우는 그런 진무의 뒷모습에 천천히 절을 올렸다.
언젠가 그의 곁에 모자람 없이 설 수 있는 그때를 기약하며…….
* * *
콰우우우.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을 만난 물줄기가 까마득한 높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장쾌하게 떨어져 내리며 우레와 같은 소음을 만들어 낸다.
바라보기만 해도 경외심을 느끼게 하는 폭포의 측면, 호수의 외곽으로 만들어진 바윗길을 따라 폭포가 시작되는 뒤편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그곳은 마치 지옥으로 가는 입구처럼 깊고 깊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휘이이이.
폭포에서 일어난 바람이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어둠을 향해 빨려들고.
“끄아아아…….”
죽음의 형벌을 받고 있는 죄인의 비명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신음이 바람에 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폭포의 소음에도 가려지지 않은 비명 소리가 들리는 어둠의 가장 깊은 곳.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사내가 석좌에 앉아 있다.
몸 구석구석 탄탄하게 잡힌 근육은 홰의 불빛을 받아 반들거리고, 뱀처럼 사악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유달리 번뜩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털썩.
그의 손에 잡혀 있던 작은 아이 하나가 생기를 잃고 목내이처럼 변해 바닥에 떨어지더니, 이내 푸석거리며 부서진다.
“후우…….”
한숨처럼 내쉰 숨에 짙은 사기가 뿜어져 흐르자 그의 앞에 있던 노인이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상관평. 고개를 들어라.”
나지막한 부름에 상관평이 담담한 표정으로 허리를 세워 앉는다.
상관평의 시선에 닿은 사내.
대궁주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있는 한 사람이며, 강해지기 위해 사람의 생기를 취해 악마가 되어 버린 소궁주 한승이었다.
대궁주 이하 네 명의 궁주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그였으나, 상관평의 태도는 공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예.”
“무당지검, 진무라는 자의 소행이라지?”
“그렇습니다.”
“강한 녀석인가 보군.”
한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걸이에 걸쳤던 손을 올려 턱을 괴고 나른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상관평.”
“예. 소궁주.”
“그대는 참 재미있는 인물이야.”
“…….”
“휘하를 죽여 가면서까지 내 어미를 죽음으로 몰아넣다니 말이야. 더욱이 무명촌이라는 촌락까지 이용해 꼬리를 자르고 말이지.”
“내궁주를 죽이다니.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감히.”
상관평이 가볍게 고개를 내젓자 한승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솔직해져도 되지 않겠나?”
“…….”
“내 비록 일신의 무공을 대성하기 위해 외부의 소식을 차단하고 이곳에 머물고 있다지만, 눈과 귀가 어두운 것은 아니야.”
“…….”
“좌천되다시피 한 자네가 휘하의 무인들을 사지로 내몰아 가며 내 어미를 죽게 하고, 은밀히 내궁을 손에 넣은 것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한승의 말에 상관평이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띠며 답한다.
“삼궁을 빼앗겼으니 내궁을 손에 넣은 것은 당연한 일이나, 휘하를 충동질해 내궁주를 죽게 한 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그의 말에 한승이 시선을 집중했다.
“뭐, 좋아.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한데 말이야. 꽤 놀랐어. 자네가 직접 찾아와 고개를 조아릴 줄은 몰랐거든. 내 어미의 죽음, 내가 참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분하십니까?”
“글쎄?”
한승이 피식 웃는다.
자신의 어미가 죽었고, 그 음모를 꾸민 이가 상관평이라 의심하면서도 복수심은커녕 귀찮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에겐 자신을 낳은 어미의 죽음이 고작 그 정도 감상이었던 것일까?
“저는 그저 제가 품은 대의를 이루자면 소궁주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 유익하다 판단했을 뿐입니다.”
“유익하다……인가?”
“…….”
“내 귀에는 어째 나를 이용해 자네의 목적을 이루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위협하는 한승의 말에 상관평은 빙그레 웃기까지 하며 답한다.
“뭐, 좋아. 지금의 나에게는 자네처럼 야심만만하고 능력 있는 자가 필요하니까. 후에 나를 베는 칼이 된다면 부러뜨려 버려도 되고.”
잠시 말을 멈춘 한승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말이야. 삼궁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지금 자네가 진정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 어차피 내궁은 여전히 나의 편인데 말이야.”
“그리 생각하신다면 지금 제 손을 뿌리치시면 될 일이지요.”
“…….”
한승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이야기를 들어 보지.”
그의 말마따나 손이야 뿌리치면 그만이지만, 한승은 상관평이 갑자기 자신을 돕겠다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소궁주께선 대궁주를 얼마나 믿으십니까?”
“…….”
“본디 지배자에게는 형제도, 부모도 없는 것입니다.”
“권력은 혈육과도 나눌 수도 없다는 구태의연한 말을 하는 건가?”
“예.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한승의 표정에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이미 대궁주의 속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님께서 나를 견제하실 것이라 보는가?”
“당연합니다.”
“…….”
“겉으론 준비가 되면 모든 것을 물려주겠다 하지만 입바른 소리일 뿐, 이미 과거의 약속마저 잊어버린 권력자입니다. 진심으로 나누어 줄 리 없지요.”
한승이 깊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일궁, 이궁, 삼궁에 내궁의 힘까지 더해 소궁주께서 대궁을 얻도록.”
“재미있는 말이군. 아버님께서 가만히 두고 보리라 여기는가?”
“두고 보게끔 위장을 해야지요.”
“위장을 한다?”
“예. 철저히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무림을 말살하고 대궁의 지배하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 말이지.”
“예.”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자네와 다른 궁주들의 관계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삼궁은 이미 무너지지 않았나? 사패천과 마교는 둘째 치고, 정무맹은 어찌 무너뜨릴 셈이지?”
한승의 말에 상관평이 고개를 젓는다.
“삼궁은 무너졌지요. 하지만 원래의 목적은 충분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목적?”
“정무맹의 분열.”
“……?”
“삼궁을 격퇴한 정무맹의 수뇌부가 취할 행동이 뭐라 보십니까?”
“말해 봐.”
“내실을 다지려 하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무맹에 힘을 집약하려 할 것입니다.”
“해서 분열한다?”
“예. 정무맹이 내실을 다질수록 기득권의 반발은 더욱 심해질 테니까요. 그 상황에 약간의 불씨만 던져 주면 화약고처럼 폭발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당지검이라는 놈이 또다시 설치면?”
“고작해야 미꾸라지 한 마리입니다. 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홀로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요.”
“좋아. 정파는 그렇다 치고, 사패천은?”
“그쪽은 더욱 쉽지요. 현 사패천주는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멍청한 위인입니다. 이미 일궁의 번천계가 시행되었고, 사패오왕 중 둘이 과거의 망령을 좇아 반란을 일으켰으니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중원 삼패 중 가장 먼저 무너질 것입니다.”
“사패천에도 무당지검 같은 미꾸라지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영웅은 동시대에 두 번 나타나지 않습니다. 위협이라 생각했던 혁련무강은 제대로 된 후사조차 남기지 않았지요.”
“흠, 그럼 문제는 마교인가?”
“예. 하나 늙었지요.”
“늙었다?”
“북리도천은 분명 십 년 안으로 명이 다해 죽을 겁니다.”
“…….”
“중심을 잡고 있던 축이 흔들리면 각자의 탐욕이 충돌하게 되고, 내분이 일어나게 되어 있지요.”
“그 역시 자중지란이군.”
“예.”
“하지만 십 년은 너무 길지 않은가?”
“저는 하나의 대의를 위해 수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또한 십 년은 소궁주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무공을 대성하시기에 충분한 시간이지요.”
“흐흠, 때를 기다리란 말인가?”
한승의 말에 상관평은 그저 웃기만 했다.
“한데, 만약에 말이야. 정사마가 연합을 하게 되면 어찌하는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째서?”
“정파의 의, 사파의 이, 마교의 패는 언제나 상충하기 때문이죠. 유사 이래 변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상관평의 말에 한승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어머니께선 나를 이용해 당신의 권력을 손에 쥐려 했고, 자네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저는 그저 소궁주의 장자방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상관평은 그리 말했고, 한승은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십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순식간에 지나갈 시간이다.
자신이 무공을 대성하고 나면, 하늘마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상관평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든지 상관이 없다.
“믿어 보지, 자네를. 하지만 언제나 내가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게.”
“소궁주께서 대성을 이루시는 날, 대궁을 손에 쥐고 중원의 지배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 둘은 서로가 다른 마음을 품은 채 하나의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