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어둠이 짙게 깔린 단강구 수고, 갈대밭.
덜그럭, 덜그럭.
어른의 키만큼이나 크게 자란 갈대를 은밀히 헤치며 짐을 가득하게 실은 몇 대의 수레가 이동하고 있었다.
“이곳이냐?”
“예.”
검은 야행복을 갖추어 입고 조심스럽게 단강구의 물길을 바라보고 있는 금적산이 수하를 향해 물었다.
“구매자들은?”
“거래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습니다.”
금적산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적막하다.
그믐이라 달도 뜨지 않아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금적산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화약 밀거래.
이 한 번의 거래를 위해 금적산은 청양상단의 전부를 쏟아부었다. 일반적으로 살 수 있는 돈보다 네 배나 되는 돈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거래가 끝나면 일확천금이 부럽지 않을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된다.
이미 단강구의 중심 관도 내에 있는 점포들을 봐 둔 터였다. 자금만 확보하면 모조리 매입할 생각이었다.
‘이번 거래만 끝나면 밀거래는 끝이다. 겉으로 상단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단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불법적으로 상단을 운영할 수는 없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금적산은 자신이 수레에 가득히 담아 온 짐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짐 속에 감추어진 화약.
그것만 해도 적지 않았다.
긁어모은다면 적어도 반 수레는 족히 될 만한 양이다.
준비하는 데만도 석 달이 걸렸다.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이만한 양을 구매하려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구매자는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하긴, 서로 모르는 것이 속 편하다. 어차피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 하고 빠질 생각이었다.
“상단주님.”
금적산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수하 중 하나가 손으로 강가를 가리켰다.
불빛.
강에서 홰를 든 인영이 원을 그려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배?’
생각지 못했던 방향이었다.
구매자는 거래 물목, 시간과 장소만 알려 왔을 뿐, 나머지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밝히지 않았다. 금적산도 달리 묻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육로가 아니라 수로인가?
밀거래에 있어 수로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관의 순시선도 문제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장강의 수적이었다.
단강구는 호북, 하남, 하북, 산서로 이어져 있었기에 인근 수채만 해도 세 곳을 넘는다.
절대로 그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배는 한 척이 아니었다.
어둠에 숨어들기 위해 검은 옻칠을 한 배가 다섯 척.
배마다 서너 명 이상의 사람이 타고 있었고, 모두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 물건을 건네주고 돈만 받으면 된다.’
금적산은 수레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은밀하게 신호를 보냈다.
“주위를 경계해라. 만약 놈들이 딴마음을 품는다면 바로 공격을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금적산은 일부러 상단의 호위 중 무공이 뛰어난 자들만 선별해서 데려왔다.
말을 모는 마부와 짐꾼까지 전부 비수를 숨기고 있는 무인으로 구성했다.
밀거래는 위험하다.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니 변을 당해도 관에 고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지켜야 했다.
금적산의 명령으로 호위 무인과 짐꾼, 마부가 미리 계획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수레를 중심으로 형성한 원방진(圓防陣).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해 중심을 지키는 효과적인 진형이었다.
준비가 끝나는 것을 확인한 금적산이 옆에 있는 무인에게 말했다.
“기선, 접선 신호를 보내라.”
“예.”
짧은 대답과 함께 홰에 불을 붙인 기선이 똑같이 원을 그려 강 위의 구매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강 위에 멈춰 있던 배가 청양상단을 향해 다가왔다.
그그극.
바닥을 긁는 소리를 내며 강변에 도착한 배에서 복면인 다섯이 뛰어내렸다.
“물건은?”
짧고 간결한 물음.
밀거래를 하는 사이에 굳이 통성명이나 인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준비되었소.”
금적산이 고갯짓으로 수레를 가리켰다.
복면인의 확인 작업이 끝나고,
“돈은?”
금적산의 물음에 뒤에 있던 복면인 둘이 궤짝을 들고 와 내려놓았다.
턱.
묵직한 소리와 함께 궤짝이 열리자 누런 금덩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황금 열 관.
홰를 비추자 어둠을 쫓을 만큼의 누런 빛이 반사되었다.
“기선.”
“예. 상단주님.”
대답과 함께 기선과 호위 무인 둘이 복면인들로부터 궤짝을 건네받았다.
“한데 배를 통해 어찌 물건을 옮길 생각이오? 관은 둘째 치고 장강 수적들이 그냥 두고 보지 않을 텐데?”
“…….”
금적산의 물음에 복면인의 눈동자가 매섭게 변했다.
“아, 미안하오. 괜한 걸 물은 모양이오.”
금적산이 금세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수레 주위에 원방진을 이룬 무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원방진이 진형을 흩트리며 천천히 물러나자 복면인들이 배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배에 남아 있던 이들이 모두 내려 수레를 향해 다가왔다.
모두 열다섯.
거래는 끝났다.
이제는 그들이 떠날 때까지 경계만 늦추지 않으면 될…….
“거기까지.”
갈대숲 한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직이던 이들의 행동이 멈췄다.
차앙!
동시에 수레로 다가왔던 복면인들이 날카로운 예기를 발하는 검을 뽑았다.
“누구냐!”
금적산의 미간이 일그러지고 상단의 무인들도 즉시 무기를 뽑아 경계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사박, 사박, 사박.
갈대를 헤치며 세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너는!”
홰를 비춰 나타난 인물의 얼굴을 본 금적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잘 있었어? 뒈지라고 밀어 넣고 나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냐?”
“…….”
진무.
그가 나타났다. 청우와 공사척과 함께.
“놀라는 꼬락서니 하고는.”
팔짱을 끼고 이죽거리는 진무의 모습에 복면인들이 매서운 기세를 뿌리며 금적산을 노려보았다.
“제길…….”
진작 죽었어야 할 놈이 어째서 여기 나타난 것이지?
더군다나 그 옆에 공사척은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진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자신이 진무를 알아보았으니 복면인들은 자신과 진무 일행이 한패라고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복면인들 무리여도 돈은 물론 물건까지 챙기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이미 그들의 검 끝의 일부가 자신들을 향해 있었다.
딱히 신용을 지켜야 할 사이는 아니지만 복면인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복면인 열다섯.
청양상단 스물.
무당의 일대제자, 단강구에서 제법 알아주는 고수 공사척이라고 해도 서른 명이 넘는 인원이 힘을 합한다면 충분히 살인멸구(殺人滅口)할 수 있었다.
“병신 같은 놈. 그냥 못 본 척했으면 좋았을 텐데.”
금적산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죽여!”
그의 명령과 동시에 상단 무인들이 곧바로 진무를 향해 칼을 뻗어 왔다.
“당연히 그렇게 나와 줘야지. 내가 지금 시간이 별로 없거든.”
진무의 입술이 벌어지고 새하얀 송곳니가 사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척!”
“예!”
진무의 외침과 동시에 공사척이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튀어 나갔다.
까가강!
박도로 호위 무인들의 검격을 튕겨 낸 공사척은 도기를 뿜어 채찍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상단의 호위 무인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상처를 입기는 했으나 죽임을 당한 자는 없었다.
순식간에 열다섯이나 되는 상단 호위 무사들이 공사척을 향해 반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사척을 괜히 먼저 내보낸 것이 아니다.
“얘들아! 쳐라!”
공사척의 외침에 사방에서 무뢰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
순식간에 난전이 시작되었다.
“뭐, 뭣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금적산이 뒷걸음질 쳤다.
쯧쯧, 내가 그럼 혼자 왔겠냐?
가뜩이나 내상에 광혈참혼기공까지 사용해서 몸도 안 좋은데?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이 새끼들아.
진무가 금적산을 비웃었다.
깡! 까강!
적을 상대하는 동안 공사척의 몸에 상처가 늘어 가고 있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뒈지면 그것도 제 팔자지.
하지만 조금은 도와줄 생각에 공사척 주위로 달려든 적들을 향해 선심 쓰듯 지풍을 날렸다.
퓨퓻!
“컥!”
진무의 도움으로 한 놈씩 공사척의 박도에 목숨을 잃기 시작했다.
“대혀, 가사하니다(대협, 감사합니다)!”
진무로 인해 여유가 생긴 공사척이 발음도 되지 않는 입으로 감격에 겨워 외쳤다.
말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죽여라, 이 멍청아.
진무는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공사척이 마음껏 몸빵하는 사이 진무는 아름다운 자태로 놓여 있는 궤짝을 향해 다가갔다.
“이, 이런…… 공사척 이놈이 미쳤나.”
싸움이 지속될수록 공사척의 박도에 상단 호위 무인들의 수가 자꾸만 줄어 가자 금적산은 당혹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모두 죽어 버리면?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계획이 허사가 되고 만다.
진무가 살아 나간다면 무당과의 연이 끊어지는 것은 물론 청양상단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이놈들아! 싸워라! 죽여! 죽이란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는 금적산이 복면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와달라고.
함께 저들을 죽이자고.
그런데 그들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라고 소곤거리는가 싶더니,
‘이, 이놈들이?’
진무와 공사척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고 황금이 담긴 궤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내 거다. 이제 이 돈은 내 거란 말이다. 니들은 화약이나 가지고 꺼지란 말이다.
금적산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복면인들이 검을 세워 위협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상인이지 무인이 아니었다.
‘이런 젠장…….’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진무가 복면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얻다 손을 대!”
취리릿!
선명하게 뿜어지는 푸른 검기.
따다당!
서슬 퍼런 기세에 복면인들이 검기를 막아 내며 뒤로 물러났다.
설마? 나를 구하려고?
순간 금적산은 진무가 자신을 구해 주려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했다.
퍼억!
“커억!”
진무의 발에 차인 금적산이 땅바닥을 나뒹굴고,
“내 거야. 이 새끼들아. 이것 때문에 좆 빠지게 튀어 왔구만!”
그는 황금이 든 궤짝을 지켰다.
시퍼런 검기를 줄기줄기 뽑아내며, 생사대적이라도 만난 듯한 눈빛을 하고.
그렇다.
관군을 동원해 함께 오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많은 화약 따위, 가져도 쓸 데가 없다.
진무가 원하는 것은 금적산의 모가지와 덤으로 화약을 구매할 때 사용한 대금.
“니들은 관심 없으니까 그만 꺼져. 싹 뒈지고 싶지 않으면.”
“…….”
목숨을 걸고서라도 궤짝을 지키려는 진무의 의지(?)에 복면인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데,
피융!
갈대밭 외곽에서 불화살이 솟구쳤다.
“모두 추포하라!”
벌써?
젠장, 청상 녀석. 쓸데없이 빨라서는!
관군의 등장에 궤짝을 되찾아 가려던 복면인들이 당황해하더니 서둘러 자신들의 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급하기는 진무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청우야!”
“예. 사숙!”
“들어!”
“……예?”
이 새끼야, 제발 눈치 좀.
“궤짝!”
“아, 예.”
청우가 금이 열 관이나 담긴 궤짝을 손쉽게 들어 올렸다.
“튀어!”
“…….”
“빨리!”
눈을 부릅뜬 진무의 외침에 청우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망쳤다.
“휴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진무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자, 이제 우리끼리 진득하게 대화 좀 해 볼까?”
“…….”
진무의 스산한 목소리에 금적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