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
33화
현청에서 돌아온 우문흠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좀처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다섯 살 때 이후로 처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금적산과 공사척을 죽여 입을 막는 것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그 입 싼 놈들이 모든 것을 불어 버린 후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그들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청양상단이 하필 화약을 거래하는 바람에 현청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관심을 가진 사건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죽는다면 끝까지 사건을 파헤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놈의 표정.’
우문흠은 진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대놓고 자신을 향해 음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뭔가 노림수가 있음이 분명했다.
‘제길……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아들의 경쟁자를 처리하려다가 약점만 제대로 잡힌 꼴이 되고 말았으니,
우문흠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장주님.”
“뭐냐!”
밖에서 들려온 시비의 목소리에 우문흠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데, 허락도 받지 않고 방문이 열렸다.
“접니다.”
“……!”
진무.
그가 찾아왔다.
우문흠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진무가 의자에 앉아 청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주위를 좀 물려 주시겠습니까?”
“…….”
“어서요.”
생글거리며 웃는 진무를 노려보던 우문흠이 밖을 향해 외쳤다.
“밖에 누구 있느냐?”
“예. 장주님.”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허락이 있을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
“예.”
명령을 내린 우문흠은 진무를 노려보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한참 동안 서로를 노려보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우문흠이었다.
원래 구린 놈일수록 더 조급한 법이니까.
“어허허허. 바로 올 줄은 몰랐는데.”
우문흠은 일단 표정을 감추고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지켜보려 했다.
그런데,
“처웃고 지랄이야.”
“…….”
“썩을. 서로 알 만한 사이에 같잖은 연기 그만하지?”
대뜸 반말이다.
진무가 나른한 표정으로 우문흠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는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네놈……. 무슨 생각이냐?”
“꼭 뭘 해야 하나?”
“뭐, 뭣이?”
“이봐. 우 장주. 아니 우문흠.”
이젠 대놓고 이름을 불러 댄다.
“어린놈이 감히!”
“하, 지금 이 마당에 나이나 따질 정신이 있나 보지?”
“뭐…….”
“잘 들어. 너는 지금 아들놈과 가문의 영달을 위해 무당의 일대제자 하나와 이대제자 둘을 죽이려고 했어.”
“다, 닥쳐라. 이놈. 그건 분명 네 입으로…….”
“닥쳐야 할 건 너지.”
“뭣이?”
“내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고 생각하나?”
“…….”
“고작 놈들의 몇 마디 말 때문에?”
우문흠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공사척에게 장부가 있더군.”
“자, 장부!?”
우문흠이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거, 거짓말! 거짓말 마라.”
당연하지. 물론 거짓말이다.
장부?
그따위 게 있을 리가 있나.
우가장이 진혜의 가문이라는 사실도 현청에서야 알았다.
하지만 절대로 티를 내서는 안 될 일.
모든 위협은 상대가 믿게끔 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법이었다.
“거짓말 같나?”
진무가 짐짓 비웃음을 머금으며 우문흠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제법 효과가 괜찮았다.
“……뭘 원하는 것이냐.”
“무당의 대제자 자리.”
“그, 그건.”
그저 경쟁자라고만 생각했으나 이렇게까지 대놓고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고민할 여지가 있나 보지? 만약 내가 장부를 관과 무당에 보이고, 나와 사질들의 살인 청부의 뒷배에 우가장이 있다고 고하면 어찌 될까? 물론 진혜도 이 모든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이야.”
진무의 말에 우문흠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협박이다.
그것도 자신의 우려를 명확하게 관통한.
빌어먹을, 어린놈이 자신들의 약점을 틀어쥐고.
당장이라도 쳐 죽이고 싶었으나 그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진무가 우가장에 머물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가 죽는다면 책임은 모두 우가장에 돌아오게 된다. 그렇다고 놈의 뜻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장부가 밝혀지면…….
진퇴양난, 사면초가였다.
“어때? 결정을 내렸나?”
“어떤 도움을 원하는 것이냐?”
“진혜의 전폭적인 지지.”
우문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들을 대제자로 만들어 보려던 우가장의 계획이 영영 물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도움의 여하에 따라 진혜에게 무당 장문인의 자리를 약속하지.”
“자, 장문인이라고?”
우문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도 안 된다.
장문인의 자리를 진혜에게 준다면 뭐 하러 자신이 대제자가 되려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진무의 표정에는 어떠한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대제자 자리에 오르려는 자가 무당 장문인의 자리를 내어 주겠다고?”
“무당 장문인 따위.”
“…….”
“나는 대제자만 되면 된다. 그 이상은 필요 없어.”
우문흠은 도무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무당 장문인?
그까짓 귀찮은 자리를 뭐 하러 맡는단 말인가?
진무가 원하는 건 오직 양의심공이다.
또한, 그를 발판으로 무당을 넘어 정무맹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무당 장문인의 자리는 그저 통과점이자 귀찮은 직책일 뿐이었다.
차라리 아주 뒤가 구리고 비열한 진혜를 허수아비로 세우고 뒤에서 조종하는 것이 훨씬 낫다.
진무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우문흠은 한참 만에 입을 떼었다.
“네놈을 어찌 믿지?”
“어떻게 믿냐고?”
진무가 우문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이봐 우문흠. 그따위 건 선택 사항에 없어. 내가 지금 말하는 건 부탁이 아니라 통보야. 만약 거부한다면 여기서 우가장을 모조리 박살 내 버릴 생각이거든.”
“뭐, 뭐라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일대제자라고는 하나 약관도 안 된 나이가 아닌가?
이미 현기의 중반에 오른 자신이었고, 우가장은 수많은 무인들이 있는 곳이었다.
무얼 믿고 이리도 오만하단 말인가?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런 기회를 주는 건 딱히 우가장의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야. 그저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지.”
“어린놈이 기껏 조그마한 실력이 있다고…….”
순간 우문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싸늘해지는 진무의 표정과 함께 방 안을 가득 짓누르는 기세.
‘우웁! 이, 이런.’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짙은 살기와 함께 숨이 막혀올 정도의 위압감이 진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공사척이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고 청양상단을 습격한 것 같나?”
“…….”
우문흠은 진무의 기운에 짓눌려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에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았다.
서, 설마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가?
이 어린 도사에게?
“공사척은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죽이지 못한 거야.”
“그, 그럴 리가…….”
“하긴,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지.”
진무가 더욱 싸늘해진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파삭.
“……!”
그저 일어나기만 했음에도 유형화된 살기가 사방을 헤집기 시작했다.
급기야.
퍼억!
우문흠과 진무의 사이에 놓여 있던 탁자가 강한 압력에 짓눌리며 반으로 갈라져 가라앉았다.
“으으으…….”
우문흠은 온몸의 내기를 끌어 올렸음에도 진무가 뿜어내는 압력을 견딜 수가 없었다.
반면 진무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서, 설마 탄기? 아니, 그 이상의 경지란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진무의 나이가 너무나 어렸기 때문이다.
턱.
진무의 손이 우문흠의 어깨에 가볍게 얹혔다.
투두둑!
순간 어깨를 짓누르는 가공할 힘에 앉아 있던 의자가 부서짐과 동시에, 우문흠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끄으…….”
억눌린 신음을 토해 내는 우문흠을 향해 진무의 얼굴이 다가왔다.
‘허억!’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사람을 죽여 본 자들만이 가지는 그런 눈빛.
그것도 한둘이 아닌, 수라의 전쟁터를 지나온 그런 공포스러우리만치 무심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귓가에 다가온 진무가 차갑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혜의 도움……. 기대하지.”
“…….”
그와 동시에 손이 떨어지고, 방 안을 가득 채웠던 기세가 자취를 감췄다.
“그럼.”
진무가 가볍게 손을 흔들고 그의 거처를 나갔다.
하지만,
진무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이 거칠어지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손끝이 잘게 떨렸고 후들거리는 다리에는 힘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무당의 일대제자 진무.
그는 도사가 아니었고, 자신의 상대는 더더욱 아니었다.
마치 자신을 죽이러 온 사신 같았고, 아가리를 크게 벌린 범 같았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고였던 침이 목이 아플 만큼 크게 목울대를 넘어갔다.
“장주님!”
진무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다는 시비의 보고에 조방이 급히 뛰어들었다.
방 안 곳곳에 새겨져 있는 흔적.
반으로 쪼개진 책상.
부서진 의자와 함께 주저앉아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문흠.
“장주님!”
조방의 두 번째 부름에서야 정신을 차린 우문흠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 지필묵을…… 진혜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예?”
조방은 돌아가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이튿날, 진무는 우가장을 떠나 무당으로 돌아왔다.
내려갔던 길에는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으나, 돌아오는 길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침에 출발한 걸음이 저녁나절이 되어 무당에 도착했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진허가 미리 나와 자소궁의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무 사제!”
“어?”
반갑게 맞이하는 진허의 모습에 진무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이놈, 사형이 인사를 하는데 ‘어?’가 뭐냐.”
진허가 짓궂게 진무의 어깨를 감싸 쥐며 머리를 헝클었다.
한 번 더 줘 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진무를 진허가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고생했다.”
“…….”
“녀석, 네가 무당의 의기를 제대로 세웠구나.”
도무지 뭔 말인지.
그리고 이제 좀 떨어져라, 새끼야. 가슴에 푹신함도 없는 자식이 징그럽게.
진무의 바람과는 달리 진허는 한참 동안 진무를 끌어안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리곤,
“너희도 수고하였다. 녀석들, 어느새 이리도 컸구나.”
진허가 청상과 청우를 푸근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 들어가자. 장문인과 장로님들, 사형들이 한참 전부터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니라.”
응? 왜? 귀찮게시리…….
진무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무당파의 도사가 아니던가.
진무 일행이 진허를 따라 자소궁의 대전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반갑지 않은 놈도 있었다.
명공의 뒤에 선 진혜가 진무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지금쯤 은밀히 제 아비의 연락이 닿았을 텐데.
역시나 굳이 우가장을 내버려 둘 필요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확 그냥 저 눈깔을!
진무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진혜를 노려보는데,
“진무는 엎드려 돌아왔음을 고하여라.”
스승 명진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예. 스승님.”
진무는 여전히 스승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망할 도동 놈의 기억. 언제쯤 없어지려나.
“무당의 일대제자 진무, 장문인과 장로님들께 인사를 여쭙니다.”
진무가 청상, 청우와 함께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자 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미 단강구 지현대인께 너의 활약을 전해 들었음이다.”
자식들, 소식 한번 빠르네.
“네가 아니었다면 청양상단의 본모습을 모르고 큰 우를 범할 뻔하였구나. 고생하였다.”
“아닙니다. 무당의 제자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또한, 단강구의 뒷골목을 어지럽히던 무뢰배들을 모두 소탕하여 무당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니 그 또한 대단히 장한 일이니라.”
명현의 말에 장로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명진이 흐뭇해하니 왠지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말코 도사 놈들 좋아하기는.
뭐, 그래도 나쁘진 않네.
“그나저나 청양상단이 주고 간 돈을 쓸 수가 없음이니…… 응당 관에 돌려주어야 함인데.”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문파의 내부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원화관주 명선이 아쉬움이 가득한 투로 말했다.
“그래도 듣자 하니…… 네가 현상금을 받았다고…….”
“…….”
이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설마 감히 나한테 돈 달라는 거야?
이게 뒈질…….
“허허, 걱정 마십시오. 사형. 청양상단의 일은 아쉽게 되었으나 우리 진무가 무뢰배를 잡고 문파를 위해 받아 온 현상금이 아닙니까? 진무야. 받아 온 돈을 명선 장로께 가져다드리도록 하거라.”
누가! 왜! 어째서!
하지만, 사부인 명진의 말은 거역할 수가 없었다.
마음과는 달리…….
“예. 사부님.”
절대로 원하지 않은 말이 나옴에 마음속 깊이 눈물을 흘리는 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