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천산 마교 본성의 대공동.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장로들의 노성이 마교 본성의 공동을 가득하게 채웠다.
“감히 십이동천에 중원인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멍청한 괴뢰 놈 같으니! 어찌 중원인 따위에게 고개를 숙인단 말입니까!”
“십이동천을 통일하고 권좌에 도전하겠다 천명하다니. 이는 반역입니다.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합니다, 교주님.”
“옳습니다. 더욱이 육동천의 양민들이 교주님의 이름과 그놈의 이름을 나란히 놓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제게 명을 내려 주십시오. 추혈살귀들을 이끌고 육동천을 피로 물들이겠습니다!”
당금 마교를 이끌어 가는 장로들의 외침에 대장로 목등여가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교주에 대한 충성을 보이려 열변을 토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나 너무 과열되는 것은 좋지 못했다.
장로 회의가 열리게 된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육동천이 칠동천을 병합했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고작해야 두 개 동천이 힘을 합하는 것쯤이야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 중심에 괴뢰가 아닌 중원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원인은 홀로 괴뢰를 쓰러뜨리고 육동천주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중원의 세력이 경계를 넘어온 것이 아니니 전쟁이라 할 수 없었고, 마교의 역사에 외인이 본성의 수뇌나 장로가 되었던 적이 없던 것도 아니다.
권좌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선언 또한 오래전이긴 해도 외인이 교주의 자리에 오른 전례가 있으니 영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다.
권좌. 마교의 무인이라면 모두가 꿈꾸어 본 자리가 아니던가?
“다들 목소리를 낮추시오. 아무리 교주님께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말하라 하셨지만 어찌 교주님께서 계신 자리에서 감히 고성을 지른단 말이오.”
목등여의 힐책에 장로들이 찔끔하며 목을 움츠렸다.
“……교주님?”
목등여의 말에 모두가 침묵한 채 북리도천의 눈치를 살폈다.
톡, 톡, 톡…….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댄 북리도천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누구나 아는 그 소리.
손가락이 멈출 때마다 누군가는 죽어 나가야 했기에 장로들이 침을 삼키며 침묵을 지켰다.
탁.
깊은 정적이 흐르고, 장로들의 눈동자에는 짙은 불안함이 어렸다.
하지만 어째 이전과 다르다.
북리도천의 입가에 맺힌 미소. 어딘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마뇌.”
“예, 교주님.”
“삭월천을 움직여 정황은 파악해 뒀겠지?”
“그렇습니다.”
“의견을 말해 봐.”
북리도천의 나른한 어조에 장로들의 시선이 마뇌 오중산을 향했다.
마교의 정보조직 삭월천.
호법의 임무를 수행하는 염왕대, 숙청과 암살을 담당하는 추혈살귀와 더불어 교주 직속으로 배정된 무인대였으나 교주가 칩거한 이후로는 총군사인 마뇌가 운용하는 중이었다.
“일단 이번 일에 있어서 육동천이 칠동천을 병합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허락 없이 중원과의 경계를 넘는 것이라면 몰라도 동천 간의 경쟁 구도는 교주님께서 직접 허가하신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
“또한 신임 육동천주의 신분이 중원인이라는 것이나 그가 권좌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남부 전역에 퍼지고 있는 소문이 가져올 파장입니다.”
“소문?”
장로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마뇌를 바라보았다.
“계속해 봐.”
북리도천의 허락에 오중산이 찬찬히 말을 이었다.
갑자기 등장해 육동천주가 된 무진이라는 중원인.
괴뢰를 무너뜨린 것이 다가 아니었다.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제껏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중원과의 교역을 성사시켰고, 마교도들에 의해 자행되던 민가의 수탈을 근절시켜 버렸다.
그로 인해 이곳저곳에서 무진에 대해 칭송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었으며, 더러는 현 교주인 북리도천과 비교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힘에 굴복한 육동천의 무인들이 아니라 그 영역에 주거하는 양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좋지 않다.
그동안 마교가 신강을 통제해 온 것은 절대적인 힘에 의한 두려움이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신강의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바탕으로 천산을 경외했고, 수장인 마교주를 신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동천주에 오른 애송이가 그 이름에 어깨를 견주려 하다니.
“삭월천(朔月天)에 명을 내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인근 동천의 사람들이 벌써 육동천으로 조금씩 이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호오? 벌써?”
“예. 무진이라는 자가 중원과 거래를 튼 상단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음…….”
“기우일 수도 있으나 이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라면?”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면…… 그동안 천산을 중심으로 일원화되었던 마교의 통치 체계가 뒤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너무 지나친 비약이 아니오?”
오중산의 말에 장로들이 북리도천의 눈치를 살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닙니다.”
“…….”
“교주님께서 어찌하여 십이동천주를 심복들로 교체해 두신 건지 모르십니까?”
“…….”
“마교의 핵심 고수들이 대부분 천산에 포진해 있다고는 하지만 뭉쳐진 다수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더욱이 양민들까지 가세하면…….”
“설마 그렇게까지야 되겠소? 천산을 향한 그들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소.”
“지금까진 그랬지요. 하지만 배가 부른 가축은 배곯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와중에 그가 권좌에 대한 포부까지 밝혔어요.”
“…….”
“이전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품으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그동안 천산이 누려 왔던 모든 것들이 붕괴될 것입니다.”
오중산의 말에 내포된 뜻을 깨달은 장로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른바 기득권의 붕괴.
그들이 그간 두려움과 공포를 통해 신강을 통치하며 누렸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네 의견은?”
북리도천의 말에 오중산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물결이 거세지면 작은 둑으로 막을 수 없게 됩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따 버려야 하고, 작은 물길은 강을 이루기 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흠…….”
오중산의 말에 북리도천이 다시 눈을 감았고, 장로들은 침묵을 지킨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참…….”
“……?”
잔잔한 감탄사와 함께 북리도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감돌았다.
“과연 천산신녀라고 해야 하나?”
북리도천의 말에 장로들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천산신녀라고?
마교의 대소사에 앞서 신의 계시를 받아 전하는 그녀는 오직 교주 한 사람과 소통하고 있었다.
설마 그녀가 무언가 언질을 준 것인가?
장로들의 의아한 표정에도 북리도천의 감은 눈은 뜨이지 않았다.
성화 청염이 보여 준 미래. 남쪽과 북쪽에서 시작된 짙은 붉은 기운.
육동천주가 된 중원인은 필시 남쪽의 붉음일 터.
십이동천을 통일해서 권좌에 도전한다라…….
세를 읽고 그리했다면 머리가 꽤 비상한 놈일 것이고, 본능적으로 그리했다면…… 뭐든 재미있는 녀석임이 틀림없으리라.
그리고 북쪽.
“마뇌.”
“예.”
“천산 북쪽에서 나를 만나겠다는 놈들이 있다고 했지?”
“예.”
그들이다. 천산신녀가 말했던 북쪽의 붉음.
“일단 북쪽의 손님을 만나 봐야겠군.”
“……!”
나른하게 내뱉는 북리도천의 말에 장로들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이례적인 결정.
손님을 받아들인 적도 없었지만, 찾아왔다 하여 교주가 직접 만난 적도 없었다. 있다면 교주가 직접 중원으로 나가 싸웠던 사황 혁련무강뿐이었다.
“교주님, 직접 나가시다니요? 아니 될 말입니다.”
“…….”
“제가 만나 보겠습니다.”
대장로 목등여가 고개를 조아리며 나서자 북리도천이 내리깐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봐, 대장로.”
“……예?”
“많이 컸군.”
“……?”
“내가 뱉은 말을 번복하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자네가 나를 대신할 수 있다고 여기다니.”
스으윽.
“……!”
목등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교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염왕대주 마강이 그의 목덜미에 시퍼렇게 날 선 칼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이제 북리도천의 눈짓 한 번이면 마강의 칼이 그의 목을 베어 낼 터였다.
쓸데없이 나선 바람에 순식간에 파리보다 못한 목숨이 된 목등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죽는다.
교주는 단 한 번도 제 뜻을 거스른 수하를 살려 준 적이 없었다.
“교, 교주님, 속하가 실언을…….”
“…….”
부들부들 떠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북리도천이 피식 웃었다.
“……좋아. 오늘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으니.”
북리도천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마강이 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회의는 이걸로 끝내도록 하지.”
“예. 교주님.”
종회를 알린 북리도천의 말.
그걸로 끝이다.
북쪽의 손님은 교주가 친히 만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남쪽은?
“교주님.”
“……뭐지?”
조심스러운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북리도천이 눈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급히 고개를 조아린 오중산이 입을 열었다.
“육동천의 문제는 어찌할지 처결을…….”
“육동천? 그 꼬마? 흐음.”
가슴까지 내려온 붉은 수염을 쓸어 낸 북리도천이 피식 웃는다.
어째선지 그쪽에 마음이 더 담긴다.
북쪽과는 달리 자신이 다스리는 마교에 홀로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 동천주가 되자마자 권좌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혈기 넘치는 녀석.
“지켜만 보도록 해.”
“하지만 십이동천이 그에 의해 통일되기라도 하면…….”
여전히 우려를 지우지 못한 마뇌의 말에 북리도천의 표정이 일순간 싸늘해졌다.
“마뇌.”
“…….”
잔잔한 목소리에 담긴 스산함에 오중산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개미 떼가 뭉쳤다 해서 코끼리가 놀라야 하는가?”
“…….”
“간섭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반문은 안 된다.
교주의 명령은 지엄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따르는 것뿐이었다.
북리도천은 고개 숙인 장로들의 사이를 걸어 나가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십이동천? 자신이 그들이 뭉치는 것 따위를 우려했다고?
멍청한 소리.
그저 귀찮았을 뿐이다.
천산신녀의 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남북에 짙은 붉음이 나타나고 권좌에 새로운 누군가 앉았으나 그 정체가 흐릿한 안개처럼 보이지 않는다던.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거나 새로운 인물일지도 몰랐다.
만약 새로운 인물이라면 마교의 권좌에 어울릴 만큼 강한 녀석일 터였다.
피로 세워진 마교의 권좌를 차지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죽여야 할 테니까.
“마강.”
“예. 교주님.”
“모처럼 흥분이 차오르는구나.”
“…….”
“어떤 녀석이 올지 모르지만, 모처럼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 두어야겠어.”
“……?”
준비? 설마 수련을 말씀하시는 건가? 교주께서?
뒤따르는 마강이 언뜻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 모를 테지.
나는 두려웠다.
최강이라는 칭호를 얻고도 혁련무강 그 녀석처럼 병석에 누워 죽음을 맞이할까 봐.
그러니 어찌 신나지 않겠느냐. 북이든 남이든 이 무료한 삶에 종지부를 찍어 줄지도 모르는 녀석이 오고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