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이 새끼 봐라? 웃어? 패배한 호천지부의 잔당 주제에 감……히……?”
황신을 향해 매서운 기세로 다가서던 하급 무인들이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걸음을 멈췄다.
슬쩍 내려다본 팔에 가득 오른 소름과 연이어 찾아드는 오한.
“어, 뭐지? 몸이 왜 이래?”
하급 무인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행동을 보이며 의아해하자 안타까움마저 느낀 황신이 열심히 눈짓을 보냈다.
니들 뒤에…… 뒤에…….
제발 좀 고개를 돌려 보라니까?
지금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게 안 느껴져?
눈짓으로 안 되자 손가락 하나를 곧게 뻗어 가리키는 모습에 무인들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뭘?”
하급 무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살벌하게 웃는 진무가 있었다.
“도, 동천주님?”
“…….”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은 하급 무인의 모습에 황신이 비수를 내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놀랄 만도 하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진무의 저 미소는 극도로 화가 났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아마 송곳니까지 보여 준 이상 최소 일각, 아니 이각 이상은 처맞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그런데 하급 무인 놈이 갑자기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동천주님! 호천지부의 잔당입니다. 망할 놈들이 숨겨 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희가 속히 처리하겠습니다.”
“…….”
이 반응은 뭐지?
지금 자신들에게 어떤 위기가 닥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가?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황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상 진무의 저런 표정과 살기를 경험한 이들은 백이면 백 겁을 집어먹고 납작 엎드려야 정상인데…… 아직 안 맞아 봐서 그런 건가? 저러다가는 피똥 한번 질펀하게 싸게 될 텐데?
“동천주님께서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진무의 등장에 겁을 집어먹어야 할 하급 무인들이 되레 용기백배한 모습으로 황신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야…… 저기. 니들 지금 뭔가 잘못 아는 거 아냐?
마음 같아서는 설명이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천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모두 저 잔당 놈과 숨겨 준 죄인들의 목을 베어 바치도록 하자!”
“……그.”
황신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저놈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방금 그 말이 선을 넘어 버렸다는 것을.
민간인을 약탈한 것도 모자라서 죽이겠다는 말을 저 개천주 앞에서 당당히 내뱉다니.
점점 더 짙어지는 진무의 미소를 본 황신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놈! 무서운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
무인들은 더욱 기세를 끌어 올리며 황신을 조롱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턱!
“……?”
어깨를 잡은 손에 고개를 돌리는 하급 무인.
“괜찮습니다. 이놈 정도는 저희가……?”
그의 자신만만한 눈동자에 악귀 같은 얼굴과, 그를 가리며 점차 커지는 주먹이 보였다.
“동…….”
쩌어억! 콰앙!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주먹에 대갈통을 맞은 무인이 땅바닥에 처박히듯 쓰러졌다.
“이런 개자식들이 지금 무슨 짓거리야!”
“도, 동천주님?”
동천주고 나발이고!
슈아악! 콰아앙!
또 한 번의 주먹이 휘둘러지자 이번엔 빼앗은 가마니를 메고 있던 무인이 튕겨 나간다.
“이런 개잡놈들이! 감히 민가를 약탈해?”
퍼억!
진무의 손과 발이 움직이는 족족 무인들이 붕 떠올랐다가 땅바닥에 처박힌다.
쾅! 콰쾅! 쩌억!
자비는 없었다.
진무의 폭풍 같은 기세가 민가에서 약탈을 자행하던 육동천의 무인들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손과 발이 잔인하게 휘둘러질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초들은 지상에 강림한 악마를 본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떨었고, 황신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 봐라.
니들 실수했다고 했잖아.
* * *
“이, 이게 무슨?”
수하의 보고를 받고 마령대의 무인들과 함께 급히 뛰어온 일환은 피떡이 된 모습으로 사방에 널브러진 무인들을 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여전히 살기를 내뿜으며 쓰러진 자들을 짓밟아 대고 있는 진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저들이 무슨 돼먹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기에 동천주가 저리도 화가 났단 말인가?
일단은 말려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무인들이 죄 죽을 판이었다.
“동천주님!”
일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진무에게로 달려갔다.
“어, 너 잘 왔다.”
“……예?”
“이런 씨발, 대체 수하들 관리를 누가 이따위로 한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버럭 화부터 내는 진무의 모습에 일환이 목을 움츠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토록 화를 낸 적은 없었는데.
“동천주님, 일단은 진정하시고…….”
“…….”
일환이 사정하자 진무가 그제야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짓밟음을 멈췄다.
“뭣들 하느냐! 서둘러 부상자들을 의실로 옮겨라!”
진무가 조금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일환이 휘하 무인들에게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동천주님. 찬찬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들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알려 주시면 제가 최선을 다해 처리하겠습니다.”
“너는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수하들이 민가를 약탈하는 것을 어찌 내버려 두고 있었어?”
“…….”
진무의 말에 의문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이 단번에 정리된 일환이 얼굴을 찡그렸다.
진무가 그의 앞에 등장한 것은 육동천이 칠동천을 무너뜨린 뒤였다.
가장 빠른 길, 즉 괴뢰를 쓰러뜨림으로써 육동천과 칠동천의 지배자가 되었으니 정작 통상적으로 벌어지는 마교에서의 전쟁 이후 상황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무인들에 의해 민가에 자행된 약탈.
이는 마교인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육동천은 침략자이자 승자였고, 패자의 모든 것들을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사람과 재물, 나아가 패자의 생살여탈권까지.
그것은 신강의 모든 마교인들에게 적용되어 온 오랜 전통이자 또 하나의 율법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중원인인 진무가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마령대는 지금 즉시 사람들을 물리고 주변을 통제하라.”
일환의 명령에 마령대가 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남은 것은 진무, 황신. 그리고 일환뿐이었다.
“동천주님.”
“뭐냐?”
공손하게 말을 걸어 오는 일환을 향해 진무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마교는 중원과 다릅니다.”
“…….”
“관용과 용서보다는 살육에 익숙하며, 빼앗거나 빼앗기는 것을 반복하며 역사를 이어 왔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이런 약탈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해?”
차분한 설명에 진무가 일그러진 얼굴로 일환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일환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희가 호천지부를 점령했을 때 민초들도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
진중한 일환의 설명에 진무의 얼굴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안 돼.”
“……예?”
“그게 뭐든!”
“…….”
“점령지를 약탈하는 행위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
진무는 일환을 향해 한 자 한 자 못을 박듯 단호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이 말 한마디로 될 일인가?
변화는 언제고 일어나는 법이라지만 뭐든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 통제와 강제를 통하면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동천주님, 그것은 지금껏 마교인들이 이어 온 전통입니다.”
“…….”
“패자를 약탈하는 것은 승자의 전유물이며, 승전을 기념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습니다.”
일환의 말에 진무는 눈 주위를 씰룩거리며 듣기만 했다.
“이를 통제하는 것은 자칫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또한 반발은 곧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이니, 신중하게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우리 육동천이…….”
“아가리 닥쳐.”
“…….”
전통이랍시고 방관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승자가 패자의 살점을 뜯어먹는다면 그것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제 세력을 확장하는 육동천이니 사기 꺾이지 않게 놔두자?
일환아, 나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구나.
나는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 담그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누가 정했나?”
“……예?”
“패자를 약탈해도 좋다는 것을 누가 정했냐고.”
“그건…….”
“아마 오래전 누군가가 그리 명했겠지.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니 말대로 관행으로 굳어 버렸을 테고.”
“…….”
“지금부터는 내가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내가 주인으로 있는 이상 나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타협은 없다.”
강한 힘이 담긴 진무의 목소리가 일환과 주변을 통제한 마령대, 그 너머에 물러난 육동천의 무인들과 민초들에게까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나를 따르는 육동천의 무인들의 모든 약탈 행위를 금한다. 특히 민가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절대로 방관하지 않겠다. 만약 이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지위 고하, 이유를 불문하고 참하겠다.”
“…….”
진무가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에 일환이 수심에 찬 얼굴로 말했다.
“동천주님. 이미 세뇌되다시피 뇌리에 새겨진 습관입니다. 쉽게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그래?
그럼 아예 대가리를 뽑아 버리면 되겠네.
일환의 말에 진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환.”
“예.”
“그럼 어디 해 보라고 해. 나는 분명히 말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줄 용의도 충분하니까.”
“…….”
“휘하에 모두 전해. 내가 내린 명령, 지켜보겠다고.”
마침표를 찍듯 단호한 진무의 말에 일환이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복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주군이었고, 새로운 지배자였으니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
고개 숙인 일환을 한참이나 노려보던 진무는 세차게 몸을 돌려 대전각으로 돌리며 말했다.
“황신! 아침이 밝는 대로 내 앞에서 약탈했던 놈들 모가지를 모조리 베어 버려!”
“알겠습니다!”
용서라는 것은 없었다.
진무의 뒷모습을 향해 그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진무의 뒤를 따르던 황신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진무가 너무 화가 나 있었기에 무서웠고…….
오늘은 왠지 개천주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준을 세우는 사람.
기억해 뒀다가 언젠가 써먹어야겠다고, 황신은 속으로 다짐했다.
* * *
그리고…….
관도에 위치한 화려한 객점의 이 층 창가.
“저어……무사님?”
“…….”
나이가 지긋한 객점의 주인이 손을 비비며 비굴한 표정으로 다가섰다.
“동천주님께선 언제 오실지.”
객점주의 말에 창가에 선 젊은 무인, 각출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벌써 두 시진이 지났건만 황신도 천주도 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도 외쳐서 이젠 목이 다 쉴 지경이다.
“음식을 다시 데울까요?”
“…….”
객점주의 말에 각출이 탁자에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를 바라봤다.
분명 처음 차려질 때만 해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술도…… 다시 데워야겠지요?”
“…….”
역시나 할 말이 없다.
각출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고, 객점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벌써 세 번째다. 식어 버린 음식과 술이 바뀐 것이.
대체 왜 안 오는 거지?
침울해진 각출이 다시 한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고 양손을 입가에 모아 외쳤다.
“화앙시인 혀엉니임~! 여기입니다!”
애절한 각출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만들며 멀리멀리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