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충허암으로 돌아온 진무는 한동안 암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연일 계속하던 심법 수련도 잠시 멈춘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내 돈…….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피 같은 돈이.
그래도 어찌하랴.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일어나서 수련이나 해야지.
그런데 어째 오늘따라 청우와 청상이 수련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일까?
분명 진무를 대신해서 근래 명진이 그 둘의 수련을 돕고 있었는데.
진무가 힘겹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밖에서 청우와 청상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근데 사형.”
“응?”
“괜찮을까요?”
“뭐가?”
“동림전장에 맡겨 둔 돈 말입니다. 사조님들께서 저리도 좋아하시는데…….”
“아, 그 돈 말이냐. 하나 사숙께서 달리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다 뜻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
“그래서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응?”
“사숙께서 저희에게 만들어 주신 구좌의 돈만이라도 가져다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방음이 되지 않는 암자다.
청우의 목소리가 진무의 귓가에 때려 박히듯이 파고들었다.
이놈의 자식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진무의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이제 겨우 잊으려고 했는데!
벌컥!
진무는 그대로 방문을 걷어찼다.
“어, 사숙?”
청우와 청상이 일어났다.
“뭘 가져다 바친다고?”
“예?”
청우가 멍하니 되묻는데 한기를 풀풀 풀리는 진무가 표홀히 날아올랐다.
쿠악!
“꽥!”
진무의 주먹이 청우의 투실투실한 살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감히 네놈이 내 재산을 탐내! 죽어라 이놈! 이 고기나 축내는 식충이 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진무의 손과 발에 청우는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았다.
그리고 청상은 그제야 진무가 동림전장에 맡겨 둔 돈을 사문에 고하지 않은 뜻을 깨달았다.
‘아, 사숙께선 속됨을 배척하려 노력하시기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는 거야. 세속에 속함으로써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도를 깨달으려 하시는 것이로군. 과연 사문에 말했다가는 다른 이와는 다른 도의 길에 제재를 받을까 우려하시는 게지.’
청우의 비명이 커질수록 도사로서는 초연해야 할 돈에 대한 탐욕이 깊이 느껴졌다.
그의 생각과 달리 진무는 그저 독식(獨食)하려는 생각뿐이었지만 청상의 오해는 깊어졌고, 청우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 갔다.
“후아!”
청우를 한참이나 두들겨 패던 진무가 손을 멈추고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래도 원체 맷집이 좋아서인지 정신을 잃지는 않은 듯했다.
“응? 일어났…… 청우는 왜 그러고 있느냐?”
“사, 사조님. 으흑흑흑.”
잠시 출타했다 돌아온 명진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청우가 서러운 듯이 눈물을 흘렸다.
“사숙께서 청우에게 가르침을 주는 중이셨습니다.”
“가르침?”
분명 맞은 모양샌데?
청우가 우는 것이 의아했으니 청상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니 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몸은 괜찮은 게냐?”
“예. 스승님. 걱정을 끼쳤습니다.”
“아니다. 내 며칠 두문불출하는 네가 걱정되었으나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니 되었다. 자, 오늘은 내가 꿩을 잡아 왔으니 다 함께 먹자꾸나.”
“예? 직접이요? 그런 일은 저희에게 시키시지 않고요.”
자신이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아 스승이 직접 꿩 사냥을 다녀왔다 하니 괜시리 미안해진 진무가 고개를 돌렸다.
이 자식들이 감히 스승님께서 직접 사냥을 다니시게 만들다니.
“청상, 청우.”
“예, 사숙.”
“불 피워. 물 끓이고.”
“알겠습니다.”
청상이 급히 뛰어가고 청우가 훌쩍거리며 뒤따랐다.
그래도 청우를 때렸더니 속은 좀 풀렸다.
종종 울적할 때 써먹을 수 있겠다. 맷집도 좋고, 투실해서 때릴 곳도 많다.
* * *
충허암의 시간은 꽤 빠르게 지나갔다.
단강구의 사건이 있은 지도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근래 몇 개의 상단과 연을 맺은 덕분에 바빠진 터라 충허암은 언제나처럼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간간이 찾아오는 진허를 제외하고는 근래에 무당이 바빠진 터라 찾아오는 이가 없었기에 수련에만 매진할 수가 있었다.
충허암 인근 삼공암묘.
언젠가부터 진무의 심법 수련장으로 정해져 버린 그곳.
진무는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심법 수련에만 할애하고 있었다.
평평한 바닥에 좌정해 운기를 하는 진무의 몸에서 청량한 선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자,
우-웅.
한 장 깊이로 파인 바위 굴이 미세하게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됐다.’
진무는 일주천을 마치고 단전을 채운 기운을 가늠해 보았다.
제법 늘었다.
진무가 수련한 심법.
육양신공은 무당의 대표적인 절학 중의 하나였다.
태극의 음에서 양의 기운을 끌어내는 독특한 심법.
진무를 살리기 위해 장문인과 장로들이 남겨 놓았던 진기였으나 쌓이고 연단되어 탄탄하게 영글었다.
‘하아, 고작해야 사십 년의 공력인가?’
연단을 통해 정순해진 공력이니 갑자의 내공을 가진 사파 무인에 비견(比肩)해도 될 정도였다.
진무는 옆에 놓여 있던 검을 뽑아 앞으로 곧게 뻗었다.
찌이잉!
단전에 갈무리되었던 기운이 부드럽게 기맥을 휘돌아 주입되자 검날이 잘게 진동했다.
진동과 더불어 푸르스름한 선기가 검에 담겼다가 실처럼 자라나 무수히 일렁거렸다.
마치 푸른 바닷속에 자리 잡아 물결에 춤추는 해초 같았다.
탄기의 다음 경지인 의기(意氣).
기운에 뜻을 담는다.
즉, 기운을 자신의 생각에 맞춰 가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무가 펼쳐 낸 것은 검사(劍絲).
그 모양이 실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의기에 오른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강기를 흉내 낼 수 있는 기술이라 하여 거짓 강기(위강: 僞罡)라 불린다.
이때부터는 검기를 마음먹은 대로 가공할 수 있게 된다.
통상 검사를 쓰자면 보통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가져야 했다.
대문파의 장로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들이나 가능한 경지였고, 현재 진무의 내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과대한 깨달음이 내력이 모자람을 채워 검사를 구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젠장, 두 달이나 꼬박 수련했는데 고작 이 정도가 한계인가?’
진무가 기운을 모조리 끌어 올려 주입하자 검사가 사방으로 늘어나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이제 뭉쳐지기만 하면.’
취리릭!
진무가 정신을 집중하자 사방으로 뻗어졌던 검사가 검에 모여들어 촘촘한 거미줄처럼 감싸기 시작했다.
무릇 검을 만들 때는 불에 녹여 불순물을 제거한 철광석을 두들기고 접고 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이 수도 없이 반복되면 불순물이 빠져 더욱 순수해지고 강도는 원래의 그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지는 법이다.
흔히 ‘강’이라 불리는 기예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단전에서 연단된 공력을 실처럼 쪼개 검사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합치는 과정에서 응축되면 세상 그 무엇보다 강력한 위력을 가진 강기가 된다.
고수라 칭해지는 이들이 사용하는 검기가 가공되지 않은 물이나 불이라면 절대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사용하는 검강은 얼음이자 용암이었다.
검사의 응축.
진무는 지금 그 과정을 통해 강의 경지를 이루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하학!
얽히고설켜 검에 뭉쳐지던 검사가 단번에 풀려 버렸다.
“허억, 허억.”
응축되는 마지막 순간에 흩어져 버린 것이다.
호흡은 거칠어졌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젠장.”
내공이 부족했다.
검사가 응축되는 과정에서 그 외부를 억눌러야 하는 힘이 부족했다.
다시 운기를 해 공력을 모으고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분명 수련을 통해 한 단계 나아갔으나, 강기를 이루기에는 부족했다.
정말로 일 갑자의 내공에 이르러야 가능할 모양이다.
“망할, 이거 원 어디 가서 영약이라도 처먹어야 하나.”
육양신공.
망할 도가 심법 같으니.
“후우.”
진무가 수련에 매진하는 사이 동굴 밖은 어둠이 깔려 오고 있었다.
번번이 실패를 해 버린 진무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언제나 이어지는 스승과의 식사시간.
수련과 함께 절대 빼먹지 말아야 할 진무의 일상이었다.
“차압! 하압!”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충허암에 돌아오자 청우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칠성권을 수련하는 모습이 보였다.
팡! 파팡!
칠성보를 밟으며 연거푸 내지른 주먹이 허공을 경쾌하게 터트리는 소리가 충허암을 울려 놓았다.
이른 봄에만 해도 주먹에 기운을 싣지 못했던 청우였다.
새싹이 완연히 자라 무성해진 여름이 된 지금, 고작 육 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인데 발경을 제법 흉내 내고 있었다.
스승인 명진의 가르침이 있었다곤 해도 그 짧은 시간에 청상의 경지와 비슷하게 올라서다니.
과연 도명을 받은 제자답다.
저 돼지 녀석이 그동안 고기만 처먹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청상은?
진무가 청우를 보며 조금 놀랐던 시선을 돌렸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눈을 감고 사선으로 비스듬히 검을 늘어뜨린 청상.
분위기가?
어?
진무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거, 검기?
청상의 검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였던 기운이 조금씩 그 길이가 늘어나고 있었다.
확실하다.
검기다.
비록 아직 깨달음이 모자라 충검의 경지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허허, 놀랍지 않으냐? 청우도 청상도.”
“…….”
어느새 진무의 곁으로 다가온 명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놀랍다.
자신이 심법 수련에 매진해 있는 사이에 저만한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특히나 청상의 재능은 놀랍더구나. 아직 벽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한 것 같으나 검기를 흉내 내고 있음이다.”
“…….”
“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재능이나, 능히 우리 무당의 든든한 핵심이 될 녀석들이야.”
부족해?
그럴 리가요. 스승님.
진무는 혁련무강이었을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스승인 명진?
아니 명현조차 그가 이루었던 경지를 흉내 낼 수 없다.
진무가 최근 검사의 경지에 오른 것은 절대에 도달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고작 약관을 넘은 나이였다.
비록 명진과 진무의 가르침이 있었다고는 해도 정해진 스승도 없는데 청상은 검기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정말로 천재였나?
뛰어난 것은 알았지만…….
“어떠냐? 저 아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 네가 뚫어 주지 않겠느냐?”
“…….”
명진이 은근하게 말했다.
청상이 넘어야만 하는 현기의 벽은 명진이 깨우쳐 줄 수도 있었다.
이미 한번 지나온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진은 청우와 청상을 진무가 제자로 삼게 하고 싶었다.
“제가요?”
“그래. 네가 도와주거라.”
명진이 온화하게 웃는다.
왜? 뭐 하러 굳이.
하지만 스승이 말했고, 진무는 이미 청상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청상.”
“아, 사숙.”
수련에 집중하고 있던 청상이 급히 정신을 차리고 진무에게 인사를 했다.
아, 도와주고 싶지 않다.
청상을 수련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막상 잘되는 꼴을 보니 배가 아프다.
“묶어 두려 하지 마.”
“예?”
“검은 유형이되 기는 무형이다. 굳이 검에 기를 묶어 두어 제한하지 마. 검은 그저 손의 연장이고 기운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야.”
“아!”
진무의 말에 청상이 탄성을 질렀다.
말은 쉽지.
그러나 그걸 깨닫고 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알아듣지 못하게 최대한 어렵게 말하기도 했다.
깨닫지 못했으면 좋…….
“우웩!”
갑자기 청상이 검은 피를 토하며 엎어졌다.
어? 벌써? 이렇게 쉽게?
“사형!”
수련하던 청우가 놀라 뛰어가려 하자 명진이 흐뭇한 얼굴로 막았다.
“헛헛, 그대로 두거라.”
“예?”
청우가 걱정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청상이 그 자리에 그대로 좌정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 앞에는 청상이 토해 낸 핏물을 그대로 뒤집어쓴 진무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서 있었다.
이놈의 자식이!
새로 맞춘 비단 도포에 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