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뭐 해? 귓구멍 막혔어? 강제로 뚫어 줘?”
진무의 언성이 높아지자 엉거주춤 일어나려던 능서현과 일환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갈성혁의 눈치를 살폈다.
“이거 참 어이가 없네. 니들 설마 저 얼굴에 분칠한 놈한테 쫀 거냐?”
“…….”
능서현과 일환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상대는 마도육제다.
오랫동안 그들에게 굴종해 왔던 마도인에게는 하늘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와중에 신패까지 꺼내 든 그에게 어찌 항거할 수 있단 말인가?
“고작 그 정도 각오였어?”
고민하던 능서현과 일환의 귓가를 때리는 비웃음.
“천산의 정상에 서 보겠다는 놈들의 꼬락서니하고는…….”
“……!”
능서현과 일환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고작 그 정도의 각오.
천산의 정상에 선다는 것은 진무가 북리도천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일이었다.
북리도천과의 싸움 전에 그들은 천산을 상대해야 했다.
수많은 무인과 그 대단한 장로들, 그리고 전대의 고수로 구성된 원로원까지. 넘어야 할 것이 태산이다. 마도 육제 역시 그 과정에 있는 인물들일 뿐이다.
갈성혁이니, 신패니 이제는 자신들과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그 험한 길에선 그저 작은 장애물에 불과할 자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능서현이 머리를 숙였다.
이미 그녀의 두 다리와 허리는 곧게 펴져 있었다.
“허! 능서현…… 네년이 돌아도 아주 단단히 돈 모양이구나.”
갈성혁은 이젠 너무 화가 나서 허탈할 지경이었다.
놈도 모자라서 교주의 충직한 수하를 자처했던 능서현마저 신패를 무시했다.
“미쳤구나. 다들 미쳤어. 고작 동천 몇 개 통일한 것들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그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는다.
단단한 껍질.
능서현은 대단한 무인이기는 하지만 마교인이 가진 태생적인 본능은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껍질을 부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자, 그럼 이제 요 새끼를 좀 짓밟아 줘 볼까?
진무가 고개를 돌려 열이 잔뜩 뻗쳐 있는 갈성혁을 힐끗 보고는 전각의 상석으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와중에 턱까지 괴고 이제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기까지 한 갈성혁을 깔아 봤다.
“어이, 쓸모없는 옥 쪼가리는 집어넣고, 찾아온 이유나 말해 봐.”
“쓰, 쓸모없는…….”
뿌드득.
이까지 갈아 대는 꼬라지가 아주 볼만하다.
분명 당장에라도 저 손톱으로 할퀴어 올 만도 한데 애써 분노를 삼키는 모습이었다.
분명 북리도천의 명령이 있었을 터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놈이 저렇게까지 분노를 삭이면서 참을 리가 없지.
그게 더 열 받는다.
망할 노인네.
한승이라는 놈이 설치며 사람들을 살육할 때는 꿈쩍도 안 하고 있더니 전쟁이 끝나자마자 심부름꾼을 보내?
그럼 내가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라고 할 줄 알았나 보지?
으드득, 으드득.
“…….”
쉬지 않고 이를 갈아 대는 소음.
그만해라. 시끄럽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이도 성치 않을 것인데, 그러다 부러질라.
“이봐, 갈성혁.”
“……가, 갈성혁?”
대놓고 이름을 부르자 갈성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그런데 이름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신분 또한 알고 있다는 뜻이다.
“네놈 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따위 언행을 보였다고?”
“그게 왜?”
“뭐?”
“시답잖은 마도육제의 이름 따위가 뭐가 대단하다고.”
잔뜩 속을 긁어 놓는 말에 곱게 분칠된 갈성혁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시답지 않아?
이 망할 놈이 기고만장하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당장이라도 저놈의 눈깔을 후벼 파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교주의 명령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의 임무는 옆에 있는 여인을 호위하는 것이었지, 버릇없는 애새끼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패도 교주가 직접 내린 것이 아니라 마교의 군사인 마뇌가 건넨 것이다.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소리였다.
“후우, 후우…….”
갈성혁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애써 분노를 삭이는 모습에 진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이다.
전에 보았을 때는 성미가 불같더니, 그사이에 인내심 수련이라도 한 모양이다.
일부러 속을 잔뜩 긁어 놓았는데도 도발에 넘어오지 않는다.
좀 더 긁어 놔야 하나?
진무가 음흉하게 웃는 사이 겨우 화를 가라앉힌 갈성혁이 진무를 노려보며 말했다.
“좋다. 네놈의 잘못은 언젠가 제대로 물을 날이 있겠지.”
“…….”
“네놈이 원했으니 찾아온 목적부터 말해 주마.”
화를 가라앉히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갈성혁이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을 바라봤다.
“이분께서는…….”
“그 처자가 누군지는 굳이 내가 알 필요 없고.”
갈성혁이 여인에 대해 예의를 다해 소개하려는데 진무가 대뜸 그의 말을 끊고 쳐다봤다.
“일단 밖에 있는 떨거지들 좀 치울래?”
“…….”
“나도 일단 천산에서 왔다기에 예의상 두고 보긴 했는데 좀 기분 나빠서 말이야. 그리고 입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쪽을 왜 니가 소개하냐? 설마 벙어리냐?”
“벙어…….”
결국 갈성혁은 참지 못했다.
“이런 개 망아지 같은 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이분께서 누군 줄 알고!”
이제야 제 목소리로 말하네.
근데 너 지금 나한테 손가락질한 거야? 전처럼 또 부러뜨려 줘야 하나?
진무가 스산한 눈빛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갈성혁을 향해 주먹을 움켜쥐는데.
“갈 문주님, 그만하세요.”
여인이 갈성혁의 소매를 슬쩍 잡아당기며 만류했다.
의외다.
그 말 한마디에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갈성혁이 멈췄다. 진무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으나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아쉽네.
놈이 덤볐으면 더 좋았을걸.
그나저나 저 여인, 역시나 신분이 낮지 않은 모양이다.
말 한마디로 갈성혁을 멈출 정도라면?
진무가 의문을 가지고 찬찬히 살피는 와중에 여인이 차분하게 입을 뗐다.
“저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
“소신녀님!”
“갈 문주님, 일단 밖의 무인들을 물리시지요. 저희는 교주의 명을 받고 저분께 말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지 싸움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진무를 노려보던 갈성혁이 이내 답하고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모두 물러가 대기하라!”
“예!”
밖에서 들려온 대답.
이윽고 밖에서 대기하던 이들의 흉흉하던 기세가 사라졌다.
진무가 시선을 떼지 못하는 와중에 고개를 돌렸던 여인이 눈을 휘어 웃는다.
허, 웃어? 이 와중에?
대체 정체가 뭘까?
점점 더 궁금해진다.
분명 소신녀라고 불렀는데?
보통 이런 상황이면 놀라기라도 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익숙한 표정이다.
육제씩이나 호위로 삼아서 데리고 올 정도라면 평범한 신분을 아닐 것인데…….
“저에 대해 궁금하시지요?”
“…….”
말해 무엇할까?
아까부터 궁금했다.
“저는 소향이라 합니다.”
역시나 처음 들어 본 이름임은 당연하고.
“성화, 청염을 모시는 천산신녀님의 아래에 있습니다.”
“성화?”
진무가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성화라면 마교의 신물을 말하는 게 분명하다.
근데 천산신녀라는 직책도 있었나? 하여간 누가 마교 아니랄까 봐.
그나저나 갈성혁이 소신녀라 불렀고 스스로 천산신녀의 아래에 있다 했으니, 후계쯤 되는 모양이다.
갈성혁이 그녀의 말에 꼼짝도 못 하는 걸 보면 무공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그 신분이 대단한 모양이다.
신물을 모시는 정신적 지주, 뭐 그런 건가?
“그래, 그런 대단한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는 어쩐 일이지? 내 얼굴이나 보자고 온 것은 아닐 테고?”
진무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비꼬듯이 묻자 갈성혁이 눈을 희번덕대며 소리를 질렀다.
“이노옴! 이분은 마교의 소신녀, 앞으로 성화를 모실 분이다! 예를 갖추지 못할까?”
갈성혁의 노기에 진무가 눈을 살짝 치켜떴다.
이 자식은 귓구멍이 처막혔나?
아니면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가?
“예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아까 말했잖아. 이곳에선 내가 법이라고.”
진무의 말에 갈성혁의 눈 주위가 거칠게 씰룩거렸다.
“그리고 니들에게 소신녀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그저 눈깔을 묘하게 뜨는 계집 이상의 의미는 없어.”
계, 계집?
신패에 대한 불충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성화의 뜻을 받드는 신녀를 무시한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오직 마교의 주인만이 신녀의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개자식이! 죽여 버리겠다!”
결국, 힘겹게 버텨 온 갈성혁의 이성이 끊어졌다.
슈아악!
날카롭게 세워진 철제 손톱이 진무를 찌르려는 듯이 날아왔다.
하지만 느리다.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느려빠져서 하품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잠깐 소피보고 돌아와도 아직 찌르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렇게 약했었나?
아무리 개중에 제일 약한 놈이라고 해도 명색이 마도육제라 불리며 군림해 온 놈 중 하나다.
진무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바닥을 찼다.
의자와 함께 진무의 몸이 뒤로 넘어가자 갈성혁의 손톱이 허공을 가른다.
“……!”
아무리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토록 쉽게?
갈성혁이 눈이 동그래졌다.
제법 놀란 것은 물론 자존심도 좀 상해 보였다.
“그래, 네놈이 제법 실력이 있단 말은 들었다!”
후아악!
갈성혁이 한발을 더 내디디며 찔렀던 손가락을 활짝 펴 짐승의 앞발처럼 진무의 옆을 긁어 왔다.
훌쩍 뒤로 뛰어 일어난 진무가 허리를 살짝 젖혀 피하자 휘둘러진 손톱이 진무의 가슴께를 살짝 스쳐 지나간다.
정확히 세 치의 간격.
일부러 딱 그만큼만 피해 주었다.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독이 잔뜩 오른 갈성혁이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해 내고는 남아 있던 한 손마저 전투에 참여시켰다.
스가각.
진무가 있던 자리에서 교차하다 수직으로 찍어 내리는 듯하더니, 이내 땅을 파는 개처럼 허공을 횡으로 긁어 놓는다.
하지만 그래 봐야 허공이다.
그리고 역시나 정확하게 세 치.
진무가 그의 공격을 피한 거리였다.
이쯤이 되면 갈성혁 정도 되는 무인이 눈치를 못 챌 리 없었다.
“감히 나를 약 올려!”
“…….”
뭐? 어?
아니 이럴 때는 아, 이렇게 격의 차이가 나는구나 하고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네놈 따위가 나를 어찌 해보기에는 한참이나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 한 것인데.
제 말대로 약이 바짝 오른 것인지 갈성혁의 철제 손톱에 검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마기? 그렇게까지 하려고?
진무의 입술이 기이하게 비틀렸다.
슈가가각!
무지막지하게 할퀴어 오는 마기에 진무가 가볍게 보법을 밟는다.
훙훙훙훙! 파가가각!
허공을 할퀴어 대는 바람 소리와 함께 임시로 사용하던 전각의 내부에 날카로운 상처가 새겨졌다.
“…….”
물러난 진무가 가만히 멈춰 서서는 전각 내부에 남은 상처와 갈성혁을 번갈아 바라봤다.
살기와 마기가 혼재된 그의 기세.
갈성혁은 지금 진무를 죽이려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그래, 그쯤은 돼야지.
똑똑히 알려 주마.
나는 너희의 밑에 있는 이가 아니라 군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