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78
378화
괴뢰가 역천마령단을 취하는 것을 도운 뒤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진무는 태극 합일이라는 화두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후반부의 태극 요결을 아무리 되새겨 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떤 놈이 양의심공의 비급을 남겨 둔 것인지 고약하기 짝이 없다.
주해본처럼 설명을 곁들여 놓으면 얼마나 좋아?
시도 아니고, 뭐가 이리도 함축적이란 말인가?
분명 후대를 고생시키기 위해 어려운 말로 빙빙 돌려서 적은 게 틀림없다.
무턱대고 상단전을 뚫었다간 재수 없이 등선해 버릴 수도 있으니 시도해 보기도 어렵고…….
진척 없는 고민에 진무가 한숨을 내쉬는데 한쪽 구석에서 짜증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어허, 거기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니까!”
청우다.
따로 시킨 일이 없어서였을까?
소일거리 삼아 우양진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째 모양새가 이상하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기는 한데 우양진은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아니. 이렇게.”
“이, 이렇게요?”
“아니! 젠장. 그게 아니라니까! 하아, 넌 왜 이렇게 멍청하냐? 그게 그렇게 안 돼?”
자신이 보여 준 동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우양진을 향해 청우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참, 청우답다.
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아무리 진무에게 배우고 있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 갓 뗀 놈과 제법 이리저리 뛸 줄 아는 놈은 엄연히 다르다.
무턱대고 초식만 펼쳐 대면 우양진이 어떻게 따라 한단 말인가?
내공을 조절하며 단계별로 시범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설명도 없이 대강 동작만 보여 주고는 성질을 내다니.
“청상아.”
“예.”
“나중에…… 혹여 말이다.”
“……?”
“청우는 절대로 누굴 가르치게 하지 마라.”
“지당하십니다, 사숙.”
진무의 말에 청상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릴까요?”
“아니, 그냥 냅둬라. 저러다 친해지겠지.”
“그나저나 사숙께서 제자로 삼았으니 무당의 제자는 아니지만, 저희랑 같은 항렬이 되겠군요.”
“대충 사제처럼 대해 주면 된다.”
“예. 한데 저 아이의 심성으로 봤을 때, 마교나 사패천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하던데…….”
청상이 슬쩍 진무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하지만 진무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혹, 도문에 들이실 겁니까?”
“무당?”
“예.”
“글쎄.”
턱을 괸 진무가 심드렁한 투로 대답했다.
마교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우양진의 거취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에 자리를 잡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 녀석은 그냥 내 제자야. 딱히 정사마로 구분 지어 놓지 않을 생각이야.”
진무의 말에 청상이 씁쓸하게 웃었다.
“뭔가 부럽네요. 사숙의 제자라니.”
“부럽긴…….”
진무가 피식 웃었지만 청상은 진심이었다.
닮고 싶은 사람.
기회가 된다면 자신이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도 충분하다.
그저 그의 옆에 있을 수만 있는 것으로도 족했다.
“청상아.”
“예, 사숙.”
“너, 무당지검이 되어 볼 생각이 있냐?”
“예?”
그저 담담하게 뱉어진 진무의 말에 청상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무당지검이라니?
손짓이라도 하고 들어오든지 해야지.
진무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청상이 눈을 끔벅거리면서 쳐다봤다.
“무당지검은 사숙의 자리가 아닙니까?”
“꼭 한 사람만 하란 법도 없잖아. 그리고 나보단 니가 더 나아. 난 어차피 무당에 계속 붙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사숙!”
“시끄럽게 뭘 소리까지 지르고 그래?”
“…….”
“당장 하라는 거 아니야. 무당의 이름을 등에 업기에는 넌 아직 약하니까.”
청상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근데 말이다. 청상아.”
“……?”
“이젠 놓지 말고 잡아.”
“예?”
“그런 말이 있지. 사파는 쌓음으로 깨달음을 얻고, 정파는 비우고 비워 내야 비로소 깨닫는다고.”
무슨 말일까?
청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거 사람마다 다르거든. 넌 좀 쌓아야 해. 그러니까 비우려 하지 말고 잡아. 집요하게……. 그러면…….”
청상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진무의 가르침.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한계에 접어들었을 때 구원의 손길처럼 일깨워 준다.
청상은 귀를 열고 진무의 말을 담을 준비를 했다.
“천주님!”
“천주……?”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에 진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청상이 고개를 홱 돌려서 째려봤다.
각출이었다.
이런 망할 거지가…… 방금 엄청난 기연을 얻을 뻔했는데…….
한순간 광망까지 느껴지는 청상의 눈빛에 각출이 흠칫 놀랐다.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째려봐?
지가 사질이면 사질이지.
어디서 눈깔을?
확 그냥 줘 패고 깽값 한번 물어?
아니다.
저 성질 고약한 천주가 괜히 제 사질에게 덤빈다고 때릴지도 모르니 내가 참아야지.
“어쩐 일이야?”
“예? 아, 그게 천산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천산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각출이 음흉한 표정으로 웃었다.
“여잡니다. 무척이나 이쁘구요. 선녀가 강림한 줄 알았다니까요?”
“…….”
진무가 각출을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선녀같이 예쁜 여자면 태극 합일이라도 풀어서 설명해 주냐?
* * *
각출의 안내를 받아 회의장으로 쓰고 있는 임시 전각으로 다가갔을 때, 그 앞에 흉흉한 놈이 가득했다.
천산에서 왔다는 여인을 따라온 놈들인가?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놈들이 진무 휘하의 무인들을 잔뜩 날이 선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고, 황신과 아이들을 제외한 삼동천의 무인들은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이놈들 봐라?
천산에서 오면 온 거지.
여기가 어디라고 저따위로 기세를 뿌리고 다녀?
그들이 하는 양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진무의 눈동자에 고약함이 어렸다.
그리고 이내 임시 회의장으로 쓰고 있는 전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이 활짝 열린 전각의 내부.
능서현과 일환이 보였다.
부상도 덜 회복된 놈들이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기어 나와 있는 건지 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진무의 눈에 웬 여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고고하게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저 새끼는…….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를 옥관으로 고정하고, 내시도 아니면서 얼굴에 허옇게 분을 떡칠한 것도 모자라서 여인처럼 손톱 비스무리한 철 장식을 끼고 있었다.
진무는 단번에 그 얼굴을 알아봤다.
저 새낀 하나도 안 변했네.
여인처럼 화장을 하고 다닐 거면서 수염은 왜 기르고 지랄인지.
그는 다름 아닌 사람 머리에 손가락 구멍 내기 좋아하는 변태 새끼, 갈성혁이었다.
각출이가 선녀라길래 신선 따까리가 온 줄 알았더니, 마도육제라 불리는 북리도천의 따까리 중 하나가 와 있었다.
사용하는 무공이 용조수(龍爪手)였던가?
하여간 되도 않는 것들이 무공에 용 자를 붙여 대는 꼴이라니.
오래전 북리도천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주제를 모르고 까불길래 손톱을 죄 뽑고 손가락을 마디별로 부러뜨려 놓았던 기억이 있었다.
아, 그래서 저런 이상한 걸 손에 끼고 있는 건가? 그때 이후로 손톱이 안 자라서?
근데 저 새끼가 어쩐 일이지?
북리도천의 명령이 아니면 움직일 리가 없는 놈인데.
진무가 의아해하며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능서현과 일환이 눈치를 살피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오,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온 진무를 찬찬히 바라보던 갈성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나 기다리게 하는군.”
“…….”
언짢음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은 갈성혁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동천 연맹주는 교주님의 명을 받들라!”
우렁차게 외치며 꺼내 든 것은 붉은 수실이 달린 둥근 옥패였다.
난 또, 뭔 돈이라도 주는 줄 알았네.
그런데 갑자기 능서현과 일환이 식겁하는 표정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아주 본능적이네, 본능적이야.
“미천한 종이 염왕패를 배알합니다!”
“…….”
진무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것들이 뭐 하는 짓이지?
니들 지금 문안 인사라도 드리는 거냐? 사람도 아니고 옥패 따위에?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진무가 황당함에 멀뚱하게 서 있자 갈성혁이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네놈은 어찌 무릎을 꿇지 않는가!”
“…….”
“감히 교주님의 신패 앞에서!”
“거참 지랄도 가지가지 한다.”
“뭐, 뭣이?”
참다 참다 한숨까지 내쉰 진무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리자 갈성혁이 두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노려봤다.
그 모습에 진무의 고약한 성미가 다시 발동되기 시작했다.
이 새끼 손님이 아니네.
딱 봐도 윗사람으로 찾아온 거네.
밖에 있는 새끼들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아주 점점…….
“야, 니들 뭐 하냐? 안 일어나?”
진무가 뒤를 돌아보며 짜증스럽게 외치자 능서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예? 하지만 신패가.”
“염병하네.”
“니들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예?”
“충성 어쩌고 하더니, 저딴 신패에 무릎을 왜 꿇는 거냐?”
“그, 그건.”
진무의 말이 맞다.
그들은 이제 북리도천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무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태였다.
그러니 신패를 향해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몸에 체득된 굴종이 그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네놈이 지금 신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냐?”
갈성혁이 노기를 진득하게 머금고 질책해 왔지만 진무는 피식 웃었다.
“권위? 내가 그딴 걸 왜 신경 써야 하는 건데?”
“뭣이?”
“내 소문 못 들었냐?”
“…….”
“난 북리도천의 수하가 아니야. 그를 쓰러뜨리고 마교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이지.”
“놈!”
갈성혁이 토해 낸 일갈에 전각 내부가 쩌렁쩌렁 울렸지만, 진무의 말은 끊어지지 않았다.
“육동천, 칠동천, 사동천…… 그리고 여기 삼동천은 나의 영역이야. 니들 말로 하면 내가 곧 법이 되는 곳이란 말이야.”
“…….”
“네놈은 지금 적진에 와 있다는 뜻이고.”
진무의 말에 갈성혁이 부리부리한 눈빛에 살의를 담는다.
“그러니까 그 신패 같은 것은 넣어 둬라. 그따위로 뜨는 눈깔도 넣어 두고.”
기분 같아서는 확 뽑아 버리고 싶으니까.
“이, 이놈이 감히.”
“이놈이고 저놈이고, 북리도천 따까리면 따까리답게 행동해.”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은 진무의 몸에서 싸늘한 기세가 스물스물 피어오르자 전각 내부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능서현과 일환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고작 육제의 끄트머리에 있는 놈이 찾아온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쯧쯧, 니들도 그만 돌아가. 몸도 성치 않은 것들이….”
“…….”
진무의 말에 두 사람이 엉거주춤 일어나는 순간.
“이런 육시럴 놈들이! 네놈들까지 신패의 권위를 무시하려는 것인가!”
“…….”
젠장, 대체 어쩌란 말인가?
한쪽은 마도의 하늘 중 하나인 갈성혁이고, 또 한쪽은 괴물 같은 자신들의 주인인데.
괜히 먼저 와서 대기했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