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77
377화
전쟁은 끝났다.
삼동천 본성의 앞은 죽어 간 이들의 시신으로 가득했고, 피 냄새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차분히 전쟁이 남긴 상흔을 수습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승이 죽은 이후, 진무는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혀 오랫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잠을 청하기 위해 가만히 누워 있어도 잠들 수가 없었다.
하루를 새우고 또 이틀이 지났다.
한승이 죽어 갈 때의 그 처참했던 모습보다, 본 적도 없는 이들이 내뱉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들 중 일부가 유월청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놈들의 사주를 받은 유월청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를 키운 것이 자신이었고, 그에게 사패천을 넘긴 것 또한 자신이었기에 죄책감이 사무쳐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월청아, 이제 너를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너무 많이 죽었다. 너무 많이 죽었어…….
진무는 처음으로 자신이 내린 결정을 번복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 주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닥쳐 온 결과가 명시하는 그 죄가 너무도 무거웠기에…….
어쩌면 돌아가는 날, 유예를 주었던 그에게 죽음을 명해야 할지도.
진무는 그렇게 열병이라도 앓는 것처럼 끙끙거리며 밤을 지새우고 낮을 보냈다.
그리고 방문 밖에 있던 청상과 청우, 대궁, 그리고 괴충을 제외한 황신과 아이들은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앓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없이 문 앞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괴뢰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일환과 능서현은 가까스로 정신은 차렸으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진 못했다.
그 와중에 그 강했던 짐승과 싸운 진무이니 상처가 없을 리 만무했다.
싸움이 끝났을 때, 살갗이 찢어진 그의 몸은 피투성이나 다름없었다.
삼동천의 내부가 폐허로 변할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으니 내상을 입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말없이 방문을 닫고 홀로 끙끙거리고 있으니 모두가 속이 탈 지경이었다.
“사형, 고기라도 준비해 놓을까요?”
“…….”
“풀이라도 좀 뽑아 와요?”
“…….”
청우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청상을 비롯한 모두가 아무 말도 없이 인상만 쓰고 있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들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청상은 진무가 싸우는 내내 아무것도 돕지 못한 나약한 자신이 너무도 싫었고, 황신과 소동보, 그리고 각출은 호위를 자처했음에도 그 옆을 지키지 못한 자신들의 능력을 책망했으며 대궁은 혹여 사패천주인 진무의 용태에 문제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저, 뭐라도 말씀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순수하게 진무를 걱정 하고 있는 사람은 청우뿐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각기 다른 생각을 품은 채, 잠도 들지 못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한지 나흘째가 되던 날.
벌컥.
방문이 열렸다.
그러곤 진무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사숙!”
툇마루에 앉아 있던 청상의 외침을 신호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벌떡 일어나 진무를 바라본다.
“…….”
그들의 모습에 눈을 끔벅거리던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 보니 다들 같은 모양새였다.
죄다 눈동자는 퀭하고, 볼이 쏙 들어간 게…….
병자와도 같은 몰골이었지만 그 초췌한 얼굴에, 그 퀭한 눈동자에 자신을 향한 걱정이 덕지덕지 붙어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새끼들이 사람 감동하게 시리…….
갑자기 울컥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랫것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야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윗사람의 자세가 아니던가?
“니들…….”
“…….”
진무가 입을 떼자 모두가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 몰래 뭘 잘못 처먹었길래 그 모양이야? 단체로 곽란(癨亂)에라도 걸렸어? 온종일 설사라도 한 게야?”
“……예?”
“아니 어째 다들 풀죽도 못 먹은 꼬라지야? 그리고 이 냄새는 또…… 설마 안 씻은 거냐?”
고약하게 얼굴을 찡그리는 진무를 따라 모두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게 나흘이나 끙끙댄 사람이 할 소립니까?
그리고 사숙께서도, 천주님께서도…… 꼬라지가 저희랑 다를 바가 없으시면서.
하지만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는 법. 다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청상이 물었다.
“욱!”
“사숙!”
진무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무릎을 꿇자 청상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부축했고, 나머지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모여들었다.
꼬르륵.
“…….”
동시에 이어진 침묵.
소리의 근원지는 분명히 진무다.
딱! 따다다닥!
“아극!”
불현듯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에 청상을 비롯해 모여들었던 이들이 죄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그 표정들은? 설마 이 몸이 그까짓 놈을 상대하면서 내상이라도 입었을까 봐?”
“…….”
“얼마나 멀쩡한지 지금부터 한 놈씩 줘 패 가며 확인시켜 줘?”
“…….”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밥이나 가져와. 배고파.”
“…….”
“뭐 해? 못 들었어?”
“아니, 그…….”
“아니 그…… 뭐?”
“…….”
“이것들이 확 그냥! 누가 누굴 걱정하고 지랄이야? 빨리 안 움직여? 밥, 고기, 술! 어서!”
“…….”
손가락으로 지목당한 각출은 밥이었고, 청우는 고기, 황신은 술이었다.
사숙…….
망할, 미친…… 개천주.
저런 괴물이 어디가 아플 리가 없지. 괜히 걱정했다.
하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는 법이다.
* * *
배가 빵빵해지도록 밥을 먹은 진무는 청상 등을 이끌고 곧장 능서현 등이 누워 있다는 의실로 찾아갔다.
죄다 붕대를 둘둘 감은 것이 부상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진무가 짐승을 상대하긴 했으나 그들도 궁주 급의 무인과 싸웠을 터다.
약하지 않았을 것이고,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일이었다.
물론 놈을 놓친 것은 좀 아까웠다. 그놈에게 물어볼 것이 좀 있었는데.
“아, 아니 연맹주님.”
진무의 방문에 조금이나마 회복된 일환과 능서현이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됐어. 누워 있어.”
“하지만…….”
“하여간 약해빠진 놈들 같으니. 거 뭐 대단한 싸움 했다고 다치고 난리야?”
“……죄송합니다.”
진무가 걱정하는 표정을 감추려 부러 툴툴거렸음에도 능서현과 일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사죄해 왔다.
젠장, 그런 표정들 좀 짓지 마라.
사람 마음 약해지게 시리.
누가 보면 내가 제일 나쁜 놈인 줄 알겠네.
진무는 일환과 능서현을 외면한 채 온몸을 붕대로 동여맨 괴뢰를 향해 다가갔다.
피로감에 찌들어 보이는 괴충이 자리를 비켰다.
그래도 제 아비라고 괴충이 그 옆에 붙어서 간호를 했던 모양이었다.
진무가 가까이 다가가 앉자 눈만 빼꼼하게 내민 괴뢰가 힘겹게 입을 뗐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
망할 노인네.
지 걱정이나 할 일이지.
힘들면 그냥 말하지 말고 입이나 꾹 처닫고 있을 일이지.
“연……맹주님…… 전 이제…… 은퇴를 해야……겠습니다.”
“…….”
“이젠 뒤로…… 물러나…….”
“누구 맘대로?”
“…….”
진무가 싸늘하게 대답하면서 괴뢰를 바라봤다.
“누구 마음대로 은퇴야? 니가 뒷방 노인이 되어서 탱자탱자 노는 꼴을 내가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
“……연맹주님.”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부상 회복에나 최선을 다해.”
“…….”
“말했잖아. 천산의 정상에 섰을 때 모두 옆에 있게 해 주겠다고. 그때까진 은퇴 따윈 없어.”
“…….”
“능서현.”
괴뢰를 바라보던 진무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능서현을 불렀다.
“예?”
“전에 그거 아직도 있지?”
“어떤……?”
“역천(逆天) 어쩌고 하던 그 단약 말이야.”
“있기야 한데…….”
“괴뢰 줘라.”
“예…… 예?”
“괴뢰 줘. 이제 곧 천산으로 가야 할 참인데 이렇게 누워 있으면 데리고 갈 수가 없잖아.”
진무의 말에 모두가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마교의 인물들은 아예 경악해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뭘 놀래? 어차피 나 주려던 거잖아.”
“아니, 그건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러니까 내 거야. 어떻게 사용해도 상관없잖아.”
물론 그렇다.
진무가 거절하긴 했으나 그의 물건이라 생각했기에 능서현은 단약을 먹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하다.
역천마령단은 자신이 주인으로 여긴 진무에게 줄 정도로 뛰어난 효능을 가진 마단이었다.
마교인들에게는 천금과 같은 영단인데 그걸 괴뢰에게…….
“왜? 혹시나 괴뢰가 마단을 취하고 너보다 강해질까 봐 그래? 어차피 단약을 먹는다고 해도 스스로 깨달음이 없으면 경지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건 너도 잘 알 거 아냐?”
“아니, 그게 아니오라 그건 연맹주님을 위한.”
“됐어. 이젠 다들 내 정체도 알고 있을 테니, 도가의 내력을 가진 내가 마단을 먹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그냥 괴뢰 줘. 경지를 올리진 못해도 몸을 회복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진무의 말에 능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천마령단이 고작 부상 회복을 위해 쓰일 줄이야.
“영단이고 영약이고, 필요한 놈이 가지는 게 좋아. 그러니까 아쉬워 말아.”
“……알겠습니다. 명하신 대로 행하겠습니다.”
능서현의 대답으로 마단의 주인은 결정되었고, 누워 있는 괴뢰의 노안에 물기가 어렸다.
괴충은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진무를 향해 납작 엎드렸다.
“연맹주님! 제 아비를 위해 내려 주신 은혜, 절대로 잊지 않고 충성하겠습니다.”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의실을 울렸다.
은혜는 염병…….
언제는 죽인다고 지랄해 쌓더니.
말이나 잘 들어라. 이 새끼야.
진무가 손을 휘휘 저으며 몸을 돌렸다.
“빨리 회복해. 괴뢰가 회복되는 대로 천산으로 출발할 테니까.”
“예! 연맹주님!”
무덤덤한 진무의 목소리에 모두가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답해 왔다.
자, 이제 천산이다.
북리도천 기다려라.
네놈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예하 동천에서 그만한 혈사가 벌어졌다면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인데 어째서 그 짐승 놈을 내버려 뒀는지.
네놈의 입으로 반드시 들어야겠다. 이 심보 고약한 늙은 놈아.
* * *
부상자들이 조금씩 회복기에 접어드는 동안 삼동천도 안정되어 갔다.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본성 앞의 관도에도 조금씩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진무의 명으로 이어진 변화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짐승 놈을 죽여 평화를 가져온 것에 대한 칭송이 넘쳐 났다.
그리고 손님이 찾아왔다.
“저거 뭐야?”
활짝 열린 본성의 문 앞을 지키던 위사가 다가오는 한 떼의 행렬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두 줄로 선 무인들이 호위하는 마차의 모양이 조금 독특했다.
네 필의 준마가 끌고, 백색의 천을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려 사방을 가린 고급스러운 마차.
그리고 그 앞에 노숙(老宿)해 보이는 무인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몰아 다가오고 있었다.
화려하게 수 놓인 옷에, 얼굴은 분칠해서 허연 것이…….
참으로 이상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말고삐를 잡은 손가락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마치 짐승의 발톱 같은 것이…….
장신구가 아니라 무기?
마교에서 저런 무기를 쓰는 사람은?
“헉!”
무언가를 깨달은 위사가 별안간 기겁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냅다 엎드렸다.
틀림없다.
그는 마교의 하늘에 오른 여섯 명의 절대자 중 하나.
“삼동천 무인, 매현이 존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길을 열어라.”
“예!”
분명 사내임에도 여인의 그것처럼 가는 목소리에 따분함이 느껴졌다.
위사 매현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로 기어서 자리를 비켰고, 성문 위사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