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쾅! 콰쾅, 쾅!
거친 폭발음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둘 사이에서 부딪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만들어진 내력의 격돌이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건물이 부서지고 그 잔해가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휘몰아쳐 댄다.
성벽에서의 전쟁이 끝나 가고 있던 때였으나 무인들은 감히 접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괴물과 괴물의 싸움.
그 안에 휘말리면 흔적도 없이 찢겨 나갈 것이리라.
잔여 병력이 제압되고 있었기에 전장에서 물러난 청상과 청우는 걱정스러움을 한껏 담은 시선을 잠시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믿어야 한다.
언제나 승리해 온 사숙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 * *
쉬이익! 뻐어억!
휘둘러 찬 발이 제대로 틀어박혔음에도 한승이 주먹을 휘둘러 왔다.
후우웅!
피해야 할 것은 주먹만이 아니었다.
그의 주먹에 서린 막대한 내공이 엄청난 풍압을 만들어 냈다.
근처에 다가서기만 해도 옷은 물론 살갗마저 찢겨 나갔다.
하지만 멀리서 장력을 날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놈의 피부에 둘러쳐진 굳건한 방어막을 뚫기 위해서는 다가설 수밖에 없었다.
찢어진 살결에서 피가 솟구치고 스친 내력의 영향으로 입 안에 비릿함이 느껴지더라도 놈의 몸에 주먹과 발을 때려 박아야만 했다.
놈의 공격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옷자락을 찢어 놓고 지나갈 만큼의 촌극을 유지한 채.
숨이 차건 말건 미친 듯이 움직여야 했다.
흑수를 운용하고 있음에도 주먹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지만, 참고 또 참아 놈의 몸을 때렸다.
후아앙!
휘둘러진 놈의 팔에서 일어난 풍압에 머리카락이 뽑혀 나가는데도, 진무는 다시 한번 한승의 품으로 파고들어 수십 방의 주먹을 박아 넣었다.
“크으으…… 이노……옴!”
물러난 진무가 또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한 방울의 낙숫물도 반복되다 보면 주춧돌에 구멍을 뚫는 법이다. 그처럼 아무리 약한 충격이라도 계속해서 받아 내다 보면 몸 안에 울혈이 쌓인다.
금강불괴와 비슷한 거지 금강불괴가 아니다.
그딴 건 없다.
내공으로 몸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 보일 뿐이기에 사람들이 허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때리다 보면 언젠가 그 강한 방어막에 금이 갈 것이다. 조각날 것이고 부서질 것이다.
그리고 한승에게 조금씩 신호가 오고 있다.
진무의 공격을 허용할수록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있었고, 주먹이 남긴 흔적이 조금씩 새겨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공격하면 부서진다.
면이 선이 되고 다시 점이 된다.
집중된 공격이 지속적으로 놈의 몸에 만들어진 균열에 충격을 더한다.
“커억!”
결국 신음이 터져 나오고 한승의 허리가 꺾인다.
뻐어억!
내려진 턱을 향해 주먹에 솟구치고 휘저어대는 팔을 피해 휘둘러 찬 진무의 발에 한승의 몸이 반으로 꺾여 튕겨 나갔다.
콰직, 우지끈 와그르르.
한승이 처박힌 건물이 무너지고 그 잔해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쿠우우우!
하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놈이 회복할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
방어막에 생긴 균열이 사라지기 전에 철저하게 무너뜨려야 한다.
거리를 벌려 놓은 진무가 손을 뻗어 올리자 검은 사기가 휘몰아쳐 모여 구슬처럼 응축된다.
묵룡혼원공, 묵룡아.
콰우우우!
허공으로 솟구친 구체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묵룡처럼 한승이 깔린 건물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어 곧장 자신이 쏘아 낸 묵룡아의 기운을 뒤쫓은 진무가 활짝 펼친 양손에 기운을 응축시켜 연속해서 쏘아 냈다.
콰아아앙! 콰쾅! 쾅!
묵룡아가 건물의 잔해를 집어삼키고 연이어 진무가 던져 낸 기의 구슬이 틀어박혔다.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충격파에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밀려 나가고 대지가 패어 들고 있었지만 진무는 멈추지 않았다.
단전이 급속도로 비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탁, 슈아아악!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일정 지점에 정지했던 진무의 몸에 검은 사기가 겹겹이 둘려진다.
그러곤 중첩된 기운이 일간 천근의 힘으로 증폭되자 진무의 몸이 거악의 무거움을 품고 낙하한다.
쿠아아아!
찢어지는 괴성과 함께 점점 더 가속하여 떨어지는 진무의 발이 건물의 잔해가 걷혀 나가면서 모습을 드러낸 한승의 복부를 짓밟았다.
묵룡혼원공, 용보(龍步) 압진(壓鎭).
용은 함부로 대지를 밟지 않는다. 한 걸음에도 천하를 짓누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꾸우우우웅!
마치 거대한 기운이 대지에 부딪힌 것과 같은 충돌음과 함께 삼동천 전체가 뒤흔들리고.
후우웅!
중심에서 시작된 폭풍이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자.
쿠우우.
지면에 파묻혀 버린 한승을 중심으로 십여 장의 대지가 바닥으로 꺼지듯이 움푹 패어 들었다.
“……허억, 허억.”
쉬지 않고 이어졌던 공격을 멈춘 진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내려다봤다.
무릎까지 박힌 자신의 다리.
용의 발자국처럼 내려앉아 버린 십여 장의 대지.
그리고 그 주위는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듯 황폐하게 변해 있었다.
“후우…….”
겨우 거친 숨을 고른 진무가 허리를 폈다.
땅속으로 짓밟아 넣어 버린 한승이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직 그의 기가 느껴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걸로 끝인가?
젠장, 꼴이 말이 아니군.
옷은 찢어져서 넝마가 되었고, 놈의 기운이 만들어 낸 풍압에 찢겨 나간 피부가 몹시 쓰라렸다.
그래도 짐승 사냥은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남은 건 놈의 목을 베는 것.
이걸로 죽은 이들의 원혼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진무가 천천히 박혀 있는 발을 뽑아냈다.
한 발, 한 발……?
꽈악.
“……!”
두 번째 발을 빼내는 순간 무언가 발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땅속에서 한승의 얼굴이 솟구쳐 올랐다.
“드디어 잡았구나! 쥐새끼 같은 놈!”
“……!”
흙을 파헤치고 올라온 한승이 토해 낸 피에 흙이 잔뜩 엉겨 붙은 얼굴로 웃는 순간, 진무는 섬뜩함을 느꼈다.
서, 설마? 흡정?
이 나에게?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한승이 흡정을 시작하자 단전을 채웠던 사기가 쑥하고 빨려 나갔다.
그런데 당황해야 할 진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눈동자에 희열이 잔뜩 차오르고, 아예 광소라도 터트리고 싶어 미칠 듯한 표정이다.
“이런 미친 새끼. 아무거나 처먹으면 배탈 난다는 것도 못 배웠나 보지?”
“……?”
조소를 가득히 베어 문 진무의 목소리.
한승은 그 연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네까짓 짐승이 알 턱이 있나? 계속해서 자신의 사기를 빨아 먹고 있는 꼴을 보니 당연히 모르겠지.
흡정마공?
그 원류가 되는 게 바로 묵룡혼원공의 기본인 채기법이다.
내가 열 몇 살쯤부터 내공 모기 생활을 시작했다.
천우명에게 채기법을 안정적으로 가르친 것도 나였으며, 생기까지 빨아서 마성에 빠졌던 백표를 구해 준 것도 나다.
남의 내공을 빨아 먹는 건, 내가 너보다 몇십 년이나 더 빨랐고, 훨씬 더 능숙하단 뜻이다.
물론, 이제는 네놈의 내공을 역으로 빨아 먹진 못한다.
채기법으로 묵룡혼원공의 내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은 딱 의기의 경지까지.
종려군을 죽일 때 무리하게 사용했다가 뒈질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빨아야 잘 빨고, 어떻게 연단해야 잘 쌓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게 너 따위가 버르장머리 없이 흡정을 시도해?
한승이 그 대단한 방어만 유지했다면 죽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어떻게 뚫어야 할까 심각하고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놈이 흡정을 시작한 이상 승패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무의 미소가 사악하게, 아니 잔인하게 변했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으나 막지 않겠다.
자, 빨려 주마.
다만 절대로 그냥 빨려 줄 수야 없지.
진무가 양의심공을 운용하자 찰나의 순간에 몸 안의 내력이 선기로 바뀌었다.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한승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진무의 발목에서 손을 떼려 했다.
우드득.
그 순간 진무가 한승의 손목뼈가 으스러지도록 힘껏 움켜쥐었다.
왜? 준다니까?
공짜니까 사양 말고 먹어라. 이 새끼야.
“크아아!”
한승이 시커먼 마기를 토해 내며 발악한다.
휘리릭, 콰악!
진무는 손을 떼놓지 않으려 비틀어 잡으며 두 다리로 한승의 목과 팔을 동시에 옭아매었다.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칠수록 진무의 다리가 그의 몸을 더욱 옥죄어 놓았다.
“끄으…….”
목을 짓눌리게 되어 숨을 쉴 수가 없었지만, 한승은 그보다 선기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뻑, 퍽퍽퍽!
발광을 해 대며 때려 대는 한승의 주먹에 강타당한 진무가 얼굴을 찡그리지만, 족쇄를 풀지 않았다.
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쿠루루루.
아예 진무는 내력을 밀어 넣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흡정을 하기 위해 연결된 터라 막을 수도 거부할 수도 없게 된 한승의 몸에 선기가 세찬 급류처럼 흘러 들어갔다.
“크으으…….”
신음이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으로 변한다.
몰랐겠지.
남이 골라서 떠먹여 준 것만 처먹어 봤겠지.
그러니까 편식이 나쁜 거다.
이것저것 처먹어 봤다면 네놈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을 것을.
불순한 사기라면 몰라도 선기는 그 무엇과도 섞이기를 거부하는 순수한 기운.
그래서 연단이 어렵다.
채기법으로도 선기만큼은 절대로 빨아 먹을 수 없다. 아니 빨아 먹는다 해도 몸 안에 연단을 할 수가 없다.
이 망할 놈의 선기는 불순물이란 불순물은 모조리 토해 내니까.
놈은 흡정마공을 익혔다.
마공이라는 게 원래 단전에 마기를 쌓는 무공이다. 사람의 생기를 흡수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근데 마기가 가득한 놈의 몸 안에 선기가 강제로 쌓이면?
한마디로 극독(劇毒)이 된다.
처음 진무가 무당의 도동이 되었을 때, 곧바로 묵룡혼원공을 익힐 수 없었던 이유.
은혜로우신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 몸에 순수한 육양진기를 듬뿍 집어넣어 주신 때문이다.
빙 둘러앉아서 급급여율령을 외쳐 대며…… 그믑게도…….
지금 생각해도 너무 금스해서 이가 갈릴 지경이다.
“끄으으윽.”
시간이 갈수록 진무의 몸 안에 쌓여 있던 선기가 바닥을 드러냈고, 한승은 얼굴이 일그러지고 피부색이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놈의 단전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놈의 단전에선 정마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일 터.
“끄아아…….”
시퍼렇던 한승의 몸이 붉게 달아오른다.
선기와 마기가 충돌하며 그 열기가 들불처럼 일어나 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눈을 뜬 채 느끼는 한승은 지옥 불에 빠진 죄인처럼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크어어…….”
발광하던 한승의 저항이 약해진다.
입에서 시커먼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이내 코와 귀로 번져 흐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겋게 달아오른 두 눈에서도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그래야지.
남의 새끼 훔쳐다 처먹어서 부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너도 응당 그렇게 해야지.
선기를 모조리 쏟아부어 버린 진무가 그제야 한승을 놓아주고 물러났다.
자멸해 가는 놈을 더 이상 억압할 필요가 없다.
“끄억, 끄어억.”
한승이 미친 듯이 제 목을 긁어 대며 발광했다.
손가락이 살점을 파고들어 긴 고랑을 만들어 냈지만 긁어 대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끄으으, 꺽, 꺼억.”
이내 쓰러진 한승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미친 듯이 땅을 긁어 대기 시작했다.
그 대단하던 방어력 따윈 사라져 버렸는지 손톱이 꺾어져 빠지고 손끝이 상해 피가 흘러나오는데도 흙바닥을 미친 듯이 긁고 또 긁었다.
하지만 고통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참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한승이 피눈물을 흘리며 진무를 바라봤다.
죽여 달라고…….
제발 이 고통을 끝내 달라고.
그 눈빛이 처절하게 외쳐 왔다.
턱도 없는 소리.
네놈에게 더 이상 주먹을 대지 않을 것이다. 네놈의 명줄을 미리 잘라 고통에 끝맺음을 주진 않을 것이다.
네놈에겐 편안한 죽음조차 사치다.
단전이 균열되고 내장이 불타오르는 고통이 사그라들 때쯤 죽거라.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신음은 죽어 간 이들을 위한 장송곡이 되어야만 하고, 네놈의 피는 그들의 혼백에 바치는 술이 되어야 한다.
그것으론 턱도 없을 터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진무는 말없이 서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한승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사이 전쟁이 끝나고 멀리 석양이 졌고, 달이 뜨고 별이 쏟아지는 밤을 맞이했으며, 다시 여명이 동터 날이 밝을 때까지 진무는 한승의 곁에서 그 모든 순간을 두 눈에 담았다.
놈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고통의 중반에서 진무가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줄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
진무는 잔인하게도 그 간절한 희망마저 짓밟은 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룻밤을 꼬박 새워 그의 고통을 지켜보았을 때, 한승은 죽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까뒤집은 눈조차 감지 못하고, 고통을 참기 위해, 이겨 내기 위해 다물었던 이가 잇몸을 파고들어 그 상단만 남기고, 온몸에 긁어 댄 상처가 흉측하게 자리 잡은……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짐승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