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
4화
“야!”
이 자식이 또 왔다.
“오늘은 검진 수련이라 제가 할 일이 없거든요.”
수련이 없으면 다른 일을 할 일이지 왜 자꾸 충허암으로 와서 방해질이란 말인가?
사람이 그만큼 싫은 티를 냈으면 눈치를 채야 정상이 아닌가?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한 녀석의 얼굴이 겹쳐진다.
모자라지만 충성스러운 녀석.
처맞고도 헤헤 웃기만 하던 녀석.
‘천우명…….’
사패천에서 유일하게 그리운 녀석이었다.
청우는 왠지 그 녀석과 닮았다.
눈치 없이 해맑은 거나.
따돌림당하는 거나.
모자라기 짝이 없는 것이.
“하아…….”
진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숙, 저 방해되지 않게 이쪽에서 수련하고 있으면 안 될까요? 가 봐야 할 일도 없는데…….”
“그래. 그래라…….”
괜히 천우명이 생각나기도 했고, 방해만 되지 않으면 상관이 없었던 진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청우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곤 곧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핫! 타압! 이얍!”
갖은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인다.
명진에게 구전으로 듣고 이미 익혀 본 지 오래인 칠성권(七星拳)이었다.
슬쩍 호기심이 생긴 진무가 수련에 집중하는 청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제법 수련을 많이 한 것인지 기본기 자체는 탄탄했다.
‘게으른 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법이네. 그런데…….’
기본 투로에는 익숙해져 있으나 본인 체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청우는 뚱뚱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이 무겁고 둔하다.
즉, 상대에게 자신의 노림수를 훤히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누가 가르친 건지 멍청하기 짝이 없군. 팔이 짧으면 원래의 보법보다 발을 더 밀어 넣어야지.’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으나 보고 있자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야!”
“예?”
진무의 부름에 청우가 작은 눈을 끔벅이며 돌아보았다.
“주먹에 왜 그리 변화가 많아?”
“예?”
어리둥절한 표정.
“넌 굵어. 뚱뚱해. 싸릿대로 변화를 주면 상대를 현혹시킬 수 있지만 아름드리나무로 같은 변화를 줘 봐야 티도 안 난단 말이야.”
“…….”
눈만 멀뚱거리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하아, 미치겠네. 와도 이딴 돼지 새끼가 와서는.”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청우의 앞에 팔짱을 끼고 섰다. 뭐라도 가르쳐 주고 빨리 쫓아 버릴 생각이었다.
“해 봐.”
“예?”
“다시 펼쳐 보라고, 칠성권.”
“아! 감사합니다!”
청우가 갑자기 신이 난 듯이 칠성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딱!
“아얏!”
통통한 주먹 끝에서 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진무의 검집이 그의 팔꿈치를 때렸다.
“이 자식아. 쓸데없는 변화에 치중하지 말고 목표만 노려. 짧고 간결하게 주먹을 뻗으란 말이야.”
“예? 예.”
딱, 딱!
진무는 칠성권의 보법을 똑같이 밟으며 검집을 움직여 때리면서 청우의 권격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발 더 밀어 넣고! 변화 주지 말고! 어허! 이런 멍청한 놈을 봤나! 여기선 차라리 낭심을 노려! 눈 찌르고!”
“아얏! 사, 사숙. 하지만 그건 너무 비겁한데요?”
“닥쳐! 싸움에 비겁한 게 어디 있어! 뒈지면 끝이야! 다시!”
딱! 따닥! 딱!
청우의 칠성권이 한 스무 번쯤 반복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쓸데없는 동작이 완전히 사라졌다.
한두 번만 해 보면 알 것인데……. 정말이지 멍청한 놈이었다.
“거기까지!”
“헥, 헥…… 감사합니다, 사숙!”
온몸이 시퍼런 멍투성이로 변한 청우가 땀을 줄줄 흘리며 인사하고 주저앉았다.
그래도 멈추라고 할 때까지 움직인 것을 보면 제법 끈기는 있는 놈 같았다.
“야.”
“예?”
“내일부턴 오지 마.”
“……네.”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알 바인가. 이놈은 대제자가 되는 길에 방해만 될 뿐이다.
“절대로 오지 마. 알겠지?”
“……예.”
“오면 죽일 거야.”
“…….”
진무가 살기를 가득 머금고 눈을 부라리자 청우가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딱히 표시는 나지 않았지만.
“그,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숙.”
“어, 그래. 절대로 오면 안 돼!”
진무는 여전히 굴러가듯 달리는 청우를 향해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제발, 제발 안 와야 할 텐데…….
“진무야.”
어느새 암자의 문을 열어 두고 나와 있던 명진이 흐뭇한 표정으로 진무를 불렀다.
“아, 스승님. 죄송합니다. 식사가 늦었네요.”
젠장, 이 짓도 한 일 년쯤 되니 존대하는 것도, 식사를 차리는 것도 익숙해져 버렸다.
망할 놈의 기억 때문인가?
그래서 자꾸만 진짜 제자인 양 행동하게 된다.
“식사야 좀 늦어도 괜찮다. 그나저나 못 보던 아이구나.”
“예. 좀 멍청하고 모자라네요.”
“헛헛, 그래. 허나 네가 잘 이끌어 주었구나. 마땅히 그리해야지, 암.”
명진은 뭐가 그리 좋은지 흐뭇한 표정이었다.
“서둘러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오냐.”
* * *
다음 날 아침.
기력이 제법 좋아진 명진이 운동 삼아 산보를 나간 뒤 수련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진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충허암과 이어진 길을 바라보았다.
안 온다.
늘 오던 놈이 늘 오던 시간에 오지 않았다.
“휴우, 다행이다. 이제 마음 놓고 수련을 할 수 있겠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검을 뽑으려는데.
“이놈!”
“…….”
날카로운 노성이 충허암 앞뜰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새파랗게 겁에 질린 뚱뚱보 청우 녀석과 시퍼렇게 젊은 서른 중반의 도사.
기억을 더듬어 보니.
‘원화관의 일대제자 진허.’
진무보다 한참 위의 사형이자 무당칠자(武當七者)의 하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도인이었다.
“아, 사형.”
“아? 사혀엉?”
진무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진허가 눈꼬리를 묘하게 꼬았다.
한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것이 어째 화가 잔뜩 나 있는 표정이다.
“어쩐 일이……시죠?”
명진은 그렇다 치고 어린 도사 놈에게까지 존대를 할 수는 없었던 진무가 뒷말을 흐렸다.
“네 녀석 짓이더냐?”
“무슨 말씀……이신지?”
진무는 담담한데 진허 홀로 화를 내는 모양새였다.
“청우에게 이따위 것을 가르친 게 네놈이냔 말이다.”
하아, 어려도 한참은 어린 놈이 얻다 대고 이놈 저놈인지.
하긴, 지금은 팔십 넘은 혁련무강이 아니라 무당의 일대제자 중 가장 막내인 진혜와도 열 살이 차이가 나는 진무였다.
그럴 수도 있지.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청우의 칠성권!”
“아!”
조금 손봐 주긴 했다.
그렇긴 한데.
“이노옴! 감히 신성한 도량에서 이따위 비겁한 초식을 가르치다니!”
침까지 튀겨 가며 손가락질을 해 대는 진허의 모습을 진무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듣다 보니 조금 짜증이 난다.
“왜요? 졌소?”
“왜요? 졌소? 이놈의 자식이 말 꼬락서니 하고!”
“…….”
“네놈이 청우에게 방문좌도(傍門左道)의 비겁한 술수를 가르쳐 대련 중에 다른 아이가 부상을 입었다.”
“흠, 이겼구만.”
“이겨? 이놈이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하마터면 대를 잇지 못하는 몸이 될 뻔했단 말이다!”
숨도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대는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으며 청우를 기특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도사가 대(代)는 무슨.”
“뭐야? 이놈이 감히!”
“거, 밤새 화통을 삶아 드셨나. 귀 따가워 죽겠네.”
“뭐, 뭐라고?”
진허가 황망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사제의 말투가 이상했다.
진허는 도동일 때의 진무를 알고 있었다. 사숙인 명진을 끔찍이 모시던 순박한 아이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도 변했단 말인가?
더욱이 자세는 저게 무엇인가? 짝다리도 모자라 한쪽 눈을 찡그리며 귀까지 후비는 모습이라니.
“너?”
시정잡배 뺨을 후려치는 진무의 모습에 진허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보오, 사형.”
“이, 이보오?”
갈수록 가관이었다.
“불알 안 터졌으면 됐지 그게 뭐라고. 어쨌든 이겼으니 된 거 아니요.”
“부, 불알…… 닥쳐라. 이놈! 도문의 제자가 어찌 그따위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
“거참 시끄럽네. 불알을 불알이라고 하지 뭐라고 한담?”
진무의 말에 진허의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쓸데없는 소리나 할 거면 그만 가쇼.”
“뭐, 뭐라? 이놈이 진정…….”
“거 씨발, 아침부터 왜 이놈 저놈 지랄이야? 짜증 나게. 친하지도 않구만.”
“허!”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진무의 혼잣말에 진허의 낯빛이 푸르다 못해 허옇게 질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네놈의 말투와 홀로 수련해서 삐뚤어진 게 분명한 그 성격. 내 사문의 사형으로서 반드시 예를 가르쳐야겠다!”
진허가 서슬 퍼런 기세를 줄기줄기 흘리며 검집째로 뽑아 들자 진무의 눈이 신경질적으로 찡그려졌다.
“가르쳐?”
“오냐. 이놈! 내가 계율을 가르치는 영은궁의 제자는 아니지만, 사형으로서 반드시 네놈을 계도하리라!”
“계도는 염병.”
진무가 음흉한 눈빛으로 천천히 진허를 바라보았다.
아직 무당의 다른 누군가와 손속을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대충 일대제자보다 뛰어나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지면 어쩔 거요?”
“져? 진다고?”
진허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었다.
진무는 아직 어렸다.
애초에 몸져누운 명진자의 도동(道童)이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수뇌들에 의해 몸 안에 육양신공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내공이 쌓여 있다고는 하지만 그저 명진에게 구전으로 무공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 진무가 무당칠자의 일인인 자신을 이겨 보겠다 하지 않는가?
그리고 저 자신감은 또 뭐란 말인가?
“이놈이 홀로 수련을 하더니 하늘 높은 줄을 모르는구나! 나서거라! 내 네놈의 그 기고만장함을 꺾어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겠다.”
“후회하실 텐데…….”
탁!
진무가 비릿하게 웃으며 검을 뽑아내고 검집을 손에 쥐었다.
생각보다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대제자로 가는 길.
일대제자 진허는 말하자면 경쟁자인 셈이다.
그를 쓰러뜨리고 이름을 알리면 대제자가 되는 데 한발 다가서는 셈이 아닌가?
안 그래도 어떻게 좀 엮어 볼까 했는데 직접 와서 시비까지 걸어 주니 이 얼마나 하늘이 내린 기회인가?
진무는 천천히 검극을 지면으로 향하게 했다.
“오쇼.”
“…….”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오쇼라니, 도대체 어디서 배워 먹은 껄렁한 말투인가?
더구나 응당 기수식을 취해야 함이 마땅한데 저건 또 무슨 자세란 말인가?
이래서야 도무지 어떤 검술인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이 오만방자한 녀석이!”
“거참 입으로 싸우나…… 해 지겠네. 해 지겠어.”
“…….”
“뭐, 안 오면 내가!”
팍!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자세였다.
그런데 발을 떼는 순간 거리가 단숨에 좁혀지고, 바닥을 향했던 검격이 하단에서 번개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헛!”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에 진허가 기함을 토했다.
유려한 변화가 아닌 곧장 뻗어 오는 직선의 움직임이 다른 무당의 검공보다 더없이 빠르게 느껴졌다.
‘시, 신문혈!’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검극이 노리는 방향은 신문혈이다.
이는 필시 무당의 검공인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
허리를 꺾은 진허의 검이 맞추어 비튼 손끝에서 유려하게 휘어졌다.
‘오냐, 똑같은 검공으로 상대해 주마!’
진허는 그리 생각했다.
같은 검공에도 격차가 있음을 알려 주면 저 방자하기 짝이 없는 놈도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하지만 어디까지나 계도의 목적이니 사제를 상하게 할 수는 없다. 검면으로 손목을 때려…….
“허헉!”
순간 감싸 안았다고 생각했던 진무의 검이 커다란 낙차를 만들며 수직으로 떨어졌다.
‘나, 낭심!’
진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순간적으로 생겨난 변초에 자신의 소중한 부위가 통째로 날아갈 판이었다.
재차 검을 비틀어 튕겨 내려는 순간, 진무의 검격이 흐름을 거스르듯이 솟구쳤다.
“헙!”
이번엔 눈.
‘이놈의 자식이! 설마 일부러?’
진무의 검극이 진허의 낭심과 눈, 겨드랑이와 같은 곳을 번갈아 가며 노려 왔다.
변칙적인 공격에 번번이 공격의 맥이 끊어진 진허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변칙적이고 비열하긴 했으나 분명 신문십삼검이었다.
열셋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공은 손목의 신문혈(神門穴)을 노려 무기를 빼앗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상대의 목숨을 빼앗지 않기 위한 무당의 정신이 가득 녹아든 군자의 검공.
그러할진대 어째서 검극이 사파 나부랭이들의 그것처럼 눈과 낭심을 골라 노려 댄단 말인가?
그저 초식의 방향을 좀 바꾸었을 뿐인데 신문십삼검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간악하기 짝이 없는 사파의 무공으로 변해 버린다.
“이노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진허의 검이 지지 않고 화려한 초식을 만들어 내려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