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태자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일세.”
영왕을 배웅하고 좌초와 함께 돌아온 철지량이 아까의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듯 멍하니 말했다.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음…… 그렇겠지.”
제갈협진의 우려에 철지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사항이 아닌가? 손을 잡은 이상 어쩔 수 없게 되었네.”
“예, 그렇지요.”
잡은 손을 놓기에는 늦었고, 이미 쏟아 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서창이 영왕을 주시하고 있다면 그가 자신들을 찾아온 것도 알 것이다.
거래의 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하지 않을 터.
분명 관의 힘을 이용해 상당한 제재가 들어올 게 분명하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궁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로 잡아도 일 년이군요. 그 전에 태자를 찾는 일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제갈협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궁, 그들이 중원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 다가올 혈난의 중심이 될 태자를 찾아야만 했다.
“맹주님.”
“말하게. 자네의 계획에 전적으로 따름세.”
“감사합니다.”
모두가 영왕을 배웅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해 계획을 세운 제갈협진이 철지량의 허락을 득하자마자 계획을 늘어놓았다.
“무풍개께서는 지금 즉시 영왕 전하 측이 보유한 태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비선을 움직여 주십시오.”
“음, 알겠네.”
“또한 개방을 움직여 역정보를 흘려 주십시오.”
“역정보를?”
“예. 서창이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으니 분명 꼬리를 붙일 것입니다.”
“흠, 그렇군. 그리하도록 하지.”
“등 관주님과 감찰단주께서는 용봉관을 비롯하여 정무맹 예하 무인대에서 최정예 고수들을 선발해 소규모의 특무대를 조직해 주십시오.”
“알겠네.”
“그리하지.”
등여평과 벽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사패천의 적 총사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삐 움직여야겠군.”
“예.”
각자가 할 일을 분배한 제갈협진이 동창의 무인 좌초를 바라봤다.
“제가 어찌 불러야 하겠습니까?”
“좌 시위라 불러 주시오.”
“알겠습니다. 좌 시위께서는 태자님에 대한 것을 무풍개 어른께 알려 주신 뒤 동창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 서창을 막아 주십시오.”
“서창을?”
“예. 개방이 역정보를 흘린다고 해도 그들은 끈질기게 이쪽을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음, 알겠소이다. 그리하지.”
좌초의 대답까지 듣고 난 제갈협진은 진중한 표정으로 좌중을 돌아보며 단단히 다짐을 두었다.
“이 안에서 논의된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합니다. 특히 태자에 관련된 일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내용입니다. 자칫 새어 나가는 날에는…….”
서창이 자신들을 막으려 할 것이다. 황도의 금군을 움직여서라도.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영왕 전하의 힘으로는 귀비의 비호하에 있는 서창을 그리 오래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제재를 가해 오기 전에 태자를 찾아야 합니다.”
“알겠네.”
비록 영왕에게 한 방 먹기는 하였으나 제갈협진은 뛰어난 지략가였다.
멈추었을 때는 보는 이가 답답할 만큼 신중했으나 걸음을 내디뎠을 때는 그 무엇보다 신속하고 과감했다.
“한데 진무 도장은 어디에 있는 것이오?”
“…….”
“그를 찾으라 신강으로 보낸 수하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
역시, 그들은 제일 먼저 진무를 찾아갔던 것이다.
좌초가 그 수하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이유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진무의 행방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를 어찌 설득하는가에 있었다.
그는 절대 타인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주관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무당 제자 신분이 전부였던 이전엔 정무맹이나 정무칠성의 이름을 앞세워 그의 움직임에 작게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커도 너무 커 버렸다.
그는 이제 마교의 교주에 사패천의 주인이니까.
“하아, 곤륜으로 사람을 보내 봐야겠군요.”
“……곤륜?”
좌초가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제갈협진은 골치가 아픈 듯이 얼굴을 찡그리기만 할 뿐, 더는 답하지 않았다.
동호에서의 비밀 회동을 기점으로 무림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물론 귀찮은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진무가 알 리는 없었지만.
* * *
여유를 가지고 가는 길은 언제나 한가롭다.
마교가 무너진 뒤, 오랜 세월 청해와 감숙을 접한 탓에 막혀 있던 경계가 사라지고 곳곳에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동하는 마차와 사람의 대부분은 진무 소유인 산서상회 예하 표국이나 상단 소속이었다.
독점 교역권을 발판 삼아 순식간에 세를 불린 산서상회는 진무의 존재를 등에 업고 사파는 물론 정파의 영역까지 그 상권을 확장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중원 상계의 거두가 되어 있었다.
“천주님, 남부에 갔다가 좋은 술을 구하였는데 한잔하시겠습니까?”
진무가 천산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고 한달음에 청해의 경계까지 와 그를 모신 유장이 한눈에도 고풍스러워 보이는 술병을 내밀었다.
“오호! 이건 계화진주가 아니냐?”
“예. 이번에 계림에 갔다가 구했습니다.”
“그래?”
여름에 흐드러지게 피는 계수나무 꽃봉오리를 따서 삼 년을 넘게 밀봉해 숙성시키는 계화진주는 계림에서도 꽤 유명한 특산주였다.
퐁!
마개를 따자 향긋한 주향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그 순수한 맛이 일품이라 머리마저 맑게 해 주는 술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백가장이 계림에 있었지. 그때는 마셔 보지 못했는데…….
“흠, 그 녀석 잘 지내고 있으려나?”
“누구 아는 분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래. 고기를 끝내주게 잘 써는 놈이 있어. 육회가 아주 일품이지. 굽는 건 말할 것도 없고.”
“……?”
유장이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진무는 그때의 기억을 반추하며 흐뭇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계림 백가장으로 돌아간 백표.
진무가 채기법이 남긴 마기를 거두어들였으니 이제는 제법 무인 티가 날 것이다.
갑자기 그 녀석이 구워 주던 고기가 생각난다. 참 맛있게도 구웠었는데.
“쓰읍.”
생각했더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계화진주에 백표의 고기. 정말 최상의 조합이 아닌가?
그래, 곤륜에 가서 잠시 풍환과 만난 뒤에 광서의 계림으로 가자.
인원도 잔뜩 늘어 버린 마당에 전속 숙수 하나 더한다고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행선지는 무당이지만 굳이 급히 갈 이유는 없다.
무림에서 이룰 거 다 이뤘겠다, 이제 하나만 남았는데 뭐 하러 걸음을 재촉할 것인가?
그리고 가는 길에…….
“이보게, 유장.”
“예, 천주님.”
“자네 혹시 대장간 해 볼 생각 없나? 보석점이나.”
“……?”
“내가 아주 잘 아는 광산이 있거든.”
“그렇습니까? 하하, 그런 곳과 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야 더없이 좋겠지요.”
“좋아. 그럼 그곳도 들르세.”
“말씀하시면 행로를 잡겠습니다.”
“좋아, 좋아.”
가는 길에 천웅방을 지나 공동에 들르자.
그 광부를 부업으로 하는 도인 놈들도 잠시 만나 볼 겸…….
뭐, 일휘 녀석도 제 고향을 한 번쯤 가 보고 싶을 것이 아닌가?
물론 사천은 피해서 갈 것이다.
청성파에 미안하지만, 괜히 그 개 코를 가진 미친…… 어휴, 아무튼 귀찮아지니까.
당위 녀석, 그런 천재(天災)나 다름없는 사고뭉치는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집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그래도 자식이라고 끔찍이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기는 하더라만…….
생각해 보니 지금쯤 암수 서로 정답던 그 꼽등이 부부는 애를 낳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는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추억을 안주 삼아 계화진주를 입에 머금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아진 진무가 절로 노랫가락을 뱉어 냈다.
“청사~안~!”
구성진 도입부가 쩌렁쩌렁하게 그들이 가는 길 앞으로 울려 퍼졌다.
타다다닥! 쿵!
난데없이 구성진 가락과는 어울리지 않는 힘겨운 달음질 소리가 들렸다.
“헉헉, 예, 사숙…… 부르셨습니까? 헉헉…….”
“……너 안 불렀다.”
“예? 하지만 분명 청상이라고…….”
“안 불렀어.”
“……예.”
타다닥, 쿵.
진무의 말에 힘겹게 달려왔던 청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유장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물었다.
“천주님, 꼭 저래야 하나요?”
“뭐가?”
“아니, 모두가 내로라하는 무인들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유장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진무를 따르는 일행들이 체력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힘겹게 걷고 있었다.
쩔거럭, 스윽. 쿵.
진무가 탄 마차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단체로 희한한 소음을 내며 걷는 것이 참으로 힘겨워 보였다.
모두가 양팔에 철환을 차고, 두 다리엔 철구를 달고 있었다.
진무의 금지로 내공도 사용할 수 없었다.
이 지독한 고행길을 걷는 무리에는 청상, 청우, 대궁에 우양진, 황신과 아이들은 물론이고 능서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니가 걱정할 일 아냐.”
“…….”
“약해서 그래, 약해서. 모름지기 내공 이전에 몸이 뒷받침돼야 하는 법이거든. 따로 시간을 들일 여유는 없으니 일상생활을 하는 모든 시간을 수련에 쏟아야지.”
“하지만 저렇게나 힘들어하는데요?”
“그래? 흐음.”
거듭되는 유장의 말에 진무가 마차 밖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어 소리쳤다.
“야! 힘드냐?”
“아, 아닙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힘겹게 대답했다.
“거봐, 안 힘들다잖아.”
“…….”
그렇겠지요, 천주님.
그렇게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노려보는데 누가 힘들다고 하겠어요? 그냥 안 맞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유장은 힐끗 봐도 알 것 같은 그들의 심정을 끝내 대변해 주지는 않았다.
이미 오는 길에 힘들다며, 제발 쉬어 가자고 말했다가 가차 없이 짓밟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유장, 시간도 많은데 대충 야숙할 자리나 찾아봐.”
“예? 하지만 곧 곤륜산이 시작되는 양풍현입니다. 조금만 서두르면 밤에는 도착을…….”
유장이 말을 이어 가려다가 마차 밖으로 내밀어진 진무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해 졌어.”
“……하지만 객점이라도 잡고.”
“객점? 번거롭게 뭐 하러 그래? 쓸데없이 돈 쓸 필요 없어. 술 있겠다, 사냥할 놈들 지천에 널렸겠다.”
“돈이라면 제가 가진 것이.”
“…….”
진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 말에 자꾸 토를 다는 유장을 째려보았다.
어허, 이 자식 보게?
그게 니 돈이냐? 니 돈이야?
상행을 통해서 번 돈이면 응당 산서상회의 주인인 내 돈이지.
그리고 내가 돈이 없어서 이래?
돈이라면 마교에서 여비 하라고 조금씩(?) 챙겨 줘서 나도 많다 이놈아.
쯧쯧, 장사한다는 놈이 이렇게 씀씀이가 헤퍼서야.
어? 혹시 이놈 이거 장사하면서 내 돈 막 퍼 쓰는 거 아냐?
진무의 눈이 점점 더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믿고 맡겼더니 이놈 이거 아주 그냥 고였네, 고였어.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하고 몰래 상회의 돈을 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중에 세찬이에게 시켜서 뒤 좀 털어 보라고 해야지.
이놈의 자식, 딴 주머니라도 차고 있어 봐라. 아주 사는 게 고통일 정도로 만들어 줄 테다.
“자리 잡아! 양풍현 들어가기 전에 야숙하고, 곧장 곤륜산으로 간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진무의 눈빛에서 무언가 섬뜩함을 읽어 낸 유장이 급히 대답하고 휘하에 명을 전했다.
해가 서산 너머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행렬이 멈췄다.
힘겨운 수련을 하며 걷던 이들은 그제야 죄 땅바닥에 널브러지며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
“이것들이!”
“……?”
그들의 모습에 진무가 눈을 세모로 뜨고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누가 쉬래?”
“…….”
“이게 다 수련의 일환이라고 누차 말하지 않았냐? 어차피 뒈지면 싫어도 쉬게 될 텐데 뭘 벌써 쉬어?”
……그걸 말이라고?
“황신, 각출, 소동보는 잠자리 푹신하게 만들고!”
이 황무지에서요? 자리 깔 나무 구하기도 힘든데요?
“청상이랑 청우, 대궁은 가서 저녁거리 잡아 오고.”
“…….”
“능서현이랑 괴충은 물 길어 와!”
진무의 불호령에도 누구 하나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탓이었다.
“하! 이것들 봐라? 그래? 몸이 천근만근이지? 쉬고 싶지?”
“…….”
진무가 눈썹을 역팔자로 치켜세우며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주먹과 함께.
“그래, 쉬게 해 줄게. 여기서, 앞으로도 쭈욱.”
“……!”
섬뜩함이 담긴 진무의 모습에 모두가 청상을 애원하듯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간절함을 읽은 것일까. 청상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이내 굳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일어났다.
스윽, 쿵. 스윽, 쿵.
발목에 단 철구를 힘겹게 끌고 진무를 향해 다가가는 청상.
그래, 믿을 건 그대밖에 없소.
그대의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겠소.
모두가 휴식을 염원하며 마음속으로 그를 열렬히 응원했다.
“사숙!”
“…….”
“몇 마린지 말씀을 해 주셔야.”
사람들은 생각했다.
괜히 호랑말코 도사 놈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