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36
436화
날이 저물기 전에 황궁에 들어가 보려던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황신이 귀를 쫑긋거렸다.
“천주님.”
“응?”
“아무래도 손님이 찾아온 것 같은데요?”
“손님?”
이상하다.
진무가 이곳에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영왕과 좌도독 휘하의 사람들뿐인데.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정문을 바라보던 그때, 황신이 말한 대로 한 무리의 인물이 나타났다.
저 복장은…… 서창?
허어, 이렇게나 공교로울 수가.
안 그래도 귀비를 만나 보려는 참인데 참으로 시기적절하게 찾아왔다.
그런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곧장 진무에게로 다가왔다.
“그대가 진무군.”
“…….”
어떻게 단번에 알아보고?
아, 관에 내 용모파기가 돌았다고 하더니 그래서인가.
어쨌든 행색을 보니 꽤 높은 신분인 듯했다.
“나는 서창 제독 왕직이라고 한다.”
아, 제독이셨구나.
근데 왜 낯이 익지?
방만평도 그렇고 대체 관에 익숙한 얼굴이 왜 이렇게나 많은 거냐?
“어?”
“……?”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청우가 왕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찾아오긴 했으나 서창 제독은 진무의 사기판에 앉혀야 할 고객이었다.
괜히 청우가 멍청한 소리를 해서 애꿎은 사달을 만들게 할 수는 없었다.
“청상아.”
“예!”
“읍! 읍읍!”
눈치 빠른 청상이 잽싸게 청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나저나 참으로 대범한 녀석 아닌가.
서창 제독이라면 귀비 측의 사람이니 자신과 영왕이 만났음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 은밀하게 찾아오거나 서신을 보내올 것이라 여겼는데 벌건 대낮에 찾아오다니.
영왕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일까?
하긴, 뭐면 어떠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진무가 빙긋이 웃으며 시선을 맞추자 왕직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채비하라. 귀비께서 그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
이미 예상했던 바.
영왕을 만났으니 귀비가 자신을 부를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이 새끼는 언제 봤다고 반말지거리지?
갑자기 진무의 속에서 못된 성미가 치밀었다.
흥정을 해야 할 상대.
시작부터 갑과 을을 정해 놓을 필요가 없으니 굳이 고개를 숙일 이유도 없다.
관의 인물들에게 위축되는 마음도 영왕을 통해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귀비가? 나를?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른 체하자 왕직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함께 온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직이 달리 반응하지 않았기에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으나, 당장에라도 칼을 뽑아 들 듯 살벌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귀비에게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좋아. 그런 충성심은 있어야지.
그런데 기르는 개 주제에 어디서 감히 노려봐? 동등한 위치에서 흥정해도 모자랄 판에?
그리고 내가 이년 저년 하면서 욕이라도 했냐?
“……뽑아 버릴까요?”
왕직과 서창의 무관들을 마주 노려보며 마기를 뿜어내던 능서현이 진무의 속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야, 야. 또 왜 그래.
꼬라지가 못마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쓰임은 구분해야지.
이놈은 신강을 찾아왔던 동창 놈과는 다르게 써먹어야 한단 말이야.
진무는 손을 들어 능서현을 제지하고는 왕직을 바라보았다.
귀비가 기르는 개.
어째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진 모르겠으나 서창 제독이라는 직위가 말해 주듯이 이빨이 제법 날카로워 보였다.
“읍! 읍읍읍!”
“…….”
저놈은 왜 저렇게 난리를 쳐, 정신 사납게.
와중에 퉁실한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왕직을 향해 삿대질하는 통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아, 청상아. 걔 좀 치워라.”
“예!”
진무가 언짢은 눈빛으로 지시하자 청상이 청우를 질질 끌고 사라졌다.
대체 뭔 소리를 하고 싶어서 저러는지 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진무가 한숨과 함께 일어났다.
“뭐, 좋아. 안 그래도 그 대단하신 분을 한번 뵙고 싶었는데 잘됐네. 딱히 채비할 것 없으니까 바로 안내해 봐.”
“…….”
턱을 까딱거리며 채근하는 껄렁한 태도에 왕직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무당지검 진무.
비록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왕직은 진무를 알고 있었다.
그가 현 정국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라서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의 인연.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니 굳이 밝힐 이유는 없었다.
또한 지금의 불손한 태도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 자신들의 손에 죽을 인물이니까.
“가지.”
“…….”
왕직이 몸을 돌렸음에도 진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 왕직의 눈빛이 영 마음에 걸려서였다.
최하층의 삶을 살아 보았던 진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눈빛.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된 그것.
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저따위 눈빛으로 사람을 본단 말인가?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오지랖이 생겨 버렸다.
고쳐 줄 수는 없으나 경고 정도는 해 주는 게 좋겠지.
“아, 그런데 말이야. 따질 건 좀 따져야 하지 않겠어?”
“……?”
왕직이 고개를 돌리자 짝다리를 짚고 선 채 웃던 진무가 가볍게 일보를 내디뎠다.
슈욱!
“헛!”
분명 그들의 사이에 오 장여의 공간이 있었는데 마치 공간이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듯 진무가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
별안간 자신의 눈동자를 가득 채우는 진무의 모습에 놀란 왕직이 본능적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스릉, 턱, 철컥, 꽈악.
“컥!”
뽑히려던 검이 진무의 손에 밀려 검집으로 되돌아가고, 미처 당황할 틈도 없이 목이 잡힌 왕직이 숨 막힌 신음을 내었다.
그 모든 것을 한 호흡에 끝낸 진무가 왕직의 목을 움켜쥔 채 싸늘하게 눈을 맞췄다.
차아앙!
“이, 이놈! 제독 대인을 놓지 못할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서창의 무관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진무를 위협했다.
“이것들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능서현과 괴충이 눈을 치켜뜨고 순식간에 진무와 서창 무관들 사이를 막아서며 짙은 마기를 뿌렸다.
“검에서 손 떼라. 뒈지기 싫으면.”
“…….”
황신이 어느새 소리를 질렀던 무관의 등 뒤로 다가가 목 어림에 비수를 겨누고, 옆에선 대궁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이, 이놈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서창의 무인들이 눈알을 굴리며 긴장했다.
당장에 칼부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황.
장내가 순식간에 차가운 긴장감으로 가득 찼으나, 진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이 허공에 뜬 왕직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참아 주는 건 한 번이야. 한 번만 더 그런 눈깔로 사람을 쳐다보면 죽는 수가 있어.”
“…….”
살기도 기세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심할 정도로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빛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섬뜩함.
수면이 잔잔하다 하여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깊이가 얼마인지, 그 속에 무엇이 사는지 몸을 담가 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 깊은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는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왕직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검을 뽑을 힘이 있었고, 당장에 목을 잡은 손을 뿌리칠 만한 무공이 있었다.
또한 진무가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고 해도 절대 피하지 못할 필살의 한 수도.
하지만 왕직은 진무와 마주했던 눈을 슬며시 내리깔았다.
지금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귀비에게 데려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는 이내 왕직의 목을 놓고 물러났다.
“컥, 커컥.”
“제, 제독 대인.”
진무가 물러남과 동시에 능서현과 황신 등이 기세를 풀었고, 서창의 무인들이 급히 숨을 몰아 내쉬는 왕직을 부축했다.
“이번 건 경고라는 걸 잊지 마. 귀비의 아랫것이라 참은 거야. 알겠어?”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맑게 웃는 진무의 얼굴에 왕직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 갚을 길이 있으리라 다짐하면서…….
“입시를 허락받은 것은 그대뿐이다.”
“나만?”
“…….”
진무의 되물음에 왕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것들 봐라.
곽종산의 본가도 그렇고, 이놈들도 그렇고.
비열함으로 똘똘 무장한 내가 니들의 음흉한 마음을 어찌 모를까.
이 새끼들, 귀비를 만난 이후에 수가 틀어지면 죽이려는 심산이겠지.
아마 함정이니 진법이니 하는 걸 깔아 두고 수많은 무인을 포진시켜 놓지 않았을까?
“뭐, 별수 없지.”
진무가 피식 웃고는 능서현 등을 향해 말했다.
“니들은 여기서 기다려.”
“또 혼자…… 가십니까?”
“왜? 걱정돼?”
“그야…….”
능서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뒷말을 흐렸다.
요런 깜찍한 녀석 같으니.
너의 충심은 언젠가 보답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걱정 마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무가 능서현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왕직을 따라 걸어가 버렸다.
멀어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괴충이 다가와 소곤거렸다.
“걱정되시는 거죠?”
“…….”
“혹시나 황궁에 들어가서 깽판 치실까 봐.”
당연하다.
심지어 상대가 황궁이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무를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황 호위, 대궁 조장.”
“……?”
“주군에게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따라가서 황궁에 잠입할 수 있겠소?”
“……!”
이런 미친년이 누굴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황신은 하마터면 육성으로 욕을 내뱉을 뻔했다.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어떻게 저 또라이 개천주에게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따라가란 말인가?
그건 명세찬이나 소약벽이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 호위라면 가능하지 않소. 멀리 떨어져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
“막을 수는 없어도 만에 하나 일이 생기면 준비는 할 수 있을 것이오.”
절대, 전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진지한 능서현을 보자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들 역시 진무가 사고를 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걸리면?”
“제가 대신 맞도록 하겠소.”
“제길……그 약속 절대로 잊지 마.”
황신은 어쩔 수 없이 귀를 쫑긋거리며 진무의 소리가 가장 멀어졌을 때를 기다려 대궁과 함께 황궁을 향해 움직였다.
* * *
“아, 제발요!”
“……?”
청상에 의해 끌려가다시피 하던 청우가 제 입을 틀어막은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하아, 이놈아. 이 사형이 누차 말하지 않더냐?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라고. 사숙 성격을 몰라서 그런 게야? 매가 부족한 것이었더냐?”
한숨까지 내쉬면서 잔소리를 하는 청상의 모습에 청우가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전 그냥 반가워서요.”
“반가워?”
“예.”
“……?”
대체 뭐가 반갑단 말인가?
“그 제독이라는 사람이요.”
“제독? 이놈아, 네가 그를 어찌 안다고?”
“응? 사형도 알지 않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나도 안다고?
“사숙께서도 알고 계실 거로 생각했는데요?”
“……?”
청상은 청우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알고 사숙도 아는 자라니?
청우의 헛소리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얼굴에 떠오른 자신감이 너무 과했다.
이 녀석이 멍청하기는 해도 우직하고 순박해서 없는 것을 있다고 꾸며서 말하지는 않는데…….
“자세히 말해 보아라. 우리가 다 아는 자라니? 대체 서창 제독을 어디서 본 것이냐?”
“그 왜…… 단강구에서 청양상단주 놈이 우릴 죽이려고 함정을 팠었잖아요.”
“…….”
“그때 그놈이잖아요. 저랑 싸웠던 그 망할 자식.”
청우의 말에 청상의 눈매가 가늘게 좁아졌다.
그때 그놈이라고?
문득 청우가 말한 그때의 기억이 청상의 머릿속을 뿌옇게 맴돌다가 점차 선명해졌다.
단강구 외곽 무월루.
진무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청부업자들을 고용했던 청양상단주.
그리고 그때 청우와 싸웠던 왜소한 체구의…….
“고, 고월?”
청상이 짧은 탄성과 함께 눈을 부릅떴다.
기억났다.
“그때 분명 잡혀갔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생활이 아주 어려웠나 봐요. 고추 자르고 환관이 되었을 줄이야. 그래도 출세했네요. 서창 제독이면 대단한 위치라고 들었는데, 그쵸?”
“…….”
기억이 완전히 떠올라 버린 청상의 귀에는 더 이상 청우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용봉관에 들어가서 궁의 세력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게 된 이후 접하게 된 수많은 정보.
그 안에는 무풍개 양소방이 직접 조사했던 무월루 사건도 남아 있었다.
그때 자신들을 공격했던 그 청부업자들은 단강구 근방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이들이었다.
문제는 그를 구해 간 이의 정체였다.
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던 삼궁의 무인 대랑 오척산.
비록 그는 진무의 손에 죽었지만, 당시 납치되었던 청부 무인 고월은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개방이 조사를 거듭했으나 그를 어째서 납치했는지 어디로 데려갔는지에 대한 것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당시 고월의 무위는 청우에게도 밀릴 정도로 한없이 약했는데? 고작 몇 년 만에 서창 제독이 되어 나타났다고?
아무리 군부의 직급 체계가 무림과는 다르다 해도 서창 제독이라는 자리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동창과 서창의 주된 임무는 황제의 명령하에 수많은 이들을 감찰하고 조사하는 것.
개개인의 은신과 경공이 뛰어난 것과는 별개로 무공도 강하다고 했다. 문무백관부터 무림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그 수장 된 자가 아닌가?
약할 수가 없다.
역사상 초유의 경지를 개척한 진무의 눈에만 약해 보일 뿐.
어쨌거나 그토록 약했던 자가 일개 야인으로는 절대 차지할 수 없는 자리에 오를 정도의 성취를 얻었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
가령 그를 납치해 간 자들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훈련시켰다면?
청상의 얼굴이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망할……!”
“어? 사형? 어디 가요?”
청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청상은 다급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껏 궁의 행사를 방해해 온 진무가 아니던가?
당시 궁의 인물에게 납치되었던 자가 서창 제독이 되었고 그를 부리는 귀비라는 여인이 궁의 수괴라면?
진무는 지금 사지(死地)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속히 사숙에게 알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