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41
441화
범인은 확실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진무는 무턱대고 쳐들어가서 때려 부수는 것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사기 칠 때야 전문 분야라 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이런 식의 싸움에서 계책을 생각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인데, 딴 주머니 차기 좋아하는 제갈 얌생이 놈은 안 될 것이고…… 적생을 불러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방 안에 있는 일행이 진무에게 설명을 요구하듯 간절한 눈빛을 보내 왔다.
휴, 니들에게 말해 봐야 뭐 하겠느냐마는 일단 들어는 두어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기막을 펼쳐 방 안의 소음을 통제한 진무는 날이 밝을 때까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화양이와 귀비.
대궁과 무림, 그리고 건국에 감추어진 비사에서 황가에 불어닥친 의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물론 자신이 혁련무강이라는 것과 태자를 이용해 황궁을 꿀꺽해 보려는 속셈이 있었다는 사실은 쏙 뺀 채로.
하여 화양이와 귀비의 연결점을 찾은 이유는 스승의 의문사를 밝히겠다는 투철한 정의감 정도로 포장되었다.
“허! 그런 대가리를 뽑아 놓을 연놈들이! 하는 짓이 마교보다 훨씬 더 악독하군요.”
“씨부럴 것들이 감히 전대 천주님을 독살했단 말이죠? 명령만 내리십시오. 제가 당장에라도 모가지에 바람구멍을 내 버리겠습니다.”
“음, 추측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이네요. 겁도 없이 황가까지 건드리다니. 도사로서 두고 볼 수는 없겠군요.”
모든 설명이 끝나자 능서현과 황신이 시뻘건 얼굴로 분을 토했고, 청상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어, 그래서 그게 왜요?”
“…….”
청우 넌 일단 빠져.
“어쨌든 나는 귀비를 처리할 생각이다. 그러자면 만독전 놈들이 도착하는 대로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문제는 저들의 감시자들을 어찌 처리하느냐는 거지.”
“죄 잡아다가 목을 뽑아 놓을까요?”
“…….”
능서현이 짙은 마기를 발산하며 손가락 마디마디를 우두둑거렸다.
어째 너는 날이 갈수록 더 잔인해지는 것 같구나.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고.
“천주님, 맡겨 주십시오. 저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모가지를 베어 오겠습니다.”
“…….”
황신이 서늘한 눈빛으로 비수를 핥아 댔다.
개냐? 개야?
요즘 뜸하다 싶었다.
쇳독 오른다고 누누이 말했건만.
너 언젠간 그 혀 잘라야 할지도 몰라. 파상풍이 얼마나 무서운데.
물론 성격 같아서는 능서현과 황신의 말처럼 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어디 제대로 된 복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품평을 하자면 내 점수는 영점이다, 이놈들아.
하책 중의 하책이란 소리다.
“음, 사숙. 하면 영왕의 손을 잡으실 겁니까?”
“영왕? 글쎄…… 내가 느끼기로는 그도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아.”
영왕과 손을 잡으려면 태자를 내줘야 하니까.
한 몫 단단히 챙기려던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 것은 틀림없다.
“하면 이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응?”
진무의 심드렁한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청상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너도 의견을 내려고?
아서라, 청상아.
협잡과 비열함이 난무하는 권력의 다툼이다.
완전 진흙탕 싸움이란 뜻이지.
니가 똑똑한 건 인정한다만 정심을 수련해 온 순박한 도사가 낄 판은…….
“일단 귀비 쪽의 손을 잡으시지요.”
“에…… 응? 뭐?”
“저들을 속이는 겁니다.”
“…….”
“용봉관에서 전략 전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제갈 소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제갈산산?
하긴 제갈씨들이 이쪽 방면으로 도가 트긴 했지.
전문가의 고견을 빌렸다는 청상의 말에 모두 귀가 솔깃해졌다.
“사숙께서는 지금 두 세력에 한 다리씩 걸친 형국이십니다.”
“음.”
“둘 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들 모두를 속여야지요.”
“…….”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지?
지금 청상의 눈빛은 무언가 간악한 흉계를 꾸미는 자들처럼 음흉해져 있었다.
너 무슨 생각이 있긴 있구나?
“그게 무슨 말이냐?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봐.”
“사숙께서 진짜 태자를 찾으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분명 태자가 두 세력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오롯이 보위에 오르는 것을 도와 이 나라를 평안케 하려는 마음이시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
청상아, 오해다.
정말이지 너는 이 사숙을 진정한 도사라는, 뭐 그런 편견으로 오해하고 있어.
설명에서 생략하기는 했다만 그냥 나 혼자 다 해 먹으려는 거란다.
하지만 니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야.
“고맙구나. 내 마음을 어찌 그리 정확히 파악했단 말이냐.”
진무가 감동한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청상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고, 모두가 부러운 듯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면 영왕과 귀비, 둘 모두가 사숙께는 적입니다. 그러니 진짜 태자를 찾을 때까지 두 세력 모두 줄여 두는 것이 좋겠지요.”
“세력을 줄여?”
“예.”
“어떻게?”
“저걸 이용하는 겁니다.”
“……?”
청상의 손가락이 향한 곳.
귀비에게 받고 처박아 두었던 그것.
진무를 도찰원 우도사로 제수한다는 교지와 신분패였다.
근데 지금…… 나더러 직접 관리가 되란 거지?
니들만 굴리는 게 아니라?
이 사숙이 관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르는구나, 청상아.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청상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찰원은 황제의 명을 받아 만조백관을 감찰하는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
“일단은 귀비 쪽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영왕을 치시지요.”
“영왕을 쳐?”
“예.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관직에 있는 자라면 분명 비리가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청렴한 자라 해도 그 휘하까지 단속할 수는 없겠지요.”
“감찰을 하란 말이냐?”
“굳이 사숙께서 나설 필요도 없으십니다.”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입니다.”
“낮말? 밤말?”
“이미 둘 다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청상이 하오문이 그동안 조사해다 바친 종이 무더기를 힐끗 보았다.
“아!”
이 녀석…… 이런 절묘한!
그제야 청상의 말하는 바를 깨달은 진무가 환한 표정으로 무릎을 쳤다.
그래, 이제 알겠다.
하오문, 그들의 눈과 귀는 어느 곳에나 있다.
굳이 애써 관리들을 털 필요가 없다.
하오문이 물어 온 의혹을 가져다가 찔러 보기만 하면 끝이다.
“영왕의 손발을 자르면 귀비 측에서 환대할 것입니다. 그 틈에 감시를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하시지요.”
“일단 귀비의 감시를 털어 내고 나서 독살에 관한 증거를 모으면 된다?”
“예.”
진무의 되물음에 청상이 빙긋이 웃었다.
“영왕의 반발이 있겠지만, 귀비 측의 신임을 얻기 위함이라 귀띔만 해 줘도 간단히 무마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이거야말로 상책이 아닌가?
청상, 이 녀석…… 아주 기똥차게 변했구나.
이래서 시골 사람들이 어떻게든 유학을 보내려고 기를 쓰는 게야.
용봉관에 보내 놨더니 제갈 얌생이들의 전략까지 습득해 오고, 기특하기 짝이 없다.
계속 산골짜기 무당 동네에서 살았다면 저 뼛속까지 도사인 놈은 절대로 이런 계략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숙은 니가 참으로 든든하구나. 아주 쓸모 있게 잘 배워 왔어.
물론 그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청우는 여전하니까.
어쨌든 청상의 말대로 하면 귀비는 물론 영왕 측의 세력까지 한 번에 줄일 수 있게 된다.
진무는 우쭐한 눈빛으로 황신과 능서현을 바라보았다.
봤냐? 봤어?
얘가 내 사질이야.
보고 좀 배워라, 이 자식들아.
맨날 목이나 뽑고, 바람구멍이나 뚫을 생각이나 하지 말고.
여하간 실로 절묘한 계획이 세워졌다.
“문제는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희만으로 모든 일을 수행하기에는…….”
“인원이라……. 좋아,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 주마.”
“사숙께서요?”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 났으니까. 너는 니가 생각한 바를 상세하게 설명해 임무를 부여해라!”
“예!”
전권을 위임받은 청상이 신이 난 얼굴로 각자의 임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한지.
기다려라. 화양아.
청상의 계략에 힘입어 도사적인 비열함으로 네년의 손발을 야금야금 잘라 내고 뼈까지 잘근잘근 씹어 주마.
* * *
길고 긴 회의가 끝난 뒤 진무는 곧장 귀비에게 연락을 보냈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도찰원의 우도사로서 성심을 다해 보답하겠노라고.
원래 결정하고 나면 행동은 빨라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어쨌든 크게 기뻐한 귀비는 이와 같은 일을 대대적으로 공표하였다.
과거조차 보지 않은 일개 무림인이 조정의 중차대한 직위를 수행하게 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으나, 이미 귀비의 수중에 있는 대신들은 조금도 반발하지 않았다.
다만.
“이, 이게 지금 무슨 짓인가!”
“무엇이 말입니까?”
“…….”
영왕이 대노(大怒)하여 찾아왔을 뿐이다.
지금 형장에 잡혀 와 모진 고신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수족 중 하나인 방만평이었으니까.
“네놈이 감히…….”
“…….”
그럴듯하게 도찰원 우도사의 관복까지 차려입은 진무가 단 위에서 뒷짐을 진 채로 쳐다보자 영왕의 노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만 노려봐라.
얼굴 뚫어지겠다.
“네놈이 어찌 이런 짓을……. 대관절 좌도독동지가 무슨 죄가 있어서 잡아들였단 말이더냐!”
“…….”
영왕의 서슬 퍼런 기세에도 진무는 고신을 멈추지 않았다.
치이이.
“끄아악!”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에 살이 타들어 가자 방만평의 비명이 가득 울려 퍼졌다.
“이노옴! 멈추지 못할까!”
영왕의 고함에 진무가 시선 가득 한심함을 담아 그를 쳐다보았다.
배신감이 들겠지.
귀비에게 위계를 펼쳐서 자신을 돕겠다 했는데 갑자기 방만평을 잡아들였으니.
이런 청상보다 못한 놈.
노회한 정치꾼이라는 놈이 어찌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는 진리도 모른단 말이냐?
물론 그 속는 아군이 너지만.
전음으로 설명해 줄까 했지만, 진무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진무가 손을 잡았으나 귀비의 감시는 소홀해지지 않았다.
만약 자신의 설명을 들은 영왕이 표정이라도 바뀌면 귀비가 눈치챌 일이 아니던가?
감시를 받으면 그 감시조차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나중에 영왕을 은밀하게 호위하라고 한 소동보에게 일러 오해는 풀어 줘야 할 듯했다.
“조사 결과, 좌도독동지 방만평에게서 비리 정황이 포착되었소.”
“뭐라?”
“해서 긴급히 잡아들여 문초 중이니 영왕께서는 그만 물러가시오.”
“닥쳐라! 어제까지만 해도 하찮은 무뢰배였던 놈이 무슨 권한으로 군부의 대신을 조사한단 말이냐!”
영왕의 호통에 진무가 피식 웃으며 신분패를 내밀었다.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뭣이?”
“이게 도찰원 신분패라더이다. 황제께서 옥새까지 찍어서 교지도 내리셨고.”
“…….”
“아무리 황실의 종친이라고 하지만 그 같은 사실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요?”
조소를 머금은 진무의 표정에 영왕이 눈가를 씰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혹여 죄인을 방면하라 압력을 가할 생각이라면 그만 돌아가시오.”
“…….”
“만약 계속 문초를 방해한다면 영왕 전하라 해도 두고 보진 않을 것이오. 아시다시피 예를 모르는 무뢰배인지라.”
뿌드드득.
잔뜩 비꼬는 듯한 진무의 말에 영왕이 무어라 답도 하지 않고 이만 부러질 듯이 갈아 대며 돌아섰다.
매우 적절하다.
청상이 뛰어난 계책을 세웠으니 자신이 뛰어난 연기로 그 빛을 더해 준다.
영왕이 돌아간 후 진무는 더욱 잔인하게 문초를 이어 갔다.
“끄아아아악!”
재차 불에 달군 인두에 살이 타들어 가자 방만평이 괴성을 질러 댔다.
그대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충심 어린 너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지금의 너의 비명이 필요하다.
자, 전방을 향해 힘찬 비명 발사!
“끄아악! 끄어어어!”
좋구나, 아주 좋아.
그래야 곤녕궁에 처박혀 있는 귀비의 귀에 더욱 잘 들릴 테지.
진무는 방만평을 시작으로 날이 바뀌는 족족 영왕의 수족을 하나씩 잘라 내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숨긴다고 숨겨지겠냐?
이미 사돈의 팔촌, 일 봐주는 총관 놈의 시시콜콜한 비리까지 전부 내 손에 있느니라!
그렇게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맑은 날 묵은 이불 털 듯 깡그리 털어 낸 진무는 고작 사흘 만에 좌군의 주요 직위자 태반을 잡아들였다.
서창이 영왕 측의 인물들을 제거하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속도였다.
그들은 관인으로서의 절차를 지켰지만, 진무는 그따위 건 싹 무시하고 하오문을 시켜 작정하고 털어 냈으니까.
법도? 절차?
난 그딴 거 모른다.
니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냐?
예의 따위는 배워 먹지 못한 무뢰배라고…….
그러니까 배우지 못한 무뢰배가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봐 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