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77
477화
쿠아아앙!
별안간 측면 뒤쪽에서 들리는 거대한 폭발음에 응조가 눈을 치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폭발로 인해 생겨난 먼지구름과 피떡이 된 채로 쓰러져 헐떡거리는 수하들이었다.
이게 대체?
그리고 서서히 걷히는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우람한…….
“……곰?”
천우명이었다.
“크크크, 이 귀여운 새끼들……. 손톱이 꽤나 귀엽구나.”
사람 소리를 내는 거대한 곰, 아니 천우명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세우는 응조대의 무인들을 향해 비릿하게 웃으며 육중한 앞발, 아니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이내 허옇게 응축된 강기를 머금은 주먹이 곧장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산을 허물고 대지를 짓누른다는 천우명의 일격, 붕산진곤.
꾸아아앙!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힘으로 짓눌러 버리는 일격에 거대한 암석이 떨어진 듯한 충돌음과 함께 십여 장의 대지가 한 번에 내려앉았다.
“크아악!”
비명을 지른 자들은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었다.
붕산진곤의 영역 안에 갇힌 무인들은 대부분 압력에 짓눌려 비명도 못 지르고 짜부라졌다.
“가자! 중심을 꿰뚫어라!”
“와아아아!”
곧장 내달리기 시작한 천우명의 명령과 함께 그를 따르는 무인들이 일제히 전장을 질주했다.
“하압!”
쩌어어엉!
적진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쾌속하게 내닫는 그들의 저돌적이고 무시무시한 돌파력에 앞을 막았던 이들이 낙엽인 양 우수수 튕겨 나갔다.
응조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뒤편에서 기습했기로서니…… 곰 같은 사내를 쐐기 모양으로 뒤따르는 무인의 수가 고작 열 명?
설마 그것밖에 되지 않는 수로 뭘 어찌해 보겠다고 이러는 건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무인들의 수가 무려 이천이었다.
더욱이 그들이 습격한 이곳엔 전력의 핵심인 응조대가 있다.
아무리 강기를 사용하는 놈이라고 해도 정도껏 무시해야지.
“이런 미친놈들이!”
분기탱천한 응조가 지면을 세차게 밟고 솟구쳐 오르며 천우명의 질주를 차단하기 위해 쏘아져 나갔다.
백 장, 오십 장, 이십 장…….
쐐애액!
“뒈져 버려라!”
순식간에 천우명에게 접근한 응조가 날카롭게 세운 손가락을 할퀴듯 휘둘렀다.
짜자자작!
“……!”
대기를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손톱을 본 천우명이 갑자기 방향을 휙 틀었다.
후우우우웅!
응조의 손가락이 깔끔히 허공을 갈랐다.
“이놈! 도망칠 셈이냐!”
“……도망?”
응조의 분에 찬 외침에 천우명이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몸을 홱 돌리며 세차게 주먹을 뻗었다.
쿠루루루!
“……!”
떠어어어엉!
다급히 팔을 교차해 막았으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한참이나 몸을 뒤로 물려야 했다.
강기를 둘러 막았음에도 팔이 욱신거릴 정도의 파괴력이라니?
미간을 찌푸리며 노려보는 응조의 시선을, 멀찍이 떨어진 천우명이 눈을 부라리며 받아쳤다.
“비쩍 곯아 빠진 새끼가 누구한테 도망이래? 나 천우명이야, 이 씨알이 반만 한 새끼야. ”
“처, 천우…… 철혈붕권?”
“어? 날 아네?”
“…….”
“칭찬해 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야. 난 첫 번째 망치라서 빨리 지나가야 하거든?”
“첫 번째? 망치? 그게 무슨 소리냐?”
“뭔진 니가 알 필요 없고!”
히죽 웃은 천우명이 공격은 안 하고 냅다 몸을 돌려 뛰어갔다.
도, 도망을 친다고?
아니, 적의 수장을 봤으면 당장에 달려들어야 마땅한데…….
“비켜라! 이 새끼들아!”
쾅! 콰콰쾅!
잡을 새도 없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리는 그.
그런데 방향이 이상했다.
습격을 했으면 보통 중심을 파고들지 않나? 왜 외곽이지?
대체 이 습격에서 노리는 것이 뭐길래?
뒤쫓는 수하들 틈에 모습을 감추어 버린 천우명을 멍하니 쳐다보던 그때였다.
슈우우우.
뒤편에서 또다시 막대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번엔 마기?
응조가 다급히 고개를 돌린 곳에는 마치 천신이 지상으로 내려앉듯 옷자락을 휘날리며 표홀히 떨어져 내리는 이들이 있었다.
또…… 열 명…….
도대체 이것들이 무슨 짓을?
하지만 황당해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여인이 자신들의 우측에 내려앉는 순간…….
취리릭! 뚜두두둑!
여인, 능서현의 회오리처럼 뻗어 나온 손길에 서너 개나 되는 목이 한 번에 허공으로 떠오르며 피 분수가 솟구쳤다.
“모조리 뜯어 주마!”
“…….”
짙은 마기와 함께 입맛을 다시며 내뱉는 싸늘하고도 흉악한 한마디.
슈아아악!
귀신처럼 휘어지며 파고든 손이 지나갈 때마다 피가 솟구치고, 분리된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오홋홋홋!”
능서현은 미친 듯이 웃으며 사람 머리통으로 길을 냈다.
마치 뜯어내는 것에 강박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이년이 진짜인가? 천우명은 미끼……?
“이런 쌍!”
응조가 이번에는 다급히 능서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멈춰라! 이 망할 년!”
“…….”
파팍! 파파팍!
휘둘러진 응조의 손가락과 능서현의 손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할퀴는 조공과 뜯어내는 수공의 일전(一戰)이었다.
따아아앙!
그 경계의 교점에서 부딪힌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일격을 교환하고 거리를 벌린 응조가 능서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네년…….”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 어디서 이년 저년이야? 내 너랑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참는다.”
“뭐?”
천우명에 이어서 능서현마저 자신을 보자마자 응전할 생각은 하지 않고 방향을 돌려 외곽을 향해 돌진했다.
“이 개 같은 것들이! 대체 무슨 짓거리냐!”
“몰라, 이 새끼야! 나도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 바빠!”
“…….”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일전을 요구하는 응조의 외침에 능서현이 짜증스럽게 대답하고는 또다시 방향을 틀어 도주했다.
정말이지 응조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
순간 뒷골이 팽팽하게 당겼다.
인간이 가진 본능, 육감이 그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섬뜩함에 능서현을 뒤쫓던 응조가 절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건 대체?”
누군가 절벽 위에 나타나더니 아래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허공이 대지인 양, 여유롭게 한 걸음씩.
“느, 능공허도(凌空虛渡)?”
응조의 얼굴에 떠오른 황당함이 경악으로 변했다.
허공을 계단 삼아, 그리고 바닥 삼아 걷는다는 그 전설적인 경지를 펼친다고?
바람에 휘날려 헝클어진 머리하며, 검을 빼지도 않은 채 검집째로 어깨에 비스듬하게 걸치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파락……호가 아니고 도사?
연이은 돌발 상황에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응조의 위에서 도사, 진무가 턱을 살짝 치켜든 채로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염병할 능공허도.
그냥 한번 해 본 건데 내력을 이렇게나 빨아먹다니.
이딴 무공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다시는 안 써야지.
능공허도의 막대한 내력 소모에 속으로 한바탕 짜증을 부린 진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일휘.”
슈우우.
그 짧은 부름에 응하듯, 어깨에 걸쳤던 검이 저절로 뽑혀 나왔다.
“니가 세 번째 망치다.”
진무가 가볍게 손을 뻗는 순간 일휘가 대지를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쐐애액!
적진의 한가운데에.
그 근처에 있었던 이들이 싸움을 멈추고 땅에 꽂힌 일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저 꽂혔을 뿐이었다.
그런데 잔뜩 쫄아 들었던 무인들의 귀에 진무의 싸늘한 말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멍청하게 있다간 피똥 싼다. 이 새끼들아.”
“……?”
그게 대체 무슨 말?
모두가 의아한 시선을 주고받을 때였다.
드드드드.
대지가 진동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쩍, 쩌저저적!
“……!”
일휘를 중심으로 생겨난 균열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졌다.
“피, 피해…….”
쿠아아아아앙!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폭발이 반경 수십여 장을 집어삼켰다.
“끄아아악!”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의 중심.
사르륵.
진무가 부드럽게 내려서자 폭발을 만들어 낸 일휘가 자랑스럽다는 듯 날아올라 그의 옆 허공에 척 멈췄다.
“내공 아까우니 최대한 빠르게 끝내 주마.”
“…….”
어느새 양손에 생겨난 기검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진무가 음산한 눈빛으로 전장을 훑었다.
“자, 그럼 가 볼까?”
파아앙!
땅을 파헤치며 쏘아져 나가는 진무와 그 뒤를 따르는 일휘가 본격적으로 전장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
응조는 그쯤부터는 쫓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망연히 그 깽판을 지켜만 보았다.
와중에 진무가 가세하자 진형을 뚫고 나갔던 천우명과 능서현까지 다시 돌아왔다.
전면전?
아니, 그들은 그저 계속해서 돌파하기만 했다.
눈앞의 적을 미친 듯이 때려 부수며 진형을 헤집는 데 주력했다.
어느 방향에서 치고 들어올지, 어느 방향으로 도주할지조차 정하지 않은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장판파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뚫고 아두를 구했다는 상산 조자룡을 떠올리게 했다.
진짜 문제는 마지막에 홀로 나타난 저놈이었다.
능공허도도 모자라서 이기어검에 쌍 기검까지.
인심이 어찌나 좋은지, 하나만 들고나와도 기함을 토할 전설적인 무공을 혼자서 우르르 쏟아 내는 저 도사 놈.
그런데 사파와 마교의 인물을 동시에 이끄는 도사라면?
“무, 무당지검!”
그제야 깨달은 응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확실하다.
그 강했던 네 명의 궁주들을 홀로 박살 냈다는 그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하북의 방어선이 아니라 이곳에……?
응조의 잘게 떨리는 눈동자에 엉망진창이 된 전장이 비쳤다.
이천의 무인.
그들의 습격이 있었다고 하지만 적지 않은 수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랄 맞게 진을 두들기는 세 사람에 의해 진형이 갈가리 쪼개졌다.
그리고 쪼개진 일부를 향해 외곽을 포위했던 무인들의 공격이 집중되었다.
응조는 그제야 깨달았다.
돌파의 역할은 진형을 잘게 찢는 것.
그리고 찢어진 조각에 포함된 얼마 되지 않는 수는 외곽을 포위한 무인들이 철저히 무너뜨린다.
즉, 전체는 이천이었으나 적의 공격에 노출되는 것은 고작해야 몇십.
놈들은 돌파로 진을 유린하면서 계속해서 수를 줄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와중에 돌파하는 놈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진의 중심이자 핵심 전력인 응조대였다.
돌파가 끝날 때마다 수십 명씩 떼거리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응조는 양 뺨을 두어 번 내리쳐 정신을 차리고 판단을 내렸다.
아직 자신들의 수가 훨씬 더 많지만, 적의 기습에 당한 뒤였다.
더욱이 진무 하나만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인데, 나머지 둘도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이렇게까지 놈들에게 휘둘린 이상 넋 놓고 있다가는 몰살을 피할 수 없었다.
무인의 자존심?
그딴 건 개 먹이조차 되지 않는다.
전세를 가다듬어서 싸우는 것?
괜한 오기를 부렸다가 개죽음당하기라도 하면 말짱 헛일이었다.
애초에 응조가 전쟁에 뛰어든 것은 겪지도 못한 과거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라 새 세상에서 한자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으니까.
물러나야만 했다.
제아무리 놈들이라도 이천이나 되는 수를 무너뜨리자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놈들이 전투에 정신이 팔린 사이 도주해서 지금의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했다.
무당지검이 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방어가 아닌 공세를 선택했다는 것을.
“응조대!”
“예!”
“한곳으로 뭉쳐 쐐기진을 만들어라! 지금 즉시 이곳을 빠져나간다!”
“……?”
응조의 명령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싸움이 한창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자신들이 수적으로 우세했다.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가겠다고?
수장의 명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명하복에 충실하도록 길러진 그들답게 두말없이 응조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가자!”
응조의 명령에 쐐기진이 전장에서 도주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비켜라!”
서걱!
진로를 가로막는 아군까지 베어 낸 그들은 전장을 이룬 진의 끝자락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남은 것은 적을 포위하기 위해 모원려가 만들어 놓은 모루. 넓은 지역에 퍼져 있기에 얼마 되지 않는 적들뿐이었다.
진의 외곽에 있던 하급 무인들이라면 몰라도 응조대라면 충분히 뚫을 수 있었다.
“놈들을 뚫…….”
마지막 장벽에 호기롭게 외치던 응조가 뒷말을 집어삼켰다.
취리릿! 뚜두둑!
선두에서 솟구치는 수하들의 머리와 함께 진형이 무너지고 응조대의 움직임이 멈췄다.
쐐기의 끝이 문드러졌으니 돌파력을 잃은 것이다.
“어딜 가느냐?”
“…….”
온몸을 피로 물들인 능서현이 양손에 뜯어낸 머리통을 움켜쥐고 짙은 마기를 뿌리며 서 있었다.
어, 언제? 분명 뒤에 있었는데?
콰아아앙!
이어 호쾌한 일격으로 쐐기진의 측면을 박살 낸 천우명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를 봤나.”
“…….”
섬뜩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응조의 솜털이 오소소 곤두섰다.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대장이라는 새끼가 수하들을 버리고 도망을 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의 눈동자에,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낸 채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진무의 모습이 가득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