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85
485화
“와아아!”
먼동이 트자마자 공격을 시작한 궁의 함성이 온 산야를 뒤흔들었다.
사람의 의식이 가장 취약한 시간.
평소보다 한 시진 이상 빠른 공격에 군병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막아라! 절대로 뚫려서는 안 된다! 정무맹에 연락을 보내라! 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후방으로 물러난 무인들을 대신해 대동 방어선을 수비하던 군병들을 향해 무장이 목놓아 외쳤다.
쾅! 콰쾅!
엄청난 숫자의 홍건들을 향해 군문이 동원한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포탄이 떨어진 곳이 사방에서 터져 나가고, 사지 육신이 찢긴 홍건들의 비명이 천지를 울렸다.
전장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겁에 질려 땅에 주저앉아 우는 이들, 전장에서 이탈해 제멋대로 도망치는 자들.
방어하는 이들, 공격하는 이들 할 것 없이 똑같았다.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하지만 막아선 이들보다 독기를 품고 공격하는 이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활을 쏘아라! 놈들을 접근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군병들을 독려하던 무장이 큰 소리로 명령하자, 대열의 뒤편에 섰던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퉁! 쐐애애액!
일시에 쏘아진 화살이 하늘을 거멓게 채웠다가 쾌속하게 낙하해 적들의 머리를 꿰뚫고 등에 틀어박혔다.
달려오는 이들의 선단이 꼬꾸라지자 뒤이은 이들이 시체를 넘어 돌진했다.
“이런 개자식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적들의 수에 질린 무장이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적들의 공격을 발견하고 정무맹에 연락을 보냈으나 그들이 도착하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할 터.
그때까지는 군병과 경계를 돕기 위해 남은 무인들로 어떻게든 막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몇이란 말이냐!”
그들이 막고 있는 대동의 길목은 마차 두 대가 한 번에 지날 수 있는 너비의 관도였다.
야지(野地)가 아닌 관도에 적들이 빽빽이 차 몰려오니 그 수가 몇 배나 더 많아 보였다.
죽이고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는 습격에 전략은 무의미했다.
이전의 국지전과는 다른 총공세.
화포를 돌파한 적들이 방어진의 근처까지 도달해 버렸다.
“방패수는 전열을 정비해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라!”
무장이 직접 방패를 움켜쥐고 외쳤다.
동시에 홍건 몇이 방패를 향해 달려들었다가 군병이 세운 창에 꿰였다.
“크억!”
죽어 가는 이들의 비명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겨우 시작이었다.
마치 보(堡)에 물꼬를 터놓은 것처럼 홍건들이 밀어닥쳤다.
콰아아앙!
죽음을 각오하고 온몸으로 부딪혀오는 그들의 공격에 방패수들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버텨라! 밀리면 끝장……!”
군병을 독려하던 무장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훙훙훙, 스걱.
세찬 회전과 함께 날아든 거대한 양날 도끼가 그의 목을 허공에 띄워 올린 탓이었다.
“하압!”
쩌어어엉!
도끼를 던진 사내는 거친 기합성을 내지르며 곧장 방패수를 향해 돌진했다.
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방패의 방어진을 뚫어 버린 사내가 천천히 몸을 세우며 자신의 도끼를 주워 들었다.
“맹부대. 적을 섬멸한다.”
“와아아!”
살기 어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홍건들 틈에 있던 백건의 무인들이 도끼를 들고 방어진 안으로 난입했다.
무력했다.
군병들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대장을 잃었으니 당연했다. 대열이 붕괴되자 그나마 막고 있던 홍건들마저 밀고 들어왔다.
카아앙!
몇몇 무인들이 그들의 도끼를 쳐 내며 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방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되었다.
* * *
“……어, 어어.”
선두에서 적들의 파상공세에 휘말린 많은 군졸 중 열여섯 살의 황칠은 목숨의 위기에 직면했다.
“악독한 중원의 군병 놈!”
“…….”
한 홍건 사내가 주저앉은 그를 흉흉한 눈으로 바라보며 햇빛에 반짝이는 날 선 칼을 높이 들어 올렸다.
악독하다고?
대체 자신과 무슨 원수를 졌기에.
황칠은 밭이나 갈 줄 알던 농가의 아들이었다.
그저 군역의 의무를 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에 강제로 끌려왔을 뿐이었다.
고작 그 이유로 죽음 앞에 강제로 놓이게 된 것이다.
“죽어라!”
못내 억울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빠르게 제 목을 향하는 칼을 본 황칠이 눈을 질끈 감고 곧 닥칠 죽음을 기다릴 때였다.
스걱.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났다.
“뭐 해! 일어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거야!”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황칠의 귓가를 때렸다.
눈을 떠 보니 잘생긴 청년이 홍건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아 보이는…….
“구해 줘서…….”
“지랄하네. 거치적대지 말고 꺼져!”
“예? 예!”
청년의 싸늘한 외침에 황칠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허겁지겁 후방으로 도망쳤다.
“도움도 안 되는 새끼!”
검을 뽑아낸 청년이 황칠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좋아서 구해 준 게 아니었다.
구할 수밖에 없어서 구해 준 거지.
자신이 보기에 홍건이나 황군이나 권력자들의 싸움에 끌려온 건 똑같았다.
그런데 그게 뭐?
어차피 남의 인생이었고, 지금은 누가 누구를 보호하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방어선의 선단이 무너졌고 적들이 난입했다.
고로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물러나야 했다.
청년은 청상이 무당으로 돌아간 뒤 겨우 갑무반의 수장이 된 남궁창위였다.
이제야 차남의 설움에서, 청상이라는 망할 도사의 그늘에 가려 빛도 보지 못했던 설움에서 이제야 벗어나 보는가 싶었는데.
도망가야 한다.
앞으로 무림을 이끌어 가야 할 자신이 여기서 개죽음당할 수는 없었다.
스걱!
눈 깜짝할 새 또 한 명의 홍건을 벤 남궁창위가 용봉관의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용봉관의 무인들은 속히 퇴각로를 뚫고 물러난다!”
그러고는 앞장서 몸을 날리려는 찰나…….
“갑무반주!”
용봉관 무인 하나가 가라는 도망은 안 가고 다급히 그를 불렀다.
젠장, 니들이 먼저 도망을 가면서 시선을 끌어 줘야 내가 편할 거 아니야.
일이 제 뜻대로 풀리지 않자 남궁창위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왜!”
“저쪽에 공동파의 무인들이 갇혔소!”
“뭐?”
황급히 고개를 돌려 한 용봉관 무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확인한 남궁창위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또 발목을 잡는다.
한시바삐 도주해야 하건만, 갑무반주라는 지위가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어찌해야 하나? 혼자서라도 도망쳐야 하나?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젠장, 따라와!”
남궁가의 아들이 전쟁에서 도망쳤다는 오명을 쓸 수는 없었다.
그리 살아남아 봐야 손가락질밖에 더 당하겠는가?
남궁창위는 서둘러 몸을 날려 공동을 포위한 홍건들 쪽으로 향했다.
“하압!”
쩌어어엉!
홍건의 무인이 그의 중검에 강타당해 힘없이 밀려났다.
“종진 도장!”
“남궁 공자!”
“시간이 없습니다! 구파의 무인들도 서둘러 물리세요!”
“하지만 군병들이…….”
“이런 씨발! 지금 남 걱정할 때야! 남 지킬 시간에 너부터 지켜!”
적들의 뒤를 쳐 공동파의 일대제자 종진을 구해 낸 남궁창위가 적들을 향해 검을 세워 위협하며 외쳤다.
“개자식들, 뭘 뜯어먹을 게 있다고 이 지랄들이야? 중원에 꿀단지라도 숨겨 놨어?!”
“…….”
순식간에 퇴로를 막아 버린 적들을 향해 남궁창위가 고함을 지르자 적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뭘 봐! 이 새끼들아! 노려보지 말고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악에 받친 외침에 홍건들의 틈에서 나타난 도끼 든 무인 셋이 곧바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쾌속하게 날아온 도끼의 궤적이 남궁창위의 목, 허리, 무릎을 동시에 노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급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검을 힘껏 움켜쥐며 공격에 맞섰다.
“나 남궁창위야! 대남궁가의 후손이다, 이 말이야!”
양손으로 움켜쥔 중검이 회오리처럼 회전하는가 싶더니, 도끼를 일제히 떨어내고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슈아아악!
일찍이 절대라 불렸던 남궁가 제왕검형 일 초, 개천(開天).
남궁무휴의 그것처럼 하늘을 갈라 여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극한에 다다른 남궁창위의 검에서 수십 갈래의 검기가 유성처럼 쏘아져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콰콰콰!
“크아악!”
검기에 강타당해 머리가 터진 무인은 둘.
남은 하나는 뒤로 몸을 물렸다가 곧장 남궁창위를 향해 도끼를 내던졌다.
“제왕검형이 고작 이 정돈 줄 알아?”
취리리릭!
제왕검형 벽검세, 산 가르기.
몸을 회전시켜 도끼를 피한 남궁창위가 양손으로 움켜쥔 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후우웅!
중단에 멈춘 검에서 생겨난 풍압이 땅바닥을 때리고, 적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단 두 초식으로 셋 모두를 죽여 버린 남궁창위의 입가에 짜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먹힌다.
자신의 검이 적들에게 통한다.
그래, 도망치더라도 최소한 정무맹에 속한 이들과 함께한다면 달콤한 명성이 찾아올 것이다.
남궁창위는 자신을 향해 시선을 집중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전쟁에서 죽는 것이 어디 자신의 잘못이던가?
그래, 좋다. 내가 이끌어 줄 테니 방패막이가 되어 나의 도주를 돕거라.
“크핫핫핫! 잡스럽게 대가리에 끈이나 처묶은 새끼들! 이 남궁창위가 모조리 죽여 주마!”
몸을 돌려 적을 마주한 남궁창위의 얼굴이 비열함을 동반한 희열로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탄기의 극한에 이른 그의 검공이 빛을 발했다.
비록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려는 것이었으나 그를 향한 주목이 그의 무공을 본시 가진 것보다 훨씬 돋보이게 했다.
여긴 내 앞길 막아서던 청상 놈도, 멍청하게 제 사형 편들면서 덤벼들던 청우 놈도 없다.
이제 내 세상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무림의 대영웅이 될 것이다.
“죽어라! 이놈들아!”
생각은 개새끼처럼 했어도 어쨌거나 겉으로 보기에는 범처럼 적을 향해 호령하는 남궁창위의 기세가 모두의 사기를 한껏 북돋웠다.
도주로를 뚫기 위해 앞서 치고 나가는 그의 모습에 움츠러들었던 용봉관 무인들과 공동의 일대제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하는 법.
못해도 적보다 두 배는 되는 힘을 가져야 가능할 일이었다.
군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장에 끌려온 이들의 무의미한 죽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일단 살아야 한다.
살아야 뒤를 도모할 수 있는 법이었다.
“와아아아!”
갑자기 사기가 올라 퇴로를 향해 내달리는 정무맹 무인들의 기세에 당황한 적이 속절없이 밀리며 길을 열기 시작했다.
“뚜, 뚫렸다!”
누군가의 외침에 무인들이 껍질을 깨고 처음으로 빛을 본 병아리인 양 더욱 열성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
남궁창위를 필두로 한 그들의 도주가 막 성과를 보이려는 시점이었다.
슈가가각!
“……!”
십여 장.
몇 걸음만 뛰면 닿을 듯했던 그 빛의 문에서 느껴진 섬뜩한 위화감에 남궁창위가 황급히 몸을 뒤로 꺾었다.
스거거걱!
순간적으로 그를 추월한 공동 제자 둘의 몸이 횡으로 갈라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진 뜨거운 핏물이 남궁창위의 몸을 뒤덮었다.
겨우 뚫었다 여겼던 도주로를 막아 버린 백건의 무인.
서슬이 퍼런 도끼에 실처럼 피어오르는 기운이 그의 경지를 짐작하게 했다.
“적의…… 대장…….”
콰아아앙!
아연히 전방을 응시하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친 폭발음이 들려왔다.
멍하니 고개를 돌려 폭발의 진원지를 확인한 남궁창위의 눈이 일순 찢어질 듯 커졌다.
가공할 위력으로 휘둘러지는 양날 도끼가 만들어 낸 시신 가득한 참상.
“…….”
시팔…… 대장은 따로 있었네.
부릅뜬 눈에 짙은 허망함이 감돌았다.
더러운 세상,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무림의 영웅이 되어 볼까 했더니.
슈가가각!
사정없이 날아드는 도끼에 동료들의 시신이 점차 늘었다.
사력을 다해 제왕검형을 펼치던 남궁창위의 손에 점차 힘이 빠졌다.
그리고 채 막아 낼 수 없었던 도끼가 그의 몸에 깊숙하게 박혔다.
망할 새끼들…… 도끼는 나무 벨 때나 쓸 일이지.
털썩.
먼저 간 동료들처럼 땅바닥에 처박힌 그의 시신 위로 흙먼지가 이리저리 휘날려 흩어졌다.
한여름 밤의 꿈 같았던 그의 호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