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86
486화
“뭣이!”
예상치 못한 전령의 보고에 정무맹의 회의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새벽 시간을 틈탄 적의 습격.
언제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이었으나, 연이은 전투에 이쪽이 지친 만큼 적들도 지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일했다.
하루쯤은 쉬어도 될 것이라 여겼던 그들의 안일함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판단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제갈협진의 사죄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철지량이 자신의 검을 움켜쥐고 일어났다.
“맹주님!”
“이야긴 나중에 하세. 지금은 누구의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닌 듯하네. 우리의 잘못된 판단 하나에 수많은 이가 죽어 가고 있어.”
“…….”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철지량을 따라 양소방, 등여평, 그리고 일전에 입은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벽운영이 뛰쳐나갔다.
쿵!
“제기랄.”
제갈협진이 탁자를 내리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잘못 내린 판단 하나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가고 있다.
하지만 패배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었다.
또한 최하급 무인으로부터 자신, 그리고 맹주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후에 책임을 피할 수는 없겠으나, 지금은 맹주의 말처럼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에도 승리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대군사의 역할이었다.
지나친 흥분으로 일을 그르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냉정해져야 했다.
“후우…….”
깊이 호흡을 고른 제갈협진이 탁자에 놓인 서신을 응시했다.
사패천 총사 적생에게서 날아온 서신이었다.
적의 후방을 공격하고 있다는 진무의 의견을 토대로 작성된 그 서신 한 장으로 인해 지금의 회의가 주관되었다.
지금까지 이어졌던 같은 방식의 전투로는 피해만 늘어날 것이 뻔했기에 변화를 도모하고자 부득불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진무가 보았던 그들의 단점.
결속력이 약하고, 전투 경험이 부족하다.
하니 적들이 예상치 못한 전술을 사용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면 쉽게 와해될 것이다.
어차피 이제 남은 것은 궁의 핵심 무인들뿐. 일이 제대로 풀리기만 한다면 예상했던 것보다 전쟁이 빨리 끝날 수도 있었다.
전장과 적을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보아야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다.
“적의 규모는 파악했는가?”
“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적이 총공세를 취한 듯하다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총공세라고?”
제갈협진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총공세라니, 아직 이르지 않은가?
방어 전선조차 제대로 뚫지 못한 상황에서 대병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궁은 무인 집단이라기보다는 전쟁에 나선 군에 가깝다.
명예가 아닌 승리만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 그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 했다.
무인들에게 있어 희생은 오명이나, 그들에게는 전략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수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그만한 수를 버려 가면서까지 그들이 기대하는 효과는?
대궁주…… 그대는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제갈협진은 텅 빈 회의장의 중심에 덩그러니 놓인 전장 상황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산서성.
좌우로 험준한 산지를 끼고 중심부에 넓게 자리한 평원에 도시가 발달한 지역.
그리고 적들이 점거한 길목, 산서 최북단의 대동.
하북과 섬서로 연결되는 관도가 연결되어 교통이…….
관도? 관도라고?
일순 눈을 크게 뜬 제갈협진이 지형도를 뒤적거려 대동의 세부도를 찾아 살폈다.
“망할!”
놈들이 노리는 것이 설마…… 어찌하여 지금에서야 눈치챘단 말인가?
그저 산서를 미끼로 삼아 하북을 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갈협진이 바라보는 곳은 대동에서 동쪽으로 뻗어 하북으로 이어진 거대 관도였다.
그곳을 따라 하북으로 들어가고, 소오태산을 둘러 지나면?
“자금성……?”
제갈협진이 수많은 가설과 가용한 모든 범위의 수를 떠올리는 때였다.
“대군사님!”
“…….”
전령들이 줄지어 회의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섬서가 공격당했습니다.”
“신강에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
대동의 총공세에 이어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적들의 공세.
그리고…….
“하북의 북쪽에서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는 일만, 사패천이 방비에 들어갔습니다.”
“뭐, 뭐라고?”
경악한 제갈협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쟁의 흐름이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진다.
급류는 둑을 쌓는 이들에게 매우 좋지 않았다. 채 쌓기도 전에 들이쳐 모든 것을 휩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넋 놓고 있을 틈이 없었다.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북쪽 전역에서 공격이 시작되어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사이, 놈들의 본진이 만약 하북이 아닌 대동으로 진격해서 방향을 꺾는다면 하북의 측면.
양동 작전이다.
놈들이 북쪽에 방어선을 묶어 두고 하북의 측면을 치려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는 날엔 자금성이 위험해진다.
황실이 무너지는 것만이 아니다.
자금성이 무너지면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린 무림은 연합할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 진무라는 희대의 무인 아래 삼세가 뭉쳐져 있으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늘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
주인 잃은 나라에는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필시 그들이 내미는 달콤한 미끼에 탐욕을 느낀 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새로이 시작되는 나라의 윗자리에는 도적이 들끓는 법이라지 않는가.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수많은 나라의 주인이 그 자리를 차지한 수단이었다.
지금의 나라도 그리 시작했었다.
그렇기에 태조도 공신과 다름없었던 자들을 모조리 숙청했고, 그 과정에서 홍건이 버려진 것이다.
“맹주께서 이끌고 나간 병력이 얼마나 되는가!”
“이천입니다.”
“이천…….”
후방에 대기 중이었던 정무맹 무인들의 삼 할에 달하는 숫자.
상황이 급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 확인을 해야 한다.
놈들이 정말로 양동을 노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노리는지.
“지금 즉시 하북에 서신을 보내 적들이 양동을 노릴지 모른다 경고하고, 후방에 남은 이들은 전투 준비를 갖추고 명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 이르게!”
“예! 대군사님!”
명을 내린 제갈협진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철지량은 미친 듯이 내달렸다.
스쳐 지나는 나뭇잎이 얼굴을 때리고, 볼에 생채기를 냈으나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경공으로서는 따를 자가 없다는 양소방이 뒤처졌을 정도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급한지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로 인해 일행과 멀어졌으나 중요하지 않았다. 부디 모두가 살아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의 눈에 멀리 대동의 남쪽 길목이 보였다.
콰아아앙!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든 사내가 온 힘을 다해 내리친 일격에 폭발이 일어났고, 도주하던 이들이 충격파에 사방으로 튕겼다.
그리고 그 너머, 적들에게 갇힌 용봉관의 무인들과 공동파의 제자들이 하나둘 적들의 공격에 쓰러지고 있었다.
너무 늦어 버렸다.
어찌하여 좀 더 빨리 오지 못했던가?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목숨 하나는 더 구할 수 있었을 것인데.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사무쳐 가슴이 미어지고, 이내 울분이 되었다.
우우우우!
장소성과 함께 모든 힘을 담은 검이 그의 손을 떠나 벼락이 되어 전장에 내리꽂혔다.
우드득, 콰아앙!
격렬한 분노가 더해진 폭발이 적들의 몸을 갈가리 찢었다.
이미 범해 버린 우(愚)는 되돌릴 수 없음이니.
쑤우욱!
한순간에 뽑혀 나온 기검이 그의 양손에 잡혔다.
그 흉흉한 눈빛에 놀란 적들이 멈칫하며 물러나려 했으나 휘두름은 섬전 같았고, 잘려 나간 육편과 뿌려진 핏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무리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한다고 해 봐야, 결국 자신의 생채기가 더 아픈 법이었다.
이미 철지량의 이성은 사라지고 없었다.
잔혹한 살귀로 화해 칼끝에 닿은 모든 것을 멸하기 시작한 그의 검무에 적들의 시체가 켜켜이 쌓이던 와중이었다.
슈아아악!
“……!”
까아아앙!
검의 궤적을 뚫고 들어온 가공할 일격에 기검을 교차해 막아 낸 철지량이 지독했던 검무를 멈추고 눈앞에 선 자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양날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무인이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이전의 전투에서 몇 차례 싸워 보았으나 이름은 알지 못하는 궁의 무인.
그가 입을 열었다.
“검성 철지량. 이참에 인사라도 나누지. 나는 맹부의 무향…….”
스거걱!
그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철지량은 다시금 몸을 날려 주변의 적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통성명? 그따위 것이 뭐가 중요한가?
분노로 가득 찬 그의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있으니, 적을 닥치는 대로 죽여 구해야 한다는 것.
“이 새끼가.”
졸지에 개무시를 당해 버린 맹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철지량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맹부.
맹폭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포악한 그의 무공, 광풍(狂風).
그는 제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하압!”
높이 솟구친 맹부의 도끼가 수많은 잔영과 함께 철지량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까아앙! 깡깡깡!
학살을 방해받은 철지량이 기검을 휘둘러 막고, 이기어검을 더한 뒤 거리를 벌렸다.
“…….”
하지만 그의 핏발 선 눈은 여전히 맹부가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맹주님!”
뒤이어 쫓아온 양소방이 그의 곁에 서고, 벽운영과 등여평이 뒤이어 도착했다.
“맹주…….”
철지량의 상태가 평소와 다름을 눈치챈 벽운영이 다급히 불기를 운용해 주변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맹주님, 흥분해서는 안 됩니다.”
“…….”
불기가 가진 공능 때문일까?
가슴을 요동치게 했던 분노가 조금씩 걷히고, 눈앞을 까맣게 물들였던 살의가 흩어졌다.
하지만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후우…….”
깊이 심호흡한 철지량이 맹부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자는 내가 맡겠네. 정무맹의 무인들을 구하게. 다만 지금부터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길 바라네.”
“예!”
철지량의 눈빛에 어린 진득한 살기가 거두어진 것을 확인한 양소방 등이 전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검성, 패배하지 않을 그 이름을 믿고.
슈아아악.
허공을 떠돌던 검을 당겨 잡은 철지량의 시선이 맹부를 향했다.
“그래…… 네놈만 죽이면 이 전투는 끝을 맺겠지.”
“…….”
철지량의 한마디에 맹부가 조소를 머금었다.
“가능하겠는가?”
“…….”
양손으로 움켜쥔 양날 도끼를 사선으로 들어 자세를 취하는 맹부의 모습에 철지량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무맹을 대표하는 사람, 검성이라네.”
“……!”
그 한마디가 주는 무게감이 사방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의 걸음이 맹부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동시에, 온 힘을 담은 도끼가 날아들었다.
비무가 아닌, 목숨을 걸고 각기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강과 강의 싸움.
세상에 오직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시작된 그들의 격돌에, 전장에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짜 쇠로 만든 중병인 도끼보다 검성의 얇은 검날이 조금 더 무거웠다.
철지량은 계속해서 나아갔고, 맹부는 상처를 입으면서 조금씩 물러났다.
쉼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싸움처럼, 주위도 치열한 격전을 이어 갔다.
뿌우우!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
쏟아진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홍건들이 전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지금의 전투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