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00
500화 (본편 完)
전쟁이 끝난 이후, 진무가 따로 할 일은 없었다.
모두에게 대충 수습을 맡기고, 그는 무당으로 돌아갔다.
몸이 천근만근이라 쉬어야겠기에.
* * *
탁탁탁.
칼질하는 소리.
지글지글.
조각난 고기가 기름을 뽑아내며 익는 소리.
모처럼 신명 나는 요리 소리가 무당산 충허암을 가득 채웠다.
앞치마를 두른 당세령은 둘째 치고 명진까지 나서서 고기를 볶아 대는 중이었다.
진무는 암자의 주춧돌 위에 앉아 기둥에 등을 기댄 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저걸 내가 다 했었는데.
청우 놈은 돕지도 않고 옆에서 게걸스럽게 처먹기만 했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진무는 한심하단 듯 청우를 힐끗거리다 말고 피식 웃었다.
복스럽게도 처먹는다. 아주 입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구나, 망할 돼지 녀석.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며, 진무는 충허암에 모인 이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감추어졌던 청무 조사의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장서각에서 벗어나 원로원주 자리를 차지한 운공.
전쟁이 끝난 이후 장문인직을 내려놓고 뒷방 노인이 된 전대 장문인 명현과, 꼬장꼬장한 명공을 비롯한 전대 무당의 장로들.
그 뒤를 이어 장문인이 된 진명과 각 궁의 주인이 된 진무의 사형들.
그리고 이대에서 일대로 승격된 청자 배의 제자……들…….
대체 이 새끼들은 왜 죄다 충허암에 몰려와서 지랄들이야?
아무리 예전보다 넓어졌다고 해도 그렇지.
잔치를 하려면 제일 넓은 자소궁이나 연무장에서 할 일이지 왜 하필 충허암이냐고!
쉬러 돌아온 사람 맘 불편하게시리.
진무가 짜증스럽게 인상을 구기는데 청상이 진무의 옆에 놓인 잔을 채우고 구워진 고기를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사숙, 드시겠습니까?”
“…….”
이 망할 자식은 무당지검이라는 게 되바라져서는.
이젠 술과 고기가 아주 생활이구만, 생활.
니가 그러고도 무당지검이냐?
하지만 손과 입은 정직했다.
진무는 술을 입에 털어 넣고 고기를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마치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폭풍?”
“예. 사숙을 모신 뒤로 그 많은 일이 지나갔지 않습니까? 사숙께서 도명을 받으시고 채 오 년도 되지 않았는데요.”
“…….”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하세요.”
“뭐가?”
“사숙께선 마치 인생을 두 번 사시는 것 같아요.”
“응? 뭐?”
이 자식이 그걸 어떻게?
진무가 고개를 휙휙 돌려 천우명을 찾았다.
저놈이 설마…… 말했을 리는 없고.
청우의 옆에서 헤벌쭉 웃으며 게걸스럽게 고기를 처먹는 천우명의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중에 명현에게 술을 받아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다.
야, 근데 넌 좀 심한 거 아니냐?
아무리 지나간 일이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위화감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친한 척을 하는 거냐?
나랑 같이 무당을 파괴하는 데 일조해 놓고…….
진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천우명을 흘기는 사이 청상이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무공도 모르시던 분께서 강의 경지를 깨달은 것도 모자라, 어느새 누가 봐도 천하제일인의 자리까지 오르셨잖습니까?”
“…….”
그 짧은 시간?
청상의 말에 진무가 황당하단 듯 입을 살짝 벌렸다.
이 새끼 진짜 웃긴 놈이네.
나야 이미 갔던 길을 가고 있는 것이지만, 지는 처음 가는 길이면서 벌써 성강에 오른 주제에.
너 인마, 그거 못된 버릇이야.
그거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거라고.
“뭔가 허전하네요.”
“허전해?”
“예.”
“뭐가?”
“무지막지하신 사숙에게 무너지긴 했으나 참으로 대단한 적이었지 않습니까?”
“…….”
“뭔가 갑자기 너무 평화로워진 듯해서…… 목적의식이 사라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진무는 청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볍게 손을 튕겼다.
따아악!
“아극!”
청상이 얼굴을 찡그리며 볼을 부풀리자 진무가 코웃음을 쳤다.
“이놈아. 그게 무당지검이 할 말이냐?”
“예?”
“저거, 계속될 거 같지?”
“……?”
진무가 바라보는 이들.
마교의 능서현, 사패천의 천우명, 그리고 정무맹에 속한 무당의 제자들.
“지금이야 다들 오붓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쪼개진다.”
“…….”
“그리고 분명 싸우겠지. 정사마로 다시 나뉘어서 말이야. 또 희한한 놈이 나타나서 분탕질을 칠 거고.”
“…….”
“무림이란 건 원래 그런 거거든.”
“그게 무슨?”
“장강은 계속해서 흐르고, 물결은 언제나 새롭지.”
“…….”
진무가 청상을 쳐다보면서 빙긋 웃었다.
“그래서 이 바닥이 재미있는 거야. 항상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새로우니까.”
“…….”
곰곰이 말의 의미를 생각하던 청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해야겠군요.”
“그래. 언제나, 항상 준비해야 하지. 급류가 생기더라도 휩쓸려 나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강해지려 노력해야 해.”
“예.”
고개를 끄덕이던 청상이 문득 떠오른 것인지 진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사숙께서는 우 공자를 정식 제자로 들여서 가르치실 건가요?”
“응? 누구?”
“예?”
“아!”
너무 존재감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자신의 첫 제자.
전쟁에 나서기 전에 무당에 두고 갔던…….
퍼뜩 정신이 든 진무가 황급히 우양진을 찾았다.
고개를 몇 번 돌리자 명진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우양진이 보였다.
꽤 친해진 것을 보면 진무가 무당에 두고 간 이후 당세령과 함께 명진의 수발을 든 모양이었다.
아마 명진이 자신의 스승이니 사조라 생각하고 모신 것이겠지.
저놈도 참 한결같은 놈이다.
언제나 묵묵히 제 자리에서 제가 해야 할 바를 다하고 있으니.
“뭐, 글쎄…….”
“…….”
“니가 한번 가르쳐 봐라.”
“예? 제가요?”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상의 술잔을 채우자 청상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흠, 그래 보겠습니다.”
“그래.”
진무가 흡족한 표정으로 술을 병째로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 * *
충허암에서의 시끌벅적한 잔치는 날이 저물도록 이어졌다.
무당 도사들이 돌아간 뒤에도 내내 충허암의 마당에 앉아 있던 진무는 문득 청상의 말을 떠올렸다.
뭔가 허전하다라…….
듣고 보니 그렇다.
정무맹, 사패천, 마교까지.
과거에는 이루지 못한 천하제일의 자리.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뤄 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을 끌면서 천천히, 평생에 걸쳐서 하나씩 잡아먹을 것을 그랬나?
대궁주 놈이 짓밟혀 죽은 뒤로 이제 적이라 부를 만한 것들도 없고.
“휴우…….”
이젠 뭘 할까.
천우명의 기억을 닦달해서 불로초나 찾으러 돌아다닐까?
그럼 스승님도 안 돌아가실 테고…….
아니, 아니다.
사람은 제명대로 사는 것이 제일 좋지.
생각해 보면 참 묘했다.
평생을 비열하게 살아왔던 사패천주 혁련무강이 자신이 무너뜨린 곳에 돌아와 무당지검이 되고 구국의 영웅 대접을 받다니.
시작은 불로초였으나 과정에는 양의심공이 있었다.
태극을 이루지 못했다면 북리도천도, 대궁주도 어찌해 보지 못했을 것인데.
참으로 신기한 무공 아닌가.
마치 내가 익혀야 한다고 누군가가 딱 정해 놓은 것처럼.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신선 놈들은 잘 있나?
처음 태극을 이루었을 때, 아득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만났던 그 망할 신선 놈들.
어찌나 반갑게 맞이하던…… 어?
잠깐만…….
눈이 화등잔만 해진 진무가 별안간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곁을 지키던 천우명은 물론, 황신과 각출까지 고개를 휙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이것 봐라?
이제 보니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이거?
그때 분명 신선 놈들을 만났다.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풍환자 때는 막연히 죽음이라 여겼지만, 어쩌면 죽음이 아닌 새로운 세계일지도 몰랐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분명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할 거야.
아무리 태극을 이룬 나라고 해도 절대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
“크크크.”
진무가 음산하게 웃자 주위에 있던 이들이 소름이 돋아 오르는지 제 팔뚝을 매만졌다.
“그래. 그걸 하면 되는 거였어.”
“…….”
영문 모를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진무가 별안간 고개를 획 돌렸다.
“어? 왜요?”
눈을 마주친 황신이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황신, 가서 신선들에 대한 기록을 모조리 찾아 와.”
“……예? 그게 무슨? 책 읽으시게요?”
“아니!”
“…….”
“무림을 발아래 꿇렸으니…… 이제 신선계를 접수한다.”
“…….”
주먹마저 불끈 쥐는 모습에 황신을 비롯한 모두가 입을 딱 벌렸다.
“하하, 우리 천주님께서 심심하셨구나. 에이, 진작에 말씀하시지.”
“…….”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여긴 황신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웃자 진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 하하…… 혹시 진심이신?”
“당연하지.”
“……그…… 신선계로 가려면 등선을 해야 하지 않나요?”
“해야지.”
“…….”
이 개천주가 뚫린 입이라고 지금.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미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천주님.”
“응?”
“설마 저도 함께 가는 건 아니죠?”
“…….”
황신의 물음에 진무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각출과 능서현, 천우명을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이 새끼들, 말해 무엇하겠니?
“당연히 함께지. 신나지 않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게?”
“…….”
신나?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런 미친 개천주가…….
등선? 등서언?
오를 등(登), 신선 선(仙).
말 그대로 신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말하지만…… 뒈지란 이야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하다 하다 이젠 죽으라고?
뭔, 망발도 정도가 있지…….
모두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진무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뭐야, 그 썩은 표정들은? 싫냐?”
“…….”
똑똑히 보았다.
손목을 움켜쥐고 주먹을 비틀며 웃는 저 모습, 저 망할 송곳니.
씨발…….
“아, 하하하하.”
모두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자, 빨리빨리 움직여!”
안 죽고 등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지.
크크크.
기다려라, 망할 신선 놈들.
내가 간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는 것은 언제나 진무를 즐겁게 했다.
물론, 즐거운 건 그 하나였지만.
* * *
휘이이이.
전쟁이 휩쓸고 간 하북의 전장.
밤이 찾아온 그곳에는 수습되지 못한 시신이 귀기를 뿌리며 썩어 가고 있었고, 지워지지 않은 피비린내가 바람에 날려 퍼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인적 없는 그곳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냉막한 인상의 소년과 바람결에 휑하니 빈 소매를 날리는 노인.
“이곳입니까?”
“예.”
“처참했군요.”
“…….”
“어찌 제게 보여 주십니까?”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원한이라…….”
노인의 말에 소년이 옅게 웃었다.
“그런 게 제게 남아 있겠습니까?”
“……소궁주님의 아버님이셨습니다.”
“아비라.”
소년이 다시금 웃었다.
“그가 아비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었습니까?”
“…….”
“제겐 기억에는 아비도 형도, 어미도 없습니다. 그저 권력의 야욕에 미친 노인과, 사람의 정기를 흡정했던 괴물만이 있지요.”
소년의 말이 황량한 평원에 잔잔히 퍼져 나갔다.
“하지만…… 도전해 보고 싶군요.”
“……?”
“무당지검이라지요?”
“그렇습니다.”
소년의 말에 노인의 안광이 흉흉하게 빛났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신선의 무위를 가지다니.”
“예. 대단하지요.”
“해서 가 볼 생각입니다.”
“예? 어딜 말입니까?”
“무당. 그곳에서 항시 제자를 모집한다더군요.”
“설마 무당의 도인이 되시려는 겝니까?”
“예. 당신이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압니다. 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꿈이라는 것은 스스로 더 잘 아실 테지요. 저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자와 자웅을 논해 보고 싶을 뿐입니다.”
“…….”
“이미 저는 당신의 도움으로 화산 금룡협에 남겨진 묵룡혼원공을 익혔지요.”
“…….”
“이제 무당의 무공만 얻게 된다면 능히 그에게 대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소년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잔혹하게 웃었다.
“호랑이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잡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
뒷말을 흐린 소년이 고개를 돌려 노인을 보았다.
의아하단 듯 마주 소년을 보던 노인의 눈이 별안간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런…… 미친…… 끄으으으.”
소년이 손목을 강하게 틀어쥐는 것과 동시에 급류처럼 사라지는 내공에 노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스걱.
이윽고 소년의 손이 떨어졌을 때, 노인의 목은 몸에 붙어 있지 않았다.
소년은 채 감지도 못한 눈을 하고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통을 향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이 많은 시체에 하나가 더해진다 하여 누가 이상히 여기겠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 장강의 앞 물결이 지나간 자리는 뒤따르는 물결이 채우고, 무림은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는 악인이 되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누군가는 또 다른 기협이 되어 지키는 것을 반복하면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