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11
11화
“거기 멈추어라!”
“…….”
소화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묵룡동을 찾아 헤매던 운연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을 쳐다보았다.
날도 세우지 않아 베이면 잘리기는커녕 살이 밀릴 것만 같은 월도.
날도 춥지 않은데 저마다 자랑하듯 다른 짐승들의 껍데기를 벗겨 입은 털옷.
거기다 저 건들거리는 자세하며…… 누가 봐도 산적이다.
그것도 딱히 세 보이지도 않는, 그저 그런 변두리의 산적.
“어디서 온 놈인지 모르겠지만, 이 길을 지나려면…….”
휙!
“……통행세…… 어?”
무리 앞으로 나서서 영업 시작 전 주의 사항을 외치는 산적 두목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운연이 피식 웃고는 갑자기 몸을 틀어 휭 사라졌다.
산적?
묵룡동 찾기도 바쁜데 그딴 걸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거기 그…….”
운연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닭 쫓던 개 꼴이 된 산적 두목이 눈을 끔벅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저기…… 가 버렸는데요?”
“…….”
산적 두목이 공손하게 말을 건 상대는 웬 소녀였다.
그리고 그 소녀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건 제 잘못이 아닌…….”
그 모습에 산적 두목이 귀신이라도 본 듯이 냅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나머지 산적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소녀가 누구길래?
“젠장…… 뭐 저런 게 다 있어? 산적을 봤으면 응당 반응을 보여야지, 도망을 쳐?”
인상을 험악하게 구긴 소녀의 옆에 뼈다귀를 들고 서 있던 젊은 산적이 물었다.
“형님, 어쩌죠?”
“…….”
그 말에 ‘형님’이라 불린 예쁘장한 소녀가 당장이라도 욕설을 뱉을 듯 그 고운 입술을 삐죽거렸다.
제기랄, 대체 이게 무슨 지랄이야.
아니, 뭔가 물을 게 있으면 그냥 잡아다가 일단 줘 패고, 대답 안 하면 배때지 조금씩 포 뜨면서 물어보면 될 일 아닌가? 뭐 하러 과거 인연이 있었던 만산채한테 보내서 이런 일까지 시켜?
무언가를 곱씹는 듯 연신 달싹이던 소녀의 입술이 문득 파르르 떨렸다.
와중에 이미 얼굴이 팔렸으니까 변장하래서 기껏 저 촌스러운 털옷 꾸역꾸역 입었더니, 이번엔 너무 동안이라서 안 어울려? 험악해 보이지 않아?
누가 동안이고 싶어서 동안이야? 키 크기 싫어서 안 큰 줄 알아?
먹어도 안 크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서 산적처럼 건들거리고 인상을 쓴다고 썼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한참 고민하다 주문한 게…….
“…….”
소녀가 손을 들어 자신의 삼단 같은 긴 머리칼을 한 번 훑고는, 시선을 내려 다홍치마를 꼬나보았다.
“…….”
여자앙? 소녀어?
이런 쌍! 진짜 말이면 단 줄 아나!
아니, 얼굴이 팔렸으면 각출이를 시키든가! 하다못해 소동보도 있는데 왜 나한테 이딴…… 아오, 이놈의 개천주를 진짜!
망할 개천주.
벌써 몇 년을 함께했건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급기야 온몸을 푸들푸들 떠는 소녀의 머릿속에 그간의 노고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구해 오라던 자료 중에 ‘등’ 자만 들어가 있어도 몰래 빼돌린 지가 어언 오 년이다.
내가 그놈의 등선을 막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삐댔는데.
눈치 없이 열심히 하는 각출과 소동보도 틈틈이 줘 패 가면서, 정말이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제 겨우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 포기하나 했더니, 웬 이상한 놈이 나타나서는…….
“그래, 이게 다 저 새끼 때문이야. 뜬금없이 묵룡기를 익히고 나타난 저 쌍놈 새끼, 자근자근 다져서 육전을 빚을 새끼, 매일 아침 뼈째로 갈아서 마실 새끼……. 이번 일만 끝나면 저 새끼 반드시 포 뜬다. 안 뜨면 내가 황신이 아니라 콩신이다.”
“…….”
소녀가 운연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질식할 듯한 한기를 쏟아 냈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부숴 버릴 거야. 사지를 찢고 육신을 조각낼 거야.”
“…….”
황신과 각출.
그들은 진무가 내린 모종(?)의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형님.”
“왜?”
“제 생각엔 방법을 바꿔 보시는 게…….”
“…….”
황신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각출이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황신의 얼굴이 시뻘겋다 못해 숯처럼 시커메졌다.
“이 씨발! 그게 지금 무슨 개소리야!”
“하지만.”
“닥쳐! 뭔 되지도 않는 걸 계략이라고 지껄여? 걱정 마라. 나 황신!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고야 만다.”
“…….”
각출을 매섭게 나무란 황신이 언뜻 광기까지 일렁이는 눈동자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잠시 후…….
“새끼, 니가 뛰어 봐야 벼룩이지.”
그 좋은 청각으로 위치를 알아낸 황신이 흉흉하게 웃으며 구일식을 향해 말했다.
“야, 일식아.”
“마, 만산채주 구일식!”
황신의 부름에 산적 두목이 고개를 벌떡 쳐들고 힘차게 외쳤다.
“동남쪽, 거리 삼백 장. 어디쯤이냐?”
“그…… 미역골, 미역골입니다!”
“좋아. 그곳에서 잡는다. 반드시……. 애들 다 불러서 물샐틈없이 포위해라. 놓치면 니들은 나한테 뒈진다.”
“…….”
목소리를 쫙 까는 것도 무서워 죽겠는데, 눈을 홉뜨며 손에 든 비수를 혓바닥으로 핥기까지 한다.
꿈에서도 나올 것 같은 섬뜩한 으름장에 구일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놈들은 도대체 자신과 무슨 악연일까?
대체 왜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걸까?
과거 진무가 중원의 모든 산은 내 것이라며 개소리를 늘어놓을 때 가장 먼저 박살이 났던 비운의 산채가 바로 만산채였다.
그때 풍비박산 난 산채를 이제야 겨우 재건하고, 흩어진 수하들을 모았는데…….
구일식은 이번 일만 끝나면 다신 산적질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뭐 하냐? 안 뛰냐?”
“가, 갑니다! 가요! 얘들아! 가자! 미역골이다!”
“예!”
……일단은 뛰었다.
* * *
“멈추어라!”
“…….”
미역골이라 이름 붙은 계곡을 뒤지던 운연이 산적의 우렁찬 외침에 인상을 찌푸렸다.
또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번엔 아주 도주로까지 차단하고 포위를 하고 있었다.
운연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놈들과는 다른 놈들인가?
하긴, 산적들이란 게 차림이 거진 대동소이해서 멀리서 보면 그놈이 그놈인 법이다.
젠장,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더니 이 작은 산에 뭔 놈의 산적들이 이리도 많아?
태평성대라더니 죄 개소리였네. 아주 산적들끼리 나라도 세우겠어.
그리고 화산파가 근처에 있다더니 관리를 안 하는 건가?
정파면 정파답게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치안 유지를 하는 게 마땅하거늘, 제 놈들 문파와 이리 가까운 곳에서 산적들이 활개 치게 두다니…….
과연, 상관평의 말대로 정파 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듯했다.
“하아……. 대체 니들 나한테 왜 이러냐?”
깊은 한숨을 내쉰 운연이 산적 한 놈에게 물었다.
“왜 이러……냐고?”
“그래. 나한테 뭔 꿀이라도 발라 놨어? 왜 다들 나한테 들러붙는 거냐?”
“…….”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하지 못해서였을까?
산적 두목 구일식이 잠시 눈을 끔벅이면서 생각했다.
“그…… 그래! 통행세! 통행세를 내라!”
“지랄하고 있네.”
“…….”
“여기가 길이냐?”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런데 무슨 통행세를 내라는 거냐?”
“…….”
운연의 말에 구일식이 입을 딱 다물었다.
길이 아니니 통행세를 낼 필요가 없다.
논리적이다.
역시 배운 놈은 다르구나.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끔벅이자 운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딱 봐도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것들이 진짜……. 내가 지금 바쁘거든?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마. 다른 사람들을 털어 먹든 죽이든 신경 안 쓸 테니까.”
“…….”
무울론! 그러고 싶었다.
정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신경 끄고 싶었다.
하지만…….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리니 빌어먹을 소녀가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다.
화난 게 분명했다.
구일식은 이를 악물었다.
논리는 씨발, 이쪽은 그딴 게 통할 인간들이 아니다.
그래, 뭐라도 하자. 뭐든 저 어린 악마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이런 씨부랄! 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다는 거냐! 여기 소화산은 우리 만산채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길이든 아니든 통행세를 내!”
“…….”
구일식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물고 늘어지자 운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대하지 말자.
굳이 산적들과 드잡이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기력 낭비이다.
설마하니 또 산적을 만나지는 않겠지.
“그래, 가져가라.”
운연이 품에서 원화관주 진허가 용돈으로 쓰라며 내주었던 전낭을 꺼내 구일식에게 던졌다.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지만, 애초에 그는 돈에 그다지 큰 욕심이 없었다.
평생을 없이도 잘 살지 않았던가?
지금 중요한 것은 몇 푼의 돈이 아니라 묵룡동이었다.
누가 찾기 전에 반드시 자신이 찾아야만 했다.
시간을 끌어 좋을 것이 없었다.
툭.
“됐지? 적은 돈 아니니까 그것 받고 꺼져라. 귀찮게 하지 말고.”
“어?”
구일식이 제 발치에 떨어진 묵직한 전낭과 운연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눈을 끔벅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짜고짜 시비를 걸고 싸우라고 했는데, 이렇게 쉽게 통행세를 줘 버리면 어쩌라는…….
“그럼 간다!”
“……어? 어어?”
구일식의 답을 듣기도 전에 운연이 재빨리 몸을 틀어 달렸다.
안 돼……! 또 놓치면……!
“이런 씨팔! 잡아!”
“……?”
이판사판 막무가내인 구일식의 외침에 포위망을 유지하던 산적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운연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이놈들이 통행세도 주었는데…….
어쩔 수 없다.
다 쓰러뜨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포위망에 구멍만 내고 도망친다.
결심한 그가 빠르게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슈아악!
일단 날아오는 월도.
평범한 찌르기에 불과하다.
하아, 하지 말라니까. 귀찮게시리.
휘릭!
달리는 그대로 자세를 비튼 운연이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억!
“꺼어억!”
복부를 맞은 산적이 새우처럼 몸을 접는다.
하나, 공격하는 순간의 멈칫거림 때문이었을까?
슈아아악!
쓰러진 놈의 좌우에 있던 놈들이 월도를 교차하며 그어 왔다.
휘릭!
재빨리 뒤로 제비를 넘은 운연이 회전한 그대로 땅을 짚으며 양발을 차올렸다.
뻑! 뻐벅!
턱이 허공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그대로 나동그라지는 산적들.
순간적으로 포위망에 공백이 생기자, 운연은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저런 멍청한 새끼들이…….”
단 두 번의 공방에 산적들의 포위망이 뚫리자 지켜만 보고 있던 소녀 황신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나서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산적들에게 위치 알려 주고 지켜만 보라는 엄명이 있었던 터라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씨팔, 어쩌지?”
이러다간 또 놓치게 생겼고, 그렇게 되면 후환이 몹시 두려워지는데…….
“형님!”
“…….”
옆에서 각출이 고민에 빠진 그를 채근했다.
젠장, 젠장!
짧은 순간 수만 가지 고민을 하던 그의 귀에 ‘바스락’하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크게 들려왔다.
이, 이 발소리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개천주가 분명했다.
그가…… 그 지랄 맞은 작자가 저놈을 한 번 놓친 걸로 모자라 또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 흘러간 구타의 추억들이 차례차례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형님!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이.”
황신의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래, 놓쳐서는 안 된다.
이미 개천주가 도착해서 지켜보고 있으니만큼, 반드시 여기서 잡아야 한다.
우선은…… 놈이 절대로 도망칠 수 없게…….
힐끗 쳐다보니 각출이 눈에 힘을 잔뜩 주고 고개를 끄덕인다.
황신은 어금니를 한 번 꽉 깨물고는, 힘차게 뛰어나가 철푸덕 쓰러지며 혼신의 힘을 다해서 외쳤다.
“사, 살려 주세요!”
“……!”
“……?”
순간 모두가 동작을 멈춘 채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가녀린 자세로 바들바들 떠는 황신을 쳐다보았다.
막 그 자리를 벗어나려던 운연도, 산적들도…….
오직 그를 종용했던 각출만이 만면 가득히 미소를 띠고 자랑스럽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형님, 쪽팔림은 잠깐입니다.
닥쳐…… 이 거지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