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10
10화
휘이이…….
삭풍이 스치고 간 절벽에 먼지바람이 인다.
펄럭.
절벽의 상단에 고정된 철대에 새로이 달린 깃발이 힘차게 나부끼며 그 안에 적힌 글귀와 문양을 보란 듯이 드러냈다.
마(魔)
이곳부터가 신강을 지배하는 단체, 즉 신교의 대지임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하나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 여겨졌던 이곳에는 이제 거대한 관도가 나 있었다.
좌우의 협곡을 통으로 뚫어 만든 거대한 길가에는 객점과 좌판들이 즐비했고, 각종 상단의 마차들이 줄지어 관문을 넘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관도의 끝자락에는 신교의 심장부인 천산이 있다.
비록 무림은 다시 정사마로 갈라져 다투고 있었으나, 그것은 무인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싸울 놈들은 싸우되, 관련 없는 자들에게 폐 끼치지 말 것.
송곳니까지 노출하며 당부(?)한 덕인지, 진무의 규율은 나름대로 잘 지켜지고 있었다.
무인은 무인들끼리, 상인들은 상인들끼리, 백성은 백성들끼리…….
만약 이를 어기는 불온한 세력이 생기면?
그땐 전 무림의 지탄을 받는다.
일견 가혹한 결과였지만, 실상 경고 조치에 불과했다.
왜냐고?
진무가 나섰다가는 아예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릴 테니까.
주춧돌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고…….
하여 허락된 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했던 마의 대지가, 이제는 수많은 이가 오가는 교역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 * *
다다다다.
누군가의 급한 발소리가 눈 덮인 천산의 상층부에 지어진 전각으로 향하는 계단을 울렸다.
달음박질의 주인공은 날카로운 인상의 여인이었다.
하얀 입김을 뿜으며 한달음에 거대한 전각의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곧장 문을 열었다.
벌컥.
“으, 추워라.”
천산의 칼바람에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며 들어온 그녀가 전신을 포근히 감싸는 내부의 온기에 긴 숨을 내쉬었다.
타닥, 타다닥.
불씨가 사그라들자 화로에 장작을 던져 넣던 이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냐?”
“죄송합니다.”
핀잔에 급히 고개를 숙인 그녀는 십이동천 감찰단주 능서현이었다.
“한데 이 시간에 어찌 홀로 계십니까? 마강은 어디 가고요?”
“몰라. 뭐 할 일이 있어야지. 그놈도 심심한지 요샌 잘 안 붙어 있어.”
“음, 늦은 혼례를 치르더니 색시 옆이 좋은 모양이지요.”
“흥! 다 늙어선……. 망할 놈, 평생 따라다니며 충성을 바치겠다더니 다 헛말이었던 게지.”
그리고 투덜거리며 웃는 노인은 다름 아닌 신교의 교주 대리 북리도천이었다.
진무에게 패한 뒤, 석좌에서 물러나 버린 그는 모든 일에서 일시에 손을 떼 버렸다.
흥미가 사라진 것이다.
“통 수련도 하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더 강해져서 뭐 하게?”
“그래도…….”
“쓸데없는 소릴. 평생을 마공을 익히며 살아온 내가 진무 그놈처럼 등선을 할 것도 아니고…….”
쉴 새 없이 툴툴거리는 그를 보며 능서현이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일전에 삼동천 쪽에서 반란이 일어나 천산을 나갔다고 들었는데?”
“아, 그쪽 일은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해결이 되었다?”
“예. 여전히 과거의 망령을 쫓는 이들이 규율을 어기고 상인들에게 세금을 과하게 받아 낸 모양인데……. 적절히 손을 봐서 무공을 폐하고 관에 넘겼습니다.”
“관은 염병……. 걸핏하면 모가지를 뽑아 놓던 네가 어찌 그리 물러졌누? 그런 놈들은 싸그리 효시(梟示)를 해야지. 그래야 본이 서는 게야.”
“…….”
북리도천이 언짢은 표정을 짓자 능서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교주께서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명색이 도사이신데…….”
“하! 도사? 그놈이 도사냐?”
“교주 대리님.”
“아서라. 그놈은 그저 탈만 쓰고 있는 놈이다. 속에는 아주 질 나쁜 놈이…….”
“…….”
코웃음을 치며 이죽대고 있지만, 그의 눈동자에 실린 감정이 짙은 그리움임을 그녀가 어찌 모를까?
북리도천.
말이 교주 대리이지, 여전히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다.
손끝 하나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
비록 진무에게 패하였으나 여전히 신강의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추앙했고, 그를 위해 매년 초가 되면 건강을 기원하는 제례를 지내기도 했다.
하나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항시 고독해 보였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자들이 느끼는 고독.
올라 보지 못한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그 감정은, 그를 쓰러뜨리고 신교의 주인이 된 진무가 떠난 이후 더욱 심해졌다.
“도사라니, 그딴 웃기지도 않는 소리…… 떼잉.”
요즘의 그는 늘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뒤안길에 서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처럼.
능서현은 여전히 최강으로 군림할 힘을 가진 그가 약해져 버린 모습이 못내 안쓰러웠다.
“교주 대리님.”
“왜?”
“제가 즐거워하실 만한 소식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즐거울 만한 소식? 또 누가 결혼한다냐?”
“결혼이요?”
“됐다. 귀찮다. 웬만하면 니가 알아서 처리해라. 필요하면 내 가서 자리는 빛내 주도록 하마.”
“…….”
손사래를 치고는 화롯불을 쬐는 그의 심드렁한 태도에 능서현이 싱긋 웃으며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이게 뭐냐?”
“읽어 보십시오.”
“…….”
설명 한마디 없이 대뜸 눈앞에 들이닥친 서신에 북리도천이 뚱하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뜬금없이 서신은…….
무기력하게 겉봉을 훑던 그의 눈이 발신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번쩍 뜨였다.
“이, 이게?”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눈동자 가득 피어오르는 생기.
“예에. 맞습니다.”
능서현이 빙긋이 웃자 북리도천의 얼굴에 가득했던 주름이 인두로 밀어 버린 듯이 활짝 펴졌다.
사람이 어찌 이리도 달라질까?
다 늙은 얼굴이 젊디젊은 청년의 그것처럼 변하는 모습에 능서현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 이놈이 서신을 보냈어?”
“예. 황 호위가 쓴 것이나, 교주께서 전하라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으래애?”
북리도천이 포장된 장난감을 개봉하듯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바삐 서신을 뜯었다.
능서현이 말하는 교주가 누구이던가?
바로 진무다.
“응? 이건 뭐냐?”
“예?”
능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저 진무에게서 온 서신인 것만 확인하고 뜯어 보지도 않은 채 급히 달려온 참이기에 내용은 아직 몰랐던 것이다.
“야율성?”
“……?”
“쳇, 망할 놈이 놀러 온다는 소식인 줄 알았더니…… 대관절 이놈이 누구길래 뒷조사를 해 달라는 게야?”
그가 잔뜩 김샌 표정으로 서신을 휙 내던졌다.
성질 급하시긴…… 한데 야율성이 누구지?
처음 듣는 이름에 능서현이 재빨리 바닥에 떨어진 서신을 주워 내용을 읽었다.
“흠…….”
운남, 역문현, 야율성.
세세히 캐서 보고할 것.
신강에 들른다는 말은 고사하고, 안부 인사 한 줄 없었다.
북리도천이 실망을 느낄 만도 했다.
“에휴, 무심한 놈을 기다린 게 잘못이지. 그냥 니가 알아서 잘 처리해라.”
“예, 교주 대리님. 삭월천에 일러 확인하라 하겠습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북리도천이 실망 가득한 얼굴로 손을 휘휘 저었다.
이전보다 더 힘이 빠진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서신을 만지작거리던 능서현이 문득 전서구가 날아왔다는 지역을 떠올렸다.
아! 그렇지!
“교주 대리님!”
“거참 귀찮아 죽겠네. 왜? 또 뭐?”
“이거 발신지가 소화산이지 않습니까?”
“소화산? 그게 뭐? 어쩌라고?”
“황 호위가 이쪽에서 서신을 보냈다면…….”
“보냈다면?”
능서현이 의미심장하게 말끝을 흐리자 북리도천이 은근한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물었다.
“교주께서 소화산으로 향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렇……지?”
“흐음, 이거 뭔가 재미있을 듯한 냄새가 나는데요.”
“……그, 그래?”
“예. 아시잖습니까? 그분 성격. 등선한답시고 두문불출하신 지가 오 년인데…… 갑자기 소화산에 가셨다면?”
“그, 그런가?”
“그렇죠.”
“…….”
북리도천이 무지막지하고 무시무시하던 옛 모습과는 달리 뭔가를 기대하는 아이처럼 눈을 도르륵 굴렸다.
“가 보실래요?”
“가라고?”
“예. 어차피 오시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참에 나들이 겸 직접 다녀오시는 거죠.”
“……나들이라.”
북리도천이 눈을 끔벅거리며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콧김까지 씩씩 뿜으면서.
한눈에도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모습에 능서현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길게 생각 마시고 한번 다녀오시지요. 신교의 일은 육가의 가주들과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그에게서 이렇다 할 대답이 없자, 달래는 투로 권하며 재차 서신을 훑던 능서현이 고개를 들어 화로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뭐 하냐?”
“…….”
“서신 온 지가 한참 되었을 터인데, 그놈이 딴 데로 새 버리면 어찌한단 말이냐?”
“…….”
방금까지 실의에 빠져 화롯가에 앉아 있던 노인네가, 어느새 벽에 걸려 있던 외투를 걸치고 서 있었다.
……괴, 굉장하시네.
“삭월천에 일러서 야율성이라는 놈과 그 사돈의 팔촌…… 아니, 아예 그 성씨 가진 놈들 모조리 조사해서 쓸 만한 내용을 추려서 나한테 먼저 보고하라고 해. 내 섬서에 가서 직접 교주에게 전할 것이다.”
“…….”
순식간에 원기를 회복한 듯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명령하는 북리도천의 활기찬 모습에 능서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감찰단주 능서현! 교주 대리님의 명을 받습니다.”
“오냐! 그리고 마강도 불러오너라. 바로 출발할 것이다.”
“예!”
야율성.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그의 이야기로 인해, 전란이 끝난 뒤 오랫동안 웅크렸던 무림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정파도, 사파도, 마교도.
진무로 인해서.
사실…… 까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 * *
섬서성, 소화산(小華山) 북쪽 산자락.
약관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마차 바퀴 자국이 어지러이 나 있는 산길을 걷고 있었다.
“후우…….”
불안한 기색으로 주위를 살피며 걷던 사내는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히 뒤쫓는 자는 없나 보군.”
안도한 표정으로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은 사내는 다름 아닌 운연이었다.
단강구의 해월각.
막판에 들킬 뻔하긴 했지만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었다.
하나 흔적이 남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무당 도사.
그 옆방에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객점 주인을 심문하면 바로 나올 일이 아니던가?
그 대단하신(?) 진무와 연을 맺은 곳인데 모질게야 대할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심히 불안했다.
해서 허름한 뒷골목 포목점에서 칙칙한 검은 옷을 구해 입고 죽립으로 얼굴을 가려 신분을 위장한 뒤, 인적 드문 산길을 골라 달리고 또 달렸다.
막 도명을 받은 터라 그를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도착한 섬서성 소화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소화산에 들어오고 나서는 사람은 고사하고 아예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것이…… 아무리 산중이라지만 뭔가 적막하달까?
마치 이 소화산에 자신뿐인 것만 같은 그런…….
당장에라도 저쪽에서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그런…….
대낮인데도 갑자기 오싹 소름이 돋았다.
“……하, 하하. 귀신은 무슨! 내가 원체 주의를 기울여서 그런 거지. 암, 마을이 있을 만한 곳은 죄 피해 와서 그런 것이 분명해!”
아무도 없는데 마치 누가 들으라는 듯 가슴을 탕탕 치며 소리친 운연이 자세를 편하게 풀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귀신 따위에 쫄…….
“핫핫! 핫핫핫!”
일부러 숲이 떠나가라 크게 웃은 운연이 다시금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귀신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해월각 밀담에서 듣게 된 소화산의 또 다른 묵룡동. 바로 그것을 찾아야 했다.
그들의 말처럼 금룡협 묵룡동이 가짜는 아니었지만, 내공법만이 남아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채기라 불리는 내공법.
운연이 익힌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하긴, 줄곧 의문스럽기는 했다.
진무라는 자는 분명 금룡협에서 얻은 묵룡혼원공의 무학을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묵룡동에는 채기법만 남아 있었을까?
하지만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감춘 것이다.
제 놈만 가지려고…….
금룡협의 묵룡동으로 사람들을 현혹한 것이다.
즉, 진짜는 이곳에 있다.
도사가 되었으니 무당의 무공을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기다 양의심공도 얻었다.
채기법은 익혔으니 이제 남은 건 내공법이 아닌 묵룡혼원공의 무공 구결.
그것만 자신이 찾아내고 나면?
진무가 익힌 모든 무공이 자신의 손안에 들어온다.
비로소 그와 동등한 조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찾아야 한다.
누구보다 먼저…….
운연이 음산한 미소와 함께 바위에서 일어났다.
“크크크, 망할 진무 놈. 듣던 대로 도사답게 간악하고 야비…… 응?”
운연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읊조리는데,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은 운연이 고개를 휙 돌리자……!
푸드득!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뛰쳐나왔다.
“……망할, 귀신인 줄 알고 식겁했네.”
구우? 구구구구.
“…….”
겨우 안도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비둘기가 아장아장 걸어오면서 운연을 향해 고개를 비틀었다.
구구, 구구구.
“…….”
구구?
“닥쳐, 이 비둘기 새끼야! 모가지 확 꺾어서 튀겨 버리기 전에!”
푸드드득!
별안간 내지른 외침에 놀란 것일까?
산비둘기가 열심히 날개를 퍼덕이면서 날아갔다.
“좋아, 일단 찾는다. 알고 있는 이들이 있는 이상 이제부턴 시간 싸움! 무조건 내가 먼저 찾는다!”
마음이 급해진 운연이 짧은 휴식을 끝내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저 쌍놈의 연자 새끼가…….”
산비둘기가 뛰쳐나왔던 덤불에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귀신 같은 표정을 한 진무가 걸어 나왔다.
이 망할 새끼가 뭣이 어째?
간악하고 야비가 뭐?
내가 지금은 선하디선한 도사다만, 대충 이십몇 년쯤 전에는 그 말 한마디에 무당도 날리고 그랬거든?
해검지 피바다에 팔궁 불바다, 어?
심심하던 차에 잘 걸렸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내 이놈의 새끼를 그냥…….
“동보!”
“옙!”
“소화산 쪽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말라고 전달했지?”
“그럼요! 당연하지요! 아까 방문하셨던 한 곳만 빼고요.”
사실 전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정파 사파 할 것 없이 소화산에 발끝이라도 걸치고 있는 세력들은 이미 소식 듣고 싹 빠져나간 지 오래였으니까.
작금의 무림을 살아가는 이라면 괜히 진무와 엮였다가 좋은 꼴 못 본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딱 운연만 몰랐다.
귀신?
멍청한 놈.
함께 다녀 봐라. 그딴 게 무서운 축에 드나.
처맞고 처맞고 또 처맞고, 쉴 때쯤 처맞고, 밥 먹다 처맞고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진무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어여쁜 구미호가 나타나 유혹하면 되레 그 간을 빼 먹을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 좋아. 그래, 아주 좋아. 아주 그냥 모처럼 흥미가 진진~한 게!”
“…….”
“어디 한번 갈 데까지 가 보자, 이 빌어먹을 놈의 새끼.”
소동보는 벌게진 얼굴로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 대는 진무를 애써 외면했다.
근데 대체 저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묵룡기를 익힌 것을 알았으면 그냥 평소대로 잡아다가 줘 패 가며 실토하게 만들 일이지…….
대체 왜! 무슨 생각으로! 굳이 이 지랄까지 하시는 걸까?
그리고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알기로도 진무는 세상에서 가장 간악하고, 야비하고…….
……하지만 절대로 말하지도, 물어보지도 말자.
저리 어금니까지 꽉 깨문 이상, 저 지랄투성이 심심파적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절대로 궁금해해서는 안 된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
괜히 물었다가…… 자신이 제일 먼저 등선할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황신 형님과 각출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실수하면 뒈진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