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20
20화
“스, 습격입니다!”
“……?”
얼근하게 술이 오른 조율강이 갖은 아양을 떨어 대며 본원의 행수를 접대하는 중, 갑자기 문을 열어젖힌 무인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조율강은 몽롱한 정신에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습격? 누가 이 밤에 삼문협 남부지역 사파 최대 조직인 비사당을 습격한단 말인가?
관일 리는 없다.
이미 똥구멍이 축축해질 정도로 많은 뇌물을 뿌린 덕분이다.
“오경문이 위험합니다! 당주!”
“……!”
고개를 좌우로 휘청거리던 조율강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오경문이?”
“그, 그렇습니다.”
“이게 무슨!”
순간 취기가 달아난 조율강이 얼굴을 와락 찡그리며 일어나자 악공들이 급히 음악을 멈추었고, 시중을 들던 이들이 겁에 질려 바닥에 엎드렸다.
“조 당주, 문제라도 있는 모양이오.”
“아, 아닙니다. 문제라니요? 작은 소란일 테지요.”
“그런가?”
“예. 저희가 하는 일이 워낙 좀 그러하다 보니 비일비재하게 있는 일입니다. 행수께서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급히 해결하고 돌아와 다시 뫼시겠습니다.”
“그리하오.”
행수라 불린 사내, 이역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몸을 돌린 조율강의 얼굴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감히 어떤 찢어 죽일 놈이 겁도 없이 비사당에 쳐들어왔단 말인가?
오경문이 위험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외당과 내당을 이어 주는 그 문까지 지키는 놈들이 오십이 넘거늘.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내 뼈째로 갈아 마실 테다.”
조율강이 눈 끝을 치켜세우고 걸음을 재촉하자 그의 호위이자 비사당의 최정예 무인 스물이 열 지어 뒤따랐다.
쩌어엉! 따당!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창검의 치열한 소음에 걸음을 재촉한 그들이 막 오경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콰아앙!
“…….”
커다란 폭음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오경문이 산산조각으로 터지고, 잔해가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저기 널린 나뭇조각들과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이 짓이겨져 버린 수하들…….
조율강이 찡그려진 얼굴로 부서진 문 너머를 노려보았다.
어둠을 밝히던 화로가 전투로 인해 쓰러져 불이 꺼졌음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꿀꺽.
누군가 삼킨 침 소리에 긴장감이 진해졌고, 비사당의 최정예 무인들이 조율강의 앞을 가로막으며 칼을 곧추세웠다.
저벅, 저벅…… 저벅.
점차 발걸음 소리가 느려지더니, 발 한 짝이 불쑥 나타났다.
휘익, 털썩.
이내 제 발치에 와 떨어진, 안면이 완전히 함몰된 시신을 힐끗 본 조율강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피에 흠뻑 젖은 머릿결, 어둠처럼 검게 빛나는 눈동자로 스산한 살기를 뿌리는 사내.
달빛 아래 마침내 완전히 드러난 그의 모습은 막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 같았다.
“네놈은…….”
“…….”
순간 조율강은 움찔 놀라 숨을 삼켰다.
눈빛이…….
마치 누군가 가슴에 손을 꽂아 넣고 심장을 비틀어 짜는 듯했다.
“후우, 후우…….”
“…….”
식은땀을 흘리며 사내의 거친 호흡 소리를 듣던 조율강이 호위들 뒤로 슬쩍 발을 물렸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면 앞선 싸움으로 인해 지친 것이 분명했지만, 셀 수 없는 사지를 지나온 그의 경험이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이자는 좋지 않다고.
눈빛을 보내 수하들에게 검진을 구축하라 지시한 조율강이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네……, 아니 그대는 누구요? 누구길래 우리 비사당을 공격한 것이오?”
“……비사당.”
“……?”
“큭큭, 곧 뒈질 짐승 떼에겐 꽤 아까운 이름이네.”
“뭐?”
후우웅!
거친 바람이 훅 불어닥치고, 전신에 소름이 싸늘하게 돋아 올랐다.
“이, 이게 대체?”
조율강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쿠르르르.
운연은 자신에게 남은 모든 기운을 단번에 개방했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대기를 비틀어 놓으며 일렁거리는 살기.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포한 묵빛의 기운, 묵룡기였다.
진무의 구타로 인해 기맥의 흐름이 더욱 자유로워진 운연의 기세는 이전보다 더 힘차고 강해져 있었다.
짜증 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으로 배우는 것만큼 빠른 수련법은 없다는 걸.
그리고 그 방면에 있어서 진무는 천하제일의 사부라는 사실을…….
쿠우우우.
그의 몸 주위에 휘돌며 솟아나는 기운과 함께 전신의 근육이 한껏 이완되고, 근육 한 올 한 올에 묵룡의 기운이 스몄다.
검은빛 사기가 눈동자에 어리어 흑요석처럼 반짝거리는 순간, 운연은 비로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묵룡이 된 것이다.
“……큭큭, 인정해야겠네. 정말이지 쓰레기를 처리하기에는 딱 좋은 힘이야.”
“…….”
묵룡혼원공 박투술, 흑룡난투.
내리 처맞기만 한 것 같은데, 이리 몸에 아로새겨져 있을 줄이야.
“지금부터…… 모조리 죽여 주지!”
꾸우우……쾅!
싸늘한 말과 함께 힘껏 대지를 짓밟은 운연의 신형이 검은 섬전처럼 뻗어 나갔다.
“이런 젠장! 쳐라!”
검진을 갖추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검은 빛줄기를 토해 내며 곧장 자신을 향해 쏘아져 들어오는 운연의 모습에 대경한 조율강이 다급히 몸을 물렸다.
으드득! 콰아아앙!
조율강을 막으며 나섰던 호위가 검을 뻗기도 전에 주먹에 맞고 우그러졌다.
그러곤 곧장 그의 손과 발이 비사당 무인들 사이를 헤집었다.
쾅! 콰쾅!
정교함 따윈 없었다.
묵룡의 박투는 상대의 방어 자체를 무시하는 무호흡의 연환기.
빠르고 투박했으나 무엇보다 강렬했다.
날카롭게 세워 휘둘러지는 용의 발톱은 맞서는 적들의 살점을 갈가리 찢었고, 휘돌려 차는 발은 흑룡의 꼬리가 되어 모든 것을 으스러뜨렸다.
슈아악! 스걱, 스슥!
다만 아직은 완전히 단단하지 못했던 탓에 운연의 몸 또한 적이 휘두른 칼에 수없이 베였다.
피가 튀고, 옷자락이 잘리고…….
하나 그의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고, 기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흉포해졌다.
“크아악!”
“끄어억!”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비사당의 무인들은 마치 검은빛 불꽃에 뛰어든 불나방처럼 속절없이 스러졌다.
“이, 이런 괴물 같은 놈이……!”
조율강은 눈앞의 상대가 자신뿐 아니라 비사당 무인 전체가 덤벼도 안 될 만큼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벗어나야 했다.
그와 철천지원수도 아닌데 상대해 무엇 한단 말인가?
목숨이 먼저다. 이딴 비사당 따위, 버린다 해도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
세상에 나쁜 짓 할 놈이 어디 한둘이던가?
수하들을 도륙하는 운연의 모습에 결심을 굳힌 조율강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이 개새끼가! 놓칠 줄 알아!”
꾸우우웅!
거칠게 밟은 일보에 대지가 깊이 패며 뒤흔들렸다.
“……?”
다급히 고개를 튼 조율강의 눈동자에 높이 떠올랐다가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운연의 모습이 비쳤다.
이런 씨발…….
조율강은 응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후우웅!
그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둘 사이를 파고들어 조율강을 밀어 내고 운연의 주먹을 튕겨 내었다.
떠어어엉!
“크으으윽!”
거친 폭음과 함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이나 밀린 운연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치들었다.
조율강의 앞을 막은 호리호리한 체구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중년 사내, 시합원 행수 이역근.
“해, 행수님!”
“허허, 조 당주. 금세 처리하고 온다 하더니 꼴이 영 사납구려.”
“죄, 죄송합니다.”
급히 사과하는 조율강의 입가에 어느 틈엔가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순간의 격돌이었으나 이역근은 멀쩡했고, 밀려난 놈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
본원의 행수가 훨씬 더 윗줄의 고수라는 뜻이고, 그 뒤에 선 날 선 기세의 무인들도 결코 약하지 않으니…….
살았다.
별 괴물 같은 자식이 습격해 비사당을 쑥대밭으로 만들긴 했지만, 승부는 이쪽으로 기운 것이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너는 누구냐?”
“…….”
“꽤나 악착같은 표정인데, 어째서지? 어째서 비사당을 공격한 것인가?”
이역근의 물음에 거칠게 피 섞인 침을 뱉어 낸 운연이 주먹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한경홍…….”
“뭐?”
“지금은 그래. 그래서 구해야 하고, 니들을 죽일 생각이야.”
“…….”
그의 이름을 들은 이역근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가, 이내 동그랗게 뜨며 경악성을 토했다.
“하! 이런, 이런! 한경홍이라니……. 설마 한씨 놈의 핏줄이 남아 있었나?”
“…….”
“재미있구만, 재미있어. 그래서 그리 악착같은 표정이었군. 제 백성을 구하려고 말이야.”
“…….”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네게는 그들이 지켜야 하는 백성인지 몰라도 내게는 돈줄이거든. 그리고…….”
말끝을 흐리며 히죽 웃음을 머금는 순간, 그의 신형이 불쑥 움직였다.
“……!”
발을 내디디는 것과 동시에 지척까지 다가오는 그의 빠른 속도에 운연이 다급하게 팔을 교차했다.
쩌어어억! 터어엉!
“크으윽!”
교차한 팔 위로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
재차 뒤로 쭉 밀린 운연의 몸이 담벼락을 때려 부수며 처박혔다.
“크으으…….”
내상에 더해진 충격 때문이었을까?
운연이 무너진 담벼락의 잔해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며 비틀거렸다.
“저런, 눈빛이 쓸 만하길래 뭐라도 할 줄 아는 줄 알았더니 그리 약해서야……. 어쨌든 잘되었군. 네놈의 머리를 잘라 가면 꽤 상금이 두둑하겠어. 한씨의 잔당이 아니라 그 수괴의 핏줄이라니…… 이거야 원. 이런 횡재가 있나.”
“…….”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이역근의 모습에 운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그 꼴을 하고도 싸워 볼 생각인가?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는 거다.”
운연이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아 내며 투기를 끌어 올리자 이역근이 고개를 저었다.
슈우욱, 턱!
행수가 손을 뻗자 근처에 있던 칼 하나가 날아와 잡혔다.
곧이어 쑤웅 하는 공명음과 함께 검 위에 덧씌워지는 허연 강기에 운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기랄. 어쩐지 충격이 상당하더라니…….
강기의 고수를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그래야 놈들에게 잡혀간 이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
“뭐든 간에 나는 머리만 필요하니.”
“…….”
운연은 미간을 좁히며 칼을 사선으로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행수를 노려보았다.
멀쩡한 상태로도 어려울 고수. 심지어 내상까지 입어 버렸다.
하지만 죽기를 각오하면, 어쩌면…….
때마침 묵룡의 박투술도 배우지 않았던가?
각오를 굳힌 운연이 곧장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려 주먹을 움켜쥐었다.
놈의 검날이 자신의 목을 파고드는 순간, 나는 놈의 심장에 손을 박아 넣을 것이다.
오너…….
빠가가각!
“크으윽!”
운연이 죽기를 각오하고 자세를 낮춘 순간, 무언가 그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눈앞이 하얘지는 엄청난 충격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운연이 그대로 앞으로 처박히며 개구리처럼 뻗었다.
여, 여기서 암습이라고?
방심했던 것인가? 적에게 뒤를 내주다니…….
겨우 몸을 일으키는 운연의 귓가에 이곳에서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하! 나 이 새끼가. 며칠 배웠다고 지렁이 정도는 돼 보이길래 지켜봤더니……. 누가 니 맘대로 뒈질 각오 다지래?”
“……?”
“……?”
별안간 뚝 나타나 운연을 세차게 후려친 사내의 행동에 나머지 전원의 움직임이 멈췄다.
칼을 들고 다가오던 행수도, 주위에 있던 무인들도…… 간신히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앉은 운연도.
누……구?
그리고 대체 언제?
“어? 어어? 어어어?”
“…….”
오직 단 한 사람.
전 야금당 소속이며 현 비사당 당주인 조율강만이 눈을 찢어지도록 부릅뜨고 입을 딱 벌린 채 사시나무처럼 떨어 댔다.
어찌 잊겠는가?
저 얼굴, 저 미소…….
“지, 지…….”
“뭘 더듬거리고 지랄이야?”
“…….”
사내가 씩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