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43
13화
“헥, 헥…….”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지?
진무는 약간 질린다는 표정으로 대사충들을 바라봤다.
신나게 두들겨 패긴 했는데, 터지기는커녕 외상을 입은 놈들이 하나도 없다. 되레 패는 자신이 지칠 지경이었다.
오직 도산옥의 주인만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참말인 모양이었다. 자신은 아직 그 정돈 안 된다는 소리였고…….
어쨌든, 대사충들은 수차례 처맞고 겁을 먹었는지 더 공격하지 않고 물러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만 하자. 상선씩이나 되는 자신이 말 못 하는 짐승을 괴롭혀서야 되겠는가? 지계에 대해 설명해 줄 쓸 만한 정보원을 얻기도 했고…….
참, 그놈은?
진무가 그제야 생각이 난 것인지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끄아아아아아!”
“…….”
공중으로 던졌던 놈이 이제야 떨어지고 있었다.
근데 방향이 좀 틀어졌나? 머리 위로 던졌는데 왜 대사충 쪽으로 떨어지지?
슈우우우.
운석처럼 낙하하는 이생을 잡아채려 진무가 몸을 움직이는데…….
텁!
물러나 있던 대사충 한 마리가 떨어지는 이생을 빤히 쳐다보다가 본능적으로 받아먹었다.
“…….”
순간 제 행동에 놀란 것인지 대사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무의 눈치를 살폈다.
“하, 이 새끼가 그렇게 처맞고도…… 착하지? 그거 먹이 아니야.”
-크르르…….
제법 맛있었나?
두려움보단 식탐이 앞섰는지 대사충이 낮게 으르렁거리자, 진무는 어깨에 걸쳤던 여의를 슬그머니 내려 잡았다.
“뱉어.”
퉤!
눈을 부라리며 위협하는 진무의 말에 기겁한 대사충이 냉큼 이생을 뱉었다.
끈적거리는 체액으로 범벅이 된 이생이 모래 위에서 버둥거리는 사이, 진무가 여의를 어깨에 다시 걸치고 대사충들을 향해 말했다.
“살려 줄 테니, 그만 가라.”
-크륵?
“더 맞을래?”
순간 대사충들이 동시에 고개를 젓는 것처럼 보인 건 착각이었을까?
“앞으론 아무거나 먹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알겠어?”
-크륵! 크륵!
진무가 여의를 역(逆)소환하자 놓아주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대사충들이 누가 잡을세라 모래 속으로 쑥 파고들어 사라졌다.
“새끼들, 그래도 말은 알아듣는 모양이네. 하긴 뭐, 비교하자면 천계의 선금과 비슷한 녀석들이니까.”
진무가 옷에 묻지도 않은 먼지를 탁탁 털며 이생 쪽으로 내려섰다.
“자, 이제 이놈을 데리고 가서…….”
이생을 향해 손을 내밀던 진무가 멈칫했다.
뭔가 끈적끈적한 거랑 모래가 잔뜩……. 더럽다. 손 안 대고 싶다.
그러다 씩 웃었다.
음, 이럴 땐 그 녀석을 불러야지. 언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숨어서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지 않던가?
손바닥에 자충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혹시나 위험해지면 곧바로 도우러 오려고…….
“청사앙!”
“예? 예! 사숙!”
들킨 청상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급히 뛰어왔다.
“어디 다친 덴 없으십니까?”
“다 봐 놓고 딴소리야? 그리고 내가 다쳐? 벌레 따위한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여기긴 했으나…….”
“…….”
청상이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자 진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얘 데려가자.”
“예?”
“지금부터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자면, 지계에 대해서 아는 놈이 필요할 거 아냐?”
“음, 그렇군요. 알겠…….”
진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생 쪽으로 손을 뻗던 청상이 멈칫했다.
끈적한 게…… 만지고 싶지가…….
“뭐 해? 들어.”
“…….”
“내가 들어?”
“아, 아닙니다. 제가…….”
“빨리 가자. 계획 세우려면 훤히 드러난 곳보다는 남들의 눈에 안 띄는 곳이 좋아.”
“……눼.”
휘적휘적 칼바위산 쪽으로 걸어가 버리는 진무를 원망스레 쳐다보곤, 청상은 고민에 빠졌다.
나뭇가지라도 있으면 들것이라도 만들어 데려갈 것인데, 황량하기만 한 사막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하아, 손은 대고 싶지 않고, 대체 어떤 방법으로…….
“아!”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손뼉을 짝 소리가 나게 치며 이생을 바라봤다.
“음, 미안하네.”
“……응? 뭐가 미안하시다는 겐지?”
푸욱!
푹? 뭔 푹?
이생은 눈을 부릅뜨고 제 어깻죽지를 쳐다봤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검이…… 어깨를 꿰뚫고…….
“끄으…… 끄아아악! 갑자기 왜!?”
“미안하네, 손으로 만지긴 좀 그래서. 무량…….”
“……!”
습관적으로 도호를 왼 뒤, 청상은 이생을 자충으로 꿰어 들고 진무를 뒤따랐다.
그의 어깨 위에서 덜렁거리며 잡혀가는 이생으로서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앞선 요급 판관분과는 달리 착하게 생겨 기대했는데, 악독하기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놈 아닌가.
도대체가…… 손대기 싫다고 칼로 꿰어서 들고 가냐? 와중에 뭐? 무량이 어째? 그게 지계에 사는 나찰귀한테 할 말이냐? 어!?
이건 뭐 칼로 찌르고 죽으라고 주문 외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럴 거면 하계의 도사처럼 부적도 뿌려 보지!
망할 자식이 어디서 못된 것만 처배워서!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것 같구먼!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계는 원래 힘센 놈이 제일인 법이고, 먼저 간 놈이 대사충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는 것을 본 뒤이다.
와중에 제 몸을 꿴 칼도 법구인 걸 보면 수하 놈도 판관급이란 뜻이었다.
아프지만, 마음에 안 들지만……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 * *
“예? 도산옥이 어떤 곳이냐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
진무의 물음에 이생이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나찰귀인 자신도 충분히 느낄 순 있다. 그들의 몸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대사충을 두들겨 패던 엄청난 신위.
필경 요급의 판관인데, 그런 자가 어찌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인가? 아무리 타계에서 승진해서 도산옥으로 부임해 왔다 해도 그 정도 기본 지식은 습득하고 와야 정상 아닌가?
“너, 어째 눈빛이 좀 그렇다?”
“예?”
“게슴츠레한 게…….”
“……!”
땅바닥에 기대어 앉았던 진무가 언짢은 표정으로 여의를 소환하자 이생이 식겁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지계에서 몇 되지도 않는 요가 체통도 없이 지 기분만 나쁘면 습관적으로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고 지랄이지?
와중에 옆에 있는 넌 또 쓸데없이 충성스럽고 지랄이야! 손바닥에서 검 뽑지 마!
몽둥이 꺼내는 놈이나 그 옆에서 손바닥에서 날카로운 검을 꺼내는 놈이나……. 정말이지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다. 이생은 다급히 진무의 물음에 대한 답을 와르르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해십니다! 도산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육계마왕 중 한 분이신 협비 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으로…….”
힘센 놈이 까라면 까야지. 그게 지계의 불문율인데…….
눈물을 삼키며 줄줄 늘어놓는 이생의 상세한 설명에 진무와 청상이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지계는 하계에서 수많은 죄를 지은 망자들이 속하게 되는 곳이다.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향하는 화갱(火坑), 불효와 불충한 이들이 가는 박피(剝皮), 악랄한 짓으로 사기를 친 이는 한빙(寒氷), 살인한 이는 아비(阿鼻), 혀를 잘못 놀려 죄를 지은 이는 발설(拔舌), 그리고 폭력을 행한 이들이 가는 도산(刀山).
말하자면 나쁜 짓을 일삼았던 혼들에게 영겁의 고통을 주는 감옥 같은 곳이랄까?
지계에 있는 대부분은 환생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죽지도 못한 채 매일 혀가 뽑히고 살가죽이 벗겨지며, 또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아야 한단다.
“…….”
진무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그럼 천계로 오지 못한 자신의 지인 중 누군가는 전부 그런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단 말이 아닌가?
“빌어먹을…… 지계로 온 녀석들을 반드시 구해야겠네.”
“예?”
“아니야, 계속해 봐.”
“……예.”
이생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니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야, 잠깐만.”
“예?”
“그럼 그들을 관리하는 너 같은 놈들은 뭐야?”
“에이, 뭘 그런 걸 물으…….”
픽 웃던 이생이 진무의 찡그려지는 미간을 보곤 대번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실 수 있죠! 당연한 질문이십니다. 바로 괴(怪)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괴?”
“예.”
“그게 뭔데?”
“…….”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생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빤히 쳐다봤다.
“왜?”
“아니, 왜 자꾸 다 아시는 걸…….”
빠악!
“켁!”
질문의 대가는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닥치고 계속 설명이나 해. 쓸데없이 처맞지 말고.”
“……예.”
속으론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지만, 이생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애초에 대사충처럼 지계에서 살아온 생물과는 별개로, 지계에도 신분 구분이 있었다.
최하급은 이승에서 저지른 죄에 따라 각 계로 나누어져 형벌을 받게 되는 망자와 아귀. 그 형벌 속에서 어느 정도 죄악이 사라지면 마력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괴라고 한다.
망자나 아귀가 괴에 오르면 본격적인 지계에서의 삶을 인정받게 되는데, 대다수는 하계의 사람들처럼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고, 몇몇은 이생처럼 죄인들을 지키는 나찰귀 같은 직위를 가지기도 한다.
그다음이 법구를 얻어 힘을 가지게 되는 대괴, 즉 판관이라 불리는 자들이다. 천계로 치면 상선이요, 하계로 치면 일파의 문주급에 해당한다.
“그럼, 세력도 키울 수 있단 말이야?”
“암요! 당연하지요.”
“호오? 그래? 그다음은?”
“판관님처럼 요(妖)가 된 분들이지요.”
“…….”
요와 귀, 그리고 마. 상제급에 해당하는 힘을 가진 지계의 권력자들이다. 귀모와 육계마왕이 마에 속한 자들이고, 이십팔수의 수좌와 같이 지계를 지키는 무장들의 우두머리가 요나 귀에 속한 자들이었다.
“야, 그럼 능력만 되면 언제든지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거야?”
“에이, 잘 아시면서…….”
“…….”
스윽.
진무가 친절하게 여의를 들자 이생이 기겁하며 외쳤다.
“헉! 아무렴요! 지당하신 말씀이시지요! 능력만 된다면 판관은 물론이고, 옥주까지도 오를 수 있습니다.”
“일개 망자도 가능한 일이야?”
“그렇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아비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
“하계에서 악행을 무진장 쌓았다는데, 올라오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마력을 얻더니 엄청난 속도로 세를 모아서 승차했다고 하던데요? 듣기론 아비옥주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판관들이 말하는 걸 주워들은 거라……. 뭐라더라? 하계에서의 이름이 북리 뭐라고 했는데?”
“…….”
순간 진무는 물론이고, 청상의 눈까지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북리도천?”
“아! 맞습니다. 북리도천! 역시 요에 오르신 분이라 친분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
이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무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북리도천이 지계에 있었어? 와중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고?
“크크크…….”
잊고 있었던 자신의 숙적, 북리도천의 소식을 알게 된 진무가 얼굴을 일그러뜨려 가며 웃었다.
이생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지계는 마교와 너무도 흡사하다. 강자존. 오직 힘으로써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
북리도천에겐 너무도 익숙한 곳이 아니겠는가? 또한 자신에게도…….
워낙에 삶이 그래 왔다.
사파였을 때도, 도가였을 때도, 심지어 상선의 경지에 오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성질머리로는 주먹보단 말이 앞서야 하고, 패는 것보단 설득해야 하는 신선 노릇보단 지계의 삶이 훨씬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자신이 언제부터 계략이나 세워 뒤통수를 치는 일을 했다고……. 성벽이 가로막으면 뚫고, 적들이 다가오면 그 중심에 뛰어들어 적장 대가리부터 깨던 자신이 아닌가?
이렇게 된 이상! 옥주고 나발이고, 그까짓 거 전부 두들겨 패고 짓밟아 주는 것이다. 혹시 또 알아? 귀모를 쓰러뜨리고 지계를 차지하게 될지.
아, 물론 그 과정에서 옥황과의 약속은 지켜야겠지. 스승님과 청우를 이상한 걸로 환생시키게 둘 순 없으니까.
여하간 한 놈씩 줘 패서 무릎 꿇리다 보면, 업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타라는 놈도 만나지 않겠는가? 청염, 그놈도 마찬가지고.
“크흐흐, 크핫핫핫!”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원대한 꿈이 생겨 버렸다. 진무가 크게 웃으며 송곳니를 완연히 드러냈다.
옆에서 지켜보는 청상으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저 송곳니……. 저럴 때마다 사달이 나도 크게 나지 않았던가?
하아, 사숙? 또 뭘 꾸미시기에…… 그리 신나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