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
55화
“네놈의 무공. 어디서 배운 것이냐?”
뭔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 다 있단 말인가? 무당의 제자가 무공을 무당에서 배우지 어디서 배워?
과거라면 양소방의 머리끄댕이부터 잡고 시작했겠지만.
“어떤 무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은 무당의 제자인 진무는 공손하게 되물었다.
“네놈이 더 잘 알텐데?”
“무슨 말씀이신지?”
진무가 영문 모를 표정을 했다.
사실이 그랬다. 양소방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무는 무당의 제자가 된 이후로 사파의 무공을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익히려면 당장에라도 사파의 무공을 극성까지 익힐 수 있었으나 몸 안에 자리 잡은 육양신공으로 인해 익혀도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무릇 내공을 기반으로 한 무공은 다른 내공을 익혀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즉, 지금의 진무로서는 육양신공, 즉 선기를 기초로 한 무공만 사용할 수가 있었다.
“놈, 네놈이 쓴 무공은 필시 그들의 무공이다.”
그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진무뿐 아니라 명충과 진궁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쯧!”
짜증스럽게 혀를 찬 양소방이 가볍게 손을 떨쳤다.
팡!
곧게 뻗은 일장이 허공을 때리며 강렬한 파열음을 만들었다.
“어?”
그 모습에 진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양소방을 쳐다보았다.
“그 무공을 어떻게?”
진무가 알은체를 하자 양소방이 매섭게 고함을 질렀다.
“역시, 네놈! 그들과 연이 닿았더냐!”
“…….”
하지만 진무는 여전히 양소방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가 화를 내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다만 양소방이 어떻게 무월루에서 만난 노인의 무공을 아는지가 궁금했다.
양소방이 펼쳐 낸 일장.
완벽하다. 무월루에서 만난 노인이 펼쳐 낸 일장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자신이 수도 없이 시도했지만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는.
“말해라! 네놈이 어찌 그 무공을 아는지!”
양소방이 왜 화를 내는지는 몰랐지만.
“실은…….”
진무가 이전에 단강구에 내려왔을 때 무월루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따라 한 거라고?”
“예.”
“…….”
그럴 리가?
양소방은 진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진무의 말은 거짓이라 볼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묻고 있는 것은 ‘무촌경(無寸勁)’이라는 것이다.
통칭 ‘그들’이라 불리는 자들이 사용하는 그것은 중원의 무학과는 궤를 달리했다.
양소방 자신도 그것을 흉내 내는 데 꼬박 삼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물론 밥만 먹고 그것만 수련한 것은 아니었지만, 단 한 번 보고 따라 할 만큼 간단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네놈이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양소방이 노려보았지만 진무의 눈빛에는 한 점의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기에.
“좋다! 네놈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내 직접 확인하겠다.”
양소봉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일더니 그의 손이 빠르게 진무를 향해 뻗어졌다.
명충과 진궁이 반응조차 하지 못할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
촤라락!
곧장 심장을 노리고 날아든 일장에 진무가 미간을 깊이 찡그리며 태청산수로 막으려는데.
‘이건!’
눈앞에서 사라진 손바닥이 갑자기 가슴팍 한 치를 두고 나타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마치 순간적으로 허공을 뛰어넘은 것 같았을 정도로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손이 물러나는 진무의 속도를 끈질기게 따라잡고 있었다.
‘망할 거지새끼가!’
양소방이 펼친 것은 개방의 은밀한 비공인 쇄심파(碎心把).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과거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쇄심파는 심장을 부수는 살인 기예로, 형체 없는 물과 같았다. 정해진 형태가 없는 일격의 초식. 강한 힘으로 짓누를수록 더욱 집요해지는 일장.
지금의 진무로서는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적어도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사실 정도일까.
즉, 일종의 시험.
전력이 아니니 충분히 막을 가능성이 있었다.
재빨리 태청산수를 거둬들인 진무는 양손으로 공을 잡듯 쇄심파의 기운을 감싸 쥐었다.
‘적어도 쪽팔리게 으드득 소린 듣지 말아야지!’
감싼다, 둥글린다.
비틀고, 뿌리친다.
무당 태극권형의 핵심이자 기본인 비틀기(纏絲勁: 전사경)이다.
힘을 빼 쇄심파의 흐름에 기운과 움직임을 동화시키고 그 회전이 한계에 달해 멈칫하는 순간.
진무가 있는 힘껏 역(逆)으로 비튼다.
순행에 역이 걸렸으니 흩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지만 말이 쉽지.
한순간이라도 어긋나면 질러진 일장에 가슴뼈가 작살 난다.
취리릿! 파아앙!
진무의 손을 따라 쇄심파에 실린 기운이 역으로 회전하며 흩어졌다. 하지만 그 손바닥은 막아 내지 못했다.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뻐걱!
“컥!”
손바닥에 가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진무의 신형이 튕겨 나가며 구석에 처박혔다.
“어르신!”
명충과 진궁이 급히 양소방의 앞을 가로막았다.
“……!”
하지만 양소방은 되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놓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딱 쓰러질 정도의 충격을 받게끔 힘을 주었고, 반드시 그리되었어야만 했다.
원래는 개방 무공 중 가장 은밀하게 전해지는 쇄심파를 보여 주고 흉내 낼 수 있겠느냐 물으려 했었다.
본 적이 없으리라.
진무는 물론 명충조차도 본 적 없을 것이다.
제대로 보여 준 자들은 이미 다 죽었으니까.
그렇기에 만약 자신이 보여 준 쇄심파를 흉내 낼 수 있다면 믿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맞아야 할 쇄심파를 막아 낸 것도 모자라 그 안에 실린 기운을 아예 흩어 버렸다.
“크윽,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거지새끼가! 죽일 생각이냐!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째려보는 게 다였다.
“…….”
그 말에도 양소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의 쇄심파가 흩어진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네놈, 어떻게?”
“아무리 무림의 어른이라 해도 다짜고짜 때리시다니. 너무하시네요.”
“아, 아니 그건.”
“뒷골목 무뢰배도 아니고, 내 참!”
진무가 짜증스럽게 가슴을 털고 일어났다.
충격이라곤 조금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놀람을 넘어 황당할 정도였지만, 목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확인해야 했다.
“따, 따라 해 볼 수 있겠느냐?”
“뭘요?”
“방금 내가 펼친 무공.”
양소방의 말에 진무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어째서 이 같은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거지새끼가 하여간 의심은 많아서. 사람이 말을 하면 믿을 것이지, 굳이 이런 방법까지 동원해?
진무는 슬슬 기분이 언짢아졌다.
“어르신.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짜고짜 진무를 공격하시더니, 이번엔 따라 해 보라니요?”
명충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하며 얼굴을 굳혔다.
진궁 또한 마찬가지의 표정이었다.
진무의 뛰어남이야 인정하지만, 어찌 사람이 한 번 본 무공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진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무당의 빛이 될 인재를 잃을 뻔했다.
모익상을 이긴 후,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서 진무는 무당의 미래를 짊어질 유능한 인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죠?”
진무의 물음에 양소방이 당황을 감추고 대답했다.
“네 말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못 하면요?”
“정무맹의 옥사에 갇혀 고문을 받겠지.”
이런 잔악무도한 새끼들. 대놓고 고문하겠다는 말을 잘도 한다.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쇄심파?
까짓거, 누가 못 할 줄 알고?
이렇게 된 이상.
“좋습니다. 까짓거.”
“뭐?”
“응?”
뭐가 좋다고?
진무의 반응에 양소방을 말리려던 명충과 진궁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진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단 말이죠?”
“그래.”
“예. 그렇단 말이죠?”
거지새끼…….
진무는 이미 쇄심파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미 과거에 몇 번이나 보았고, 그에 대한 파훼법도 수차례 고민했다.
진무에게 있어서 쇄심파는 무월루에서 만난 노인의 ‘무촌경’이라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물론 진무를 무당의 어린 도사로만 생각하는 양소방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휙, 휙휙.
가볍게 손을 움직여 보는 진무의 모습을 주시하던 양소방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어?’
순간순간 손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쇄심파를? 어, 어떻게? 정말로 한 번 보고 따라…….’
양소방이 당황하는 순간 진무가 사악하게 웃으며 걸음을 내딛는다.
“자, 그럼 해 볼까요.”
“아, 아니, 자, 잠깐…….”
파앙!
이미 확인은 끝났다. 방금 전 진무가 손을 움직인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진무는 한 번 본 무공을 따라 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진무의 몸이 명충과 진궁의 사이를 지나 바닥을 낮게 쓸 듯이 쏘아져 왔다.
“이, 이런!”
놀란 얼굴로 서 있던 양소방의 심장을 향해 진무의 일장이 솟구치듯 뻗어 온다.
‘헛!’
쇄심파다.
따라 한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쇄심파였다. 그것도 엄청난 내기가 실린.
쿵!
양소방은 재빨리 바닥을 힘껏 밟으며 물러났다.
휙!
그 순간 쇄심파를 담은 진무의 손바닥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
심장이 아니라 옆구리?
따라 한 것도 모자라 응용까지 한다고?
양소방은 급히 몸을 틀며 일장을 받아쳤다.
휙!
“……!”
헛손질.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사라진 진무의 손바닥이 양소방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성에 양소방이 급히 고개를 뒤로 꺾었다.
치이익!
스치고 지나가는 손바닥에 볼이 찢어질 듯이 당겨졌다.
쓰라린 아픔을 느껴 본 것이 언제였던가?
뻑!
동시에 본능적으로 후려친 주먹이 진무의 어깻죽지를 때렸다.
‘망할!’
양소방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에 진심을 담고 말았다.
비록 전력은 아닐지라도.
텅! 우당탕탕!
진무의 신형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진무야!”
명충이 급히 뛰어가 쓰러진 진무를 부축했다.
“우웩!”
진무가 엎드린 채 울혈을 토했다.
“어르신!”
진궁이 예의를 잊고 양소방을 다그치듯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였다.
하지만 양소방은 곤혹스럽기만 한 마음에 진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분명 어깨를 맞았는데?
내가중수(內家重手)의 묘리가 담긴 것도 아닌데 울혈을? 내상을 입었다고?
“우웩!”
마치 보란 듯이 다시 피를 토하는 진무.
양소방의 얼굴은 점점 더 곤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이젠 어딜 맞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실수였다.
크나큰 실수였다.
정무맹을 대표하는 양소방이다. 가장 배분이 높은 어른 중 한 사람인 그가 한참이나 어린 무당의 도사를 시험하다 때린 것도 모자라, 내상을 입히고 만 것이다.
“미,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궁색하게 변명하려던 양소방이 말을 멈췄다.
잠깐, 설마?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몸이 반응했다고? 자신이? 저 어린 도사에게?
양소방의 얼굴에 어렸던 곤혹스러움이 놀람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우, 후우…… 어르신, 이제 증명이 되었습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진무의 물음에 양소방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네.”
“그럼 되었군요.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저의 대한 의심이 사라지셨다니.”
“아, 그게…….”
되레 담담하고 예의 바른 진무의 모습에 양소방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휘둘린다. 칠십 년 이상을 살아온 그가 약관의 도사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저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내상이 너무…… 쿨럭, 심하군요.”
“…….”
어쩌면 본능적으로 후려치는 사이에 자신의 기운이 흘러 들어간 모양인지도.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는 진무로 인해 양소방은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피로 물든 턱 어림과 도포의 앞섶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리고 그사이.
진궁에게 부축되어 밖으로 나가는 진무가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거지새끼. 니가 날뛰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이지.’
이제 막 검사를 이룩한 진무가 실력으로 양소방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실력이 안 되면?
당연히 치사하게 놀아야지.
뭐 하러 당당하게 정면 돌파를 한단 말인가?
양소방의 일격.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다.
양소방에게 있어서 진무는 그저 시험 대상일 뿐이고, 어리디어린 도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피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맞았다.
울혈?
그까짓 거짓 울혈이야 얼마든지 토해 낼 수 있었다.
이걸로 의심을 걷어 내고 양소방에게 빚까지 지웠다.
빚이나 원한은 바로 갚는 진무였으나 이번만큼은.
‘천천히 느긋하게 받아 주마.’
정무맹의 큰 어른 중 하나인 양소방이다. 앞으로 쓸모가 많을 것이다.
천천히 이용해 준다.
제대로 뽕 뽑을 때까지.
진무는 아주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든든한 조력자, 아니 한 마리 거지 노예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