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진무의 부상으로 인해 무당산으로 돌아가려던 명충은 진무가 회복할 때까지 일해상단에 기거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진무는 무당의 검임과 동시에 지켜야 할 희망이 되었다.
이대제자들은 그가 완쾌될 때까지 거처를 지키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방을 감시했다.
“졸지도, 눈을 떼지도 말아라! 비열한 제갈세가에서 또 어떤 암수를 쓸지 모른다!”
청상이 이대제자들을 지휘했다.
물론 그리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미 이대제자들은 진무의 모습을 눈으로 보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진무는 무당의 누구보다 존경스러운 도사였다.
“사형.”
“응?”
청우가 무언가 가득히 얹혀 보자기가 씌워진 소반을 들고 다가왔다.
“이게?”
“사숙께서 즐기시는…….”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술과 고기였다.
“통과!”
청상이 마치 수문장이라도 된 것처럼 소리치자 문 앞을 지키던 이대제자 둘이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문을 열었다.
청우가 당당히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는 반쯤 세운 몸을 침상에 기댄 진무와 걱정스러운 표정의 진궁, 대화를 나누는 명충과 양소방이 있었다.
“무당의 이대제자 청우가 보양식을 가져왔습니다.”
“음. 이리 가져오라.”
명충의 말에 청우가 뻣뻣하고도 당당한 걸음으로 소반을 가져갔고 진궁이 탁자를 끌어당겼다.
탁.
소반이 놓이고 보자기가 걷혔다.
“으잉?”
드러난 물건에 양소방이 놀란 표정으로 명충을 바라보았다.
“어허헛…….”
딴청을 피우는 명충.
“…….”
진궁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다가와 술과 고기를 먹기 시작하는 진무.
“아, 아니, 네 녀석……?”
무당은 육식과 음주를 금하지 않았나?
양소방이 의아하다 못해 황망한 표정을 짓자.
“진무는…… 합니다. 장문인께서 육식의 금기를 해하라 명하셔서.”
“아.”
양소방이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당 장로가…… 한다는데야.
아니,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와구와구, 쩝쩝, 꿀꺽.
부상당한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호쾌하게 먹어 치우는 진무.
어른한테 먹어 보란 소리라도 좀 하지 않고…….
어째 뭔가 속은 건 아닐까 생각하는 양소방이었다.
“그보다, 안 가십니까?”
진무가 입 안에 고기를 가득 문 채로 물었다.
“어? 아, 가야지. 그 전에 무당에 좀 들러야 할 것 같아서.”
무당에 들른다고?
진무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하지만 양소방의 말에 명충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르신께서 방문하신다면 본산의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한데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 겝니까?”
“용무라.”
양소방이 슬쩍 진무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날 보는 거지?
진무는 왠지 그 눈빛에 불안감을 느꼈다.
빚을 받기는 해야겠지만 양소방과 엮이는 것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허헛, 별다른 용무가 있겠는가? 단강구의 일도 끝났으니 맹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처럼 무당에 들러 볼까 싶은 거지.”
“아, 그러시군요. 속히 본산에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장문인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하핫. 그래, 그래.”
양소방과 명충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 거지 놈이 무슨 속셈이지?’
양소방을 향하는 진무의 눈초리에는 끝까지 의심이 담겨 있었다.
* * *
무당.
언제나 정돈된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던 그곳이 들썩이고 있었다.
하산했던 명충이 진무를 데리고 해검지를 지났다는 소식에 일대와 이대제자 모두가 담벼락에 참새 떼처럼 바짝 붙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외침!
“진무 사숙입니다!”
함께 오는 장로 명충은 보이지도 않는 듯 모두가 진무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도사답지 않게 대충 묶은 머리카락.
있으니 들어 준다는 느낌으로 어깨에 걸친 태극검.
정돈되지 않은 걸음걸이.
누가 봐도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무당 제자들의 마음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다.
멋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위엄 있고 당당하다.
더욱이 진무의 뒤에는 이번 일에 진무와 함께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이대제자 청상과 청우가 따르고 있었다.
청상은 여전히 칼날 같은 기도에 흐트러짐 없는 모습.
청우는…… 여전히 돼지같이 피둥피둥한 모습.
그렇지만 멋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오매불망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진허가 한걸음에 뛰어갔고, 진소를 비롯해 진혜 등의 일대제자가 그 뒤를 이었다.
“사숙!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바로 진무에게 다가간 진허가 십 년 전 헤어진 정인이라도 되는 양 진무를 끌어안는다.
이 자식들 정말 남색일지도…….
진무가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안겨 든 진허를 밀어 내는데 명충의 호통이 떨어졌다.
“이 녀석들! 어찌 일대들이 이리도 체통 없이 행동하느냐!”
“죄송합니다. 진무가 하도 기특하여.”
욕을 먹어도 좋은지 다들 헤실거린다. 똥을 생으로 씹은 듯한 표정의 진혜만 빼고.
“어허! 이 녀석이 그래도! 무림의 큰 어른은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예?”
그제야 진허가 일행을 살피다가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허리 구부정한 노인을 발견했다.
누구?
일대의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분은!”
명충이 소개하려는 것을 노인이 웃으며 막는다. 그러더니 죽립을 벗고.
“양소방일세.”
“아, 그러시군요. 무당의 일대제자 진허가…… 예?”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고개를 갸웃하는 진허.
“에엑? 양소…… 무풍개!”
진허가 너무 놀란 나머지 삿대질을 하며 한 걸음 물러나자 명충이 호되게 질책을 내렸다.
“이놈! 경박스럽게! 예를 갖추지 못할까!”
“허허, 되었네, 되었어.”
양소방이 웃자 진허를 비롯한 일대제자들이 급히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무당의 제자들이 무풍개 양소방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래, 그래. 만나 반갑네.”
사숙의 한마디에 금세 정돈된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 일대와 이대의 모습에서 진한 정기가 느껴지자 양소방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었다.
비록 세가 약해졌으나 무당은 여전했다. 그들은 여전히 강인하고 정갈했으며 기품이 넘쳤다.
과거 사패천이 암계를 써서 무당산을 불태울 때 돕지 못했던 자신을 가만히 탓해 보는 양소방이었다.
“오르시지요.”
“예.”
일대제자들을 못마땅하게 째려본 명충이 비켜나 길을 안내하자 양소방이 앞서 걸었다.
“사숙.”
“응? 왜 그러느냐?”
진무가 말을 걸자 명충이 다른 이들을 볼 때와는 확연하게 바뀐 표정을 지었다.
“충허암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응? 장문인께 인사도 드리지 않고 말이냐?”
“예. 아직 부상이……쿨럭, 쿨럭.”
진무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까지 굉장히 괜찮아 보였는데.
하지만 그 효과는 충분했다.
“아, 이런. 내 생각이 짧았구나.”
무려 양소방과 겨룬 진무였다. 내상이 나았다 해도 그 충격이 쉬이 가실 리 없었다.
아픈 몸에 너무 무리를 시킨 게 아닌가 걱정된 명충이 서둘러 허락했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알겠다. 내 장문인께는 알아서 말씀드리도록 하마. 어서 가 쉬거라.”
명충의 말에 진무가 인사를 하고 청상과 청우의 부축을 받아 물러났다.
“저런, 저런. 좀 더 쉬었다 올라올 것을.”
명충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진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양소방의 얼굴에도 덩달아 미안한 기색이 어렸다.
“저, 사숙.”
“응?”
진허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제자들도 충허암에 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근래에 이만한 일을 한 무당의 도인이 있었던가?
듣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도사라 해도 혈기 들끓는 젊은 나이다. 영웅담을 듣고 싶은 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명충이 흐뭇하게 웃었다.
“오후 수련은 끝냈느냐?”
“…….”
“각 궁의 정리는?”
“종례 회의는 안 하느냐?”
“저녁 식사 준비는?”
온화한 표정의 명충이 질문을 할 때마다 일대제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툭툭 얹히는 것 같았다.
“대답이 됐느냐?”
“예.”
시무룩한 표정은 일대뿐 아니라 이대에게도 이어졌다.
“썩 돌아가지 못할까!”
명충의 호통.
장로가 되어서 제자들의 나태함을 살피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무당의 희망이며 빛은 진무뿐이다, 이놈들아.
아, 능력 있는 놈만 인정받는 더러운 세상이여.
터벅거리며 돌아가는 제자들을 바라본 명충이 다시금 양소방에게 길을 안내했다.
“가시지요.”
“그러세.”
변하지 않는 건 어디든 있는 모양이라 생각한 양소방이 가볍게 발을 옮겼다.
* * *
무당파 자소궁 대전.
평소 같은 시간이라면 하루를 마감하는 짧은 장로 회의가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자소궁은 비워진 채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두고 마주 앉은 명현과 양소방.
명현이 양소방을 응시했다.
한창 진무의 공을 치하하며 떠들썩해야 마땅했으나 양소방이 장문인과의 독대를 요청해 왔다.
양소방이 정무맹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각 파의 장문인들과 정무맹의 수뇌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은 농이라도 함부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었기에 명현은 양소방의 요청에 자소궁의 모든 인원을 물렸다.
“어쩐 일이십니까?”
명현의 물음에 양소방이 잠시 뜸을 들인다.
“나는 지금 ‘궁(宮)’이라는 곳을 쫓고 있소.”
조금은 답답하게 시작한 양소방의 말에 명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
천궁이나 마궁도 아니고 그저 ‘궁’. 이 무림에 그러한 단체가 있었던가?
“아마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오. 우리도 정확한 이름은 알지 못하니.”
“아.”
“오 년째 뒤쫓고 있으나 아직 그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낸 게 없어 자세한 이야기는 해 줄 수가 없구려.”
명현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양소방은 현 정무맹에서 은신, 추적, 경공에 있어 따를 자가 없다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오 년을 뒤쫓았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들을 뒤쫓는 과정에서 단강구에 이르게 되었소.”
“그렇군요. 허면 어째서 맹주님께서는 이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공론화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확실치 않기 때문이오.”
“확실치 않다?”
“그렇소. 아직은 그들의 정확한 이름도 알지 못할 뿐더러, 그들의 목적 또한 모호하오.”
“모호하다 함은?”
“정사마(正邪魔)의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은 자들이오.”
정사마에 속하지 않는다.
그 말은 반대로 어느 세력에도 속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 이미 몇 차례 그들과 마주쳤으나 그들의 이름도, 목적도, 정체도 밝혀내지 못했지.”
명현의 얼굴에 더 큰 놀람이 어렸다.
마주쳤으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양소방이 그들을 잡지 못했다는 것과 같다.
“강하더군.”
“…….”
“더욱이 전혀 새로운 무공이었다오. 오랫동안 정형화되어 온 이 중원 무학의 틀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그런?”
“해서 우리는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소. 그들의 움직임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알아야만 하기 때문에.”
“음.”
명현이 짙은 신음을 흘린다.
지금의 무림은 삼파전.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무맹과 달리 일월마교와 사패천의 목적은 명확하다.
긴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중원 무림의 정벌.
이런 와중에 새로운 세력이 끼어들어 힘을 싣게 된다면 균형이 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균형의 깨어짐은 곧 환란(患亂)으로 이어진다.
양소방의 말에 의하면 이미 일월마교에서도 그들을 은밀히 뒤쫓고 있다고 했다.
“맹주께선 혹시나 그들로 인해 지금의 평화가 깨어질 것을 우려하고 계시오.”
“…….”
“해서 조만간 용봉회를 개최할 참이오.”
“혹시 그들이 적일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입니까?”
“맞소. 후기지수들을 기르기 위함이오. 이미 대군사께서 용봉회를 통해 선발된 인원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두와 무공들을 선별하고 있는 중이오. 아마 이에 대한 내용이 정무맹 산하 무림 문파에 전달될 것이오.”
“그렇군요. 한데 무당에 이리 직접 걸음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용봉회에 대한 내용을 알려 주기 위함은 아닌 듯한데.”
명현의 말에 양소방이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