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아, 말이 조금 엇나갔구려. 어쨌든 내 궁을 뒤쫓다가 그 아이를 만나게 되었소.”
“진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명현의 물음에 양소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가 왜?”
“단강구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지. 화약 밀거래와 주루의 붕괴.”
주루의 붕괴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화약 밀거래라면 알고 있었다.
진무가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 이룬 첫 업적이었다.
“진무가 해결한 그 사건은 궁의 행사와 연관성이 있다 추측하고 있었소. 그리고 어쩌다 보니 진무를 의심했소.”
“예?”
“아, 의심은 이미 해결되었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무가 제갈세가와의 분쟁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도 보았지.”
양소방의 말에 명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머금었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또한 보았소.”
“무엇을요?”
“진무의 천재성, 그리고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지혜. 능히 무림의 영웅이 될 자질을 갖춘 아이요.”
“아!”
명현 자신도 놀라고 있는 부분이었다.
“내 그 아이를 잠시나마 의심하여 빚을 지었으니. 어떻소? 빚을 갚을 겸, 그 아이에게 길을 열어 줄까 하는데.”
“길이요?”
“맹주님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천거를 해 볼 요량이오.”
양소방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명현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정무맹주.
검성(劍聖) 철지량.
그가 중원 무림의 최강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검(劍)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그의 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진무가 의기의 경지에 이르러 검사를 구현해 냈음을 들은 뒤였다.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천재.
무당의 역사 가운데 누구도 그 나이에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 진무가 만약 검성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절로 침이 넘어갈 만큼 긴장되었다.
하지만.
“음…….”
명현이 미간을 찌푸리자 양소방이 온화하게 웃었다.
“무얼 고민하시오? 더없이 좋은 기회 아니오. 만약 그 아이가 맹주님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면 무당은 무림 최고수를 배출해 낼지도 모르지 않소?”
양소방의 말이 그의 마음을 충동질했다.
또 하지만.
“어르신.”
“…….”
“무당은 오랜 전통과 규율로써 제자를 바른길로 인도할 뿐, 나아갈 길을 결정해 주지 않습니다.”
“아! 음…….”
명현의 말에 양소방이 짧은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는 하지만 결정을 하지 않는다.
선택지인 것이다.
만약 당대 맹주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가 아무도 이룩하지 못한 경지에 이를 것이고, 무당의 이름을 전 중원에 드높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당은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제자를 이용하지 않는다.
오롯이 진무의 결정에 맡겨야 할 일인 것이다.
“하지만 본인 의사를 물어보긴 하겠습니다.”
“음. 좋소.”
양소방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아니 벌써 가십니까?”
“허허, 방랑하길 좋아하는 늙은이가 엉덩이가 무거워 어디에 쓰겠소? 내 온 김에 운공 어른이나 만나 뵙고 바로 내려갈 참이오.”
“아, 운공 어르신께서도 반가워하시겠군요.”
“하핫, 반갑긴. 참 오래도 살지, 그 노인네. 무공도 잃은 양반이 동굴에서 혼자 몰래 뭘 자시는지. 혹, 장서각 동굴에 만년석균(萬年石菌)이라도 키우시는 게요?”
양소방이 고개를 두어 번 내저으며 웃음기 섞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진무라는 녀석도 그렇고, 그 청상이라는 녀석도 그렇고. 이거 참. 무당의 미래가 밝소, 밝아.”
양소방의 말에 명현이 흐뭇하게 웃었다.
모두가 무당에 대한 칭찬이 아닌가?
더욱이 장서각을 지키는 운공과 양소방의 오랜 인연을 명현 또한 잘 알고 있음이었다.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그리고, 궁에 대한 것은 따로 문파에는 알리지 말아 주시오. 확실하지 않은 사실이 퍼지게 되면 괜한 혼란이 생길 수 있으니.”
“예. 어르신.”
명현과 양소방은 근래의 무림 정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천천히 영은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청상아.”
“예, 사숙.”
“팔 들어.”
“예.”
“청우야.”
“예…… 사수욱.”
“자세 더 낮춰.”
“예에…….”
대충 기대앉은 진무의 말에 청상과 청우가 비 오듯이 땀을 흘린다.
단강구에서 돌아온 날 저녁.
청상과 청우는 진무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다.
수련시켜 주마.
처음이었다. 진무가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켜 주겠다고 한 것은.
수련은 그들이 잠에서 깨자마자 시작되었다.
너무도 기쁜 마음에 들뜬 청상과 청우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마보였다.
모든 무공의 기본. 자고로 튼튼한 하체에서 강한 힘이 나오는 법.
기초가…… 탄탄해야…… 그런데 이건 너무 힘들다.
팔과 다리에 큼지막한 돌덩이를 각기 매달고 마보를 취한다.
그게 끝이다.
물론 내공은 사용할 수 없었다.
한 시진째.
팔, 다리, 허리 할 것 없이 모조리 끊어지는 것 같았다.
“사, 사숙. 이게 정말 도움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습니다.”
청우가 우는소리를 하자 진무가 실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우야, 청우야. 이 사숙도 다 거쳐 온 길이란다.”
언제?
본 적이 없는데?
물론 진무가 그런 걸 거쳤을 리는 없다. 그저 둘에게 꼭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시킨 것뿐.
진무의 기준에서 청상과 청우는 약하디약하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자신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할 녀석들이 되레 짐 덩어리밖에 되지 않는다.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이상 도움을 줘도 깨달음을 얻지는 못한다.
그 와중에 더 강해지려면?
초식의 정교함은 경험이 쌓여야 하고 내공의 발전은 까마득히 멀었다.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자면 우선 육체를 단련시키는 수밖에.
그리고 육체의 힘을 기르는 데 원초적인 방법보다 좋은 것은 없다.
‘녀석들, 내 장담하건대 지금의 고통이 나중에 니들의 목숨을 살려 줄 게다, 암!’
청상과 청우를 바라보던 진무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고통스러워하건 말건.
그나저나.
‘아, 어디 업적 쌓을 만한 일 또 없나? 사건이라도 하나 터져 주면 좋을 텐데.’
진무는 이번 일로 제법 재미를 느꼈다.
오룡궁의 실무자이자 무당의 ‘검’임을 내세운 것이 제법 효과가 있었다. 일, 이대제자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역시 감투가 제일이다.
대제자가 되는 데 필요한 평판과 업적이 대폭 상승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거지새끼에게 빚까지 지워 놓았으니 장차 단단히 쓸모가…….
어?
진무의 생각에 발맞추듯 충허암으로 다가오는 양소방.
무슨 호랑이도 아니고 거지새끼 주제에 생각만 해도 나타나는 거지?
‘저 양반은 볼일 끝났으면 갈 것이지 뭐 하러 와?’
평소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진무가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보게, 진무 도장.”
쪼개기는, 뭐 반가운 얼굴이라고.
“허헛, 내려가기 전에 잠시 볼일이 생각났지 뭔가?”
“볼일이요?”
“그래.”
히죽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 앉는 양소방을 향해 진무가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호오?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인가?”
“예, 뭐…….”
제자는 아니지만.
“이건 우리 어렸을 때나 했던 방법인데. 요즘은 잘 안 하지 않나? 허리에 무리도 많이 가고.”
뭔 참견인지.
“거 요즘은 쇠로 만든 팔찌를 쓰는 것 같던데.”
“가난해서요.”
“하긴.”
진무의 말에 양소방이 금세 수긍했다.
“도사나 거지나 가난한 건 매한가지지.”
어딜 감히.
무욕(無慾)한 거랑 빌어먹는 게 어떻게 같단 말인가?
그리고 개방이 가난하다고?
한 해에 그들이 벌어들이는 정보료만 수만 냥에 달한다.
무림, 상계, 관부에 이르기까지 팔아먹지 않는 곳이 없었다.
더욱이 몰래몰래 사파와 마교에 팔아먹는 정보까지 계산하면 추산조차 되지 않음을 안다.
진무도 오래전 개방에 정보를 의뢰한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돈독 오지게 오른 거지새끼들이 뭐? 가난해?’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나저나 볼일이라는 게 무엇인지요?”
딱히 반가운 얼굴도 아니고, 아직 빚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빨리 가기나 했으면.
“아, 내 정신 좀 보게.”
진무의 말에 양소방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고는 자신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구만.”
“…….”
바지춤 속으로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다가 사타구니 쪽에서 꺼낸 녹슨 철전 하나.
으 씨발, 더러운 거지새끼 같으니.
절대로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협전(俠錢)일세.”
뭐라고? 협전?
순간 진무의 눈이 동그래졌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방의 협전.
팔결 이상인 방주와 원로들만이 행사할 수 있는 개방의 징표였다.
협전을 소지한 자는 협의(俠義)에 위배되지 않는 한 개방의 모든 지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렇기에 칠결의 후개나 육결의 장로들조차 소지하지 못한다.
“자네와 연을 이어 가고 싶은 내 마음일세.”
“…….”
탐난다.
천금으로도 얻기 힘들다는 개방의 협전.
“자, 받게.”
탐은 나지만.
“받으라니까.”
“…….”
진짜, 사타구니만 아니었어도.
“어허 이 사람 괜찮네. 자네에게 이 정도는 줄 수 있는 사람이라네.”
그렇겠지. 다른 이도 아니고 개방주보다 배분이 높은 양소방인데.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더럽잖아!
양소방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기분 탓인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럴 땐.
“청상!”
진퇴양난에 빠진 진무가 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청상을 불렀다.
“예?”
“어르신께서 내린 귀한 물건이다. 공손히 받거라.”
“……예.”
어디서 꺼낸 건지 알 길 없는 청상이 서둘러 돌덩이를 풀어내고 다가와 양손으로 협전을 받아 들었다.
“어르신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이 귀한 것을 어찌 감히 제 손으로 받겠습니까.”
“…….”
청상에게 협전을 건넨 양소방이 진무를 바라보았다.
물건은 타인이 받고 자신은 절을 올린다.
과례(過禮)였다.
이런 식의 예를 차리는 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예법이었다.
자신의 건넨 성의를 대함에 있어 진무가 더없이 공손한 방법을 사용했다 생각한 양소방은 무척이나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배려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사람. 우리 시대의 예를 알다니. 헛헛헛! 내 자네를 제대로 보았음이야.”
양소방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너무 탐나는 인재다. 무당이 거부한다고 해도 정무맹으로 끌어들이고 싶을 만큼 탐이 난다.
한시바삐 맹으로 돌아가 맹주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내 자네에게 주고 싶은 물건을 전했으니 이만 가 봄세. 후에 속세에 내려오거든 술이나 한잔 나누세.”
“예. 어르신!”
진무가 다시금 절을 올리자 충허암을 떠나는 양소방의 걸음에 신이 났다.
“하핫, 하하핫!”
아예 개방의 최상급 절예인 만리추풍(萬里追風)까지 사용해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
멀리 그의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진무가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갔냐?”
“예, 가셨습니다.”
“휴우.”
비로소 참았던 숨을 내쉰다.
“사숙, 이건?”
“씻어 와.”
“예?”
“최대한 박박, 깨끗하게, 냄새 하나 없이.”
“이걸요?”
“응.”
청상의 물음에 진무가 밝게 답했다.
약간 떨어져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협전을 씻으러 가는 청상의 뒷모습을 보며 진무가 환하게 웃었다.
‘개방의 협전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귀보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 빚은 받지 않았다.
양소방은 분명 연을 맺기 위한 자신의 마음이라고 했지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