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66
36화
슈아아악!
늘어뜨렸던 손이 휙 내저어지고, 그 손길에 잡혀 있던 자충이 허공을 가르며 휘둘러졌다.
“이 자식이!”
사숙한테!
검디검은 기운이 채찍처럼 날아오는 모습에 진무가 마력을 휘감은 손, 흑수로 후려쳐 막았다.
떠어어엉!
둘의 공격은 정확히 간격이 만나는 지점에서 부딪치며 공기를 터트렸다.
충격파와 함께 청상이 한참을 뒷걸음질 치며 밀려 나갔지만, 진무는 다음 공격을 이을 수 없었다.
“이, 이거 봐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진무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잘게 떨리고 있었다.
튕겨 버릴 생각이었는데, 곧바로 파고들어 정신을 차리게 해 줄 마음이었는데…….
진무의 시선이 손을 떠나 자신이 선 자리를 향했다.
“허, 세 걸음이나?”
진무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청상이 밀려 난 거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자신이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모든 마력을 담은 것이 아니라고 해도, 청상이 가진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크르르…….”
“……?”
진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청상을 바라봤다.
몸을 채 바로 세우지도 않고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린 청상.
그리고.
“……어쭈?! 웃기까지?”
청상이 히죽이는 모습에 진무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어이가 없다.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라면 마성에 이성이 잠식당해 미쳐 날뛰는 것이 정상이다.
아픔조차 느끼지 못할 테니, 밀렸던 그 순간 곧바로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 왔어야 했을 놈이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마치 걸출한 상대를 만나 호승심을 느끼는 것처럼…….
그리고 황당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살피고 있다.
흰자위 없이 검게 변해 버린 눈알을 흑요석처럼 반짝이며, 진무를 가늠하고 있었다.
“허, 이거 원,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네. 입맛까지 다시는 거냐?”
사람이 그렇다. 너무 과한 것을 보면 도리어 허탈감이 들기 마련이다.
놀라도 정도껏 놀라야 말이지.
검은빛으로 반들거리는 눈깔에, 혀를 내밀어 연신 입술을 쓸어 대며 입맛을 다시는 청상이라니…….
“…….”
심히 불량스럽다. 가끔 산적이나 수적들을 만나면 눈이 돌아가는 적은 있었지만, 대체로 모범적이었던 청상이 뒷골목 왈패보다 불량스럽다.
자신을 향한 미소에 요사스러움마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희한하다. 인간이 아닌 선인이 주화입마에 걸리면 저런 모습인 건가?
“……어?”
그러다 문득, 청상이 자신을 살폈듯 청상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진무가 무언갈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청상의 손.
정확히는 그 손에 들린 자충을 보고 나서였다.
꾸득, 꾸드드득.
검에서 돋아 오른 힘줄 같은 것이 청상의 손에 연결되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청상이 검을 잡은 것이 아니라 검이 청상을 움켜쥔 것처럼.
“……이제 알겠네. 주화입마 같은 것이 아니었어.”
검의 자아에 잠식당한 것이다. 비로소 깨달은 진무의 눈매에 웃음이 사라졌다.
“멍청한 자식. 아무리 귀모의 물건이라고 하지만…… 선인씩이나 된 놈이 고작 검 따위에 먹혀 버린 거냐?”
“크르르…….”
“……하아. 검을 제어해야 할 놈이 검에게 제어당하고 있다니.”
다가설 기회만 엿보며 으르렁거리는 청상, 아니 자충의 모습에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괜히 귀모의 검이겠는가?
생각해 보면 그 대단했던 북리도천도 청염에게 제 몸을 빼앗겨 휘둘렸던 적이 있었으니…….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크륵?”
진무의 얇게 벌어진 입술에 미소가 맺히고, 송곳니가 스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야, 청상아. 아니지, 자충이라 불러야 하나?”
“……?”
“너 무슨 생각으로 우리 청상이 몸을 집어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 실수한 거야.”
손마디를 우두둑 꺾으며, 진무는 슬쩍 턱을 들어 올리곤 내리깐 눈으로 스산하게 청상을 바라봤다.
“내가 원래 딴 건 몰라도 내 새끼 건드린 놈은 절대로 용서해 본 적이 없거든?”
천천히 주먹을 움켜쥔 그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자세를 낮췄다.
“신!”
“……?!”
진무의 우렁찬 외침에 육장에게 가해지던 형벌을 감시하던 황신이 고개를 홱 돌렸다.
“알아서들 잘 피해.”
“……!”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외친 진무의 말에 황신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 개천주가 지금부터 뭘 하려는지 너무나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힘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기에 미리 경고를 한 것이다. 휩쓸리지 말라고.
“이런 떠그랄! 백표!”
“어?”
“튀자.”
“어어?”
“뭐 해? 고래랑 상어 싸우는 데 있겠다고? 새우 주제에 등 터지고 싶냐?”
황신이 짜증스럽게 외쳤다.
비록 한 가닥 자존심으로 둘 다 고래라 칭하지 않았지만, 위험한 건 위험한 거였다.
“휘말리면 뒈진다고!”
“아…… 그야 그렇지만…… 은공께서?”
“씨발, 우리가 지금 개천주 걱정할 때냐?”
“…….”
하긴, 그 부분은 백표도 십분 공감하는 바였다.
천하에 누가 진무를 걱정할 수 있겠는가? 인계가 아닌 지계라도 마찬가지다. 진무 걱정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짓이다.
“개천주는 절대로 안 죽는다. 청상이 뒈지면 모를까.”
“그야 그렇지. 그래도 우린 불사의 몸인데…… 굳이 피할 이유가?”
“염병, 그럼 너나 뒈지던가. 난 그딴 걸 즐길 취미 따윈 없거든? 이생! 너도 도산옥 회천으로 돌아가기 싫으면 텨!”
“…….”
황신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충격파에서 멀어지기 위해 서둘러 몸을 날렸고, 고민하던 백표도 이생과 함께 몸을 날렸다.
동시에 일행의 도주가 신호가 된 것처럼 진무의 굽혀졌던 발이 시위가 놓인 활대처럼 활짝 펼쳐졌다.
파아아앙!
찰나를 뛰어넘어 버린 진무가 눈앞에 나타나자 청상이 눈을 부릅뜨며 재빨리 자충을 휘둘렀다.
스가가각!
휘두름의 시작과 끝이 동시에 이루어진 자충의 날이 공간과 함께 진무의 몸을 깨끗하게 양분했다.
이내 잘린 몸뚱이가 허상처럼 흩어지고, 어느새 청상의 측면으로 파고든 진무의 주먹이 맹렬하게 솟구쳐 올랐다.
쩌어어어엉!
“크아악!”
늑골 깊숙이 박힌 주먹에 청상이 괴성을 지르며 자충을 수직으로 그었다.
콰드드득!
땅이 길게 찢어져 떠밀리자 인근 대지가 뭉쳐졌다가 응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칫!”
무지막지한 충격파에 다음 공격을 잇지 못한 진무가 재빨리 범위를 탈출하자 청상이 먼지를 꿰뚫고 곧장 쫓아왔다.
쉬이익! 콰아앙!
쩌어엉!
충돌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둘의 신형이 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뒤흔들리며 폭발하니, 해형장의 원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콰르릉! 쾅!
사방에 뇌우가 몰아치고 염수호가 해일처럼 일어나 연안을 덮쳤다.
쾅! 콰쾅! 쾅!
청상과 진무의 격돌이 만들어 낸 충격파가 특정 목표 없이 쏟아지며 도망치던 해형장의 괴들을 쉼 없이 덮쳤다. 괴들은 대지의 폭발에 휩쓸리고, 해일에 삼켜져 산화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지금의 해형장은 지옥보다 더 지옥 같았지만, 누구도 죽음에 신경 쓰지 않았다.
불사의 몸을 가진 지계의 인물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그저 고통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극심한 고통.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
후아악! 콰아앙!
지상에서 대규모 도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에도 싸움은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이어졌다.
진심을 다한 진무의 공격이 지형마저 뒤바꾸고 있었지만, 정작 청상의 움직임은 조금도 둔해지지 않았다. 자충에게 몸을 빼앗겨 아픔을 느끼지도 못한 채, 악에 받친 듯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몰아쳐 왔다.
이런 미친 옥황 같으니. 이제 보니 정말 위험천만한 물건을 선심 쓰듯 내준 게 아닌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것처럼 굴면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하다못해 ‘이럴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이라는 말 정도는 해 줬어야지!
그나마 청상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나였으면 어쩔 뻔했냐고!
전도유망한 선인 하나가 지계로 망명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함께 온 모두가 자충에게 잠식당해 버린 자신에게 뒈졌을지도 모른다.
“크아아아아!”
“…….”
진무가 고민에 빠진 사이, 작은 틈새 속으로 파고든 청상의 검이 사선으로 치솟았다.
흑수!
떠어어어엉!
진무가 마력을 휘감아 뻗은 손으로 막아 내는 순간.
“크흐!”
“……?!”
막았다 여겼던 자충이 둘로 나뉘었다.
스거걱!
“크윽!”
이내 높게 치솟은 검이 얼굴 부근을 지나가자, 고개를 젖혀 피했음에도 눈가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크흐흐.”
“…….”
처음으로 진무의 몸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일까? 아니면 혈향이 주는 쾌감 때문에?
피가 흐르는 눈가를 본 청상이 음산하게 웃었다.
진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게 진짜 뒈질라고…….”
열이 확 치솟은 진무가 손을 쭉 뻗자 여의가 손에 잡혔다.
후아악! 퍼어억!
소환과 동시에 후려친 여의에 맞은 청상의 몸이 운석처럼 지상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땅속 깊숙이 처박히는 충격에, 움푹 팼던 지면이 또다시 폭발했다.
“크으으…….”
“…….”
빌어먹을 놈.
곧바로 몸을 일으킨 청상이 반들거리는 눈깔로 진무를 올려다봤다.
입술 새로 피를 줄줄 흘리는 채.
이대론 안 된다.
진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러다가 청상의 몸이 넝마가 되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청상을 죽일 생각이 아닌 이상 그 몸에서 자충을 떼어 놔야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리하자면 부득이 신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진무가 찌푸린 눈으로 해형장, 아니 해형장이었던 공간을 바라봤다.
폐허.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지만, 생명뿐 아니라 공간 자체에도 불사의 권능이 스미어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재생될 터다.
문제는 박피옥주다.
육장과의 싸움은 몰라도, 청상과 진무의 싸움의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협비와의 그것보다 충격이 컸을 것이니, 박피옥주가 모를 리 없다.
지금 신력을 썼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크아아아!”
“…….”
고민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청상이 곧게 솟구쳐 쇄도했다.
진무는 짧게 혀를 차곤, 자세를 고쳤다.
하아, 뭔 고민이란 말인가? 애초에 뒤를 생각하고 행동했던 적이 없는데.
들키거나 말거나, 일단 청상부터 구한다.
“……나, 전생에 도사였다.”
낮게 중얼거리곤, 진무는 몸 안의 마력을 흩었다.
사아아아.
그리고 재가 바람에 날리듯 사라지는 마력을 대신해 새로운 힘이 깃든 진무의 몸에서 금빛 서광이 뿜어졌다. 마력과 신력의 치환이었다.
“지금은 신선이고.”
“크륵?”
상극의 힘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곧게 날아오던 청상의 얼굴에 구김이 생겨났다.
그 모습을 보며 씩 웃은 진무가 금빛 머금은 손을 활짝 펴 힘차게 들어 올렸다.
“즉! 특기가 퇴마란 소리다!”
후아아악!
진무의 일장이 힘차게 뻗자, 일순 세상이 환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받아라, 검 새끼야!
급급여율장! 급급여율권! 급급여율각! 급급…… 하여간 넌 오늘 겁나 급하게 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