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74
44화
“왜 그러십니까?”
“…….”
갑자기 말을 뚝 끊고는 한 곳을 지그시 응시하는 진무의 모습에 조음과 육장이 고개를 돌렸다.
연회장을 가득 채운 괴들.
특별히 이상할 것 없는 그 모습에 육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아는 괴입니까?”
“…….”
알겠냐?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진무는 괴에게 고정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자 한참을 힐끗거리며 눈치를 보던 놈이 진무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모른 체를 하기 시작했다.
곧 자리를 뜨려는지 엉덩이를 들썩이는 게 눈에 선했다.
[너, 이리 와 봐.]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령을 손에 쥐고 불러 봤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호오, 이놈 봐라.
진무는 괴를 주시하던 눈에 한층 힘을 주며 조음을 불렀다.
“이봐, 조음.”
“예?”
“이곳에 너의 사령이 가진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놈도 있냐?”
“……여기 괴들 중에서요?”
“그래.”
“불가능합니다. 해형장에 속한 괴라면 몰라도, 분절형장에 속해있는 괴들은 전부 제게 귀속인지라.”
“그으래?”
“하지만, 진무 님이라면 다를지도 모릅니다. 동화도 이루지 않은 채로 사령에게 명을 내리셨으니……. 한데 어찌 그러십니까?”
“흠, 저기 있는 저놈 말이야.”
“……?”
조음이 진무가 턱짓한 쪽을 유심히 살폈다.
“모르는 놈이지?”
“예. 말씀드렸듯 분절형장의 괴는 제게 귀속되어 있기에 눈빛만 봐도 느낌이 오는데……. 저놈은 모르겠군요.”
“그럼 육장 너는?”
“글쎄요. 저는 조음과는 달라서, 해형장에 속해 있는 놈들을 일일이 다 알지 못합니다. 알아볼까요?”
“아니, 됐어.”
육장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저었다.
아는 놈이거나 앉은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아니면 굳이 돌아갈 필요가 뭐 있나.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는 꼬라질 봐선 불러도 오기는커녕 도망칠 게 뻔하니 직접 가 보지 뭐.
딱 기다려라.
내가 지금 궁금증이 생겼거든?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이리도 신경 거슬리게 하는 건지 말이야.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음과 육장이 엉거주춤 따라 일어나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박, 자박.
진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긴장했기 때문일까?
가벼운 발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리고, 영문을 알지 못한 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무는 주변의 반응을 무시한 채 곧장 걸었고, 이내 모두는 입을 다문 채 그의 걸음이 닿는 곳을 주시했다.
“…….”
점점 더 자신에게 가까워지자, 난감해진 괴가 들썩이던 엉덩이까지 고정하고 표정을 가다듬는다.
에휴, 새끼. 멍청하기는.
이제 와서 그래 봐야 티만 더 난다.
생각해 봐라.
모두가 하는 일을 멈추고 제 놈을 쳐다보고 있는데, 제 놈만 다른 곳을 보고 있지 않은가?
들키지 않으려면 남들이 ‘예’ 할 때 고개라도 끄덕여야지. 그리 대놓고 아닌 척을 하면 누가 모르겠냐고.
이쯤 되면 십 할로다가 정체와 의도를 알아낼 수밖에 없다.
어디서 온 놈인지, 뭐 하는 놈인지, 왜 거슬리게 힐끔거렸는지.
“야.”
“…….”
우뚝 멈춘 진무가 내려다보며 부르자 모른 척 고개를 휙휙 돌리던 괴가 슬며시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눼에? 저요?”
“그래, 너.”
“헤헤, 왜 그러시는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예? 그게 무슨?”
“아까부터 살피고 있었잖아?”
“제, 제가요?”
“어, 니가.”
“그럴 리가요?”
“그랬어.”
“…….”
단정하는 진무의 말에 괴가 눈을 끔벅거리다가 배시시 웃었다.
“그런 적이 없는데요?”
“아? 그래? 그럼 내가 잘못 본 거다, 뭐 그런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왜 아까부터 나랑 대화하면서 대가리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건데?”
“예?”
흠칫 놀란 괴의 반응에 진무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손가락으로 육장을 가리켰다.
“저놈 알지? 육장이라고 하는데, 해형장의 수좌야.”
“아, 알죠.”
“그래. 그런 놈이 나랑 눈만 마주쳐도 대가릴 처박고 용서해 달라 빌기부터 하거든?”
“…….”
웃음기 가득한 말에 괴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누가 봐도 대단히 당황한 눈치였다. 진무는 속으로 피식 웃곤, 더욱 상세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 옆에 술병 든 놈도 알고 있겠지? 조음이라고 분절형장의 수좌인데 아까부터 굽신거리며 두 손으로 술을 따라. 나한테 충성하겠다고 쉼 없이 다짐을 하면서 말이야.”
“…….”
“괴들은 말할 것도 없지, 모두가 그 둘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이상하잖아. 저 둘이 저렇다면 한낱 괴인 너는 대가리를 처박고 답해야 마땅한데, 모가지가 너무 빳빳하단 말이지.”
“…….”
허리를 숙인 진무가 괴의 목을 꽉 움켜쥐고 자신의 눈앞으로 끌어당기며 스산하게 웃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
“네 신분이 저놈들보다 낮지 않다는 거.”
“…….”
“그래, 지금 생각해 보니 알겠네. 아까 니놈이 무의식중에 드러낸 살의(殺意)가 이해되지 않았거든?”
“사, 살의라니요?”
“짜식,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너무 티 나잖아?”
“…….”
“너, 쟤들이 나한테 굽신대며 충성하는 게 마음에 안 든 거지?”
“그, 그럴 리가?”
“아니, 맞아, 확실해. 그리고 이제까지 궁금했거든? 이만한 소란이 있었는데, 일계의 주인인 자가 어찌 아무런 반응이 없는지 말이야.”
진무가 목덜미를 움켜잡은 손에 힘을 더하자 괴가 더욱 난처한 표정으로 쩔쩔맸다.
“내 결론은 이래. 니 뒤에 박피옥주가 있다.”
“…….”
“아니면 지금 네 행동이 말이 되지 않거든.”
“…….”
“왜? 교마가 너한테 가서 이쪽 동태를 살펴보라고 지시하든?”
앙다문 이를 한껏 드러내며 위협적으로 웃는 진무의 모습에 괴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동시에 돌아가는 상황을 단박에 이해한 황신 등이 튕기듯 일어나 진무와 괴의 주위를 품 자로 둘러쌌다.
“뭐? 왜? 왜 그러는데?”
뒤늦게 일어난 이생이 영문을 몰라 하며 주춤주춤 다가서던 그 순간.
슈아악!
괴의 손에서 별안간 생겨난 소도가 빛살처럼 날았다.
“……!”
목을 꺾어 버릴 새도 없이 빠른 공격에 진무가 살짝 놀라며 상체를 크게 젖혔다.
“…….”
그리고 그 순간 묵직했던 느낌이 사라졌다.
손을 살짝 들어 보니 괴는 온데간데없고 축 처진 거죽만 덜렁거리고 있었다.
더불어 무언가 흐르는 느낌과 함께 목덜미가 쓰라려 왔다.
스윽.
익숙지 않은 느낌에 손을 뻗어 닦은 진무가 황당한 듯 눈을 찌푸렸다.
“피……이?”
손에 묻어난 것은 붉디붉은 피였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봤던 자신의 피.
“하! 이것 봐라?”
방심하다가 상처를 입어 본 것이 대체 얼마 만이지?
그 순간 진무가 느낀 것은 분노도, 상처에서 오는 아픔도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피를 봐서인지 들끓은 흥분이 심장을 망치질하듯 때려 울렸다.
“크흐, 크흐흐흐……. 피, 피란 말이지.”
언뜻 괴기스럽다 느껴질 정도로 웃은 진무가 범처럼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놈이 완벽하게 모습을 감춰 버렸다.
기척을 기억하고 있으니 은신이라면 충분히 느껴져야 할 것인데…….
마치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그렇다고 찾아낼 방법이 없을까?
“신!”
진무가 소리쳐 부르자 눈치 빠른 황신이 귀를 쫑긋 세운 채 정신을 집중했다.
인계에서도 그 청력이 가진 묘용이 무시무시했던 놈이지만, 귀가 되고 마력이 더해진 덕에 이제는 만 리 밖의 물소리까지 구분해 내는 녀석이다.
어떤 놈인지 모르나, 너는 오늘 실수한 거다.
“좌! 십 리! 움직임은 하나입니다!”
진무는 황신의 외침과 동시에 지면을 힘껏 박차며 뛰어올랐다.
꾸우웅!
느껴진다.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고 있는 무언가가.
꽤 멀리도 갔다.
하지만 저 속도라면 따라잡을 수 없다.
아마 안전해졌다 여기고 있을 테지만! 그건 니 생각이지.
슈아악!
허공에 떠오른 진무가 손을 쭉 뻗자 자충이 쑥 빨려 올라왔다.
텁!
“어떤 놈인지, 낯짝을 꼭 봐야겠다.”
거리는 십 리, 목표는 하나.
먼 거리이긴 하지만, 설마하니 잡을 방법이 없겠는가?
천 리를 꿰뚫는다는 귀모의 검 자충. 지금 그것이 진무의 손에 있는 이상, 백 리 천 리 도망쳐 봐야 손바닥 안이었다.
우우웅!
진무가 자신의 마력을 무자비하게 집어넣자 자충이 거칠게 떨리며 천둥처럼 울었다.
[뻗어라, 자충!]쐐애애액!
자아를 얻고 난 뒤였으나, 위엄 넘치는 언령과 무지막지한 마력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자충은 찍소리도 못 하고 고분고분 세차게 쏘아져 나갔다.
청상의 손에 있을 때보다 더 빠르고 곧게.
퍽!
그리고 그 끝이 단번에 목표를 꿰뚫었다.
“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낙하를 시작한 진무의 외침에 황신이 기다렸다는 듯 내달렸다.
방향은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된다. 황신은 자신보다 더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신이 돌아왔다.
“이거라고?”
“예.”
“허!”
진무는 황신이 양손에 들고 가져온 물건에 헛웃음을 뱉고 말았다.
또 거죽이네. 이번에는 머리 부분이 찢어져 버린.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진무의 호승심을 더욱 자극했다.
“거죽을 바꿔 가며 다닌다 이거지? 재미있네, 아주 재미있어. 흥미진진해.”
“…….”
건넨 거죽을 받아 든 진무가 고요히 웃자 황신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소, 송곳니…….
어떤 놈인지 참으로 안됐다. 개천주를 저렇게 만들다니.
솟구치는 동정심에 속으로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황신은 슬금슬금 진무에게서 멀어졌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선에서 최대한 멀리.
* * *
분절형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황톳빛 언덕 아래.
한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자신의 옆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손가락 사이로 도자기가 깨진 듯 부서진 조각들이 떨어져 나와 있었다.
“크윽…….”
오만상을 찌푸린 그는 자충에게 일격을 허용한 교마 본인이었다.
음양귀를 살피고자 했던 그는 자신의 법구인 세류의 권능으로 괴의 거죽을 둘러 분절형장에 잠입했다.
그곳에서 음양귀의 수하인 듯한 놈을 봤고, 그에게 간이고 쓸개고 모두 빼 주며 충성을 보이는 배신자 놈들에게 좀 분노했을 뿐이다.
한데 그 순간 걸려 버렸다.
전에 본 서기 정도면 가진 신력이 어마어마한 놈일 텐데, 음양귀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조금 부주의했을 뿐인데, 음양귀도 아니고 그 수하 놈에게 들킬 줄은…….
그리고 아무리 괴의 가죽을 뒤집어쓴 탓에 속도의 제한을 받았다고 해도 그렇지, 공격을 허용할 줄이야.
대체 그 법구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이제껏 본 적도 없는 물건이었다.
그저 번쩍! 했는데, 그걸 인지함과 동시에 머리가 터져 버렸다.
다급히 세류의 힘으로 또 다른 거죽을 뒤집어쓰며 도망쳤는데 새 거죽의 머리까지 부서졌다.
찰나만 늦었어도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이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인가?
죽더라도 부활할 것은 당연하지만, 일계의 주인 된 자가 도전자와 제대로 붙어 보지도 못하고 수하 귀에게 당해 꽁지 빠지게 튄 꼴이라니.
“빌어먹을 자식,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바득바득 이를 갈아 대며, 교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시 가야 했다.
아직 음양귀는 얼굴도 보지 못했으니까.
다만, 조금은 주의를…… 아니, 조금 더 많이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