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7
7화
무당이 여지껏 고수해 온 전통인 십계를 정면에서 비판하였으나 구구절절 옳은 말이니 막을 수가 없었다.
“사형, 버릴 것은 버리고 변할 것은 변해야 합니다.”
통렬한 명진의 말이 끝나고, 명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장고(長考) 끝에 그가 나지막이 입을 뗐다.
“명진.”
“예.”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이 있네.”
“…….”
“살아남기 위해 옳지 않게 변한다면 어찌 그것이 정도라 말하겠는가?”
“옳지 않게 변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고 있네. 허나 그 결과는 또 어찌 장담하는가?”
“장담이 아니라…….”
“그만!”
명현이 일갈을 내질러 더 이상의 항변을 막았다.
둘의 대화는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과 같았다.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다르니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다.
무당의 십계.
오랜 전통.
절대 쉽게 바뀔 수 없는 일이었다.
십계야말로 무당이 지키고 계승해 온 역사요, 정체성이었다.
명진의 말에 틀림은 없었으나, 명현 또한 당대의 장문인으로서 당연히 무당의 전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명진이라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고 자신이 과했음도 알고 있었다.
장로들이 보고 있었고 진무와 청우가 보고 있는 자리에서 장문인에게 그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나, 그동안 쌓여 있던 불만이 터져 예의를 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장문인.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맞습니다. 명진 사형의 건강이 회복되는 효험을 보았다 해도 규율은 지켜져야만 합니다. 십계를 어긴 명진 사형을 비롯해 진무와 청우를 처벌해야 마땅합니다.”
명선과 명공이 부추기듯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명현은 명진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문인!”
“자네들도 그만하게.”
명현이 근엄한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잘라 내고 명진을 바라보았다.
명진.
무당은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
사패천의 공격에서 마지막까지 굴하지 않고 자소궁을 지킨 위대한 도인이 바로 그였다.
비록 무공은 잃었으나 그의 숭고한 정신은 모든 무당도들의 귀감이었다.
그가 말하는 변화.
명현 역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장문인이 된 이후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도(正道)를 지키며 사도(邪道)를 막는다. 올바름으로 간악함을 계도(啓導)한다.
그것이 오랫동안 지켜 온 무당의 전통이자 정의였고, 십계는 그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가?
옳다 믿고 행하였으나 그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고 산문에 가득했던 이들 모두가 떠나갔다.
어찌해야 다시 과거의 성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명진의 일침을 듣고, 그가 육식으로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고 나니 심경이 더욱 복잡해졌다.
“자네들은 이만 돌아가게. 이 일은 내 알아서 처결토록 할 터이니.”
“장문인!”
명공이 재차 불렀지만 명현은 고개를 돌린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알겠습니다. 허면 일단 돌아가겠습니다.”
명공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찾아온 걸음은 진무의 성장에 대한 즐거움과 흥분이었으나, 그것으로 계율을 어긴 죄가 용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문인이 직접 처결하겠다고 명을 내린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일.
명진이 기거하는 암자의 문이 닫히고 명공과 명선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간 뒤.
“저, 사숙…… 이제 어떻게 하죠?”
걱정이 가득한 청우의 물음에 진무가 눈을 찡그렸다.
아니 근데 이게 그리 중요한 문제인가?
그냥 고기를 먹은 것뿐이다.
뭔 계율이 어떻고 변화가 어떻고…… 하여간 사소하기 짝이 없는 문제에 목숨을 거는 도사 놈들 같으니.
어쨌거나 불안하다.
진무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스승의 항변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 버렸다.
‘젠장, 둘이 뭔 이야기를 하는 거지?’
대제자의 꿈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무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귀를 기울였다.
* * *
다음 날.
무당파의 장로들이 모두 모인 자소궁.
“진무는 앞으로 나서거라!”
문파의 계율을 담당하는 장로 명공의 외침에 아침부터 불려 온 진무가 장문인의 앞으로 나서 무릎을 꿇었다.
명현이 진무를 차분히 바라보았고 장로들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어떤 처결이 내려질지 모두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진무, 너의 죄는 세 가지니라.”
뭐? 세 가지?
고기 먹은 죄만 묻는 것이 아니었나?
진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데 명현이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첫째, 스승을 위함이라 하나 본문의 십계 중 하나를 어겼다. 둘째, 사문의 허락도 얻지 않고 선대의 검공을 함부로 변형하여 후대에게 가르쳤다. 셋째, 사형제 간의 비무에서 중한 상처를 입혔다. 인정하느냐?”
“예?”
첫째는 그렇다 치고, 둘째와 셋째는 왜?
지난밤.
명현은 명진에게 몇 가지를 묻고 몇 가지를 답했다.
대부분 어찌 수련을 시켰느냐?
근자에 건강은 어떠하냐 등과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언급하는 세 가지 죄목에 대해서 어찌하겠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기에 진무는 불안하기만 했다.
“다시 묻는다 인정하겠느냐?”
망할, 이런 엄숙한 분위기에서 못 한다고 배 째라 할 수도 없고.
“……예.”
진무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좋다. 본 장문인은 이상의 세 가지 죄를 물어 직권으로 처결을 내리겠다. 진무는 앞으로 한 달간 해검지(解劍池)의 마목(馬木)을 보수하라.”
“…….”
순간 진무뿐 아니라 장로들의 얼굴에도 놀람이 어렸다.
“장문인!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명공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섰다.
처분이 가벼워도 너무 가볍지 않은가.
마목 보수.
어디를 어떻게 봐도 단순 구실에 불과할 뿐이었다. 자중하라는 의미였다.
응당 징벌동에 가두어야 마땅한 죄였다. 그렇기에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명현이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막았다.
“장문인으로서의 직권이라 하였다.”
“하지만…….”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라.”
“…….”
명현의 말에 명공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러났다.
“또한, 향후 한시적으로 육식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겠다.”
“장문인!”
“아니 됩니다!”
사방에서 우려의 외침이 일어났다.
처결이 가벼운 것도 모자라 십계 중 하나인 육식을 해(解)한다니?
한시적이라 하였으나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문인, 오랜 전통입니다. 어찌 그리 쉽게…….”
“그만!”
명현이 일갈이 대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웅성대는 좌중의 목소리를 단번에 날려 버렸다.
“진무는 그만 나가 보라.”
“……예.”
대전 안은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했으나 이번 일로 대제자가 되지 못할까 걱정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 진무의 마음은 가볍기만 했다.
진무가 나간 뒤 명공이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장문인! 십계 중 하나인 육식을 해하시다니 말도 안 됩니다.”
“맞습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명공의 뒤를 이어 장로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자신의 의견을 토해 내었다.
“장로들은 들으시게.”
“…….”
명현의 음성이 대전의 웅성거림을 짓누르고 내뱉어졌다.
“이번 일에 반대와 우려가 클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하였네. 하나 이번만큼은 내 결정을 따라 주게.”
낮은 음성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모두를 감싸 안는 듯한 포근한 힘이 있었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버린 명공을 대신해 정동궁주 명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문인. 명이 내려졌으니 장로들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어찌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고기를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명진 때문입니까?”
“들은 모양이군.”
“예. 산보를 다닐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었다지요?”
“그래.”
“하긴 육식을 하였으니…….”
명화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무당의 의원으로서 오랫동안 그의 몸을 돌봐 온 명화였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무공을 되찾을 순 없어도 기력 회복에 있어 장기적으로 육식이 필요함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십계를 정면으로 어겨야 했기에 차마 권하지 못했다.
전통에 묶여 알고도 행하지 못했으니 사제인 명진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제가 했어야 할 일을 진무가 하였군요. 실은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없거늘, 계율에 묶여 행하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옳네.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육식의 금기를 해한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닐세.”
“예?”
“진무의 이야기를 들었겠지?”
“예. 신문십삼검을 변형해 진허를 이겼다지요?”
“그래. 한데 명진에게 물어보니 그가 가르친 것이 아니라더군.”
“예?”
“그는 그저 무학의 요결을 구전으로 사사했다 했네.”
“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그저 구전으로 익힌 심법과 무공이 가진 약점을 꿰뚫고 변화까지 주었단 말입니까?”
“그러게나 말일세.”
명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로들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사실이라면 하늘이 내린 무재로군요. 고작 일 년 만에 저만한 재능을 보이다니.”
“옳네. 모두가 알다시피 진무는 오직 충허암에만 기거하며 정해진 수련과 관계없이 스스로 참오하고 배우며 익혔네.”
명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네.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 온 틀 안에 제자들을 가두어 자율성을 저해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 말일세. 그로 인해 재능 있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자조 섞인 명현의 음성이 대전에 퍼질 때마다 장로들의 가슴이 무겁게 짓눌렸다.
“명진이 그러더군. 무당은 변해야 한다고.”
“…….”
“나는 한번 변해 볼 참일세.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는 없겠지. 그렇기에 한 번에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십계의 하나를 해한 것이네. 그것은 비단 육식에 대한 해함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나의 의지임을 모두가 이해해 주기 바라네.”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에 담긴 명현의 진심에 장로들의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명공.”
“예. 장문인.”
“계율을 맡은 자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번 일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네. 부디 양해해 주기 바라네.”
명현의 부드러운 음성에 명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하겠습니까? 이 모두가 장문인의 뜻인 것을요.”
“고맙네.”
약간은 투덜거림이 남은 기색이었으나, 그래도 마음이 많이 풀어진 듯한 명공의 모습에 명현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당.
다른 문파와는 달리 무당에는 문 내 파벌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곧 문파 내의 결속이 다른 어떤 곳보다 돈독함을 뜻했다.
도를 추구하는 문파로서의 특징이기도 했으나 사패천의 공격 이후 그 결속력이 더욱 단단해진 이유도 있었다.
진무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난 뒤, 모두가 흐뭇해진 분위기 속에 우진궁주 명충이 화제를 돌렸다.
“참, 장문인. 곧 청양상단에서 오기로 하였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던지 명현이 기쁜 표정으로 물었다.
“연락이 왔는가?”
“예. 보름 뒤에 찾아오겠다 하였습니다.”
“흠. 잘되었군.”
명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알다시피 이번 교류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네.”
당연하다.
상계마저 등을 돌린 시점이었다.
이미 무당산 인근의 이권이 모조리 제갈세가로 넘어간 뒤였기에 무당의 재정은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대외 활동을 아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무당 전체는커녕 일궁조차 먹고살기가 빠듯했다.
지금 청양상단과 연을 맺는 것은 어려운 무당의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곧 오기로 하였다니 각 궁에서는 그들을 대접함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장로들은 공손한 대답과 함께 대전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