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해릉도의 비밀 (3)
임평일은 미동조차 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저, 저럴 수가…….”
그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음괴라 불린 고수가 붉은가면을 쓴 두 놈을 정신없이 두들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맨손으로 말이다.
상상을 초월한 무력.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쩌적-! 쾅-! 콰직-!!
그들에겐 비명조차 지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찌나 무차별적으로 때리는지 육안으로는 자세히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한 호흡이 더 지난 이후에서야 요란한 타격음이 멈추었다.
동시에 그들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음괴라 불린 고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실망스럽다는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힝. 없어, 내 전리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이 뒷짐을 지고 다가갔다.
“딱 봐도 거지들처럼 보이잖느냐. 아무튼 수고했다. 잠시 뒤로 나오너라.”
유설과 위치를 바꾼 유진산은 둘의 모습을 지그시 내려보았다.
둘 다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두 눈에 살기가 드리워질 무렵.
뒤에 있던 유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임평일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아저씨.”
조금 전의 가공할 무력을 보았기 때문일까? 임평일은 흠칫 놀라며 반보를 물러섰다.
“……?”
“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착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아무나 해치지는 않아요.”
가면무사의 목을 비틀던 유진산이 등 뒤로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할애비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유설이 임평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미세하게 한 번 내저었다.
동시에 거짓말이니 믿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임평일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미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근데 그건 뭐예요?”
유설의 시선이 그의 왼팔을 향했다. 목숨을 걸고 훔쳐온 쌀가마니였다.
시선을 느낀 임평일은 그것을 양손으로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식, 식량입니다.”
“치. 안 뺏어 먹어요. 근데 아저씨 내가 아는 사람이랑 되게 닮았다.”
임평일은 그것이 누굴 얘기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앞서서 유진산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임, 임평수 말입니까? 제 동생입니다.”
그 순간 유설이 손뼉을 부딪치며 반가워했다.
“우와! 정말요? 평수 아저씨는 나랑 친구예요!”
배시시 웃는 유설의 얼굴을 보고서야 임평일은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 철없던 우리 평수가 어찌 두 분을 친구로 두었는지.”
그때 작업을 마무리한 유진산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다가왔다.
“자네 아우는 향남현의 협객이네. 동네 무림인들의 선망을 받으며, 정도를 걷고 있더군.”
“그, 그게 정말입니까?”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나. 얼마 전에는 구양호라는 못된 놈과 싸우다 당할 뻔했는데, 우리가 구해줬지.”
임평일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나 기쁜 소식을 전해주다니.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두 형제가 차례로 눈앞의 기인들에게 목숨을 빚진 셈이었다.
“신경 쓸 것 없네. 그나저나 자네는 지금 이 섬에 남아서 무엇을 하는 겐가.”
“……지켜야 할 자들이 있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했음에도 유진산은 뭔가 직감하고 있었다.
가면무사들을 피해 어딘가에 숨어있는 자들이 있는 것이리라.
궁금한 부분이 많았지만, 급할 것은 없었다. 자신들을 신뢰하게 되면 알아서 털어놓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들려왔다.
“끄으으악!”
유설이 언덕 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까 재워놨는데 깨어났나 봐.”
나무 뒤에 묶어놓고, 심문하려던 검은가면을 쓴 인물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손녀가 기절을 시켜놨던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이었기에 셋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찌 된 일인지 그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끄아악!!”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유진산이 손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얘 왜 이래?”
유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야. 나 안 때렸어.”
비명을 지르던 그는 급기야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가면 속에 보이는 눈동자는 이미 흰자가 드러나 있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임평일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적사초의 약효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이대로 두면 죽을 것입니다.”
유진산도 처음 들어본 약초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짐작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혹시 저곳에서 재배하고 있는 것들인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먼 곳에는 붉은 색감으로 물든 약초밭이 있었다.
임평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맞습니다. 저것을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전신의 혈도가 팽창됩니다.”
이제야 붉은가면을 쓴 무사들이 괴이한 움직임을 보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진산이 눈짓으로 검은가면을 쓴 자를 가리켰다.
“헌데 저 꼴을 보니 부작용이 심한 모양이군.”
“예. 지속해서 복용하지 않는다면, 혈도가 끝없이 수축하여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가 말을 마치는 사이, 고통스러워하던 가면무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것참 무시무시하군. 세상에 이런 사악한 약초가 있었다니.”
임평일이 섬의 중심부를 둘러싼 방벽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에 있는 악마가 이 섬으로 올 때 가지고 온 씨앗입니다.”
“수전왕이라 불리는 전사룡 말인가.”
유진산이 이름을 거론하자 임평일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이 섬에 온 이유가 바로 그놈을 잡기 위해서네. 그러니 협조 좀 해줬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유진산은 절망에 가득 차 있던 임평일의 눈빛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윽고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매일같이 불공을 드렸습니다. 이런 날이 오기를…….”
“협조하겠다는 얘기로 듣겠네. 그럼 이제 말해주게. 놈을 잡기 위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쌀가마니를 어깨에 걸치며 대답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이곳은 곧 발각될 테니,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음괴의 무력을 보고도 그는 아직 안심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전사룡과 그의 부하들이 무섭다는 얘기이리라.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지는 차차 알아보면 될 터.
유진산은 봇짐을 손녀의 등에 메어주었다. 내용물은 군함의 선실에서 챙겨온 간식이 대부분 이었다.
곧이어 조손은 그를 따라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렇게 나아가길 잠시 후. 유설이 심심한지 임평일의 옆으로 바짝 따라붙으며 물었다.
“근데 왜 가면을 색깔별로 쓰고 있는 거예요?”
“계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얀가면은 백사(白邪)라 불리는데, 과거엔 이 섬의 주민들이었습니다.”
“그럼 원래는 멀쩡했어요?”
“그렇습니다. 적사초에 중독되고 세뇌를 당하기 전까지는요. 지금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기에 시체들이나 다름없습니다.”
무공이 약한 만큼 적사초의 부작용에 더욱 취약한 것이리라.
무심히 그의 말을 듣던 유설이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불쌍해.”
“그리고 흑사(黑邪)와 적사(赤邪)는 이곳을 토벌하러 왔던 무림인과 관원들이었습니다.”
흑사는 검기를 다룰 정도였으며, 적사는 최소한 절정에서 초절정의 수준은 되는 듯했다.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적사초에 중독되어 조종당하는 모양이었다.
“또 있어요?”
“예. 아주 소수이지만 푸른가면을 쓴 청사(靑邪)가 있습니다. 그들은 화경에 이른 자들이니 조심하십시오.”
가만히 듣던 유진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화경의 신체는 저런 약초 따위에 중독되지 않을 텐데?”
“맞습니다. 저희 대장님한테 듣기로는 전사룡이 사악한 술법을 썼다고 합니다.”
아마도 임평일을 포함하여 저항세력을 지휘하는 누군가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대장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어차피 곧 있으면 알게 될 터. 굳이 먼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청사만 조심하면 되겠군.”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유진산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또 있다고?”
“예. 저 방벽 안에 황금가면을 쓴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가지가지 하는구만. 그놈들은 또 뭐지?.”
“저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 지금까지 방벽 안으로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은 저희 대장님이 유일하니까요.”
“뭐 차차 알게 되겠지.”
유진산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산속을 헤집고 일다경쯤 이동했을 때였다.
전면으로 폐허가 된 사찰이 하나 보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임평일이 경공을 멈추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제 뒤로만 따라오십시오.”
“음. 저 사찰이 본부인가?”
“은신처 중 한 곳입니다. 본부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생각보다 저항하는 자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과거에는 수만 명이 살았다던 섬이었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잠시 후 사찰의 입구에 도달하자 임평일이 신호를 보냈다.
삐익-! 삐익-! 삐익-!
세 번에 걸쳐 짧게 울린 새의 지저귐이었다.
잠시 후 천장이 반쯤 함몰된 전각의 내측에서 검을 움켜쥔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드디어 식량을 구해오셨군요.”
“응. 이것밖엔 안 되지만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어.”
“정말 다행입니다. 근데 뒤의 애들은 뭡니까?”
그동안 어두움만 가득했던 임평일의 얼굴이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를 이 지옥에서 해방시켜주실 분들이다.”
“예? 그게 무슨…….”
그 순간 뒤에서 유설이 손을 흔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반가워요. 우린 음양쌍괴라고 해요.”
“음양……쌍괴? 쟤들 도대체 뭡니까?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 형님.”
납득이 되지 않으면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절망이 가득한 지옥도에서 깔끔한 옷차림에 때깔이 고운 아이들이라니. 전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임평일이 어리둥절한 무사들에게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를 갖춰 말하거라. 적사 셋을 맨손으로 쓰러트리신 분이시다.”
두 명의 무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즉각 반문했다.
“예? 뭐라고요?”
“말이 안 되잖습니까?”
언제까지 이들과 입씨름할 수는 없는 노릇.
묵묵히 지켜보던 유진산이 손녀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유설이 한쪽 손을 슬며시 내밀었다.
파드드득-!
바닥에 깔린 낙엽이 휘몰아치며 둘의 전신을 감쌌다.
곧이어 그들의 발끝이 지면에서 붕 떠올랐다.
“크앗!”
“헉!”
무사들은 기겁하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갈 정도였다.
평소와 같았으면 좀 더 장난을 쳤을 테지만, 유설은 곧바로 둘을 지면으로 내려주었다. 계속했다간 어딘가 잘못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많이 놀랐어요? 미안해요, 우리 할배가 시켜서…….”
유설은 미안한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 둘에게는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리가 풀리는지 한 명은 벽에 기대었고, 또 한 명은 무릎을 굽혔다.
아직도 놀란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형님,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소.”
“고마워. 이따들 보자고.”
임평일은 둘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앞장서서 지나쳤다.
사찰의 내부로 들어선 그는 바닥에 깔린 짚단을 들춰냈다. 그러자 안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유진산은 먼저 기감으로 내부를 한 번 재어보았다.
얼추 백 평이 조금 넘는 공간 안에 사람들의 기운이 바글바글하게 느껴졌다.
“다들 이런 곳에 숨어 살고 있었단 말인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잠시 후 그를 따라 내려간 조손은 적지 않게 놀랐다.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뒤엉켜 있었는데, 처참하기가 이루어 말할 수가 없었다.
생기가 없는 눈빛들. 그리고 얼마나 못 먹었는지 다들 뼈가 앙상했다. 죽지 못해 살아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처절한 모습이었다니.
그때 반가움이 가득한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저씨 왔다!”
“힝.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임평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아저씨가 먹을 거 구해왔다! 많이 배고팠지?”
그가 그토록 쌀가마니에 집착했던 이유가 바로 이 아이들 때문인 듯했다.
조손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길 잠시 후.
돌연 머리를 양 갈래로 딴 여자아이가 유설을 향해 쭈뼛쭈뼛 다가갔다.
작고 꾀죄죄한 몰골이었지만, 크고 동그란 눈동자에는 순수함이 가득해 보였다.
“근데 언니는 누구야?”
유설은 다가온 여자아이가 귀엽다는 듯 귀를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