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자질의 차이 (2)
유진산은 진중한 얼굴로 정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동생이 먼저 날 좀 도와줘. 그럼 우리 설이가 만든 태극건곤장을 가르쳐줄지 생각해 볼게.”
정혜는 고개를 연달아 끄덕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응, 형! 정말이지? 내가 뭘 해줘야 해?”
“아주 간단해. 동생이 내게 전수해준 역근경과 금강불괴신공이 구성(九成)의 화후에 멈춰 있거든. 십성(十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줘.”
구성과 십성은 고작 한 단계 차이지만, 무공의 위력은 두 배에 육박한다.
하지만 그만큼 도달하기가 힘든 화후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무공을 완벽하게 통달한 정혜라면, 필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터.
“대신 약속 꼭 지켜야 해!?”
정혜가 눈앞으로 새끼손가락을 쓱 내밀고 있었다.
그것이 뜻하는 의미를 눈치챈 유진산은 미간을 가운데로 모았다.
“이거 왜 이래? 형 못 믿어!?”
“응, 거짓말쟁이 나쁜 형.”
파계승이 자신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유진산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지못해 새끼손가락을 교차하여 걸었다.
“언제는 좋은 형이라며? 자, 이제 됐지?”
“좋아. 이제 우리 둘 중에서 약속 어기는 사람이 손가락을 자르는 거야.”
“어휴. 그래, 알았다. 동생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정혜는 히죽히죽 웃더니, 유진산을 번쩍 들어서 자신의 어깨 위에 턱 걸쳤다.
“자, 가자!”
“벌, 벌써? 안 도망갈 테니, 일단 좀 내려놓거라.”
정혜는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
이미 자신을 업은 채로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때 귀두대원들에게 둘러싸인 손녀가 멀어지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할배, 벌써 수련하러 가!? 잘 다녀와!”
유진산은 작아지는 손녀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아가…….”
패도문에 도착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수련이라니? 너무나도 급작스러워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휴. 이거 일이 잘 풀려도, 너무 잘 풀려서 문제로구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안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손녀도 곧 폐관 수련에 들어갈 터.
패도문의 문주인 백규가 돌아오기 전까진 달리 할 일도 없지 않은가.
유진산은 지금의 상황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정혜에게 끌려온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야산의 정상이었다.
산세가 가파른 돌산이었기에 먼 곳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패도문의 장원은 물론 호현 곳곳의 길목까지.
위치는 썩 괜찮았지만, 왜 이곳까지 왔는지가 의문이었다.
“왜 여기까지 왔어? 패도문에서 안 하고.”
부지가 확장된 패도문의 장원에는 수련할 장소가 얼마든지 있다.
파계승의 속내가 궁금할 수밖에.
그는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대수롭지 않게 소리쳤다.
“방해받으면 안 된다! 오래 걸려!”
물론 유진산도 하루 이틀 안에 될 일이 아니란 것쯤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최소 며칠은 걸릴 터.
미리 확인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오래? 사흘? 나흘?”
“정혜는 몰라! 형의 자질에 따라 다르다!”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손녀라면 하루도 걸리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진산은 경지에 비교해 그리 자질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손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영원히 화경에 도달하지 못했을 정도로.
하지만 결과가 중요할 뿐, 과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대충 한 닷새는 잡아야겠구나.”
그 순간 코를 후비던 정혜가 폭소를 터트렸다.
“푸히히히!”
“왜 웃어? 닷새 안에 안 될 것 같아? 날 무시하는 거야?”
“형은 무공에 재능이 없다! 자질이 형편없다! 푸히히!!”
유진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인상을 썼다.
마음 같아선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정혜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잠시 분을 삭이던 그는 끝내 한숨을 내쉬며 상의를 탈의했다.
군더더기 없이 마른 소년의 신체였지만, 근육은 제법 붙은 모습이었다.
“금강불괴신공부터 시작할 거야. 잘 도와줄 수 있지?”
“응, 어서 앉아!”
비록 정신이 오락가락한 파계승이었지만, 무공에 관해서 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유진산도 믿고 등을 맡길 수가 있었다.
그가 가부좌를 틀자, 등 뒤로 거대한 두 개의 손아귀가 ‘착’ 달라붙었다.
“잠깐. 손 닦았어?”
“형, 빨리~ 시작하자~”
“등에 이물질이 느껴지는데, 이거 뭐야?”
조금 전에 코를 후비던 그의 모습을 보니, 찝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등에 뭔가를 묻힌 것이리라.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 ‘큭큭’거리는 소리만 들려왔을 뿐.
“내가 우리 설이한테 말하면 넌 이제 죽었……. 윽!”
유진산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몸속으로 정혜의 진기가 스며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정신을 집중하여, 기의 운공을 함께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혈이 꼬여 주화입마에 빠져들 테니.
우우우웅-!!
두 가닥의 진기가 전신의 혈도를 타고 돌며, 운기행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자 유진산과 정혜의 신체가 마치 금불상처럼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역시 내 판단이 옳았구나!’
이미 금강불괴신공을 대성한 전문가답게, 정혜의 도움은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수련의 속도가 최소한 몇 배나 더 빨라진 듯했다.
적어도 손녀와 무림맹주의 대결 이전에 목표로 한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터.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금강불괴신공이 완성된다면 우리 손녀에게 짐이 되진 않겠지.’
이미 정혜를 통해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었다. 십성에 도달한 금강불괴신공의 위력을.
그 어떠한 무기도 신체를 파고들 수 없으며, 검기 따위에도 상처조차 입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적의 방어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흥분이 되어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돌연 자신의 등에 붙어 있던 정혜의 두 손 중 한 손이 떼어졌다.
“……?”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유진산의 두 눈에 의문이 떠오를 때쯤이었다.
찰싹-!
정혜의 큰 손바닥이 유진산의 등을 때리는 소리였다.
“아악! 형을 왜 때려!?”
“이놈, 떽!! 수련 중에 딴생각하면 매 맞을 줄 알아!”
이건 또 무슨 어처구니없는 경우란 말인가.
땡중이 자신을 소림사의 제자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몸에 배어 있던 소림사에서의 습관이 무의식중에 발현되는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정혜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입술을 삐쭉거리던 유진산은 겨우 화를 가라앉히며, 두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수련에 전념할 작정이었다.
* * *
무아지경 속에 금강불괴신공의 운기행공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 자신을 잊고, 시간을 잊고. 지루함이라는 것조차 잊을 무렵.
유진산과 정혜의 몸 위로 뭔가가 천천히 쌓여 갔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러한 현상을 눈치챌 수가 없었다. 아직도 수련을 멈추지 않고 있었으니까.
영겁의 시간에 정신을 가둔 채 끝없는 운기행공만이 계속되었다.
우우우웅-!!
어느 순간 금불상처럼 변한 유진산의 몸에 광채가 서리기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찾아온 변화였다.
동시에 황금빛으로 물든 둘의 신체가 원래의 피부색으로 급속히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먼저 눈을 뜬 정혜가 벌떡 일어서서 양손을 번쩍 올렸다.
“성공했다! 우리 형이 성공했다!”
유진산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드디어 자신이 금강불괴신공을 완성했음을.
기쁜 마음으로 천천히 눈을 뜨던 그는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뭐, 뭐야? 웬 눈이 쌓여 있어?”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며칠 밖에 안 지난 것 같았거늘,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있다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진산은 벌떡 일어서서 멀리 보이는 패도문의 장원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별일은 없었나 보군. 다행이구나.’
게다가 기존보다 더욱 활기가 넘쳐 보였다. 백규와 함께 떠났던 문도들이 복귀했기 때문이리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으니, 어서 돌아가 봐야 했다.
그때 옆에서 정혜가 보채왔다.
“이제 내 차례야. 태극건곤장 알려줘!”
“아직 아니야. 역근경도 도와주기로 했잖아.”
그것이 거래의 조건이었다.
정혜는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며 괴로워했다. 또다시 지루함 속에 수련을 도와줄 생각을 하니 끔찍한 모양이었다.
“끄으으으! 빨리 끝내자, 형!”
“미쳤어? 지금 무슨 수련을 또 해? 일단 패도문으로 돌아가자꾸나.”
빨리 가서 손녀가 보고 싶었지만, 정혜가 앞을 가로막았다.
“안 돼!”
“저리 비키거라!”
유진산의 양쪽 손바닥이 정혜의 옆구리를 슬쩍 타격했다.
투웅-!!
태극건곤장의 반발력으로 인해 정혜가 옆으로 미끄러질 무렵. 유진산은 패도문의 장원을 향해 냅다 달렸다.
“나쁜 형, 거기서!!”
뒤를 돌아보니 그가 미친 듯이 쫓아오고 있었다.
“알았으니까, 좀만 기다리거라! 나도 좀 쉬어야 할 것 아냐, 이 미친 땡중놈아!!”
경공을 펼쳐 한달음에 내려온 유진산은 패도문을 향해 질주했다.
순식간에 장원의 담벼락을 뛰어넘은 그는 정혜를 따돌리기 위해 한참을 뛰어다녔다.
타타탓-!
장원의 곳곳을 누비며 술래잡기를 계속할 무렵.
멀지 않은 곳의 전각에서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손짓을 했다.
벌컥-!
“형님, 어서 이리로 들어오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패도문에서 가장 험상궂은 인상을 지닌 인물. 패도문의 문주인 백규였으니까.
다급히 문주의 집무실로 숨은 유진산은 겨우 숨을 골랐다.
“어휴. 죽는 줄 알았네. 저렇게 의욕이 넘치는 땡중은 처음 봤어.”
“하하하! 여전하시오, 형님. 이곳이라면 잠시는 숨을 수 있을 거요.”
유진산은 백규의 안내를 받아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거 아우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인사조차 할 여유가 없군. 내가 이곳에 온 지 꽤 된 것 같은데, 얼마나 지났는지 알려줄 수 있겠는가.”
“시간도 잊고 수련하셨나 보오. 우리 애들에게 듣기로 아마 석 달 전이오.”
벌써 석 달이나 흘렀다니? 예상보다도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진산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나 시간이 흘렀다니……. 그럼 우리 손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설이도 그동안 폐관 수련을 했소. 보름 전에 다시 나오긴 했는데, 잠시 이곳을 떠난 상태라오.”
“떠나다니? 나한테 얘기도 없이 어딜 말인가?”
백규는 대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놀다 오겠다고 나갔는데, 열흘째 소식이 없소.”
“음. 혼자서 딱히 갈 곳이 없을 텐데? 그것참 이상하구만.”
“너무 걱정하지 마소. 천하의 음괴인데, 뭐 별일이야 있겠소?”
유진산도 그 말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폐관수련을 마쳤으니, 이제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적어도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할 우려가 없었다.
“수련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바람이나 좀 쐬고 돌아오겠지, 뭐. 헌데 아우는 그간 별일 없었는가?”
“요즘 강호에서 괴상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서,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소.”
“괴상한 사건이라니?”
백규가 탁상 위에 펼쳐진 중원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에는 광천문이었소. 문파의 모두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살해를 당했기에 섬서가 뒤집혔었소.”
“음. 나도 그 얘긴 들었네. 자네가 그곳을 조사하러 갔다더니, 성과가 없었나 보군.”
백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손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광천문은 시작에 불과하오. 이후에는 낙양성 인근의 중소 세력 몇 개가 같은 방식으로 전멸을 당했고, 최근에는 하남의 정천문을 포함하여 이 일대에서도 일이 벌어지고 있소.”
“정천문은 무림맹 소속이 아닌가!?”
정천문은 하남에서 규모가 꽤 있는 곳으로 유진산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이 당했다는 것은 굉장히 의외였다.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당하고 있소. 흉수는 오리무중이고, 조사를 해보면 단서는커녕 재미로 죽인 흔적만 있을 뿐이오. 어떤 빌어먹을 놈인지…….”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사도련과 무림맹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해괴한 짓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유진산은 묵묵히 백규가 지목한 문파들을 지그시 주시했다.
그러더니 검지로 광천문부터 시작하여 점들을 하나로 이어보기 시작했다.
“서쪽 어딘가에서 출몰하여 낙양을 통과해 개봉으로 향했군. 여기서 다시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만약 애초부터 그놈이 노리는 목적지가 이곳이었다면, 경로가 자연스러워 보이는구만.”
백규는 유진산이 가리키는 위치를 쓱 살펴보더니, 피식 웃었다.
“설마 그곳을 노리겠습니까?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도 소림을 치는 것은 자살행위일 텐데요?”
유진산도 오래전에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손녀와 함께 소림사에 침입했다가, 간신히 도망쳐 나오질 않았던가. 그곳의 방비는 그야말로 정파에서 제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유진산이 다시 뭐라고 말을 할 찰나였다.
콰앙-!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리며, 정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 된 일인지, 언제나 장난기 가득하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야차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돌아온 거야! 얼굴 까만 새끼가 돌아온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