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한계를 돌파하라 (3)
“이제 그만하시오. 그 정도 하셨으면 되지 않았소.”
조손이 나란히 말을 건넸지만, 원강대사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는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염불만을 계속 외워댔다.
“시방세계에 두루하신 부처님, 지혜와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시는 분이시여. 항상 보리심에 머무르시니 머리 숙여 공경하나이다. 여러 생 동안 선업을 짓지 않아 많은 죄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나, 이제야 성실한 마음으로 참회하나이다.”
알 수 없는 말을 끝도 없이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유진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저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설은 포기하지 않았다.
원강대사의 등 뒤에서 집요하게 말을 건네어 염불을 방해했다.
“아저씨가 우리 할배한테 애들을 구해달라고 그랬다면서요? 아미산에 있는 애들이요. 궁금하지 않아요? 우리가 구해왔는데, 궁금하지 않냐구요!?”
그 순간 그의 염불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방해를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유설의 말에 흥미를 느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영겁처럼 이어지던 그의 행위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
주변이 정적에 잠기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조손은 차분히 그가 마음을 정리하길 기다렸다.
그렇게 반 각 정도가 지난 뒤.
원강대사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정말 그 아이들을 구해내셨소?”
“맞아요. 우리가 삼백 명이나 구해왔어요.”
“……고맙소.”
그것이 끝이었다.
그가 다시 염불을 이어가려 하자, 유설이 다짜고짜 그의 등 뒤에서 머리 위로 도약해 뛰어넘었다.
타앗-!
감옥 안쪽에서 마주하게 된 그의 얼굴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뼈가 앙상했으며, 두 눈은 생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마치 삶의 의지를 잃은 사람처럼.
“그럼 이제 그만하고 나와요! 왜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어요!?”
사자후처럼 뿜어내는 유설의 호통에 원강대사는 염불을 외울 수가 없었다.
“소승은 아직 죄를 씻지 못했습니다.”
“나도 어제까지 달마동에서 면벽수행하고 왔거든요? 근데 그거 다 소용없어요. 용서는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미안해하는 사람한테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원강대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유설의 말에 뭔가 깊은 울림이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그가 나직이 물었다.
“시주께서는 용서를 받았습니까? 그래서 죄책감이 사라지셨습니까?”
유설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연하죠. 해달라는 대로 해줬더니, 이제 나를 원망하지 않겠대요.”
유설은 자신의 장난으로 묵언수행이 깨져서 울부짖던 원운스님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화해한 지금은 마음이 아주 편안하지 않은가.
그것을 원강대사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들이 저를 용서해주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한번 가서 물어봐요. 호현에 있으니까.”
“……소승에게 그래도 될 자격이 있겠습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해요? 손해 볼 것도 없잖아요.”
유설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원강대사는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지켜보던 유진산이 그에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당신은 무림맹을 대표하여 창룡대를 지원해왔으니, 천축에 대해서 잘 알 것이오. 그들의 침공이 임박했소.”
“…….”
원강대사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유진산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그들은 창룡대의 뿌리를 모두 제거하려 들 것이오. 만약 당신이 놈들로부터 그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섬서의 패도문으로 가보시오.”
그 순간 원강대사의 앞에 있던 유설은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서서히 뜨여지는 그의 두 눈이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이제야 삶의 이유를 찾은 것일까? 죽어가던 눈동자에서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흘러넘치는 정기는 등 뒤의 유진산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아가, 우린 이만 가자꾸나.”
유진산이 손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원강대사 스스로의 선택일뿐.
“또 봐요, 스님 아저씨.”
그를 지나친 유설은 할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어깨를 마주한 채 객당을 향해 산책하듯 걷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아마도 거의 넘어온 것 같더구나. 그렇지?”
“응, 꼭 패도문에 합류할 거야. 나는 알아.”
유진산이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서로에게 좋은 일이지. 아무튼, 백규 아우가 참 좋아하겠어.”
“히히히.”
그렇지 않아도 정혜가 정신을 차리는 바람에 패도문이 귀중한 식객을 잃지 않았던가.
대신에 원강대사라는 절세고수를 얻게 될 테니, 횡재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는 귀두대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걸고 싸울 터.
사파에서 가장 소중한 전력이 될 터였다.
“이제야 얼추 무림의 균형이 맞춰진 것 같구나.”
지금부터는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 * *
조손은 열흘 뒤에서야 소림사를 떠나 하산할 수 있었다.
그사이 정혜와 함께 태극건곤장을 익히고, 역근경을 완성한 것이다.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뤘기에 마음이 가벼웠다.
모처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조손은 인근 도시에 들러 연극도 보고, 값비싼 음식도 실컷 먹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분 좋게 한적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가. 아까 돈을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어째서 그 비싼 바닷가재를 두 마리나 시켰어?”
유설이 만족스럽다는 미소로 볼록해진 배를 두들겼다.
“걱정 말구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내가 다 사줄게.”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 것일까.
그 어느 때보다 손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유진산은 문득 여비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졌다.
“여비가 얼마나 남았는데?”
“아주 많이 있어. 나 이제 부자거든.”
역시나 자세한 액수는 자신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잠시 안 보이던 기간에 돈을 모으러 다녔다더니, 뭔가 추가적인 소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할애비는 돈 한 푼 없어서 거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설이는 부자라서 좋겠구나.”
유설이 멋쩍게 웃으며 화두를 돌렸다.
“히히. 근데 있잖아. 나 얼마 전에 묘화방에 들렀어.”
“묘화방에? 네가 거긴 왜?”
“전리품 팔러 갔지. 거기서 다 들었어. 할배랑 할머니랑 좋아하는 사이라며.”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오자, 유진산이 움찔하며 물었다.
“그 성질 더러운 할멈이랑 내가!? 도대체 누가 그런 소릴 한단 말이더냐?”
“할머니가 나한테 그러던데.”
“휴. 그건 농담한 게지. 믿지 말거라.”
유설은 당황하는 할아버지의 반응에서 뭔가를 눈치챘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럼 뽀뽀는 왜 했어? 물어보니까 했대.”
“그, 그건…….”
유진산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손녀가 다시 은근슬쩍 물어왔다.
“나중에 같이 살래? 우리 셋이. 그 할머니 예쁘고, 재밌어서 좋아.”
상상도 못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대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였으니까.
“나중은 무슨 나중? 그 할멈은 늙어서 금방 죽어.”
“아니야. 할머니는 내공이 많잖아. 내가 도와주면 할배처럼 반로환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손녀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반로환동이 찾아온 이유는 너무 늦은 나이에 환골탈태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즉, 노화된 몸이 환골탈태의 과정을 버티기 위해 스스로 자연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유진산은 반로환동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다.
“반로환동은 얼마나 어려질지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단다. 만약 그 할멈이 아기가 되면?”
“그럼 할배랑 나랑 같이 키워야지.”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구나. 그리고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날 설득하려 하지 말거라.”
완강한 할아버지의 저항에 유설도 지금은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우선 눈앞에 일부터 처리해야 할 터.
“근데 우리 이제 뭐 할 건데?”
“무림맹주와의 싸움을 준비해야지. 할애비가 얘기한 건 수련하고 있는 거지?”
“그건 벌써 다 익혔지. 보여줘?”
타앗-!
말을 마친 유설이 지면을 슬쩍 박찼다.
그러자 용화창이 허공에서 스스로 다가오며, 발밑을 지지했다.
그 상태로 유설은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파아앙-!!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창과 하나가 되어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다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차원의 경공이었다.
어찌나 빠른지 손녀가 지나가는 자리로 화살 모양의 구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유진산은 그 모습을 한참이나 넋 놓고 지켜보았다.
“세상에……. 어창비행술이 실제로 가능한 무공이었다고?”
그조차도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 전부였을 뿐. 애초부터 저것이 가능하리란 확신은 한 적이 없었다.
단지 손녀에게 수련할 목표를 줌으로써 계속 정진하게 유도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다라밀교의 보리천녀를 개 패듯이 때려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파아앙-!
유설은 눈 깜짝할 사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사실 패도문에서 나설 때부터 이미 습득한 상태였다. 할아버지에게 처음 보여주었을 뿐.
“봤지? 나는 이제 더 수련할 것도 없다구.”
드디어 손녀가 현경의 극(極)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 말은 즉, 인간으로서 강해질 수 있는 최고 경지의 무학에 올라섰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유진산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설이가 더는 강해질 수가 없는 위치까지 왔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천축의 아라한이라는 놈은 현경의 한계를 돌파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온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대비는 해야 할 터.’
손녀가 고작 열 한 살에 무학의 끝을 보았다지만, 어디까지나 중원무림의 이론에 한해서였다.
현재에서 안주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동기를 계속 부여하여 현경의 단계를 돌파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경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천축에서 온 소뢰음사의 호법으로부터 주워들은 것을 일러주었다.
“수련할 게 없긴 왜 없어? 아직 불문사자신공의 마지막 단계가 남지 않았더냐.”
“으응? 여래식? 그건 불가능한 거 아니었어?”
“전에 천축놈이 했던 말을 못 들었느냐. 불문사자신공의 진정한 무서움은 바로 아홉 번째 단계인 여래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니, 가능한 것인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터.
“힝. 아 몰라~ 지금은 그냥 놀래.”
유진산도 지금은 수련을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벌써 어창비행술을 습득한 손녀가 기특해서 업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우선은 머리를 식혀 주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냐. 네 나이 때는 수련만큼이나 노는 것도 중요하지. 뭘 하고 싶으냐.”
“흐음~”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벅-. 저벅-.
돌연 일단의 무리가 앞에서 길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물론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그들의 수는 여섯 명.
붉은 경장에 검은 두건을 눌러쓰고, 허리춤에는 검도 한 자루씩 매달려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사파인들이었다.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그들이 동시에 양손을 모아 포권했다.
“음양쌍괴 대협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머리 숙여 외치는 그들은 극도의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유설이 마침 심심한데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다가갔다.
“아저씨들은 누구예요?”
“저희는 사파의 귀살문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가 두 분을 좀 모셔도 되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