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비밀회동 (1)
뇌옥에서 나온 유진산은 천유회의 정청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아수라교의 끄나풀에게 원하는 정보를 얻었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정말이지 괴이한 놈들이로구나. 영적인 존재를 자신에게 빙의시켜서 초월적인 힘을 얻고 있었다니.’
악신을 섬기는 세력이라더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미친 녀석들이었다.
생각할수록 황당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천룡사에서 아수라교의 호법과 싸우며, 직접 경험해봤었으니까.
어쩐지 극마와 흡사하면서도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더라니…….
‘그럼 아수라를 몸에 실었다는 교주는 얼마나 강한 거지?’
정도가 가늠되질 않으니, 더욱 불안했다.
과거 달마대사조차 아수라교의 교주를 제압할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탈마이되 탈마의 수준을 초월한 절대강자일 터.
그 순간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그 무시무시한 놈들을 이 시점에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어쩌면 지금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어딘가에서 갑자기 손녀의 외침이 들려왔다.
“할배~!!”
우측으로 높게 솟은 누각의 꼭대기.
그곳에서 유설이 우뚝 선 채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 서서 뭐 해!?”
타앗-!
눈 깜짝할 사이 손녀의 신형이 어느새 코앞으로 내려와 있었다.
“찾아다녔잖아. 어디 갔었어?”
“뇌옥에 좀 다녀오는 길이다. 할애비는 왜 찾았어?”
무슨 용건인지 짐작되질 않았다. 평상시다운 행동이 아니었으니까.
급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무슨 큰일이 터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의 손을 유설이 다짜고짜 잡아끌기 시작했다.
“나랑 갈 데가 있어. 빨리 가야 해.”
“무슨 일인데?”
“우리 만나려고 손님이 와 있대. 보고 싶었던 사람이.”
이 정도로 손녀가 반가워할 인물은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불러 달라고 말할 정도면,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인물이리라.
짐작되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설마 그녀가?’
어쩌면 기다리던 자가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보면 알게 될 터.
유진산은 손녀에게 턱짓을 해 보였다.
“오냐. 알았으니, 앞장서거라. 회주가 가자고 하면 가야지.”
“으응! 어서 가보자.”
유설이 안내하는 곳은 천유회의 본부가 아닌 반대편이었다.
쏜살같이 나아가는 둘은 소천성의 민간구역을 벗어나 곧장 성문으로 향했다.
성문의 검열은 금군의 소관이었으며, 입출입시에는 누구나 검열을 받아야 한다.
무림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유일하게 예외가 적용되는 인물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성주님. 외출하시려고요?”
성문을 지키는 금군의 장교가 유설을 알아보며 인사를 건네왔다.
유설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지, 미소 띤 얼굴로 한 손을 올려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나 어디 좀 금방 다녀오려구요.”
장교는 고개를 슬쩍 숙여 보인 후에 다시 등 뒤로 소리쳤다.
“성주님이시다! 통과시켜드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지기들이 좌우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
유설은 시선을 마주친 그들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본격적으로 경공을 펼쳐 나아갔다.
파앙-!
그렇게 소천성을 벗어나 도착한 곳은 인근의 한 야산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반각도 되지 않았다.
“다 왔어, 할배. 저기서 기다리고 있대.”
유설의 검지가 꼭대기에 보이는 한 암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 높지 않았기에 경공으로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오냐. 어서 가보자꾸나.”
잠시 후 정상에 도착하자, 평탄한 분지 위에 암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죽립을 쓴 두 여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각 백의와 적의를 입고 있었으며, 한 손에는 검을 움켜쥔 모습이었다.
그때 백의를 입은 여인이 만개하는 꽃처럼 환한 미소를 그렸다.
“설아!”
반가운 목소리에 유설이 한달음에 달려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소소 언니!”
“언제 이렇게 많이 큰 거니? 이제 언니랑 많이 차이도 안 나네.”
“히히. 보고 싶었어.”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전대 무림의 최강자였던 검후 소소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인은 사도련주의 자리를 내려놓고, 홀연히 떠났던 영영이였다.
유진산에게도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반가운 해후를 마무리한 넷은 야외의 탁상에 마주 앉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검후가 유진산을 향해 양손을 모아 말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애써주신 덕분에 한시름을 놓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한 얘기를 생략했지만, 유진산도 단번에 알아들었다.
손녀가 지존이 될 수 있게끔 뒤에서 노력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이리라.
그리고 이것은 그녀가 부탁한 일이기도 했다.
“별말씀을 다 하시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아닙니다. 모든 것이 설이의 무력에 어르신의 지혜가 더해진 결과이지요. 드디어 중원무림이 일통되었으니, 새외의 적들만 막아내는 데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다.”
“일통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합류하지 않은 세력들이 많소.”
수많은 세력이 앞다투어 천유회로 집결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구대문파 중 일부와 여러 무림세가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 아니던가.
현재는 그들에게 유예기간을 주고,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소림사와 무당파가 합류한 이상 시간상의 문제일 뿐이지요. 결국엔 모두가 천유회와 함께하길 원할 것입니다.”
유진산의 생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여러 명의 절세고수를 보유한 천유회와 껍데기만 남은 무림맹의 전력 차이는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그들이 압도적인 차이를 무시하면서까지 대적하려 들 확률은 거의 없을 터.
그는 은근슬쩍 소소에게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보았다.
“헌데 검후께서는 왜 무림을 일통하려 하지 않으셨소? 그럴 능력이 있으셨을 텐데.”
그녀 또한 손녀처럼 선음지체라는 특이체질을 타고난 절세고수였다.
무림맹주였던 화령사태를 애꾸눈으로 만든 장본이기도 했으며, 수많은 절대고수를 상대로 이긴 전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내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그때 소소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만약 천유회의 회주가 저였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지금처럼 수많은 세력이 달려와서 제게 힘을 보탰을까요?”
“음…….”
유진산은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검후는 원수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금분세수식을 거행할 당시에 정파에서 그 난리를 피웠겠는가.
그녀가 소천성으로 찾아오지 않고, 이렇게 비밀회동을 제안한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만약 그녀가 천유회를 세웠다면, 오히려 무너트리기 위해서 정파가 똘똘 뭉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인에게 인정받는 진정한 지존은 무력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설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이 없습니다.”
유진산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본론을 물었다.
“그나저나 저희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요?”
“요즘 천축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혈뢰사천왕 중 세 명이 중원에서 살해당한 일로 아라한이 분개하는 모양입니다.”
소뢰음사의 혈뢰사천왕은 아라한의 부하들이다.
해릉도에서 전사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표공왕과 백화혈교의 교주였던 미르왕. 그리고 공동파의 장문인으로 위장했던 사귀왕까지.
그들은 아라한이 중요하게 여기는 탄생의 해를 기념하여 중원을 정벌하려고 계획했었다.
‘아라한이 화를 낼만도 하겠군. 유능한 부하들을 셋이나 잃고, 계획까지 틀어졌으니.’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의 보복이 이어질 터.
유진산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아라한이 직접 이곳으로 올 것 같소?”
어떻게든 아수라교라도 먼저 끌어내서 날개를 꺾을 계획이 아니었던가.
만약 아라한이 움직인다면 최악의 참사가 벌어질 게 확실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아라한은 이미 생사를 초월하여 고귀하고 신성한 자로 받들어지는 자입니다. 그런 그는 직접 나서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요. 그렇기에 아마도 차선책을 사용할 것입니다.”
창룡대의 대장도 아라한의 나이가 삼백 살이 넘었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생사를 초월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차후 생각할 문제였다.
“……차선책이라면?”
“멀리 원정을 떠났던 아수라교와 천뢰신사가 최근 천축으로 복귀했습니다. 두 세력 중 한 곳이 이곳을 정벌하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진산은 긴장이 풀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희소식이구려. 그렇지 않아도 둘 중 하나를 끌어들이려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무림의 핵심전력이 천유회라는 곳에 모여 있지 않은가.
천축의 일개 세력 중 한 곳을 끝장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소소의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무엇을 준비하고 계셨는지요?”
“사실 얼마 전에 아수라교의 분타를 색출하여 습격한 일이 있었소.”
유진산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그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혜 방장한테 들었던 내용부터 천룡사를 습격했던 일들.
그리고 포로를 잡아 와서 심문하고, 지금 꾸미고 있는 내용까지 모두 알려주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소소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수라교의 교주는 밀법천황(密法天皇)이라 불리는 자인데, 만만한 자가 아닙니다. 어쩌면 천유회가…….”
그녀가 말끝을 흐린 이유를 짐작한 유진산은 얼굴에서 여유가 싹 사라졌다.
“우리 천유회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오?”
그녀는 대답 대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조용히 눈을 빛내고 있는 유설을 쓱 바라보며 말했다.
“설아. 오랜만에 언니랑 몸 좀 풀어볼래?”
다짜고짜 대련이라니.
아마도 유설의 무공실력을 가늠해 볼 생각인 듯했다.
“응, 좋아!”
유설은 상대가 누구든 걸어온 싸움은 절대 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가벼운 대련일지라도.
근처의 공터에 자리를 잡은 둘은 무기를 움켜쥔 채로 서로 포권을 시작했다.
둘이 싸움을 준비하는 그때, 유진산과 영영은 한쪽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떻게 보시오?”
유진산의 질문에 사도련주였던 영영이 나직이 말했다.
“소소는 지금껏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음괴님도 마찬가지이지요. 게다가 둘 다 선음지체이니…….”
그야말로 승패 예측이 불가능한 대련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둘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한 싸움이 아닌 만큼, 서로가 무기에 내공을 싣지 않았다.
단지 초식과 기교를 겨루는 것이다.
그렇기에 숨 막히는 긴장감은 없었지만, 어느 한 장면도 놓칠 수가 없었다.
캉-! 카캉-! 카카캉-!!
“내 눈엔 왜 저 대련이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르겠구려.”
한데 뒤섞인 유설과 소소의 몸짓은 마치 천상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영영도 시선을 떼지 못하며 연신 감탄했다.
“예, 정말 대단합니다. 동작 하나하나에 수만 가지 변화가 느껴지고 있으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는 것 같군요.”
유진산은 예전에도 저 둘이 대련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승패를 내지 않고 흐지부지 끝났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좀 달랐다.
검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카앙-!!
강렬하게 울린 단발의 굉음과 함께 두 자루의 무기가 날아올랐다.
동시에 무기를 놓친 둘은 맨손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련이 좀 더 이어질 모양이었다.
유진산은 시선을 그 둘에 고정한 채, 영영에게 나직이 물었다.
“사도련을 떠난 것이 후회되지 않으시오?”
사도련은 영영이 평생을 일궈낸 사파의 연합이었다.
자신이 떠나고 그곳을 천유회가 흡수했으니, 서운할 법도 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입니다. 맹주가 죽는 것을 눈앞에서 봤으니, 미련도 없고 말이지요.”
“아무튼, 련주님과 함께했던 사도련의 형제들은 우리가 잘 돌봐주고 있소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 순간 죽립 아래로 드러난 영영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형제라니요? 아주 괘씸한 자들입니다. 사도련주인 저보다 음괴님을 더 좋아했던 자들이었으니까요.”
그때였다. 돌연 미소 짓고 있던 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단번에 증발해버렸다.
검후와 유설의 움직임이 동시에 정지했기 때문이다.
파앙-!
뒤늦게 한 줄기 바람이 휘몰아쳤을 뿐, 타격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야 승부가 결판난 것이다.
그리고 결과를 살펴보던 유진산과 영영은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
유설의 주먹이 소소의 복부에 맞닿아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