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잠시 후 최강이 크리스에게 아이템을 맡겨 돌려보내고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였다.
사무실에서 다과를 즐기던 세 사람은 그새 최말숙만 남겨 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최강의 말에 최말숙이 답했다.
“어머님의 경우엔 외갓집에서 온 연락을 받고 나가셨고 류세란 씨도 거의 동시에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나가신 것이에요.”
‘외갓집?’
최강이 피식 웃었다. 아마도 주씨세가 쪽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 와중에도 류세란에게는 ‘씨’까지 꼬박꼬박 붙이는 것이 여전히 귀여울 뿐이었다.
최말숙의 말에서는 나미사가 쏙 빠져 있었지만 최강은 그다지 캐묻지 않았다. 말을 듣는 도중 인기척이 화장실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강이 최말숙의 말을 듣고 소파 쪽으로 가서 리모컨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TV를 향하던 최강의 시선에 최말숙의 모습이 들어왔다.
신을 벗고 공손히 무릎 꿇는 최말숙을 보고 있자니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부탁드릴 것이 있는 것이와요.”
불길함을 느낀 최강이 칼같이 답했다.
“안 돼.”
이유는 간단했다.
‘뭐지? 남잔가? 남자가 맞겠지? 아직 마음의 준비는 안 됐는데.’
오해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놓고 보면 인생 2회 차나 다름없는 최강도 고려 시대 때 백서화와의 사이에 있는 자식들은 전부 다 아들들이었다. 딸은 이번에 최말숙이 처음이었다.
최강이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놈이지?’
솔직히 짚이는 녀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말숙의 행동반경이 지극히 좁을뿐더러 동시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거의 대부분 자신의 시야 안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딱히 남자와의 접점이랄 것이 생길 만한 곳이 없었다.
‘설마…….’
최강이 가끔 심부름을 보내는 편의점의 오후 파트 알바를 떠올렸다.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고 안쪽 귀에 피어싱까지, 전형적인 양아치의 표본 같은 느낌인 녀석이었다.
‘아니면 책방 점원일지도…….’
이쪽은 비교적 바른생활 청년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싫었다. 최강이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어떤 놈인데?”
최말숙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 것이에요.”
“남자 생겼다는 말 하려는 거 아니었어?”
최말숙이 입을 가리며 생긋 웃었다.
“오해하신 것 같사와요.”
최강의 얼굴이 풀어졌다. 주소희나 류세란이나 나미사가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어도 보이지 않을 만한 반응이었다.
“그래?”
좀처럼 자기 의사 표명은 잘 하지 않는 최말숙이 무릎까지 꿇기에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멋대로 짐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최강이 말했다.
“그럼 말해 봐.”
“근래에 아이들이 많이 늘어 버린 것이에요.”
“아…… 그런가?”
조금 난데없는 말이지만 최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집이 있는 옥상까지 오르고 내리면서 근래에 세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들을 많이 마주쳤던 기억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 녀석들은 엘리트 아라크네들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호다닥 도망가 현관문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데…….’
최강이 말했다.
“그래서?”
“새로운 주거 공간이 필요한 것이에요.”
최말숙은 인간이면서 왕관만 쓰고 있는 주소희와는 다르게 어찌 됐든 순수 아라크네의 여왕이다. 아마도 이러한 일에 책임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부탁이라면 못 들어줄 것이 없었다. 마침 크리스에게 받은 돈도 충분했고 말이다.
“뭐, 원하는 곳이 있어?”
최말숙의 고개가 좌우로 천천히 저어지는 것이 보였다.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별다른 일이 없다면 매일같이 자신과 함께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최말숙이 부동산까지 알아보고 다녔을 리 없다.
최강이 말했다.
“그래, 알았어. 소희 녀석 오면 말해 보자.”
***
그란디아 대륙의 전쟁의 초반은 발티온의 우세로 진행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앙 전선, 서부 전선, 동부 전선 할 것 없이 일제히 총공세가 있었던 날, 동부 전선의 페르간 주력이 사라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반나절 만에 파죽지세로 동부 전선을 장악하고 페르간의 영역 내로 진입한 발티온의 병력은 그란디아 대륙의 제국을 비롯한 다른 네 군데의 공국 중 가장 작은 영토를 차지하는 페르간의 영토의 동부 거점들조차도 아직 절반도 점령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되는 전쟁일지라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레스.
페르간 국왕의 직속 근위 기사단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이 동부 전선이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곳이 페르간의 수도에서 더 가까운 영역인 만큼 마찬가지로 발티온에 존재하는 국왕의 근위 기사단 칼페온이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르간의 영지에 진입하고 보름. 주의한다고 주의했지만 지금 듀랄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자신이 조우한 한 남성 때문이었다.
“네놈이 듀랄인가?”
긴 흑발과 더불어 바람에 흩날리는 살구색 피풍의를 입고서 군대 행렬의 선두를 가로막는 남자.
듀랄은 이 초라한 복장의 남자를 본 순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가장 주의하던 솔레스라는 걸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마나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솔레스임을 나타내는 견장이 그의 피풍의 안 가죽 갑옷 위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듀랄이 남자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자 남자가 다시 말했다.
“다시 묻겠다. 네놈이 듀랄인가?”
남자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듀랄이 자신의 후열에서 행군하던 병력들에게 명령했다. 상대는 비록 한 명일지라도 마주친 이상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군 후퇴하라!”
갑작스러운 명령이었지만 과연 훈련이 잘된 부대인 만큼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바로 병력들이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다. 듀랄이 병력이 무사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귀찮은 짓을 하는군.”
홀로 막을 생각으로 남자를 주시하던 듀랄이 등 뒤의 소란을 듣고 황급히 뒤돌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엄청난 위력의 모래바람이었다. 병사들의 비명이 듀랄의 귀를 수도 없이 울렸다. 병사들의 피로 물든 모래바람이 불어닥치다 펑 하고 사라진 순간이었다. 토막 난 병사들의 신체 몇 개가 듀랄의 발밑까지 굴러오는 모습이 이어졌다.
사실상 군의 부사령관의 역할을 담당하던 펜스의 목도 존재했다.
달그락.
펜스의 잘린 목을 보고 굳어 있던 듀랄이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흠칫 뒤돌았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놈이 듀랄인가?”
“그렇다.”
듀랄이 손에 들고 있는 검을 꽈득 쥐며 물었다.
“나도 궁금한 것이 있다.”
“뭐지?”
“당신의 이름은 뭐지?”
아무리 솔레스라고 하더라도 급으로만 놓고 보면 발티온의 기준으로 따졌을 때 자신과 마찬가지로 장군급일뿐더러 그 위로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페르간의 솔레스도 발티온의 칼페온도 거의 스무 명 안팎의 인원을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남자. 이 남자는 논외였다. 적어도 자신이 시간 벌기 정도는 상식적으로 할 수 있어야 맞을 텐데, 방금 전 일격으로 듀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남자와 자신과의 사이에는 거의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존재했다.
“안토니다.”
“안토니 비올레…… 말인가?”
“그렇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듀랄이 안토니의 말에 답 없이 조용히 허탈한 웃음을 그렸다. 들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간 최강의 기사 안토니.
심지어 그란디아 대륙 역사상 3대 대장장이 중 한 명 볼카스가 만든 6개의 신기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군. 안토니 경, 이제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딱히 뭘 할 생각은 없다.”
“할 생각이 없다고……?”
듀랄이 여전히 자신의 발밑을 굴러다니는 펜스의 목을 보고는 쓰게 웃었다. 녀석의 상관이었던 자로서 복수라도 해 주어야 할 텐데 죽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안도했기 때문이다.
“대신 몇 가지를 좀 물어보겠다.”
“몇 가지?”
“팔콘은 본 적이 있나?”
듀랄이 알기로 팔콘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부 전선을 맡았던 페르간 측 사령관이었다. 그런데.
듀랄은 동부 전선을 뚫고 페르간의 내부까지 진입하면서 한 번도 팔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 부분은 듀랄도 여태까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듀랄이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젓자 안토니가 말했다.
“하나만 더 묻겠다. 듀크, 그 녀석을 본 적 있나?”
“없다.”
안토니가 듀랄의 표정을 읽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안토니가 단념한 듯한 얼굴로 잠시 후 말했다.
“그렇군. 혹시 이제 궁금한 것이 없다면 돌아가라. 전쟁은 끝났다.”
***
안토니는 그렇게 듀랄을 돌려보냈다. 애초에 안토니가 왕도를 출발할 당시 이미 전쟁은 양국 간의 합의로 끝나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발티온이 요구한 것은 사령관 듀랄의 생환과 페르간 국왕의 정식적인 사과였고, 페르간은 초기 예상과는 다르게 이미 전황이 썩 유리하지만은 않았기에 흔쾌히 수락했던 것이다.
이번 전쟁. 사실 페르간은 동부 전선을 전쟁의 핵심 전선으로 삼았었다. 비교적 발티온의 병력이 약하게 집중된 전선이기도 했고 주요 전선이 산악 지대라서 기동대를 운용하기는 힘들지만 자신과 같은 솔레스들에게는 오히려 뛰어난 이점을 발휘할 수 있는 전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르간은 가장 최근 솔레스에 선정된 듀크를 동부 전선에 배정했었다. 이방인 출신이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그의 실력을 대외적으로 증명할 무대로 삼으라는 의미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녀석이 사라졌다라…….”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토니가 아는 듀크는 자신과는 달리 야망이 큰 부류의 사내 같았다. 그런데 이런 좋은 찬스를 저버리고 전장을 이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이쯤인 것 같군.”
보름간 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국경 지대로 이동한 안토니가 주변을 수색하다가 멈춰 섰다. 날뛰는 발티온 군대의 뒤처리 말고도 국왕에게 지시받은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팔콘과 듀크의 추적을 말이다.
안토니가 멈춰 선 곳은 산악 지대 중에서도 가장 높은 협곡이었다.
자신이라면 이곳에서 필시 산악 지대를 넘으려던 발티온의 군대를 처리하려고 주력을 배치했을 것이다.
안토니가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마나를 넓게 펼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주변의 마나를 느끼기 시작하자 의외로 흔적은 쉽게 발견되었다. 강력한 마나의 흔적.
“마병대인가?”
그것 말고는 생각할 것이 없었다. 아마도 이곳에 몰려드는 발티온의 군대를 요격하려던 순간 문제가 일어난 것이었을 터.
‘그런데 이상하군.’
도대체 그럼 어디로 갔다는 거지?
마나의 흔적을 봤을 때 단순히 총공세가 있기 전에 도주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마나를 더욱더 촘촘하게 만들어 펼친 안토니가 주변의 마나를 더욱 세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안토니가 눈을 떠 고개를 하늘로 향했다.
“위?”
말도 안 되지만 정말이었다. 지면에 깔렸던 마나는 조금 더 대기에 가까워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하는 수 없나…….”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 안토니가 마나를 끌어모았다. 아무리 안토니라고 할지라도 1만 명의 마병대가 모인 마나를 상회할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는 볼카스의 신기 중 하나가 존재했다.
신기의 힘을 빌려 마나의 구조를 파악한 안토니가 그날 마병대가 펼쳤던 기술을 똑같은 규모로 시전할 때였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떠오른 거대한 빛의 구체가 무언가에 빨려 들듯 사라지는 것이 느껴지고 잠시 후였다.
번쩍.
안토니의 눈에 거대한 빛이 점멸하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