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사무실을 나온 최강이 전력으로 국경을 향해 30여 분쯤 달리다가 말했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다고?”
-이쯤에서 기다린다면 조만간 나타날 거다.
“확실해? 혹시라도 아니면 조금 곤란한데?”
최강이 쓱 둘러봤지만 아직까지 느껴지는 기운이라거나 뭔가가 존재하지는 않고 있었다.
-확실하다. 가까워지는 방향과 속도를 감안하면 너에게 볼일이 있을 테지. 녀석이 들고 있는 형제가 누군지는 몰라도 아마도 그 녀석도 맡았을 거다.
“맡았다면, 그러니까 불의 향기인가 하는 거 말하는 거냐?”
-…….
별다른 말이 없자 최강이 하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청화수의 침묵이 긍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5분쯤 흘렀을 때였다.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이 하나 있었다.
“뭐 다행인가?”
최강의 표정이 약간 진지해졌다. 이 정도면 듀크라는 녀석보다도, 아니, 최강이 여태 봐 왔던 그 어떤 녀석보다도 속도나 마나 면에서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이 한국 안으로 들어간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이다.
콰앙.
최강이 거대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몰아치는 것을 조용히 지켜봤다. 잠시 후 모래 먼지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지, 그레이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누군가와 대화하듯 혼자서 중얼거린 남자가 곧이어 두 명의 소녀를 어깨에 들쳐 메고 모래 먼지 속에서 나왔다. 안토니였다. 최강이 말했다.
“그 얼마 전에 균열에서 나왔다는 게 너 맞지?”
안토니가 자신이 지나왔던 뒤편을 바라봤다. 백두산 인근을 지날 때까지 쫓아오던 듀크의 기운이 사라져 있음을 느낀 안토니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말했다.
“다짜고짜 질문인가?”
“일단 그쪽이 찾아온 입장이잖아? 이 정돈 먼저 답해야지.”
최강을 말없이 바라보던 안토니가 말했다.
“용무가 있어서 왔다.”
“용무? 나한테?”
“그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 그럼 다른 볼일 있다는 거겠네? 그건 뭔데?”
“답할 수 없군.”
안토니의 물음에 최강이 잠시간 생각하다가 픽 한숨을 뱉었다.
“그럼 곤란한데?”
“뭐가 말이지?”
“나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목적을 모르는 상대를 이 안으로 들여보낼 수가 없거든.”
안토니가 인상을 구기면서 허리춤의 검, 그레이스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최강이 말했다.
“후회할 텐데? 니가 말한 그 용무라는 거, 그 두 녀석하고 관련된 거지?”
“…….”
“장담할 수 있는데, 내가 이 녀석을 뽑으면 너는 몰라도 그 두 녀석은 뼛가루도 안 남아.”
안토니가 날이 선 눈빛으로 최강을 잠시간 응시했다.
상당히 자신감 넘치는 얼굴.
절대 허언은 아닌 것 같았다. 안토니가 말했다.
“그럼 거래를 하지.”
“거래?”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면 내가 책임지고 네놈은 살려 주도록 하겠다.”
최강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
“재밌네. 내 경고가 너는 절대 안전하다는 소리로 들렸으려나?”
“네놈이 상당히 뛰어난 기사인 것은 알고 있다. 확실히 다른 녀석들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느낌이군. 하지만 근시일 내에 후회할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은 나 역시 장담하겠다.”
듀크 그 녀석은 자신의 힘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반드시 균열을 무너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최강이 말했다.
“그 후회할 일이라는 게 뭐지?”
“그건…….”
안토니가 말할 수 없다고 답하려 할 때 최강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내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은 말에 겁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최강을 바라보던 안토니가 그레이스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마나의 공명이란 것을 알고 있나?”
“뭐 들어는 봤지.”
안토니의 설명이 시작됐다.
듀크가 자신을 쫓아다니며 마나를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하는 이유. 두 세계 간의 벽이 생각보다 많이 약해진 상황 그리고 그란디아 대륙에서의 자신의 수준을 말이다.
최강이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도 되려나?”
“상관없다.”
“듀크인가 하는 놈. 내가 아는 그 녀석이 맞다면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 일 아닌가? 나에게 이렇게 번거롭게 부탁까지 할 필요가 있어?”
“…….”
최강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 안토니의 입을 지켜보고 있자니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마지막?”
“양심 같은 거다.”
“어떤 양심?”
“일단은 나 역시 듀크의 선택이 크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넓은 범위에서 본다면 녀석의 선택은 옳다. 그란디아 대륙의 입장에서는 세계 간의 균열이 무너진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지. 결국 나는 지금 이 녀석들 때문에 불충을 저지르는 입장이지만 본질은 페르간의 기사다. 충의를 저지르는 녀석을 이런 이유로 처단할 수는 없는 노릇인 거지.”
최강이 안토니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안토니라는 녀석은 지금 상당히 내면적으로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듀크의 행동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행동에 대한 반감은 존재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소속감에 대한 것도 한몫하겠지.’
최강이 안토니를 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검, 그레이스라고 그랬던가?”
“그렇다.”
“마지막 제안이다. 이 안으로 들어가겠다면 그 검을 내게 맡겨.”
안토니의 눈이 강하게 지진을 일으켰다.
“물론 강요는 아니야. 하지만 그게 싫다면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네. 여기서 나와 한바탕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
안토니가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최강이 말했다.
“가능하면 빨리 결정해 주겠어?”
***
안토니를 추격하며 마나를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유도하던 프락시온의 이탈 멤버들과 듀크는 지금 백두산 인근에서 멈춰 서 있었다.
“어떻게 하지, 듀크?”
아멜리아의 물음에 듀크가 고민했다. 당연했다. 확률상으로 본다면 안토니가 애초에 이곳으로 향할 확률이 무척이나 낮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곳. 그곳이 한국이었다.
최강이 존재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같이 마나의 소모를 꺼려하는 안토니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피해야 할 것이었다. 최강만큼 강한 상대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듀크는 당황스러웠다. 설마설마하던 듀크가 방향을 틀어 한국으로 향했으니 말이다.
‘혹시 최강의 존재를 모르나?’
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강으로 따지면 지금 현대 생활을 조금만 해 보면 모를 수가 없는 유명 인사였다. 현대로 넘어오고 한 달 가까이 지난 안토니가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쫓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끝도 없이 듀크의 생각은 이어졌다.
‘지금 여기서 안토니를 쫓으면 반드시 최강은 움직일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정말 쌍수 들고 바랐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안토니와 함께 최강을 협공한다면 듀크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최강이 움직이면 안토니는 날 도와줄까?’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정말 확률은 낮았지만 안토니가 그냥 방관한다면? 마지막 남은 플로어 스톤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민하던 듀크가 마침내 결정했는지 말했다.
“기다린다. 안토니가 나올 때까지.”
***
정말 놀랍게도 안토니의 선택은 그레이스를 최강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최강도 솔직히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고 제안한 것은 아니었기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레이스를 받아 든 이상 그를 더 이상 쫓아낼 수는 없었던 최강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안토니를 비교적 가까운 곳에 놔두고 근접 관리한다.’
비록 주 무기인 검을 압수했다고는 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을 멀리 두는 것은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활하도록 해.”
최강이 안토니를 안내한 곳은 얼마 전까지 최강이 생활하던 자취방이었다.
“여기서 말인가?”
“왜, 불만이냐?”
안토니가 최강을 보더니 말했다.
“아니다. 감사히 쓰도록 하지. 근데 좀 전까지에 비해서 말이 많이 편해졌군?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원래 집주인은 다 그래.”
최강이 자취방에 안토니를 데려다주고 나가려다가 현관문 바깥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며 구경하는 꼬마 아라크네들을 오랜만에 보고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인데, 우리 애들 괴롭히지는 말고.”
안토니가 최강의 말에 현관문에 서 있는 세 명의 여자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걱정 말아라. 먼저 해코지하지 않는다면 그럴 일 없으니까.”
안토니가 최강의 말에 답하는 동안, 최강이 서 있는 현관문까지 이동한 안젤리카가 아라크네의 머리에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위험…….”
안토니가 아차 싶었는지 움찔했다. 외견은 다섯 살 남짓의 꼬마들이어도 일단은 엘리트 마족이다. 공격성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 뭐라고 하셨어요?”
의외로 순순히 안젤리카의 쓰다듬음을 느끼는 녀석을 보고는 안토니가 말했다.
“큼…… 아……무것도 아니다.”
안젤리카가 최강에게 말했다.
“근데 얘네, 몇 살이에요? 전부 오빠 동생들인가요?”
신기하게도 엘리트 아라크네들은 동양인의 모습에 가까웠다. 아마도 정기를 흡수한 대상이 이쪽 지방 사람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건 아니고. 글쎄, 나이는 석 달? 그쯤 됐으려나?”
“네? 3년 아니고요?”
“그래, 석 달. 여튼 알았으면 이 녀석들하고 사이좋게 지내.”
최강이 그렇게 말하고는 아라크네 하나에게 말했다.
“야, 너. 정숙이 어딨는지 아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들어다가 어깨에 앉힌 최강이 잠시 후 사라졌다. 쥬시와 옥상에서 사이좋게 노는 녀석들을 보고 안토니가 중얼거렸다.
“이상한 일이군.”
***
그란디아 대륙에서 유일한 동족 간의 전쟁이었던 다툼이 끝나고 한 달.
당시 발티온 공국의 동부 전선 사령관을 맡고 있던 듀랄은 지금 전후 논공행상에 참여 중이었다.
동부 전선의 병력 중 유일한 생존자인 자신임에도 유일한 1등품 공을 인정받아 토지 3,000평을 하사받고 추가로 칼페온의 지위를 받기까지 했다.
때문에, 공을 치하받았음에도 어쩐지 마음 한편에 의문이 남은 듀랄이 말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폐하.”
“말씀해 보시오, 듀랄 경.”
“옳은 판단을 하셨을 줄 아옵니다만 어째서 제가 1등품 공을 하사받은 것인지…….”
너무나도 이상했다. 물론 전쟁의 추가 기울어진 이유가 동부 전선의 선전 때문이긴 했다지만 엄연히 놓고 본다면 애초에 페르간 측 동부 전선이 쉽게 무너졌던 이유가 컸다. 발티온의 내부도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신하들을 쓱 한번 살펴본 국왕이 말했다.
“듀랄 경. 전쟁에서 늦게 복귀했던 탓에 현 상황을 잘 모르는 듯하니 한 가지만 말해 주겠네. 상당히 의문스러웠을 테지. 어째서 칼페온이 파견되지 않았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
“송구합니다.”
“바리스 공국이 근래에 움직임을 보였네. 페르간과의 전쟁을 멈추라는 서찰이었지.”
바리스 공국.
국력으로 따지면 다섯 공국 중에서는 가장 강한 국력을 차지하는 국가였다. 바리스 공국의 입장은 이러했다.
‘사실상 제국의 절대적인 입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국이 서로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주 정상적인 사고였지만 그럼에도 듀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바리스 공국은 제3자의 입장. 페르간의 동부를 절반 정도 장악한 상태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발을 빼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옵지만, 칼페온의 힘이 있었다면…….”
“그래, 페르간을 무너뜨릴 수 있었겠지.”
“한데, 어째서…….”
“바리스에서 상당히 강력하게 입장을 표명했네. 당장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압박을 가하겠다는 내용이었지.”
바리스 공국은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하긴 하지만 남은 2개의 공국을 동시에 감당할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페르간과 발티온이 서로 양패구상을 해 버리면 남은 두 공국이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발티온 역시 칼페온을 내세워 페르간을 멸망시켜도 솔레스를 처리하는 데 상당히 큰 전력을 소모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장기적으로 볼 때 바리스 공국이 바라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팽팽한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땐 정말로 서로 치고받다가 제국으로 흡수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즉, 듀랄 경이 1등 공을 인정받은 이유는 전쟁을 아무런 소득도 없이 마무리 지은 나의 부족함에 있다고 할 수 있네. ‘큰 손실을 입기는 했지만 전쟁에서는 이겼다.’라는 구실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지 않으면 민심이 등 돌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말이네.”
“…….”
듀랄이 조용히 고개 숙이자 국왕이 말했다.
“그러니 부담스럽더라도 나 대신 받게. 그대의 전우들의 희생을 기리는 짐의 선심이라 여겨 주게.”
국왕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다른 신하 한 명이 말했다.
“폐하. 논공행상이란 자리가 이런 자리가 아님을 아옵지만, 이야기가 나와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말씀하시오.”
“볼카스의 병기 중 하나인 그레이스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호오……? 그것참 흥미롭구려. 한데 그레이스라면 페르간의 안토니라는 자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소?”
“그렇습니다만. 얼마 전부터 느껴지지 않는다는 듀란트 경의 이야기입니다.”
듀란트. 안토니와 마찬가지로 볼카스의 병기 중 하나를 소지하고 있는 발티온의 기사였다.
볼카스는 물론이고 3대 대장장이들의 유산은 제국을 더불어서 모든 공국에 흩어져 있다. 즉, 안토니가 떠난 한 달이 지난 이 시점에서 슬슬 안토니의 부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토니와 그레이스의 소실.
전쟁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그란디아 대륙에 새로운 사건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