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아, 그게 아니라 이쪽은 산적이 자주 나오는 곳이오.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가 호형호제를 하게 되었소이까?”
턱수염 무인, 장용이 그게 뭐 대단하냐는 듯 웃었다.
“어허, 편하게 말 놔. 강호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밥 한 끼 같이 먹었으면 형 아우지, 뭘 그런 걸 따져. 그럼 네가 형 할래? 그러고 싶으면 그래도 돼.”
분명히 웃고 있는데 웃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험악한 얼굴이었다. 이들이 심성 자체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니란 걸 알게 된 허윤조차 괜히 말을 꺼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칼자국 무인, 쾌도가 말했다.
“우리가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이니 네가 우리 동생이 맞지. 우리는 네 뒤를 봐주고, 너는 우리 계약서를 챙겨 주고. 호형호제하자고.”
“그건 호형호제가 아니라 상부상조요.”
“그래? 그런데 그놈은 왜 그랬지?”
“누구 말하는 거요?”
“저번에 나한테 대들던 놈이 하나 있는데 자꾸 상부상조라고 우겨서 몸에 칼자국을 하나 새겨 줬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소?”
“그랬더니 그제야 질질 짜면서 호형호제가 맞다 하더라고. 그놈이 우리에게 사기를 쳤나, 아니면 우리 동생이 지금 나한테 사기를 치는 건가?”
쾌도의 혼잣말에 장용이 생각났다는 투로 말했다.
“아하, 그놈 말하는 거구만. 그놈이 우릴 무식하다고 해서 팔 하나 부러뜨려 놨었지. 그랬더니 호형호제하자고 했어.”
“아니야. 칼자국을 내 줬다니까. 우리 동생이 날 속일 리 없으니 그놈이 사기 친 게 틀림없어. 다음에 만나면 그놈 다리도 부러뜨려 놔야겠군.”
칼자국을 냈다는 건지 팔을 부러뜨렸다는 건지. 저런 살벌한 이야길 들으면서도 허윤은 왜인지 긴장이 되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쉬었다.
“됐소. 아무튼, 가급적 위험한 길은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소?”
“어허, 걱정 마. 우리랑 함께 있으면 녹림십팔채의 산채만 피하면 돼. 잡산적들까지 걱정하면서 강호를 어떻게 다녀.”
“호형호제니까 우리만 믿어.”
쾌도는 자꾸만 호형호제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쨌든 호형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산적을 굳이 피해 가려 하지 않는 게, 무림인들은 이리도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쾌도가 크고 단단한 나뭇가지를 꺾어 칼로 대충 깎은 뒤 몽둥이로 만들어 허윤에게 건네주었다.
“자, 걱정되면 호신용으로 이거라도 하나 들고 있어. 호형호제하자고.”
“알겠소. 알았으니 호형호제로 합시다.”
“동생이 부탁하면 그리해야지. 이제야 인정하는구만.”
그제야 쾌도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쾌도는 얄팍하게 생겨서 장용보다 많이 똑똑해 보였지만, 아주 조금 더 똑똑할 뿐이었다. 심지어 뭔가 하나에 꽂히면 집착하면서 자기 말이 맞는다고 우기는 경향도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아주 악한은 아니고 말과 인상만 험할 뿐이라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동생, 걸음이 제법 날래네?”
“그러게. 우리처럼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면서 발이 빨라.”
두 사람은 허윤이 자기들을 잘 따라오는 게 못내 신기한 듯했다.
“책상에 앉아 오래 공부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더니, 동생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구만.”
“공부도 쉽지 않은 세상이야.”
허윤은 웃기만 했다.
그리고 두어 고개를 넘었을 때.
허윤이 우려했던 바대로 정말 산적이 나타났다.
“어이구, 그리 바삐 어디들 가시나?”
“이 산에 주인이 있다는 걸 아직 모르셨나들?”
건들거리며 녹슨 칼을 든 산적 열 명이 나타났다.
장용과 쾌도가 산적들을 스윽 살피더니 웃었다.
“크하하하! 이건 또 뭐 하는 새끼들이야?”
“클클클. 피라미들이군.”
장용이 산적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녹림십팔채 소속이면 소속 산채를 대고, 잡졸이면 좋은 말로 할 때 가진 것 다 놓고 꺼져라.”
쾌도가 눈을 희번덕댔다.
“아니면 팔다리 찢어서 널어 버린다.”
이쯤 되면 누가 산적인가.
산적들이 흠칫했다. 가뜩이나 인상도 더러운데 말투까지 험악해서 소름이 끼친 모양이었다. 장용과 쾌도는 정말로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이 아니었다.
산적들끼리 눈치를 보았다.
장용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더 흉악한 얼굴로 웃었다.
“이 새끼들 이거 녹림십팔채 소속도 아니구만, 겁대가리가 없어. 야, 이 새끼들아. 칼날이라도 좀 갈고 다녀라. 다 녹슬어서 풀 한 자루도 못 벨 것 같은 칼로 뭘 하겠다고.”
쾌도가 손가락의 관절을 풀며 칼의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는 산적들을 쭉 둘러보았다.
“잘됐네. 일 잘 풀리라고 고사 상을 차리려던 중인데, 머리통이 하나 부족했거든. 자, 어느 놈 머리통이 좋으려나? 열 명이면 열 개 다 올려도 되고.”
그런데 그때, 열 명의 산적 옆으로 열 명이 더 나타났다.
움찔.
그러자 쾌도와 장용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걸 본 산적 중 한 명이 외쳤다.
“저 새끼들도 꼴을 보니 뭐 대단한 뒷배가 있는 놈들이 아니구만! 그냥 쳐 버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산적들이 무기를 들고 쾌도와 장용에게 접근했다.
쾌도와 장용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 정말 다 죽고 싶어? 진짜 오늘 피 좀 볼까!”
“다 죽여 버린다!”
산적들이 주춤했다가 다시 다가왔다.
그러자 쾌도와 장용이 서로 눈짓을 하더니 중얼거렸다.
“젠장, 안 통하네.”
“한 열 명이면 해볼 만했는데. 뭐 뒤에 열 명이나 더 있어.”
그러더니 허윤을 돌아보고 소리쳤다.
“동생, 튀어!”
허윤은 가만히 보고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엥?”
자기들만 믿으라더니?
그에 산적들이 뭔가 눈치를 챘는지 달려들었다.
“놈들이 허세를 부렸어!”
“어르신들을 화나게 했으니 팔다리로 통행세를 받아 주마!”
“저 새끼들 잡아!”
쾌도와 장용, 허윤은 뒤로 돌아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뒤에서도 산적들이 나타났다.
할 수 없이 쾌도가 도를 뽑아 들었다. 장용도 주먹을 말아 쥐고 돌아섰다.
“조심해, 동생!”
하지만 산적들은 샌님처럼 허약해 보여서 도움도 전혀 될 것 같지 않은 허윤보다 쾌도와 장용을 먼저 잡겠다고 달려들었다.
“으아앗!”
“이런 망할 새끼들!”
쾌도와 장용은 산적들과 엉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허윤이 옆으로 피하려 하자, 산적 하나가 눈치채고 와서 허윤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산적이 녹슬고 시커먼 피딱지가 붙은 손도끼를 들고 을러댔다.
“어딜 도망가. 움직이면 머리를 쪼개 버릴 줄 알아.”
그러나 허윤은 그 말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필 머리를 쪼갠다고 해서 그런가?’
돌로 쳐도 흠집조차 안 나는 머리를 저 산적은 어떻게 쪼갤지 괜히 궁금했다.
하나 끼어들기도 애매하고 하여 허윤은 일단 산적에게 붙들린 채 지켜보기로 했다.
쾌도와 장용이 말로는 부잣집 호위 무사였다더니 그래도 인상만 믿고 배를 짼 건 아닌 듯했다. 몸놀림이 제법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티가 났다. 아무래도 오합지졸 같은 산적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차이가 나긴 했다. 세 명을 패면 한 명에게는 얻어맞았다.
아차 하면 베이고 피가 튀는 무기들을 마구 휘둘러 대고 있는 걸 보고 있어서인지, 허윤은 슬슬 감각이 예민해지는 걸 느꼈다.
쾌도와 장용 그리고 산적들의 몸에 조금씩 상처들이 생기면서 피가 흐르는데, 피비린내가 코앞에서 바로 나는 것처럼 확 풍겨 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쨍쨍거리고 부딪치는 칼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미치겠구나.’
허윤은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내 마개를 열었다. 미리 준비해 둔 술이었다. 감각이 예민해지면 피곤해서 술을 마셔야 조금 진정되었다.
“누가 움직이라고 했냐! 뭐야. 술이야? 이 어르신에게 주려는 거냐? 이리 내놔.”
허윤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산적이 허윤의 호리병을 빼앗으려 했다. 허윤 역시 뺏기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실랑이를 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허윤은 싸우는 이들 가운데에서 뭔가 희한한 걸 보았다.
‘응?’
산적들과 쾌도, 장용의 움직임이 뭔가 눈에 박히듯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죽어어!”
한 산적이 반쯤 이가 나간 칼을 위로 치켜들며 쾌도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허윤은 산적의 눈동자가 아주 살짝 움직이며 시선이 흔들리는 걸 보았고, 해져서 구멍이 난 옷 사이로 어깨의 근육이 살짝 틀어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방향 상으로 보자면 분명히 쾌도의 목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허윤은 왠지 칼이 다른 방향으로 갈 것 같았다.
‘옆구리.’
그 순간 산적이 혼신의 힘을 다해 방향을 비틀어 칼이 쾌도의 옆구리를 향했다. 쾌도는 황급히 피하면서 바닥을 굴렀다. 산적의 칼이 살짝 등을 그어 피가 났다.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었는데도 허윤은 피비린내가 확 풍기는 걸 느꼈다.
“이 새끼!”
쾌도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두 번을 구르다가 칼을 휘둘러 산적의 허벅지를 베었다.
“으아악!”
산적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붙들고 깽깽이걸음을 했다. 쾌도는 집요하게 쫓아가 나머지 발도 베어 버렸다.
허윤은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산적들이 뭘 하려 하는지, 움직이기 전에 미리 보였다.
‘뛰어서 덤비려 하는구나. 쇠스랑으로 가슴을 찍으려 하고. 달아나는 척 뒤로 빠지다가 동료와 같이 공격하겠지. 몽둥이로 어깨를 치고.’
허윤은 산적들의 모든 동작을 한발 앞서서 예견(豫見)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엔 쾌도가 어떻게 할지…….’
마침 앞니 빠진 산적이 쾌도와 대치하고 있었다. 앞니 빠진 산적이 쌍칼로 쾌도를 마구 내려쳤다. 쾌도는 칼 한 자루로 막고 있어서 반격의 여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안 되려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쾌도가 몸을 낮추고 크게 칼을 휘둘렀다. 앞니 빠진 산적은 정강이를 베일까 봐 뒤로 몸을 뺐다.
허윤의 눈이 커졌다.
보였다.
‘뛴다!’
쾌도는 몸을 굽힌 채 바닥에서 회전하며 앞니 빠진 산적의 정강이를 베는 척하다가, 돌연 땅을 박차고 뛰쳐 올랐다. 그러곤 한 번 더 몸을 돌리며 산적의 가슴을 베었다.
“으아아악!”
가슴이 사선으로 베이고 피가 튀었다. 깊이 베인 건 아니지만 상처가 길어 순식간에 피가 흘러나왔다.
서 있는 산적들의 수가 그래도 많이 줄었다. 장용도 주먹을 말아 쥐고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허윤의 뒤에 있던 산적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도끼를 고쳐 쥐었다.
“안 되겠구만, 이 새끼부터 죽여야지!”
허윤은 에라이! 하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곤 바로 뒤를 돌아서 산적의 안면을 들이받았다. 설마 허윤이 공격해 올 줄은 몰랐던 산적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와직……!
힘을 뺀다고 뺐는데 산적의 코는 여지없이 뭉개졌다. 거의 두부를 손바닥으로 누른 듯한 느낌밖에 없었는데도.
산적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끄윽……!”
휘청거린 산적이 눈에 살기를 띠었다. 납작해진 코에서 피를 뿜으며 도끼를 치켜들었다.
“이 새끼가아아아아!”
순간 허윤은 도끼가 떨어지는 걸 보았다.
‘어깨?’
산적이 놀라서 아무렇게나 휘둘렀는지 머리가 아니라 하필 허윤의 어깨를 도끼로 찍었다. 이어서 끔찍하게도 팔이 반쯤 잘려서 덜렁거리고, 자기가 그 팔을 잡은 채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는 모습도 생생히 보였다.
어찌나 생생했는지, 예견이 아니라 정말로 이미 팔이 잘린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놀란 허윤은 반사적으로 몽둥이를 들어 도끼를 막으려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머리로 도끼를 들이받았다.
지끈!
감각이 완전히 예민해진 상태에서 허윤은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년소정의 기운이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도끼가 날아온 순간, 기운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도끼를 튕겨 냈다. 도끼날이 머리에 직접 닿기도 전이었다.
콰직—!
도낏자루가 썩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그러면서 부러진 도끼의 날이 산적에게로 되돌아갔다.
퍽!
산적의 머리에 튕긴 도끼날이 박혔다. 산적은 사팔뜨기처럼 눈을 모아서 자기 머리에 박힌 도끼날을 보았다.
“꺽…….”
산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