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음?”
단유완은 또 당황했다.
그게 그런 말로 들렸나?
허윤이 혀를 찼다.
“아니, 뭐 사주 한번 봐 달라고 이렇게까지 해. 이건 좀 과하지.”
혼자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머쓱했던 고우사가 괜히 웃었다.
“아, 그런 거야? 그걸 뭐 그리 어렵게 얘기하고 있어. 별것도 아니구만.”
“하하, 그것이…….”
허윤이 장막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사람이 성의가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구려. 원래 삼십 문을 받으니까 과한 복채는 못 받소. 하지만 이왕 힘들게 준비하셨으니 이 수석을 내가 복채로 받을 삼십 문으로 산 셈 칩시다.”
수석이 필요하던 차라 잘된 일이었다.
차린 걸 보아하니 부자인 듯해서 크게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단유완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이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기야 자기가 마도라고 머리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아직 마공을 드러낸 것도 아니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했다.
대홍랍강도 헛웃음을 지었다.
“점괘 한번 얻으려고 별짓을 다 하는 사람이 생기네.”
단유완은 욱했다.
사람을 뭘로 보고.
안소방도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전 또 뭐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아까부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단유완이 사주를 봐야 할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서 사주를 봐 달라는 게 아니라고 하면 되레 이상해질 것 같았다.
한데 장용과 쾌도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소곤소곤.
“이상한데…….”
“좀 심하지?”
“딱 사기꾼…….”
“사파잖아. 사파니까 사기꾼이지.”
소곤소곤.
“직접 보니까 뺀질거리는 게 사파보단 마도 같은데.”
흠칫.
“에이, 설마 마도가 백주에 들이대나.”
“그렇지?”
단유완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더 이상한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본론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허윤이 수석을 탐내는 걸 보니 잘될 느낌이다.
단유완이 재빨리 말했다.
“얘기가 잘못 전달된 듯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제 사주가 아니라 허 선생님의 사주를 원합니다.”
“내 사주를?”
허윤이 의아해했다.
“왜 내 사주가 필요하오?”
“그것은…….”
그런데 단유완이 적당히 둘러대기도 전에 장용과 쾌도가 또 소곤거렸다.
소곤소곤.
“거봐. 마도지.”
“진짜? 그걸 어떻게 알아.”
단유완도 궁금해서 귀가 솔깃했다.
사주만 물었는데 그걸로 마도라고 어떻게 의심하지?
장용이 여전히 속삭이는 소리로 말했다.
“마도의 사악한 무공 중에 사주 가지고 빨리 죽으라고 고사 지내고 그런 거 있어.”
단유완은 깜짝 놀랐다.
그런 거 없어!
하지만 그런 소릴 했다간 마도라는 걸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었다.
그는 거의 목까지 올라온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생각해 보니 애초에 고사는 액운을 멀리 보내는 제사라 방금 같은 때 쓰는 단어도 아니었다.
‘이거 순 막말하는 새끼들 아냐!’
그런데 장용과 쾌도의 밀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데 진짜 마도면 우리 형님이 사주를 안 알려 주실 텐데.”
“그치. 우리 형님은 마도랑 철천지원수 아냐.”
단유완은 움찔했다가 아차 싶었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면 더 의심하지 않겠는가!
때마침 허윤은 단유완이 들고 있던 수석으로 손을 뻗으려던 참이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
허윤도 귀가 있는데 장용과 쾌도의 말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수석을 집으려던 허윤의 행동이 딱 멈췄다.
단유완은 크게 긴장했다.
또륵.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렀다.
허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곤 매우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사주가 왜 필요하다는 거요?”
단유완은 침이 말랐다.
마르다 못해 목까지 탔다.
허윤은 고수다.
혼자서 육대 세력의 삼 할을 작살 냈다.
가뜩이나 철천지원수라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기가 마도라는 걸 알게 되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
임무가 문제가 아니라 죽는다.
단유완의 머릿속이 온통 헝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허윤의 입술이 움직이며 무언가 발음을 하는 모습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젠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에서 뚝뚝 떨어졌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수습을 하지?
단유완은 원망과 절망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장용과 쾌도를 째려보았다.
그냥 적당히 둘러댈 수 있었는데, 저 두 놈 때문에!
허윤이 의심하며 묻고 있었다.
“이보시오. 당신 혹시…….”
단유완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이 없는 상태로 말을 내뱉었다.
“구, 구, 구, 구…….”
“구구구구?”
“구, 구, 궁합을…….”
말을 해 놓고 보니 그거 아주 적당한 핑계였다!
이깟 일로 고민한 자신이 다 바보 같을 지경이었다.
적당히 궁합을 보기 위해서라고 했으면 아무 문제 없이 해결되는 일이었지 않은가.
이상한 두 놈 때문에 말려서 괜히 겁먹고 일을 그르칠 뻔했다.
그러나 어쨌든 잘 둘러댔으니 문제가 없어질 것이다.
단유완이 안도하는 순간, 허윤이 손뼉을 쳤다.
짝!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갑자기 낙락이 뺨을 잡곤 꺅꺅거리고 돌아다녔다.
응? 왜?
단유완은 이상해서 다른 일행들을 살폈다.
고우사와 대홍랍강은 얼빠진 표정으로 단유완을 쳐다보았다.
“세상 말세다, 말세야.”
“허어, 하여간 분칠하고 다니는 것부터 수상했다니까.”
의외로 장용과 쾌도는 의심이 다 풀린 얼굴이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그래서 이렇게 잔뜩 차려 놓고도 그 말을 못 해서 쩔쩔맨 거야?”
“쯧쯧, 저 형씨도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으시네.”
단유완은 다른 의미로 찝찝해졌다.
이거, 아무래도 오해가 깊어진 정도가 아닌데?
“그게 아니라, 누이의…….”
있지도 않은 누이를 팔아서 궁합을 보려 했다고 말하려는데, 그보다 먼저 안소방이 장용과 쾌도에게 뭐라고 타박했다.
“형님들 때문이잖아요. 괜히 마도니 뭐니 생사람 잡으시니까 저분이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긴장했잖습니까.”
쾌도는 혀를 찼다.
“저 나이 먹고 고백도 제대로 못 해서 달달 떨면 오해 좀 할 수 있지.”
하지만 장용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유완을 보곤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 형씨. 마음고생 많았지?”
찰랑…….
“네.”
울컥해서 저도 모르게 대답한 단유완은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대답하면 안 됐는데! 아아아악! 그럼 인정한 꼴이잖아! 저 새끼가! 으아아아악!
그때 갑자기 허윤이 단유완의 어깨를 짚었다.
턱!
단유완은 솜털이 곤두섰다.
“이보게. 사실은 처음부터 자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네. 누이도 없을 걸세. 맞지?”
단유완이 흠칫했다.
눈치챈 건가?
“그…… 그게 그러니까…….”
허윤이 안타까움이 그득한 눈길로 말했다.
“하…… 자네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주었는데 정말 미안하네만, 나는 할 일이 있는 사람일세. 그리고 보기보다 나이도 많다네. 자네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함을 용서하시게.”
이쯤 되니 단유완으로서도 저절로 애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진짜 안 됩니까?”
움찔!
말한 단유완도 스스로 놀라고, 허윤도 놀랐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사주 좀 주면 안 되느냐는 의미였는데, 말이 왠지 이상하게 들렸다.
허윤이 굉장히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자네 정말 진심이구만. 하지만 나는 그…… 천륜과 인륜을 지켜야 하는 점복자라서 남자끼리의 궁합은 볼 수가 없다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제발…… 그냥 그것만…… 사주만…… 그래도 안 됩니까?”
허윤은 간절한 단유완의 얼굴을 보곤 입술을 꾹 깨물며 갈등했다.
장용이 허윤에게 소리쳐 말했다.
“형님! 옷 부스러기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같이 살자는 것도 아니고 궁합 좀 보자는 게 무슨 잘못입니까!”
쾌도도 인상을 쓰곤 말했다.
“그냥 적어 주고 갑시다. 그거 들고 평생 형님을 추억할 거 같지만, 생각보다 금방 잊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요새 젊은 애들, 금방 타고 금방 꺼져요.”
응? 저 새끼들이 웬일이지?
단유완은 둘에게 깊이 새겨졌던 원한이 눈 녹듯 풀리는 것을 느꼈다.
“에이, 그래. 그거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결국 허윤은 준비된 지필묵으로 자기 사주를 휙휙 적어서 주었다.
“내가 차마 직접 궁합을 봐줄 순 없으니 어디 다른 데 가서 몰래 보게. 용한 점술가는 두 사주가 남자란 걸 알아보겠지만, 모르고 넘어가는 점술가도 많을 걸세.”
단유완은 허윤의 사주를 적은 종이를 받아 들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쉬운 걸!
“가세.”
“좋은 일 하신 겁니다. 형님.”
“나도 당황스러웠네, 허허.”
허윤이 수석을 챙기고 일행들과 천막을 나가려 했다.
단유완은 기분이 좋아져서 선남선녀들에게 명했다.
“음식 싸 드려. 가다 드시게.”
쾌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만두 빼고.”
“만두 빼.”
단유완은 허윤 일행이 사라질 때까지 천막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폭풍이 몰아친 기분이었다.
음공을 쓰려 가져온 비파는 어디에 뒀는지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결국 허윤의 사주를 얻었으니까.
“흐흐흐. 어디 보자.”
단유완이 개운한 마음으로 사주를 펼쳐 읽어 보았다.
“경술년(庚戌年) 경진월(庚辰月)…… 응? 경술년이면 몇 살이야.”
단유완은 손가락을 꼽으며 따져보았다.
“가만있자…… 뭐야, 이거. 쉰넷?”
허윤은 끽해야 스무 살 초반이나 될까 말까 한 얼굴이다.
그런데 오십 살의 사주를 적어 준 것이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이 안 나왔다.
크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순진한 얼굴로 이런 속임수를 써?
손이 다 떨렸다.
한참 사주 종이를 멍하게 내려다보고 있던 단유완의 뇌리에 장용과 쾌도, 허윤의 얼굴이 스쳐 갔다.
열불이 났다.
“이거, 같이 다니는 패거리가 죄다 순 개애∼ 새끼들이네?”
허탈한 표정으로 몇 번을 읽어도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고 임무를 실패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분명히 허윤이 자필로 적어 준 사주였다.
하나 이것을 그대로 대종사에게 가져다주면 대충 가짜로 적어 왔다고 욕이나 처먹을 게 분명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단유완은 종이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생년을 적은 부분을 찢어 내고 일부만 남겼다.
그러곤 엄지를 깨물어 피를 낸 다음 그 부분을 꾹 잡고 비벼서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아예 보이지 않게 했다.
마치 싸움 끝에 겨우 얻어 낸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이것을 전서구로 보내면 그의 임무는 끝이다.
“휴.”
단유완은 맺힌 땀을 닦으면서 다시 한번 허윤과 일행을 떠올리곤 치를 떨었다.
* * *
한편, 장원 인근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청룡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장원의 문이 닫힌 채 열릴 줄을 몰랐다.
옆의 쪽문에서 하인이 두어 번 왔다 갔다 한 게 다였다.
불길했다.
한자리에서 오래 기다린 것만으로도 좋지 않은데, 심지어 낌새조차 없다니.
풍굉유는 안 되겠다 싶어 병력을 모았다.
“한 번에 치고 들어갔다가 놈의 지인을 포획하는 즉시 빠진다. 지인이 잡혀 있으면 놈도 섣불리 날뛰진 못할 것이다.”
희생을 감수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풍굉유의 명령하에 청룡보의 무인들이 장원을 급습했다.
콰앙!
정문을 부수고, 담을 넘어 들어갔다.
“헛!”
불길함이 적중했다.
장원을 전부 뒤졌지만, 집을 관리하는 하인 소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풍굉유가 불같이 화를 냈다.
“왜 이 새끼들이 없어! 신강제일인이 기다린다고 한 새끼 누구야! 그리고 왜 아무도 여기 있는 놈들이 나간 줄을 몰라!”
도학군자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 정도 고수가 밤사이에 몰래 사라졌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최근에 서안을 빠져나가는 상인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이 장원의 주인들도 그들 중에 섞여 나간 모양이었다.
“불 질러! 다 태워 버려!”
풍굉유가 미친 듯 날뛰다가 갑자기 말을 뚝 그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미친 듯한 살기를 뿜어내는 여인과 지독히도 칼날 같은 기세를 드러낸 무인들 다수가 장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호호호호! 다리 짝짝이인 놈. 너, 가군자지? 이 겁 없는 마도 놈들이 대체 어디까지 들어온 거야? 허 선생이 나더러 죽는다고 했는데, 너니? 겨우 네가 날 죽인다니?”
여인이 깔깔대고 웃었다.
도학군자가 근엄한 표정으로 포검 하며 말했다.
“오해가 있으신 듯하외다. 우리가 어디를 봐서 마도로 보이시오. 우리는 정과 협을 숭상하는…….”
“오해는 무슨 오해. 개뼈다귀 같은 소리 집어치워. 아, 우리 애들 막 도착했는데 잘 됐지 뭐야? 얘들아, 몸이나 풀자.”
풍굉유가 빠득 이를 갈았다.
너무 오래 머무른 바람에 만나지 말아야 할 일 순위를 만나고 말았다.
나찰선자와 철심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