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임옥운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부당주가 검을 닦으며 임옥운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더러 몸을 풀라면서 혼자서 반을 죽여 버리면 어쩌십니까.”
임옥운이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며 부당주를 쳐다보았다.
후우…… 후우…….
눈에 아직 혈기가 돌았다.
“실례.”
부당주는 익숙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곤 바로 한 걸음 물러섰다.
임옥운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움찔, 움찔.
풍굉유와 도학군자가 박살이 난 채 그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둘이 합공했는데도 임옥운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풍굉유가 부러져서 덜렁거리는 손으로 손뼉을 쳤다.
“이야아…… 나찰이 무림맹의 칼이라더니, 실제로 만나 보니 진짜 더럽게 세네. 쿨럭쿨럭. 진마(眞魔), 극마(極魔) 다 데려와도 이년 하나 죽이기 힘들겠어.”
여전히 살기를 가라앉히지 못한 임옥운이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여기 왜 왔다고?”
“빌어먹을…… 몇 번을 말해. 사주 때문에 왔다고.”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혀를 뽑는다. 여기 왜 몰려왔느냐 물었다.”
“귓구멍이 처 막혔나. 사주 받으러 왔다 했잖아! 사주!”
“또 헛소리.”
임옥운이 검지와 중지로 검결지를 쥐었다.
검지와 중지에서 검기가 삐죽하게 튀어나왔다.
검결지를 가볍게 휘두르자 풍굉유의 손목이 날아갔다.
풍굉유의 미간과 턱에 시퍼런 힘줄이 돋았다.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하나 이를 악물고 버틴 바람에 눈의 실핏줄이 터져서 혈안이 되었다.
그제야 임옥운의 살기가 조금 줄어들었다.
“휴. 사람 화나게 하지 마.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
풍굉유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런 걸로 협박이 되나? 협박을 하려면…… 그래, 그 대갈 선생 정도는 데려와야지.”
임옥운의 눈썹 사이에 주름살이 생겼다.
“뭐라고?”
“그거 아나? 네년이 세긴 해도 두렵진 않아. 그런데 그 딱딱이 새끼는…….”
풍굉유의 동공에 공포와 분노의 빛이 번갈아 가며 아른거렸다.
임옥운이 미간을 찡그리곤 검결지로 풍굉유의 몸을 몇 번이나 찔렀다.
파팟!
혈도를 제압당한 풍굉유가 고통스러워하다가 혼절했다.
이번엔 도학군자를 쳐다보았다.
임옥운이 다시 물었다.
“허씨가 무섭다면서 왜 네 녀석들 주제도 모르고 백도맹 장원에 몰려왔느냐고. 말이 안 되잖니.”
도학군자가 피를 토하면서 대답했다.
“사주…… 캐러 왔다고……. 사람 말을 귓등으로라도 좀 처 들어, 이 미친년아……. ”
임옥운의 눈에 다시금 살기가 치밀려 했다.
그때, 철심당 부당주가 끼어들어선 도학군자의 목덜미를 쳐 말을 더 못하게 만들었다.
“아까부터 같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 지금은 더 캐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들을 맹으로 호송하겠습니다. 그쪽에서 입을 열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흥. 그렇게 해.”
임옥운은 검기를 회수하곤 팔짱을 꼈다.
그런데 돌연 깔깔 웃었다.
“잡졸아, 잡졸아! 너 지금 내가 있는데도 애들을 보냈다는 거지? 내가 안중에도 없어?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 붙들고 애원하던 덜떨어진 놈이.”
순간 임옥운의 살기가 극한까지 치솟았다.
철심당과 남아 있던 청룡보 이들이 전부 임옥운의 살기를 느끼고 경계했다.
촤악!
임옥운의 손짓에 풍굉유와 도학군자의 목이 떠올랐다.
철심당 부당주가 살짝 인상을 썼다.
“또 왜 그러십니까. 방금 제게 맡기셔 놓고.”
임옥운은 마치 야수의 눈같이 작아진 동공으로 부당주를 돌아보며 살기등등하게 웃었다.
“됐어. 직접 물어보려고. 야율황이에게.”
* * *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던 허윤 일행은 어느 순간, 단유완이 싸 준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낙락이 허윤을 조용히 불러냈다.
“자네, 잠시 나 좀 보게.”
그에 허윤은 낙락을 따라 일행과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입니까?”
낙락은 굉장히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한데 어린아이의 얼굴로 주저주저하고 있어서 귀엽기만 하고 그다지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네.”
“말씀해 보십시오.”
“무림맹에서 온 나찰선자 말일세.”
“네.”
“그 친구에게 물어볼 게 생겼어.”
“예? 갑자기요? 뭘 물어보시려고요.”
“떠나기 전에 잠깐 만났거든. 그런데 그때 먹은 빙당호로가 굉장히 맛있었지 뭔가. 특상의 산자 열매라고 하던데, 어느 지역에서 난 건지 묻지 못했어.”
“…….”
허윤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맛이었기에 그러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럼, 그거 물어보러 다녀오시게요?”
“아니. 그건 아니고…… 혹시 그 친구, 정말 살아남기 어려운가 해서. 죽으면 영원히 물어볼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살릴 방법이 없냐는 겁니까?”
낙락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럼 그냥 그렇게 말씀하시지, 왜 뜬금없는 산자 얘기를 하고 그러십니까. 전에 강호 일엔 개입 안 하신다고 했다가 갑자기 말을 바꾸시려니까 창피해서 그러세요?”
“아닐세. 이게…… 자넨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한테 무명(無明)이 와서 그렇다네.”
“무명이요? 불교에서 십이연기라 하는 그거 말입니까.”
“번뇌의 근원인 것이지. 잘못된 생각,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상태.”
“흠…… 그런데, 그게 왜요?”
“나도 이 나이에 민망하네만, 일전에 나찰선자를 만나고 내가 무명을 앞두고 있음을 자각했다네. 이게, 쉽게 말하자면 무인으로서의 성장 과정 같은 걸세.”
허윤이 낙락을 빤히 쳐다보았다.
낙락이 삐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백 살이든 이백 살이든 성장은 계속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걸 또 뭘 그렇게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그래?”
“이상하잖습니까.”
“그래서 민망하다 했잖나. 이게 말이야. 삼 갑자라는 담을 뛰어넘으려고 그렇게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거기에 오르는 데 성공하게 되면 허탈한 마음이 든단 말일세. 허무하기도 하고. 왜냐면 삼 갑자 전이나 그 후나, 천지가 개벽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뒤집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별반 다를 게 없거든. 이게 내가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 할 일이었나? 싶어지지.”
“욕구와 열정이 사라지니 허무하고 허탈해진다…… 어찌 보면 불가의 깨달음과 일맥상통하는군요.”
“응. 우리는 그걸 초은(樵隱)이라 하네. 앙연이 곧 초은일세. 목표 상실 후 허탈해져서 세상에서 살아갈 의지와 용기를 잃고 은거하는 것.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공만 파느라 포기했던 것들을 다시금 시작하게 돼.”
“노인장은 그래서 가문에 붙어 계셨던 거고 말입니다.”
“맞네. 그러다가 자네를 만나서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
낙락은 생각만 해도 침이 도는지 입맛을 다셨다.
“알지 못하던 세상의 즐거움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집착이 생기고 번뇌가 늘어나게 된 걸세.”
“그런 것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그게 무명경(無明境)의 경지이고, 그러다가 그것마저 탈피하게 되면 다시 성장하게 되는 거지.”
“앙연보다 더 강해지는 겁니까?”
“정신적인 성장이라 그게 꼭 무력으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네. 그러나 정신적인 성장이 곧 무력 성장의 밑바탕이 되니, 강해진다는 말도 맞겠지.”
“……뭐가 혼돈이고 번뇌인지 말만 들어도 알겠습니다.”
고수가 될수록 정신적인 압박이 심해지고, 그러면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행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자꾸만 나찰선자가 한 말이 떠올라 잊기가 어렵다는 걸세. 하여 자네에게 방법이 없는지 묻는 것이지.”
허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찰선자의 운명은 섬서의 운명과 궤를 같이합니다. 그녀가 흐름을 이끄는 결정권자인 이상은 그렇습니다. 화산파도, 종남파도 그 운명을 벗어나기는…….”
한데 허윤은 말을 하다가 문득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으음?”
그것도 보통 바람이 아니었다. 굉장한 돌풍이 불어왔다.
휘이이잉!
돌풍에 옷깃이 심하게 나풀거렸다.
“어? 뭔가 조짐이…….”
큰 흐름은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무언가 상황이 변했다는 뜻이다.
무엇 때문이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왜 그러나?”
“뭔가 굉장히 큰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게다가 뭔가가 바뀌었는데……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허윤은 급히 서죽을 꺼내어 점을 쳤다.
빠르게 손을 놀려 점괘를 뽑아냈다.
“천지비(䷋)!”
낙락이 팔괘판을 보고 말했다.
“아래는 땅(☷)이 있고, 위에는 하늘(☰)이 있으니 순리에 따른 것이라 좋은 점괘인가.”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으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으나, 괘는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음양은 서로 엇갈리고 화합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 천지비는 하늘과 땅이 어우러지지 않고 따로 떨어진 채이니, 이는 소통이 없어 꽉 막힌 비색(否塞)의 형국이올습니다.”
낙락은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좋지 않은가?”
잠시 점괘를 보며 생각하던 허윤이 말했다.
“여기까지는 일전의 점괘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데, 이번엔 천지비의 상구, 가장 위 괘 하나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큰일을 계기로.”
허윤은 일단 의미를 읊었다.
“괘사는 경비 선비 후희(傾否 先否 後喜)입니다.”
괘사의 글귀가 단순했으므로 낙락은 금세 해석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기울어진 형국이고, 따라서 처음은 좋지 않으나 나중엔 좋아진다는 뜻이로구먼.”
하나 허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천지비는 임 당주와 같습니다. 꽉 막혀서 생각이 확고하고 이미 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니,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위 괘가 변하여 하늘 건(☰)이 연못 태(☱) 모양으로 되어서야 비로소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느냐면…….”
허윤은 신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가장 위 괘는 사람으로 치면 머리입니다. 그 하나의 머리(⚊)가 둘(⚋)로 나뉘게 될 때이니까…… 즉, 임 당주는 그녀가 죽음을 앞둔 때에 마음을 고쳐먹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그녀에게 종속된 다른 이들의 운명이 풀릴 겁니다.”
타악!
낙락이 무릎을 쳤다.
“자네가 말한 큰일이란 게 나찰선자가 죽는 사건인가!”
“아닙니다.”
“아니라고?”
“임 당주는 우두머리로서, 그녀가 책임을 져야만 다른 이들이 살 수 있습니다. 그건 흐름을 이끄는 결정권자의 운명이라 본래부터 그녀가 살길은 없었습니다.”
“하면 자네가 말한 큰일이란 건…….”
허윤은 산통에서 대나무 살 하나를 뽑았다.
일입운중(日入雲中)!
대나무 살에 적힌 글귀를 본 허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해가 구름에 가려지듯…… 남의 방해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점괘가 바로 그 일입니다.”
그때, 일행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윤이 일행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보니 고우사가 허윤을 보곤 하소연을 했다.
“야, 마침 잘 왔다. 쟤들 좀 어떻게 해 봐라.”
고우사가 쾌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뭘 말이오?”
“아, 청성파 장문은 왜 저 새끼한테 왜 이상한 걸 가르쳐 가지고. 저 새끼가 부르기만 하면 자꾸 뒤에서 대답을 하는데, 그거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 알아? 야, 나 절정 고수야. 그런데도 이제 저 새끼가 뒤에서 나타나는 걸 잘 모르겠다니까?”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쾌도의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특히 무영보법은 일절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물론 장용이나 안소방, 대홍랍강까지도 실력이 늘었다.
대홍랍강이 고개를 끄덕거리니, 고우사가 그에게도 눈치를 주었다.
“자넨 뭐 안 그런 줄 알아? 벌모세수인지 나발인지 받고 나서부턴 가끔 눈빛이 소름 끼칠 때가 있어.”
고우사가 허윤을 째려보며 한참을 투덜거렸다.
“하. 누구 때문에 이상한 게 옮아서 그런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눈알을 희번덕거려서 못 살겠네.”
고우사의 불평을 듣고 있던 허윤이 갑자기 입김을 훅 내뿜었다.
고우사가 움찔하며 욕을 했다.
“아이 씨, 말하자마자.”
허윤은 냉기를 풀풀 풍기며 점처럼 작아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산수몽…… 이제 그 점괘가 나온 의미를 알겠소이다.”
산수몽은 허윤이 군사 손현에게 준 점괘였다.
“만나야겠소.”
“엥? 또 누굴. 혹시 서안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건 아니지?”
“아니오. 화산으로. 손 군사를 만나러.”
허윤이 장용과 쾌도, 그리고 안소방을 보았다.
“나는 걸음이 느려 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 자네들이 다녀와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