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第五十二章 산수몽
“엇?”
점을 치던 흑룡은 크게 놀랐다.
“앞날의 운세가 바뀌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다리던 시기가 앞당겨졌다.
택일했던 날은 오 일 후인데, 그것이 내일로 변했다.
“왜지?”
오 일 후는 야율황이 데려온 병력의 상당수를 잃으면서까지 손꼽아 기다리던 대업의 날이었다.
흑룡은 핏물이 담긴 종지에 붓을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만 담가 부적을 써서 태웠다.
그러곤 다시금 점괘를 확인해 보았다.
이 핏물은 야율황이 동남동녀(童男童女) 백 명을 죽여 얻은 피였다.
이것으로 부적을 쓰고 태운 뒤에 점을 치면 신기가 극단적으로 오른다.
물론 흑룡이 원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점괘의 정확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이 핏물을 이용해야만 했다.
다 떨어지면 야율황이 또 애꿎은 아이들을 죽일 것이 뻔하므로, 흑룡은 평소 아주 최소한으로만 아껴 쓰고 있었다.
한데 이번에는 그러한 핏물로 두 번, 세 번씩이나 부적을 써서 확인해야 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마침내 날짜까지 뽑아낸 흑룡이 중얼거렸다.
“이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앞으로 내일까지 이틀이 지나면 야율황은 비상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만다.
그때까지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마도가 무너지진 않겠지만, 야율황은 실패할 수도 있다!
“…….”
머릿속으로 야율황의 실패를 상상해 보았던 흑룡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면 나와 사부님을 살려 두지 않겠지.”
그때, 야율황의 노복(奴僕)이 나타났다.
야율황의 호출이었다.
흑룡은 숨을 고르곤 그가 있는 대청으로 갔다.
혹시 대종사가 운세가 바뀌었음을 눈치챈 건가?
하나 정작 마주한 야율황은 전혀 그런 내색이 없이 손바닥을 내밀 뿐이었다.
그 위에 작은 대나무 대롱 두 개가 둥둥 떠올라 있었다.
전서구를 통해 날아온 정보였다.
“두 가지 소식이 있다. 어느 쪽을 먼저 듣겠느냐.”
“저는…….”
“아니지. 소식이라 하기도 그렇군. 하나는 네가 예측한 일의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네가 해야 할 일이니 둘 다 보아라.”
야율황이 변덕을 부리며 더러운 것을 버리듯 손을 털었다.
그러자 이내 두 개의 대롱이 흑룡을 향해 날아왔다.
흑룡은 대롱을 받아서 그 안에 돌돌 말린 종이를 꺼냈다.
“이것은…….”
야율황이 재밌다는 듯 팔짱을 끼고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네 말대로 무림맹이 물밑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심당으로 시끌벅적하게 우리 관심을 끌고, 실제로는 십대 고수와 그 제자들로 이루어진 검대(劍隊)를 불러 모으고 있는 게 우연히 발견됐다. 나를 확실히 죽이고 싶은 모양이지. 클클클.”
“그럼 그들이 도착하는 날짜가…….”
“사흘 뒤부터 서안에 순차적으로 도착한다는군.”
꿀꺽.
흑룡은 숨죽여 조심스럽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야율황은 그 소리를 들었다.
“왜. 네가 점지한 시간보다 더 빨라서 놀랐느냐? 날짜가 변동될 수 있다고 말한 건 너다.”
“송구합니다.”
“그건 됐고, 다른 거나 읽어 봐라.”
또 다른 대롱에서 쪽지를 꺼내 본 순간.
흑룡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야율황이 큭큭거리고 웃었다.
“한 번에 알아볼 줄 알았다. 그래야 흑룡이지.”
누군가의 사주였다.
그러나 태어난 해를 가리키는 연주(年柱)가 훼손되어 있어서 월, 일, 시의 세 개만 겨우 볼 수 있었다.
흑룡이 놀란 건 그 삼주가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사부 만복자의 사주와 일치한 것이다.
순간 흑룡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부의 사주를 왜 내게 보여 주었지?
흑룡의 사부, 만복자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야율황뿐이다.
처음 만났던 때 그 자리에 있던 수하들은 이미 야율황이 모두 죽여서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흑룡이 떨림을 감추며 물었다.
“태어난 해는 어떻게 됐습니까?”
“싸우다가 잃었다는군. 풍굉유는 그나마도 못하고 나찰선자한테 뒈졌어. 하여간 쓸모없는 놈들. 환희보에서 그나마라도 알아 온 게 용하지.”
“아아…… 네.”
흑룡은 일단 안도했다.
허윤이란 자의 사주를 알아 온다더니, 아무래도 그자의 것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말투로 보아 대종사가 자기를 시험하는 것도 아닌 듯했다.
하지만 신경이 쓰였다.
사부와 같은 이름에, 점술을 하며 사주 중 삼주가 같다…….
대체 그자의 정체가 뭐지? 누구기에 사부와 이름도 같고 삼주까지도 같지?
설마…… 사부?
하지만 사부라고 보기에 그자는 너무 젊은 사람이었고, 무공도 고수였다.
게다가 점술까지 뛰어나다고 했다.
그의 사부는 나이가 많고, 무공은커녕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무릎이 쑤셔 고생을 했다. 점술도 거의 엉터리였다.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혹시…….’
이 사주가 가짜?
허윤이란 자의 사주라는 명목으로 사부의 사주를 보낸 것일 수도 있었다.
‘흑룡’을 협박하기 위해서.
내가 네게 소중한 이를 알고 있으니, 협조하지 않으면 콱 죽여 버리겠다고.
‘그자들인가?’
법왕과 초우인 그리고 생마신!
그들이 환희보와 손을 잡았을 수 있었다.
흑룡은 그들이 자신이 시킨 일을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것 때문에 택일했던 날짜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여 대종사에게 말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고 사부의 사주를 보낸 것인가?
흑룡은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사주에서 생년은 조상과 부모의 덕을 의미하는데, 태어난 배경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허씨란 자가 고수라 하니, 그의 사부나 문파의 힘을 생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예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자수성가한다면 조업불계승(祖業不繼承)으로 일가를 이루는 것도 나타납니다.”
야율황이 인상을 썼다.
“그놈이 이끄는 자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뜻이냐?”
“사주 중에 하나라도 모르면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생년이 빠진 셈입니다.”
“쯧. 놈의 나이가 궁금했는데.”
야율황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튀어나온 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정파 놈들이 작심하고 키웠다기엔 백도맹에서 서기 노릇이나 하는 게 이상하고. 또 놈을 직접 본 자들은 하나같이 그놈이 절대 무골 체질이 아니라 하니, 반로환동이나 환골탈태를 했다고 하기에도 이상하지.”
반로환동을 했다면 평범해져서 무공을 익힌 것처럼 보이진 않으나, 환골탈태와 마찬가지로 무공에 적합한 근골이 된다.
반로환동이든 환골탈태든, 최소한 무공에 재능이 없는 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만한 고수 치고는 사용하는 무공까지 이상하잖은가. 도대체 머리에서 뭐가 나간다고? 미친놈들 같으니.”
“죄송합니다.”
흑룡은 자기 일이 아님에도 거듭 사죄했다.
“흥.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놈은 서안을 떠났다고 하니.”
휴.
흑룡은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문득 야율황이 물었다.
“십대 고수가 포함된 검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가 예측한 날보다 이틀이나 이르군. 대업에는 문제가 없겠느냐?”
“그것이…… 저…….”
흑룡은 낮은 한숨을 삼키며 답했다.
“대업의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내일이 최고조가 되는 날입니다. 조금 전에 확인했습니다.”
“그래? 어쩐지 무림맹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빠르다 했거늘.”
야율황은 어물거리다 뒤늦게 대답한 흑룡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듯 웃었다.
“어쨌든 잘됐구나! 하루라도 빠르면 좋지! 거기에 꼭 봐야 할 옛 친구도 있으니 말이야.”
야율황의 전신에서 마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특히나 임가 년. 클클클.”
자기 거처로 돌아온 흑룡은 울적해졌다.
결국 마도를 막지 못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갈 것인가.
하여 흑룡은 늘 하던 대로 사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점을 쳐 보았다.
공사진경(共邪進慶).
묘한 점괘다.
본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이라 하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길로 나아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글자 하나가 바뀌어, 귀신과 함께 경사스러운 길로 나아간다는 희한한 뜻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귀신을 나쁜 일이란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 어쨌든 나쁜 일이 있어도 계속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는 의미로 볼 수 있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결국은 좋은 얘기다.
“나 없이도 잘나가시는구나.”
훌쩍.
보고 싶어요. 사부님.
언제쯤에나 야율황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사부에게로 돌아갈 수 있게 될까.
마도가 강호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때에는 만날 수 있을까…….
* * *
손현은 충격을 받았다.
“이게…… 정말 허 선생의 말이…….”
그녀의 앞에는 안소방이 있었다.
안소방은 이미 반나절 전에 손현에게 와서 허윤이 적어 준 네 글자를 전했다.
북로남왜(北虜南倭)!
그리고 그것이 산수몽의 정체라 말해 주었다.
손현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 네 글자를 보고 곧바로 의미를 알아챘다.
그리고 온갖 연락망을 동원해 허윤이 말한 정보를 확인했다.
거기까지 두 시진이 걸렸고.
지금 결과를 확인했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도는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도 많아요. 자신들끼리도 이권을 두고 다툼을 하는데, 그것을 남들과 나눌 생각을 할 리가……. 역대 그 어떤 대종사도, 심지어 천마조차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지금의 대종사는 야율황이었다.
가공할 무력으로 마도를 지배하던 역대 대종사들과는 다르다.
비열하고 졸렬하기 그지없어 잡졸이라고까지 불리던 자였다.
그자라면 어떤 치사한 짓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손현이 벌떡 일어났다.
“문주님을 만나야겠어요.”
손현은 급히 화산파의 문주 자미사를 만났다.
“마도와의 일전을 중지해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전면전을 벌이기로 한 날로부터 나흘밖에 남지 않았네.”
섬서의 모든 문파가 연합하여, 이번에야말로 마도를 밀어낸다며 기대 중이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겼다 한들 십대 고수와 그 제자들의 검대가 온다면…….”
“그분들은 오지 못합니다.”
“무엇이? 어째서인가!”
손현은 허윤이 적어 준 글자를 내보였다.
“북로남왜가 칼을 들었습니다. 검대는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북로남왜!”
원래는 북쪽의 오랑캐, 남쪽의 왜구란 뜻이다.
보통 변경을 자주 침범해 약탈하는 북방의 이민족과 남쪽 해상의 해적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무림에서는 사용하는 의미가 다르다.
강호의 중심인 중원 무림이 아닌, 그 외의 무림 세력.
즉, 북방의 북천(北天)과 남방의 남도악랑(南濤鰐浪)을 말한다.
그들을 멀쩡한 명칭이 아니라 오랑캐와 왜구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사파의 대표적인 거대 세력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녹림(綠林)과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도 가세했습니다.”
“허!”
손현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도와 사파가 함께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됐는데.”
산수몽!
산과 물의 외적. 바로 산적과 수적이다.
허윤은 이미 점괘를 써 주던 그때 지금의 일을 다 예견한 셈이었다.
하나 당시엔 너무 뜬금없는 점괘였다.
마도의 목적은 신주 탈환이고 그 이유는 과거에 자신들이 살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는데, 설마 그 영토를 사파와 나눠 가질 거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게다가 정파니 사파니 해도 결국은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서역의 마도는 이민족이나 다름없었다.
큰일이 생기면 그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게 암묵적인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그 사파가 마도와 손을 잡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
자미사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알아본바, 조금 전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채가 총동원령을 내려 모든 육로와 뱃길을 장악하고 있다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북천이 내려오고 남도악랑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채는 강호 전역에 걸쳐 널리 활동하기에 상대하기가 아주 귀찮고 번거롭다.
게다가 마도와 북천, 남도악랑이 삼면에서 같이 치고 올라오며 크고 작은 사파를 흡수한다면?
강호의 모든 정파가 공격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