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6
26화
第六章 백도맹과 무림맹
휘이잉.
메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팔 조 조원들은 말없이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대충 바닥에 갈겨 쓴 칸들. 그 수많은 칸 중에 하필이면 허윤이 던진 동전이 ‘마(魔)’의 글자에 들어가 있었다.
“…….”
허윤을 돌아보는 소지광의 얼굴이 썩었다. 아니, 소지광뿐만이 아니라 다른 열다섯 명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조원 중 한 명이 뻔히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는 투로 번산에게 물었다.
“마, 는 뭐라고?”
“단체의 장급입니다. 그러니까…….”
소지광이 짜증 내며 소리쳤다.
“육대마가의 수장인 혈마! 고루마! 풍마! 사승! 천마종의 성광본존! 뇌음사의 벽력원장! 그게 마급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고수를 만나게 될 거라는 점괘가 나온 거야?”
“그렇다잖아.”
소지광이 도끼눈을 뜨고 허윤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
“허, 내가 뭘 어쨌단 말이오. 점괘 결과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아니지. 동전 던지는 정도는 충분히 조작할 수 있는 거 아냐. 지금 기강이라도 잡겠다는 거냐, 뭐냐?”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기강이니 뭐니 강압적으로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오.”
“그런 사람이 첫날부터 내 머리통에 혹을 만들었잖아.”
“그야, 소 노형(老兄)이 먼저 덤벼드니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요.”
“좋아. 그건 내가 잘못했다 쳐.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한단 말이오?”
“네 점괘대로면 우리는 마급 고수가 기다리는 사지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 아냐. 우리더러 죽으러 가라고? 그냥 여기서 임무 포기할까?”
가뜩이나 오주 지회의 회주에게 찍힌 몸이었다. 그런데 점괘 때문에 팀원들과 불화가 생겨서 첫 임무도 완수하지 못한다면 허윤은 분명 쫓겨나게 될 터였다.
허윤이 소지광을 달랬다.
“점괘가 그리 나온 것뿐이지, 그게 임무를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올시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서 왜 되지도 않는 짓거리를 해서 조원들 기를 죽이느냐고. 아까부터 누가 죽느니 마느니, 무슨 마도의 군단장이 나타나느니. 이상한 소리만 해 대고 있잖아!”
소지광이 성큼 허윤에게 다가섰다. 그때 장용과 쾌도가 그런 소지광의 앞을 막았다.
“어허. 웬만하면 선 넘지 말지, 영감.”
“형님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는 거 아뇨.”
소지광이 눈을 치켜떴다.
“비켜라.”
장용과 쾌도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못 비키지.”
“영감이 우리 형님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소지광의 안광이 점점 짙어지더니 곰방대에서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안 비키면 늬들도 오늘 곡소리 난다. 내 너희 형님에게 긴히 물어볼 게 있어. 알겠냐?”
소지광이 발을 힘껏 밟았다가 뗐다.
쿵!
맨땅의 단단한 흙바닥에 푹 들어간 발자국이 남았다.
장용과 쾌도가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형님, 영감이 뭐 물어볼 게 있다는데요.”
“조원과 소통하는 것도 조장의 중요한 역할 아니겠습니까.”
“…….”
장용과 쾌도가 비켜난 틈으로 소지광이 다가오더니, 허윤의 바로 코앞에서 말했다.
“다시 말한다. 만일 이게 장난이라면 지금 당장 사과해라.”
허윤은 장용과 쾌도를 째려보았다가 대답했다.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오?”
담담한 척 대답하고 있었지만, 허윤도 속으로는 퍽 당황한 상태였다.
‘아니, 왜 하필 나와도 마급이 나와?’
그나마 사급이 나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침부터 바람이 부는 것도 그렇고, 하필 해몽도 그렇고. 참 이상한 날이구나.’
일단 소지광을 진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나는…….”
허윤이 막 말을 더 이으려던 그때.
보였다!
소지광이 카아악 하고 가래침을 모아 허윤의 얼굴에 뱉었다.
퉤!
허윤의 얼굴에 가래침이 붙었다. 소지광이 살기 어린 눈으로 입을 이죽거리며 말했다.
‘만약 군단장이 나오지 않으면 그때 넌 진짜 내 손에 죽는다. 임무 중에 사라져서 아무도 찾지도 못하게 될 거야. 어린 핏덩이 새끼가 예쁘다고 봐줬더니 어딜 계속 기어올라. 뒈지려고, 쌍놈 새끼가.’
“카아악……!”
허윤은 정신을 차렸다.
소지광이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힘껏 가래침을 모으는 중이었다.
그에 허윤은 잽싸게 옆으로 비켜섰다.
그 피한 시기가 너무 적절해서, 소지광은 고개를 앞으로 내민 채 입을 약간 뾰족하게 오므리고 있는 상태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
소지광은 기분이 이상했다.
허윤이 신법의 고수라서가 아니라, 마치 자기가 뭘 하려 했는지 알고 피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소지광은 침도 뱉지 못하고, 하려던 얘기도 하지 못했다. 어색하게 입을 앞으로 내민 자세로 멈춰 있을 뿐이었다.
그때 장용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소지광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뭐 해, 영감?”
소지광이 짜증 난다는 양 장용을 쳐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퉤!
“으악! 이 미친 영감탱이가!”
“낄낄낄. 너희 형님한테 주려던 건데, 네가 대신 전해 줘라.”
“아, 그래?”
장용이 뺨을 닦고는 허윤을 돌아보았다.
“카악!”
“씁!”
허윤이 씁 소리를 내며 인상을 쓰자 장용이 소지광에게 화를 냈다.
“영감 때문에 나만 형님한테 혼났잖아!”
“그러니까 넌 비켜.”
소지광이 허윤에게 말했다.
“동전 가지고 장난치는 거 말고. 그렇게 점술에 자신이 있으면, 내친김에 그 마급이 누군지 제대로 점쳐 봐.”
“이제 그만합시다.”
“그만하긴 뭘 그만해. 제대로 점을 쳐 보라니까?”
허윤이 한발 물러섰다.
“내가 점을 잘못 쳤을 수도 있으니, 그냥 여기까지만 하잔 겁니다.”
“그런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면 안 되지.”
소지광이 조원들 쪽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신이니 점이니 하는 것들을 아주 혐오하는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물만 흐려 놓고 발 빼면 같이 일 못 해.”
조원들이 동조했다.
“맞아. 그건 말이 안 되지.”
“뭐 씨, 동전으로 다 해결할 거면 정찰은 왜 하고 정보원은 뭐 하러 있어.”
쾌도가 가느다란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소지광을 쳐다보았다.
“영감. 지금 반란을 선동하는 거야?”
“이 무식한 새끼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있어 가지고.”
“내 말이 맞아, 틀려?”
“아, 그래. 네 말이 맞는다. 반란 선동하는 거야.”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
소지광이 그래서 어쩔 거냐는 투로 빤히 쳐다보자 쾌도가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궁금해서.”
“쯧쯧.”
소지광이 혀를 찬 뒤 동전을 허윤에게 던졌다.
“그러니까 증명을 해 보란 말이야. 네 점술이 그렇게 잘 맞으면 그 마급 고수가 어떤 자인지 뭐라도 점을 쳐서 알아내 보라고. 그래야 뭐든 대처를 할 거 아냐.”
“흠.”
허윤은 침을 삼켰다.
‘나더러 기강 잡지 말라더니, 오히려 자기들이 주도권을 잡으려는 건가?’
가뜩이나 점술에 배타적인 무림인들이다.
만약 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 허윤이 뭔가를 할 때마다 반발하고 나설 것이었다. 가짜 점쟁이니 뭐니 하며 도통 말을 들어 먹지 않을 거야 자명한 일.
‘이걸 뭐 어째. 적당히 상황을 봐서 때워 넘길 수밖에.’
허윤은 배에 힘을 주고 외쳤다.
“좋소!”
소지광과 조원들이 허윤을 주목했다.
“그 말뜻은?”
“마급의 고수가 정말로 나온다면 어떤 자일지 점을 쳐 보겠소.”
“흐응? 그래?”
“그러나, 나는 말했다시피 마도의 고수들에 대해 잘 모르오. 어떤 특징적인 점이 있어도 정확히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것이외다.”
소지광이 비웃었다.
“밑밥 깔지 말고 한번 해 보기나 해.”
“밑밥이라니.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알았으니 해 봐.”
“시초가 필요한데.”
“시초가 뭐야.”
“톱풀이오.”
소지광이 번산에게 눈짓했다. 막내 번산이 귀찮은 표정으로 톱풀을 뜯으러 갔다.
허윤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 *
허윤은 북쪽으로 절을 한 뒤, 얼마 남지 않은 술을 살살 세 번 뿌렸다.
“천지신명께 아뢰옵니다. 천지신명께서는 비와 이슬을 내리시어 만물을 윤택게 하시고, 오행을 정하시고, 주야를 구분하여 이치를 밝혀 주시며 뢰(雷)로써 지존의 권능을 행하시니, 마땅히 제 질문에도 응답하여 주시기를 기대하옵니다.”
그 뒤 큰 소리로 읊었다.
“우리가 마도의 고수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혹은 그 같은 고수가 마급이거나 마급이 아니거나 하여도…….”
소지광이 허윤의 말을 듣다가 끼어들었다.
“저, 저 봐라. 밑밥 깔지 말랬지.”
허윤이 서슬이 퍼렇게 눈을 치켜뜨고 호통을 쳤다.
“어허! 부정 타게 끼어들지 마시오! 이게 다 원칙이 있고 순서가 있는 것이거늘! 그럼 소 노형이 점을 치든가!”
허윤이 마음먹고 강하게 나가자 서슬이 시퍼렜다. 나름 수십 년간 장터에서 손님을 쥐락펴락하였는지라 표정 짓는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소지광도 깜짝 놀라선 별다른 말을 못 하고 입을 삐죽거리기만 했다.
“흠흠.”
허윤이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천지신명께 다시 아뢰옵니다. 여하간 어떠한 경우든 우리가 가까운 시일 내에 마도의 고수와 만날 인연이 있다면, 혹여 그런 인연이 없다 하여도 만일에 일말의 여지나마 있다면! 그게 어떤 자인지 알고 싶사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옵건대, 명확한 말씀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곤 시초를 잘 골라 나눈 뒤, 손에서 옮기며 셈을 시작했다.
“건책(乾策)은 이백십육의 수이고, 곤책(坤策)은 일백사십사이므로 이들을 합하면 삼백육십이요, 이것이 일 년의 날수이니…….”
시초를 나누고 셈을 하는 건 반복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처음엔 흥미진진하게 여기던 조원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지루해했다. 하지만 허윤이 부정 탄다고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팔괘가 이루어지며…….”
마침내 허윤이 셈을 마치고 점괘를 뽑았다.
바닥에 작대기 여섯 개를 그렸다.
중천건(䷀).
“나왔소.”
졸고 있던 조원들까지 다 몰려들었다.
“선 여섯 개? 이게 뭐야?”
“이게 마도의 고수라고?”
허윤이 점괘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천건(重天乾)은 육십사 괘의 첫 번째이자 여섯 개의 모든 효가 양(陽)인 특수한 점괘일세. 흔히 만사형통을 나타내는데…….”
“마도 고수가 만사형통이야?”
“거, 좀 기다려들 보게. 우리는 운수를 보려던 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었네. 이 점괘는 견군용무수길(見群龍无首吉)이라, 뭇 용을 보았는데 머리가 없으면 길하다는 말일세.”
조원들이 어리둥절했다. 번산이 갑자기 툭 던지듯 말했다.
“중천건의 점괘는 여섯 마리의 용이 서로 하늘로 오르겠다고 싸우는 형상이라, 머리를 쳐들고 싸우면 될 일도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머리가 없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하라는 말이죠.”
“오호? 막내!”
“막내 똑똑한데?”
“해결사 했다더니?”
번산이 얼굴을 붉혔다.
소지광이 물었다.
“그래서? 그게 마도 고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모두의 이목이 허윤에게 향했다.
허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나도 모르지.’